Skip to main content

“결혼,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이 빚어낸 첫 제도”

 

-창세기 2장 18~25절-

 

 

 

모레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올해는 우리 사회가 부부의 날을 제정한 후 열여덟번째 맞이하는 부부의 날입니다. 우리 국민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은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아직도 부부의 날이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계시지요? 네. 우리나라는 2007년에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계속 지켜오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에 부부의 날을 왜 추가했을까요? 예, 그만큼 가정에서 부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통상 가정은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되지만, 그러나 그 출발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가정의 시작이고 근간이라는 것이지요. 가정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부부가 행복해야 합니다. 부부 관계가 친밀하고 긴밀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가 가정의 달에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부부의 날 날짜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예, 5월 21일입니다. 왜 이 날짜를 택하여 지정했을까요? 부부란 남편과 아내 두 사람(2)이 하나(1)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이 개념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매우 비슷하지요? 사실 이 부부의 날 제정은 약 20년 전 경남 창원에서 목회하던 권재도 목사 부부로부터 비롯된 셈입니다. 1995년에 권 목사 부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부부가 행복하고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의 교회에서부터 부부의 날을 만들어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부부의 날을 지키자고 캠페인을 계속 전개했습니다. 이 운동은 점점 호응을 얻어 2001년에는 국회에 입법을 청원했고, 그리고 마침내 2007년에는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올해 부부의 날을 바로 이틀 앞에 둔 오늘 주일에 방금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결혼제도의 기원 및 결혼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평균 결혼 연령이 30대를 이미 넘었고 또 결혼하는 청년들의 수도 이전에 비하면 매우 줄어들어 있습니다.1)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결혼과 가정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듣고 함께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은 성도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상 가정은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되지만, 그러나 그 출발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가정의 시작이고 근간이라는 것이지요. 가정이 행복하려면 무엇보다 부부가 행복해야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제도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결혼은 하나님이 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만드신 최초의 제도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은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2절이 말하듯이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에 여자를 만드셨고, 그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 그가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돕는 배필과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 아담의 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그녀를 보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23절)라고 탄성을 발하며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아담은 그녀를 아내로 맞고 그녀와 결혼하며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창세기의 이 기사는 하나님이 친히 결혼제도를 만드셨음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결혼제도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안식일제도와 함께 제정하신 창조의 제도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인류 사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들 마다 결혼제도를 두고 시행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자신들이 자기 나라와 문화에 따라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해 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인간 사회가 만든 사회적 제도요 사회적 구성물 (social construction)로 여겨왔습니다. 

 

결혼은 국가가 만든 사회적 제도라는 시각과 그 문제점

그러면 결혼제도를 사회적 제도냐 아니냐로 인식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것은 큰 의미가 있고 이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사회가 결혼을 자신이 만든 제도라고 생각하면 결혼의 정의와 내용과 범위 등을 자신이 규정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그것들을 재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제도를 각 사회와 문화가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회구성원이 이제 좀 결혼의 정의와 성격을 바꾸고 싶어한다면 그에 따라 결혼의 정의와 내용을 바꿀 수 있고, 그렇게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전통적으로 사람들과 나라들은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 간의 결합으로 생각하고 규정해 왔지만, 최근 유럽의 여러 나라는 전통적 결혼의 정의를 허물고 동성 간의 결합도 결혼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즉 결혼을 재정의한 것이지요. 최근의 예를 들자면 미국의 경우입니다. 지난 2015년에 미국은 연방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따라 동성 간의 결혼을 결혼으로 보고 또 합법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다수의 대법관들이 미국 시민의 결혼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에 내재된 기본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 권리는 법에 의해서 보장되어야 하고 따라서 동성애자들로부터도 그와 같은 권리와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아울러 연방대법원은 결혼은 법과 사회적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고 사회의 발전에 따라 변천되고 진화되어 온 사회적 제도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고 결혼의 정의도 재정의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2) 즉 결혼은 역사적으로 진화해 온 사회적 제도이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3) 따라서 앞으로도 사회와 국민이 합의하면 결혼은 언제든지 재정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만이 아니라 두 사람 간의 결합 즉 남자와 남자의 결합, 여자와 여자의 결합도 결혼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 논리로부터 동성결혼도 결혼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국가와 사회가 결혼을 자신이 만든 제도라고 생각하면 결혼의 정의와 내용과 범위 등을 자신이 규정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그것들을 재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신적 제도

그러나 교회는 결혼 제도가 하나님이 만드신 신적 제도이고,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연합하여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런 인식을 갖게 되면,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사는 것이라는 진리에 따라 결혼하고 그 사실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지 않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결혼 제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신적 제도임을 분명히 믿고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결혼 제도를 만드셨는지, 그리고 부부의 역할과 기능은 어떠해야 하는지, 각각 부부와 자녀는 어떻게 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특히 신약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구약 창세기의 내용을 언급하여 결혼을 정의했고, 서신서를 보면 바울과 베드로 사도는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들을 통해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해야 하며, 어떤 역할과 기능을 힘써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를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가르침에 기초해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에 대해 설교해 왔고, 성도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결혼 생활의 규범으로 삼아 살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결혼 제도를 만드셨는지, 그리고 부부의 역할과 기능은 어떠해야 하는지, 각각 부부와 자녀는 어떻게 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만드신 이유

이제 한 가지 더, 하나님이 왜 결혼 제도를 만드셨는지를 살펴봅시다. 본문 2장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짧지만 하나님이 결혼 제도를 만드신 이유를 분명히 밝혀줍니다.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엿새 동안 각각 빛과 어둠, 궁창, 땅과 식물, 광명체 등의 세상과 새와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땅의 짐승들을 창조하신 것을 기록하고, 이어서 그것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1:10, 1:12, 1:18, 1:21, 1:25)라는 하나님의 평가를 달아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의 상황이나 존재 방식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긍정적인 평가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2장에 와서 오늘 우리가 읽은 18절에 보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는 대조적인 평가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 대해 처음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피조 세계의 창조물들과 생물들의 상황과 존재 방식은 좋은데, 정작 그것들을 다스려야 할 하나님의 대리인인 사람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좋지 않음의 상태를 즉시 수정하는 조치를 취하십니다.4) 그것은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좋지 아니하다고 여기셨을까? 혼자 살면 외롭기 때문일까?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독신으로 살게 종종 허전함과 외로움에 사로잡혀 활기를 잃고 무력해질 수 있어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곧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창 1:27-28)을 잘 감당해 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 어디에도 이런 식의 설명은 없습니다. 또 이렇게 유추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설명과 주장은 그럴 듯하지만 인간적 상상이나 해석에 불과합니다. 본문은 단지 ‘사람이 홀로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하나님의 평가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평가하신 하나님이 즉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즉, 배필과 결혼하여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목사인 존 파이퍼 목사님은 “결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5) 즉,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제도라는 것이지요.

이제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뒤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결혼하여 사는 것이 좋다고 평가하셨고 그에 따라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자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함께 결혼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이 디자인한 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리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결혼하여 생활하는 것이 규범적(normative)인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은 성인이 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본래 사람을 위해 디자인하신 규범적인 생활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이에 따라 살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뒤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 결혼하여 사는 것이 좋다고 평가하셨고 그에 따라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자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함께 결혼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이 디자인한 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리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결혼하여 생활하는 것이 규범적(normative)인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결혼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듯 지켜야할 관계

결혼하여 사는 것이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생활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태도와 목표를 갖고 결혼생활을 해야 할까요? 본문 2장 24절은 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을 제시합니다.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결혼 생활의 정의이자 목표입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해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사용된 동사가 2개 있습니다. 바로 ‘떠나는 것’과 ‘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떠난다’는 히브리어 단어(עזב, 아자브)로, 이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거부하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던 것입니다(렘 1:16; 2:13, 17; 5:7 등). 다른 하나는 ‘합하다’라는 동사(דבק, 다바크)로,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신 4:4; 10:20; 13:5 등).6)

그렇다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해야 한다는 명령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이는 이제까지 부모에게 충성했던 것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아내와 남편으로 충성하고 유대감을 갖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부모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에게 우선적인 가치와 소속감을 부여하고 살아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해야 한다는 명령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이는 이제까지 부모에게 충성했던 것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아내와 남편으로 충성하고 유대감을 갖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부모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에게 우선적인 가치와 소속감을 부여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24절은 이를 설명하면서 둘이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부부는 이제 하나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몸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지지도 않습니다. 나누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혼관계는 성격상 영속적인 것입니다.7)

성도 여러분, 이혼율이 매우 높은 시대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 목표는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목표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따라갈 모형이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실제로 실현하고 보여 준 모형(type)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해 보이신 모습입니다.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유비해서 설명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되 마치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엡 5:25). 사도 바울은 이 모형을 남편에게 결혼한 부부에게 제시하면서 결혼한 남편들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와 한 몸을 이루어 갈 것을 명령했습니다(엡 5:28).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이 권고를 무겁게 새겨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처럼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 명령은 순종하면 훌륭하고, 순종하지 않아도 이해할 만한 그런 권고가 아닙니다. 성도들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할 그런 명령으로 받고 노력해야 합니다. 완벽히 순종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나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던 그 모형을 늘 의식한다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의식을 갖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우자와 한 몸을 이뤄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불신자와는 달리 신자들의 결혼 생활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함양하고 실천하며 또 맛보고 누려야 할 그런 천국 시민의 생활이 되도록 우리는 더 애써야 하겠습니다.

 

완벽히 순종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나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던 그 모형을 늘 의식한다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의식을 갖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우자와 한 몸을 이뤄가도록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것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 결혼과 부부 관계의 항구성(恒久性)을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라고 이혼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질문에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셨던 말씀을 인용하며 대답하셨습니다(마 19:4-5).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난 뒤 자신의 설명을 덧붙여 바리새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마 19:6a).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b).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는 의식을 갖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됨을 굳게 하면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가면서: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의 제도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결혼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결혼 생활을 통해 두 사람이 보완되고 온전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두 사람을 부부로 짝지어 주셨음을 인식하면서, 서로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벧전 3:7) 귀히 여기고 서로 사랑하면서 평생을 좋은 동반자로서 살아가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두 사람을 부부로 짝지어 주셨음을 인식하면서, 서로를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벧전 3:7) 귀히 여기고 서로 사랑하면서 평생을 좋은 동반자로서 살아가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각주)

1) 2024년 3월3일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인구동향’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3년도 혼인 건수는 19만3천673건이었다. https://kostat.go.kr/board.es?mid=a10301010000&bid=204&act=view&list_no=429995 그런데.  이것은 10년 전인 2013년도의 혼인 건수 32만 2천 807건과 비교하면 약 40% 감소한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302047200002?input=1195m
2) 수정헌법 제 14조 제1항. 미 합중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합중국의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은 합중국 및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다. 어떠한 주도 합중국 시민의 특권과 면책권을 박탁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수 없다. 어떤한 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면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정소영 편저, 미국은 어떻게 동성결혼을 받아 들였나 (서울: 도서출판 렉스, 2016), 257-8.
3) 다수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이 법과 사회의 발전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결혼제도는, 비록 이성 간 결합에 한정되었을지언정, 시간에 따라 변천해왔다.” 
4) Victor Hamilton, Genesis1-17, 『창세기 I』, 임요한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6), 188. 
5)  John Piper, The Momentary Marriage 『결혼 신학』  이은이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0), 23.
6) Hamilton,  Genesis1-17, 『창세기 I』, 194.
7) Andreas J. Koestenberg and David W. Jones, God, Marriage, and Family, Second Edition, 『성경의 눈으로 본 결혼과 가정』 , 윤종석 옮김(서울: 아바서원 2016), 42.


© 한기윤 홈페이지의 모든 자료의 소유권은 한기윤에게 있으므며, 출판과 인쇄는 한기윤의 허락 없이는 무단으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단 한기윤의 이슈 리포트와 설교 자료는 설교를 위한 목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기윤(KICE) 원장인 신원하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B.A.)을 전공했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석사(M. Div.)를, 미국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와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석사(Th.M)와 박사(Ph. D.) 학위를 하였다.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원장으로 재직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 기독교윤리연구소(기윤실부설)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