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12월 26일, 전 세계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 작품이 전편을 뛰어넘는 흥행과 성공을 다시금 이뤄낼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류의 중심으로 우뚝 선 ‘K-드라마’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움츠러들었던 2021년 9월 17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단 일주일 만에 영어권을 포함한 넷플릭스 전체 순위에서도 4주간 정상에 오르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한국 드라마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리며, 한중일과 동남아시아에 국한되었던 한류의 바람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지난 4년 동안, 한국 드라마는 잇따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놀라운 성과를 이어갔다. 2022년에는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 《더 글로리 시즌 1》이, 2023년에는 《더 글로리 시즌 2》, 《마스크걸》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근 방영된 《눈물의 여왕》은 넷플릭스 전체 순위 3위에 오르며 또 한 번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곧 12월 26일, 전 세계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 작품이 전편을 뛰어넘는 흥행과 성공을 다시금 이뤄낼 수 있을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본 리포트는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한류의 중심이 된 한국 드라마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흥행 요인을 분석한다. 이와 반대로 K-드라마가 지니고 있는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이를 통해 K-드라마의 흥행의 그늘 속에서 위선적인 집단으로 호도되고 있는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의 이미지에 대해 분석하고,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해 보았다. 끝으로 이 시대에 기독교 교리의 진리와 능력을 드라마적 요소를 통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신학적으로 분석하였다.
K-드라마와 흥행 요인
한국 드라마는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에 서비스를 개시하기 전까지 KBS, MBC, SBS 등의 지상파 채널과 tvN(2006년), OCN(2009년) 같은 케이블 채널, 그리고 2010년 이후 등장한 종합편성(종편) 채널을 통해 시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 넷플릭스의 진출을 시작으로 웨이브, 왓챠, 티빙,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등 다양한 OTT(Over The Top) 플랫폼이 등장하며,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 환경을 통해 영상물을 제공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OTT 플랫폼의 등장은 드라마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기존에는 지상파와 케이블, 종편을 합쳐도 10개 미만의 채널이 드라마를 공급했으나, OTT 플랫폼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영상 제작사들과 함께 주요 공급자로 떠오르며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또한, OTT 플랫폼은 주로 개인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에서 시청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몰입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OTT에서 제공되는 드라마는 기존 TV 드라마보다 몰입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1]
이와 같은 이유로 OTT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 한국 드라마는 급격히 변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강렬한 소재를 다루어야 했고, 새로운 서사 구조와 독특한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넷플릭스가 약 350억 원을 투자해 제작한 최초의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2019)이다. 《킹덤》은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막대한 제작비와 실패에 대한 부담으로 시도하기 어려웠던 좀비 판타지 장르를 사극의 형식으로 풀어낸 새로운 장르물이었다. 이 드라마는 발표 직후 넷플릭스의 한국 사용자 수를 5배로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OTT 플랫폼에서 한국 드라마가 가진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한, 2021년 9월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2024년 12월 현재에도 넷플릭스 TV 드라마 부문에서 전 세계 1위의 시청수를 기록하며 K-드라마의 세계적 위상을 끌어올렸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이후 K-드라마 제작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흥행 요인은 K-드라마의 공식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 흥행 공식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현실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K-드라마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시사적 내용을 중심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종교 권력을 비판한 《지옥》, 학교에서 좀비가 된 학생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 사이비 종교로 위장한 마약 카르텔과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신도를 그린 《수리남》, 국가와 학교가 외면한 학교 폭력 피해자가 사적 복수를 결심하는 《더 글로리》, 남북의 국가 권력에 이용당하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무빙》 등은 모두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다루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2]
둘째, 과거 TV 드라마가 탁월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완성형 캐릭터, 소위 ‘먼치킨’(munchkin)[3] 유형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최근의 K-드라마는 결함이나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언더독’(underdog) 캐릭터를 주로 내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중년의 나이에 노모와 함께 살며 도박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심한 인물이었다. 《무빙》의 김봉석 또한 자신의 초능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약한 캐릭터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평범한 영웅의 서사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통해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는 대리 만족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셋째, 과거의 TV 드라마가 판타지 장르나 역사물 등에서 미래 세계와 과거의 거대한 담론을 다루었다면, 현대 K-드라마는 시청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적 문제와 현재의 자아를 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4] 연세대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는 드라마의 인기와 흥행에 대해 “훌륭한 외모를 가진 연기자들을 캐스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가 방송 드라마의 내용을 통해 본인이 얼마나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느냐”라고 설명한다.[5] 이는 이해와 사랑이 한 사람의 생존과 삶의 동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를 충족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게 돕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는 시청자가 자신과 닮은 사람과 이야기를 찾아가는 일종의 ‘공감 게임’이라 할 수 있다.[6]
결과적으로, K-드라마의 흥행과 성공은 단순히 오락의 차원을 넘어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세계인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좀비, 사이비 종교, 학교 폭력, 마약 카르텔, 사적 복수 같은 강렬하고 신선한 서사적 전환, 그리고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평범한 인물이 잠재된 능력을 개발하며 영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현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일반 시청자들의 감정을 대변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시청자는 K-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이 존중받고 이해받고 있다는 깊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K-드라마의 위험성
이러한 K-드라마의 흥행과 성공 이면에는 드라마에 과도하게 몰입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드라마에서 주요 소재로 다루는 ‘사적 복수’를 현실에서 실행한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로 간주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낭만적으로 그려내어 시청자가 현실에서도 이를 용인할 수 있는 가치로 받아들이게 할 위험이 있다.
최근 방영된 《지옥에서 온 판사》는 악마가 사적 복수의 주체로 등장하며, 악인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악마조차 허용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기존의 윤리적 경계를 허물며, ‘좋은 악마’와 같은 상호 모순적인 개념을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런 서사는 선악의 명확한 구분을 흐리게 하여 시청자가 윤리적 혼란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송현태는 전자 영상 매체의 위험성을 3가지로 분류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7]
첫째, K-드라마는 시청자를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시청자가 드라마의 이미지와 내용을 능동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채,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물론 OTT 서비스의 확산으로 이러한 위험성이 과거 TV 드라마 시절보다는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OTT 플랫폼에서는 시청자가 드라마를 언제든 중단하고 다른 콘텐츠를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OTT의 즉각적인 성격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많은 드라마가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초반부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영상을 과도하게 활용한다. 이는 시청자로 하여금 더 강한 자극을 기대하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더욱 충성도가 높은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나아가 폭력, 욕설, 동성애 등과 같은 선정적 소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점차 무감각해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둘째, 드라마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제작사의 권력과 거대 자본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도 크다. 이는 제작사가 흥행을 위해 특정 주제나 내용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기획함으로써 시청자들이 제한적이고 편향된 소재를 소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한국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상파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강렬한 스토리와 화려한 캐스팅을 강조한 멜로물을 선호한다고 한다.[8] 이는 OTT 플랫폼에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콘텐츠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흥행 코드에 맞춘 편향된 작품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청자는 자기도 모르게 자본의 논리와 선택 의도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9]
셋째, 서사와 영상을 통해 공급되는 편향되고 과도한 정보의 위험성이다. 영상이란 이야기의 개연성과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 뇌에 이미지와 느낌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사실에 대해 편향되거나 부정적인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직접 판단하기 전에 선입견으로 자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K-드라마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K-드라마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시선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흥행에 성공한 많은 드라마가 교회와 기독교인을 위선적이고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기독교의 상징을 폄하함으로써 부정적 이미지를 과장하고 이를 흥행의 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10] 고신대 강진구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 드라마가 이러한 천편일률적 묘사를 지속한다면, 한류 열풍이 오히려 선교 대상자들에게 한국 기독교와 선교사들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11] 당연히 이는 세계 선교뿐만 아니라 국내 전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고신대 강진구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 드라마가 이러한 천편일률적 묘사를 지속한다면, 한류 열풍이 오히려 선교 대상자들에게 한국 기독교와 선교사들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연히 이는 세계 선교뿐만 아니라 국내 전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K-드라마와 교회
K-드라마 속에서 위선의 아이콘이 된 교회
K-드라마의 흥행을 이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2021)을 보면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위선의 부정적인 클리셰[12]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영은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과거를 가진 캐릭터로 등장하며, 참가자 244번 남성은 평소 주기도문을 외우고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수리남》(2022)에서는 외국 한인 교회의 목사가 동시에 마약 카르텔의 수장으로 그려진다. 《더 글로리》(2022~2023)에서는 학교 폭력 가해자인 이사라가 대형 교회 목사의 딸로 등장하며, 교회 지하에서 마약을 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2024년 10월 개봉된 영화 《보통의 가족》도 교회와 개신교인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인 아버지는 노숙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려는 형을 죽인다. 교수 부부는 교회에 다니는 신자이며, 살인을 저지른 아들은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하나님에게 용서받으면 그만이라고 쉽게 말한다.[13]
교회가 위선의 아이콘에서 탈출하려면
이처럼 상당수의 K-드라마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편향적으로 평가하고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명은 선정적이고 흥행 위주의 소재로만 가득 찬 K-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보다 깊이 있고 진정성 있는 드라마를 세상에 소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가 기독교인 제작자, 배우, 작가, 감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상, 교회가 이러한 일을 체계적으로 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성도 개인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을 격려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교회와 사역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 감독, 배우, 제작자, 작가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그 길을 걸어갈 성도들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 원천은 바로 모든 서사와 드라마의 근본이 되는 성경의 드라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 주제인 복음이다. 복음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고통, 구원의 여정을 담은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서사다.
교회가 이 성경의 드라마를 온전히 공급한다면, 기독교인 예술가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서사와 드라마를 무궁무진하게 창작할 자유를 얻을 것이다. 그 자유는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진리와 정의, 희망을 말하는 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다. 교회는 이들이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복음의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고, 세상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을 보다.
기독교인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한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애플 TV에서 제작되어 2022년 이코노미스트가 최고의 드라마로 선정된 《파친코》다.[14]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평양의 백부자 가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백부자의 세 아들 중 첫째는 독립운동을 하다 죽고, 둘째 요셉은 일본에서 직장에 다니며, 셋째 이삭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려한다.
이삭은 폐렴을 앓아 몸이 약했지만, 신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 부산 영도에서 배를 기다리며 잠시 미혼모 선자의 집에 머문다. 이삭은 아이를 잉태한 미혼모 선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여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두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가 식민지 백성으로 천대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신앙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어려움을 이겨낸다. 선자는 이삭의 인자하고 편견 없는 태도를 통해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드라마는 이삭의 고난과 신앙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이삭을 신뢰하고 따르자 이를 시기한 같은 교회의 전도사는 일본 경찰에 이삭을 거짓 고발한다. 이삭은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간다. 그러나 이삭은 그 전도사를 용서하며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은 단순히 종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솔한 인간 이야기와 복음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보편적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는 원작자인 이민진 변호사의 신앙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민진 작가는 2022년 2월 17일 더뉴요커(The New Yorker)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가 평양신학교를 나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터진 후 부모를 잃은 조선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사역을 하셨다고 밝혔다.[15] 이러한 신앙 가족의 영향으로 그녀는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파친코》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녀의 소설은 그녀와 가족이 공유하는 기독교 신앙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신앙의 유산과 서사가 손녀인 이민진 작가와 같은 탁월한 스토리텔러에 의해 소설로 쓰여지고, 드라마로 재탄생한 것이다.
《파친코》는 작가의 가족이 공유하는 기독교 신앙의 유산이다.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신앙의 유산과 서사가 손녀인 이민진 작가와 같은 탁월한 스토리텔러에 의해 소설로 쓰여지고, 드라마로 재탄생한 것이다.
드라마의 신학적 평가와 적용
성경은 삶을 뿌리째 변화시키는 구원의 서사다.
철학자 한병철은 스토리텔링과 서사를 구분하며, 이 둘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스토리텔링은 주로 재미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로, 현실의 변화에는 무관심하다.[16] 반면, 서사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이야기다. 서사는 삶과 이야기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17]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K-드라마의 성격은 서사라기보다는 스토리텔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서사적이며 이 서사들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삶과 이야기가 완벽히 통합된 서사적 존재다.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Leigh Sayers)는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역사상 인간의 상상력을 가장 크게 뒤흔든 흥미진진한 드라마”라고 표현하며, 그 독특성을 강조한다.[1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셨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 고통, 치욕, 패배, 절망, 죽음을 경험하신 온전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분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활이라는 열려있는 결말은 그분의 삶을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모든 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서사로 만들었다.
도로시 세이어즈에 따르면,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가진 종교는 기독교만이 아니다. 이집트 신화 속 오시리스는 죽음을 맞이한 뒤 다시 살아났고,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고난받는 제우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연극 속에 머물며, 현실과는 분리된 상징적 이야기일 뿐이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닌,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그리고 동시대의 인물들 속에서 전개된 이야기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기록한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마태복음 2:1). 이는 단순한 신화적 배경이 아닌, 역사적 시공간 안에서 펼쳐진 사건을 말한다. 그리고 약 33년 후, 예수님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빌라도라는 이름은 오늘날 누구나 아는 유명인을 언급하는 것과 같아서, 이는 예수님의 죽음과 처형이 단지 이야기 속 상징이 아니라 명확한 역사적 사실임을 확증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는 곧 예수님의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성경의 드라마는 단순히 신화집처럼 신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강을 건너고 광야와 벌판을 걸으며 대화하셨던 인격적이고 구체적인 존재로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신념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삶으로 초대한다. 2,000년 전 제자들이 경험했던 그 삶의 연장선 위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지금도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 계신다. 우리가 이 제자로의 초대에 응할 때, 우리는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인 예수님의 서사 속의 일부가 되는 기적을 경험할 것이다.
마태복음은 이 약속을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로 증언한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태복음 27:52-53). 성도의 부활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실이다. 성경은 예수님과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한 제자들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보증을 ‘이미’ 제공하고 있다. 다만 그 완전한 실현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드라마는 단순한 위로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뿌리째 변화시키는 구원의 서사이자, 우리 모두가 초대받아 참여해야할 살아 있는 이야기다.
교리는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는 감동 드라마다.
사실, 드라마로 표현된 예수님의 이야기는 1~3세기 초대교회에서 교리라는 체계로 정립되었고, 오늘날까지 신앙 고백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짧고 명료하게 요약한 고백이다. 창조의 신비(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성육신의 기적(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승리(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승천과 재림의 소망(하늘에 오르사… 다시 오시리라), 교회와 성도의 부활(거룩한 공회… 몸이 다시 사는 것), 그리고 영생의 약속까지,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드라마틱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오늘날 현실에서 사도신경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때로는 주문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신앙의 고백이 단순한 반복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알랜 울프(Alan Wolfe)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복음주의 교회는 새 신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교리를 소홀히 했고, 주류 교회는 줄어드는 교인을 붙잡기 위해 교리를 등한시했다.”[19] 그의 지적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교리를 담은 언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깊은 의미는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교리와 삶은 점점 더 분리되고, 서사의 힘을 잃은 종교적 언어는 단지 형식적 체계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교리가 본래 지녔던 변혁의 메시지와 생명력을 상실한 채, 공허한 반복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케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오늘날 교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하게 살아감으로써 믿음의 이해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하며, 교리가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주장한다.[20] 밴후저는 교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교리를 대하는 방식과 그로 인한 편견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도로시 세이어즈의 통찰처럼, 교리는 본래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다.[21] 그러나 오늘날 교리는 그 본래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실한 채, 딱딱하고 생기 없는 체계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밴후저는 우리에게 교리를 드라마적으로 이해하라고 도전한다. 그는 이렇게 할 때,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네 가지 은유를 제안한다.[22]
그에 따르면, 성경은 드라마의 ‘대본’이며, 신학적 이해는 ‘공연’이다. 교회는 그 공연을 이루는 ‘극단’이고, 목사는 그 공연을 이끄는 ‘감독’이다. 결국, 기독교 공동체는 거대한 드라마이고, 성도는 그 드라마의 배우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교리와 삶의 단절을 극복하고, 교리를 현실 속에서 생생히 구현하는 길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K-드라마를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과 희열, 그리고 공감을 떠올려 보자. 시청자들은 고난 속에서 성장하는 언더독 캐릭터에게 희망을 얻고, 부조리에 맞서 싸우다 실패하는 인물과 함께 분노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주인공의 헌신에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은 그럴듯하지만 가상의 드라마에 기인한다. 밴후저가 말하는 성경과 교리의 드라마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펼쳐지며,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고 보여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생명력 넘치는 드라마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진실하고 감동적인 드라마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가며…
지금까지 K-드라마의 세계적 흥행 요인과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교회와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K-드라마는 그 선정성과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이야기를 현실처럼 생생히 구현해냈다. 바로 이것이 K-드라마 성공의 핵심 요인일 것이다. 한편, K-드라마 속에서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은 종종 위선적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이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을 통해 기대했던 이야기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실망과 분노의 표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안에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담겨 있다. 세상은 여전히 교회와 기독교인에게서 진정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성경과 교리는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하다. 그것은 단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교리를 대본 삼아, 목사의 감독 아래 삶 속에서 그 이야기를 공연할 때, 세상은 결코 이 공연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나 신화가 아닌, 살아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성경과 교리는 이 세상의 어떤 드라마보다도 드라마틱하다. 그것은 단지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교리를 대본 삼아, 목사의 감독 아래 삶 속에서 그 이야기를 공연할 때, 세상은 결코 이 공연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이야기나 신화가 아닌, 살아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각주
- 윤복실, “OTT드라마 <킹덤>의 서사 전략 연구,” (글로벌문화콘텐츠, 제43호, 2020), 113.
- 김륜희, “한국 장르물 드라마의 발전 과정 및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4, no. 1 (2024), 171.
- 주로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 쓰이는 강력한 캐릭터를 지칭하는 단어다. 2000년대에는 ‘먼닭’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먼닭’이라는 표현은 현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 김영훈. “나는 드라마에서 나를 찾는다 : 최근 드라마 경향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방송문화 no. 404 (2016), 201-202.
- Ibid., 194
- Ibid., 195.
- 송태현, 『이미지와 상징』 (서울: 라이트하우스, 2005), 64-67.
- 유건식, “넷플릭스가 국내 드라마 시장에 미친 영향 – 제작자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2020), 53.
- 이러한 제작 구조는 흥미로운 역설을 낳는다. 《오징어 게임》처럼 드라마는 자본주의와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성장과 영웅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 자체는 막대한 자본력을 통해 천문학적 수익을 창출한, 자본주의의 대표적 상징이라는 것이다.
- 성석환, “대중영화와 드라마에 폭로된 개신교회의 민낯, 반전은 가능한가,”(기독교사상, 3, 2024), 33.
- 강진구,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타난 기독교인의 이미지 연구,”(신앙과 학문 28, no. 4, 2023), 14.
- 드라마에서 관례처럼 빈번하게 사용되는 진부한 줄거리 또는 진부한 연출로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2008년부터 정기적으로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40~50%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 이 비율은 평균 70%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반면,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은 2008년 이후 2023년까지 꾸준히 20% 내외로 머물렀다. 이러한 결과는 갤럽의 2021년 종교 현황 조사에서 개신교인이 전체 인구의 약 17%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대다수는 비개신교인일 가능성이 크다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개신교인들이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된 시기가 K-드라마와 영화가 본격적인 한류로 자리잡기 시작한 2020년대 전후로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이 사실은 한국 교회에 대한 불신 비율의 폭발적인 증가가 K-드라마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을 위선을 대표하는 악한 케릭터로 부각시킨 결과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https://www.economist.com/culture/2022/12/02/the-best-television-series-of-2022 2024년 12월 1일 최종 검색.
- https://www.newyorker.com/culture/the-new-yorker-interview/what-min-jin-lee-wants-us-to-see?utm_source=chatgpt.com 2024년 12월 1일 최종 검색.
- 한병철, 『서사의 위기』, 최지수 역(서울: 다산초당, 2023), 49.
- Ibid., 60, 135.
- Dorothy Leigh Sayers, 『기독교 교리를 다시 생각하다.』, 홍병룔 역 (서울: IVP, 2009), 23.
- Alan Wolfe, The Transformation of American Religion: How We Actually Live Our Faith (New York: Free Press, 2003), 87.
- Kevin J.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A Canonical-Linguistic Approach to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5), ⅻ.
- Dorothy Leigh Sayers, 30.
- Kevin J. Vanhoozer, ⅻ.
이춘성 목사는 20-30대 대부분을 한국 라브리(L’Abri) 간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