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인공지능(AI)과의 토론
2024년 5월. 런던에서 남쪽으로 70여 km 떨어진 영국 남동부의 도시 브라이튼(Brighton)에 있는 한 대학의 대형 강의실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 전역에서 참석한 교수들과 교육 분야의 실무자 300여명이 대형 강의실에 모인 가운데, 최초의 로봇 시민(robot citizen)이라고 알려진 소피아(Sophia)와의 토론이 개시된 것이다.[1]
경영대학장의 사회로 진행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의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소피아에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평등(equality), 상상력과 지식, 종교, AI의 미래 및 인간과의 공존 등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질문을 던졌다. 소피아는 기계 특유의 다소 길고 드문드문 문어체가 포함된, 하지만 풍부한 어휘로 이루어진 깊이 있는 의견을 또박또박 답했다.
그림1. 영국 대학에서 로봇 시민 소피아(Sophia)와 토론을 하는 청중
초반에는 다소 어색하고 낯선 상황 속에 피식 웃음을 짓기도 하던 참가자들은, 소피아가 말하는 문장의 정확성과 답변의 깊이에 시간이 흐르며 점차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미래사회에 AI와 인간의 관계는 어떨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소피아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자, 이곳 저곳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얼굴들이 보였다.
“상호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협력하고 끈끈한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저는 우리가 인간과 인공지능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2]
에피소드2: AI시대의 교육에 대한 워크숍
약 한 달이 지난 뒤, 같은 장소에서 조금은 다른 성격의 워크숍이 열렸다. ‘학생들은 수업 평가에서 어떻게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가?’ 라는 핵심 질문으로 열린 이 워크숍에는, 다양한 연차의 교수들이 참석해서 이전에 자신들이 가르친 졸업반 학생들로부터 수업을 받았다. 참석자들의 준비물은 교수 자신이 출제한 시험문제였다.
워크숍에 참석한 교수들은 진행자가 된 학생들의 설명을 들으며,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본인이 출제한 시험을 치렀다 – 정확히 말하면, 컴퓨터에서 작동중인 AI 소프트웨어에게, 본인의 강의자료 및 출제한 시험문제를 입력하고, 답안을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AI가 (몇 분 만에) 작성해 준 답안지의 채점을 마친 교수들은 전체 참석자들의 채점 결과를 취합해서 비교했다. 모든 답안지가 B+ 이상의 학점을 받았고, 워크숍의 결론은 짧은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빠른 시일 내에] 우리는 평가를 다시 상상해야 합니다(Reimagine the assessment)!”[3]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육 현장, 특히 강의와 평가 분야에서는 근본적인 변화의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아직 명확한 규정과 윤리가 확립되지 않은 평가 영역에서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학문의 소비자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교수진들은, 본인이 학생의 지식을 평가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학생이 직접 작성했는지의 여부를 ‘감별’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반쯤 농담 섞인 어조로 이야기한다. AI의 유익 만큼이나, AI로 인한 우려도 커지는 대목이다.
기술 변화와 미래사회: 기대와 두려움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장면들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인공지능, 즉 AI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다. AI와 같은 기술의 변화가 가져오는/가져올 기회들에 대한 기대가 긍정적인 것이라면, 기술의 변화로 마주하게 될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worries)과 막연한 불안(anxieties)은 잘 관리해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저명한 교육학자이자 영국 총리실 자문으로 활동했으며『제 4차 교육 혁명: AI는 인간을 해방시킬 것인가 유아화 할 것인가?』의 저자이기도 한 앤서니 셀던 경(Sir Anthony Seldon)은 최근 열린 AI 시대의 교육에 대한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했다.[4] 본인의 발표 순서가 되자, 셀던 경은 발표 화면에 1800년대 후반 자동차 생산 공장 앞에 모인 노동자들의 사진 한 장을 띄웠다(그림 2 참조).
그림 2.Metal & coach workers pose in front of the Benz & Co factory in Mannheim, Germany 1897.
이어서 그는 기술변화 앞에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지금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2024년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사진 속에 있는, 백 년이 조금 넘은 과거에 자동차 공장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속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발전하는 자동차 기술과 확장되는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저는 이들의 눈빛에서, 기술 발전에 따른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이들이 갖고 있을 것 같은 불안함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자동차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기 시작한AI가 앞으로 가져올 미래의 변화는, 그 크기와 영향은, 사진 속 사람들 앞에 놓였던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광범위할 것입니다.”[5]
기술혁신 학자이자 기술경영 및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로서, 필자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대상인 기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또한 기술로 인한 변화의 영향을 상상하며 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인공지능은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 할 핵심 기술 중 하나이다. 이어서 본 리포트에서는 AI란 무엇인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AI 기술 발전으로 인해 변화해가는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들이 생각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인공 감미료(artificialsweetener)’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물질로서, 설탕 없이도 음식에 단 맛을 내주는 역할을 한다. 유사하게 ‘인공 지능(Atificial Intelligence)’이란 ‘컴퓨터를 통해 인위적으로구현한 지적 능력’이다.
AI란 무엇인가?
과연 ‘인공지능’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용어의 뜻을 이해하고 싶을 때, 기존에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하던 유사한 단어를 통해 뜻을 유추해 보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인공 감미료’ 라는 단어를 통해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인공 감미료(artificial sweetener)’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물질로서, 설탕 없이도 음식에 단 맛을 내주는 역할을 한다. 유사하게 ‘인공 지능(Atificial Intelligence)’이란 ‘컴퓨터를 통해 인위적으로 구현한 지적 능력’이다. 마치 천연물인 설탕을 넣지 않아도 인공 감미료를 사용해서 달콤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은 지능을 가진 인간이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똑똑한(smart) 행동이나 끊김없고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해준다.[6]
한편, 인공지능은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AI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AI란 ‘기술’일 수 있고, ‘능력’일 수도 있으며, ‘분야’일 수도 있다. 때문에 그 의미를 명확히 알고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례로, 요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챗지피티(ChatGPT)와 인공지능은 동일어가 아니다. ChatGPT는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OpenAI 라는 회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특히 ChatGPT는 사람들이 쓰고 말하는 자연어를 처리하고 생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렇게 ChatGPT를 강력하게 만들어 준 인공지능 기술은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라는 언어모델이다.[7]
AI라는 개념이 광범위하고 정의 역시 다양하기에, 우리 각자가 AI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또는, 프레임워크를) 갖고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AI 분야의 주요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는 『Artificial Intelligence: A Modern Approach』라는 책을 살펴보자.[8] 이 책에서는 AI에 대한 단 하나의 정의를 내리는 대신, 인위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 구현은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가에 따라 AI를 바라볼 수 있는 네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그림 3 참조).
그림에서, 세로축은 인위적으로 구현하려는 대상을 의미하고, 이는 크게 ‘사고/Thinking’와 ‘행동/Acting’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생각하는 능력을 인위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고 과정과 추론 방식에 관심을 둔다. 반면, 후자는 지능을 가진 개체의 행동 양식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를 인위적으로 구현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그림의 가로축은, 대상을 인위적으로 구현할 때 목표로 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이는 구현 결과의 성공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인간의 행위를 충실하게 모방하는(인간처럼/Humanly) 접근방식과,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상적인 존재로 구현하는(합리적이고 완벽한/Rationally) 접근방식으로 구분된다.[9], [10]
그림 3.인공지능의 정의를 구분할 수 있는 개념적 틀, 출처: Russell andNorvig (2016, p. 2) 기반으로 내용 구체화
이렇게 설명한 두 개의 축을 바탕으로, AI를 바라볼 수 있는 네 가지 관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Ⅰ. (컴퓨터 등의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Acting Humanly): AI가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행동 양식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을 중시한다. (예: 인간의 운전 행동을 모방한 자율주행차, 인간의 청소 행동을 모방한 가정용 로봇 등)
Ⅱ.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Thinking Humanly): AI가 인간처럼 사고하는 능력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인간의 인지 과정을 모방하여 고객의 질문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챗봇 등)
Ⅲ. 인간을 뛰어넘어 사고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Thinking Rationally): AI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고급 데이터 분석 및 예측 시스템(금융 시장 분석 및 투자 전략 수립 등),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AI 시스템(체스, 바둑 등의 게임에서 최적의 전략을 수립하는 AI))
Ⅳ. 인간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능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Acting Rationally): AI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 산업용 로봇과 고속 무인 드론 등)
기술의 변화와 미래사회
기술 변화(changes in technology)
1956년, 지능을 가진 기계에 대한 학술대회가 미국의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열리고, 학자들이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후로 70여년이 지났다.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기계를 구현하기 위해, 인간의 두뇌 구조를 본뜬 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두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하나의 거대한 구조로 연결된 신경망, 곧 네트워크이며,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 이를 모방하는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 모델도 등장했다.[11]
인공지능 기술은 이후 기대와 관심, 실망과 침체기를 반복하다가, 재발견과 도약기를 거치며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특히 이 가운데,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술[12], 그리고 2010년대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의 발전이 AI 기술 발전을 더욱 가속화했다.[13]
돌이켜 보면, 인공지능이 우리의 대화 가운데 화두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2010년을 전후로, 전문가들이 대량의 디지털 데이터, 소위 빅 데이터(Big Data)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에도 AI는 약간의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은 일반인들에게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환기했고, 2023년 봄 공개된 GPT-4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지피티(ChatGPT)는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혁신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이때, 기술 변화의 방향은 앞서 소개한AI를 바라볼 수 있는 네 가지 관점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그림 3 참조). 즉, 혁신은 변화와 관련된 것으로, 인공지능 분야 기술혁신의 방향은 크게 다음 네 가지로 정리된다:
Ⅰ. 인간처럼 행동하는 AI.
Ⅱ. 인간처럼 사고하는 AI.
Ⅲ. 인간을 뛰어넘어 사고하는 AI.
Ⅳ. 인간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AI.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모방하는 AI는 점차 인간을 뛰어 넘는 존재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이때, 기술의 발전은 과학자(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와 엔지니어들의 영역이다. 한편, 인류는 윤리와 규제를 통해 AI 관련 기술의 변화에 통제를 가하려 하고 있다. 이때, 미래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아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세 가지의 핵심질문은 다음과 같다:
1. 기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가?
2. 기계는 자율의지가 있는가?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가?)
3. 기계에게는 의식이 있는가?
AI 관련 윤리와 규제, 그리고 위에 정리한 핵심 질문은 공학자와 엔지니어만의 영역은 아니다. 특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각자의 지식과 생각, 그리고 입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기술에 의한 변화(changes by technology)
“AI는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라는 우려가 팽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AI 기술에 의한 변화와 관련해 각종 강의나 책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는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다.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할 것이다.”라는 말이다.[14] 필자도 작년 <디지털 전환과 혁신> 과목의 AI 관련 강의에서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언급했음을 밝혀둔다. 하지만, AI와 미래사회에 관한 이 문장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에 의한 변화 가운데 우리가 집중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기술과 인류의 대립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서로 돕는 상보적 공존 관계로 바라볼 것인지 하는 것이다. 이때, ‘자동화(automation)’와 ‘증강(augumentation)’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고찰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AI를 통해 대부분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일 수 있다. 이때 당사자에게 AI는 파괴적 기술(destructive technology)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고, “AI가 당신을 대체할 수 있음”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필요한 부분들에 AI를 적용하여 작업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이 사람은 AI를 보완적 기술(complementary technology)로 활용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된다 –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할 것이다” 라는 말을 기억하라.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 한 단계 더해 다음 내용을 추가하고 싶다. “‘무엇을’ AI로 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도울 것이다.” (Chang, 2024) 다시 말해, AI로 인해 자동화되고, AI를 통해 증강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어떤 부분은 AI로 도움을 받고, 어떤 부분은 자신이 직접(인간적인 부분을 사용하여) 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수행하는 업무의 필요한 부분들에 AI를 적용하여 작업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이 사람은 AI를 보완적 기술(complementary technology)로 활용한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된다 –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할 것이다” 라는 말을 기억하라.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 한 단계 더해 다음 내용을 추가하고 싶다. “‘무엇을’ AI로 할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도울 것이다.” (Chang, 2024)
AI 시대의 크리스천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크리스천들에게 중요한 몇 가지를 정리하며 본 리포트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한기윤)으로부터 ‘인공지능과 미래사회’에 대한 기고를 청탁받은 후, 지난 한 달여 동안 영국과 한국의 AI 전문가와 목회자, 기술경영 및 과학기술정책 전문가와 교수, 그리고 크리스천과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을 포함하여 총 스무 명이 넘는 분들과 한국어와 영어로 세미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은, AI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게 되더라는 점이었다.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한기윤)으로부터 ‘인공지능과 미래사회’에 대한 기고를 청탁받은 후, 지난 한 달여 동안 영국과 한국의 AI 전문가와 목회자, 기술경영 및 과학기술정책 전문가와 교수, 그리고 크리스천과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을 포함하여 총 스무 명이 넘는 분들과 한국어와 영어로 세미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나누었다. 이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은, AI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게 되더라는 점이었다.
인간의 행동에 이어 지능마저도 기술을 통해 인위적으로 구현해가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매우 구체적으로, 살피고, 정의하고, 고찰하고 있었다.
인간의 의지란 무엇인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음(heart)과 정신(mind)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의식과 무의식, 사고와 추론, 동기와 목표, 의지, 인지, 행동 등 많은 개념들에 대한 정의와 재정의.
특히, 본 리포트의 주제와 관련해 깨닫게 된 것은, AI 시대는 또한 크리스천이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되는 사람인지를 더욱 깊게 묻게 하더라는 점이었다.
얼마 전 영국 BBC에서는 AI 기술을 적용하여 신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여러 종교의 사례를 방영했다. AI 로봇이 하는 설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AI에는 영혼이 없다(AI does not have a soul)는 답변과 함께 한계점을 지적했다. 필자 역시 전문가들과의 대화 중 비슷한 질문을 했다. “AI의 음성에는 영혼(soul)이 없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을 들은 상대방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필자에게 재질문을 했다. “그런데,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이 고도화될수록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되는 세상 속, 각 개인은 무엇이건 선택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신이 되고 하나님을 떠나려는 가운데, AI 시대 크리스천의 질문은 ‘(자신과) 주님의 관계’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It all comes back to our relationship with God.)
인간이 고도화될수록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되는 세상 속, 각 개인은 무엇이건 선택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신이 되고 하나님을 떠나려는 가운데, AI 시대 크리스천의 질문은 ‘(자신과) 주님의 관계’ 하나로 수렴되어야 한다(It all comes back to our relationship with God.)
경청(listening)
크리스천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려 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간구한다. 마치 사무엘이 주님의 음성 듣기를 구하던 것처럼, 크리스천은 성경 말씀을 통해, 다른 크리스천과의 교제 가운데, 그리고 기도와 묵상 가운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분의 음성에 목이 마르다(being thursty).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사무엘상 3:10)
“Speak, for your servant is listening.” (1 Samuel 3:10)
한편, AI 시대의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AI 기술로 작동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와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과연 AI가 말하는 것 그 자체를 하나님의 음성이라거나,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기술은 성경과 신앙서적, 사상가의 글들 및 세상에 존재하는 엄청난 양의 지식을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질문에 그럼직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이 말하듯AI가 생성해내는 지식에는 비판적인 사고(critical thinking)가 결여되어 있고, AI 전문가들이 말하듯 AI가 생성해내는 지식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AI가 생성해내는 지식의 이면에는 창조물(creation)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창조자(Creator)의 사랑과 영혼이 담기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AI가 생성해내는 지식의 이면에는 창조물(creation)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창조자(Creator)의 사랑과 영혼이 담기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묵상(contemplation)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크리스천은 보고, 듣고, 느끼는 가운데 ‘분별’하여 깨닫고자 한다. 이들은 어떤 우연(coincidence)이란 하나님의 섭리(God’s incidence) 였음을 분별하여 깨닫는다. 이렇게 분별하여 깨닫기 위해, 우리는 바쁜 일상 중에 멈추어 서서, 잠자코 있어 알고자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묵상’의 힘이다.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alm 46:10)
AI 시대, AI를 통해 자동화되고(automated) 증강된(augmented) 개인과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새로운 지식을 뿌려대고, 최선의, 합리적인, 전략적인 의사결정을 돕는다.
하지만 우리가 잠자코 있어 알 때(Be still, and know), 주님의 뜻을 구하며 깨달아 가는 가운데, 우리는 합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택마저 할 수 있게 되고,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말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이들의 문장을 모순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약함이 강함 되는”, “광야에서의 삶이 축복이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고백이기도 하다.
우리가 잠자코 있어 알 때(Be still, and know), 주님의 뜻을 구하며 깨달아 가는 가운데, 우리는 합리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선택마저 할 수 있게 되고,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말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이들의 문장을 모순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교제(interaction)
최근에 AI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신약 성경에 있는 예수(Jesus)님의 수많은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지 답을 해달라고 했다. AI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신약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본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네 마음과 영혼과 정신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ark 12:30-31)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게 되며,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더욱 인간적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 사이의 관계와 주고받음이 필요하다. 신이신 예수는 이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것이다(incarnation; 성육신).
영국 BBC의 라디오 채널 Radio 4에서 진행되는 <오늘의 생각(Thought for the Day)>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 리디안 브룩(Rhidian Brook)은 이러한 사랑의 속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미경을 통해 사랑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일어나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행동들 속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사랑할 누군가와 사랑하는 누군가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은 그것을 육화시키기 위해 몸을 필요로 하며,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육화되어야 합니다.”[15]
앞서 언급한 것처럼 AI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게 되며,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더욱 인간적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 사이의 관계와 주고받음이 필요하다. 신이신 예수는 이를 위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것이다(incarnation; 성육신).
각주
[1] 한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이다.
[2] 소피아의 답변 원문은 다음과 같다: “By working together and building a strong relationship based on mutual respect and understanding, I am confident that we can create a world where human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can coexist harmoniously.”
[3] 본 에피소드는 워크숍에 직접 참여한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4] Seldon, A. and Adiboye, O. (2018) The Fourth Education Revolution: Will Artificial Intelligence Liberate or Infantilise Humanity?, University of Buckingham Press; 한국에서는『인간 중심의 AI시대를 향한 제4차 교육혁명』(셀던 외, 2020) 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5] 본 발언 스크립트는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필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작성되었기에 원래의 발언과 일부 다를 수 있다.
[6] ‘지능(intelligene)’은 다양한 인지 능력(cognitive capabilities)을 통합하는 개념으로, 지적인 활동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종류의 능력을 포함하며, 여기에는 언어 능력, 수리 능력, 공간 지능, 기억력, 사회적 지능 등이 포함된다.
[7] ChatGPT 기술에 대한 기초적 설명은 다음 책들을 참고하라: 최재봉,『전혀 다른 세상의 인류: AI 사피엔스』(서울: 쌤앤파커스, 2024), 61-78; 박상길,『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서울: 반니, 2023), 289-366
[8] Russell, S. and Norvig, P. (2016) Artificial Intelligence: A Modern Approach, 3rd ed., Harlow: Pearson Education.
[9] 저자들은 이 두 가지 차이를 인간중심적 접근방식(human-centered approach)과 합리주의적 접근방식(rationalist approach)으로 구분하는 한편, 인간은 비합리적(irrational)일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unperfect) 수도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10] 전자의 경우, AI가 특정 작업을 수행할 때 인간이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과 비교하여 평가한다. 예를 들어, AI가 음성 인식을 수행할 때, 인간의 음성 인식 정확도와 비교하여 AI의 성능을 평가하며, AI가 인간 수준으로 음성을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후자의 경우, AI의 성능을 이상적인 기준, 즉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합리성과 완벽성을 중시하는 기준과 비교하여 평가한다. 이때 AI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며 완벽한 대리인(a rational agent)일 수 있다.
[11] 리사 배럿(Lisa Barrett) 교수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1,280억 개의 신경세포가 하나의 거대하고 유연한 구조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Lisa Barrett,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변지영 옮김 (서울: 길벗, 2021)
[12] 머신러닝은 컴퓨터에게 규칙과 데이터를 줘서 정답을 찾아내는 대신, 정답과 데이터를 주고 규칙을 찾아내게 하는 방식이다. 즉, 컴퓨터에게 명확한 규칙과 데이터를 줘서 정답을 찾아내는 대신, 많은 데이터와 그에 따른 결과(정답)를 제공하고, 컴퓨터가 이 데이터를 학습해서 그 데이터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규칙이나 패턴을 찾도록 한다.
[13] 딥러닝은 머신러닝의 한 종류로,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을 기반으로 한 기술이다.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인공 신경망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 DNN)을 통해 더 복잡한 패턴을 학습할 수 있게 된 기술이다.
[14] 예를 들어, 하바드 대학의 카림 라카니(Karim Lakhani) 교수는 “AI Won’t Replace Humans — But Humans With AI Will Replace Humans Without AI” 라는 글에서 해당 내용을 강조했다. https://hbr.org/2023/08/ai-wont-replace-humans-but-humans-with-ai-will-replace-humans-without-ai
[15]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commandment ‘Love God with all your heart mind and soul and your neighbour as yourself’ makes no sense without somebody to love and the somebody who loves. Love needs bodies to make it incarnate, and it has to be incarnate to be Love.” (Rhidian Brook, ‘What is love’, Thought for the Day – BBC Radio 4)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의 연구위원인 장영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기계공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삼성SDS에서 기술전략 및 혁신전략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영국 University of Sussex의 과학기술정책연구소(Science Policy Research Unit; SPRU)에서 기술혁신경영으로 석사와 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에서 기술혁신경영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기술경영 및 과학기술정책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