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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초고령사회와 노년기 생명의 두 가지 위기

지난 7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년으로 OECD 평균(81.1년)을 웃돈다. 1) 그러나 함께 보아야 할 지표가 건강수명이다. 2025년 현재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약 69.89세로 기대수명보다 약 14년 낮다. 즉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70세가 지나면 대개 건강에 이상이 생겨 여러 병과 더불어 살다가 천수를 다하면 죽는다. 수명이 길어졌다는 것이 반드시 ‘잘 사는 시간’이 길어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프게 사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5년 말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1%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교회 안에서도 노쇠한 어른들의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초고령사회가 노년과 그 가족에게 던지는 새로운 과제는 ‘삶의 질’과 ‘죽음의 질’ 곧 ‘삶의 위기’와 ‘죽음의 위기’이다. 삶의 위기는 1인 가구 급증과 관계 단절로 홀로 살다 홀로 죽음을 맞는 ‘고립사(고독사)’ 문제이고 죽음의 위기는 임종기의 고통을 이유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려는 ‘연명의료중단과 조력자살’ 문제이다. 전자는 노년의 삶이 방치되는 위기이고 후자는 노년의 죽음이 인위적으로 종식되는 위기이다.

세상은 삶의 고립을 개인의 불운으로 여겨 방관하고 임종기의 고통은 ‘연명의료중단’과 ‘조력존엄사’라는 편의주의적 해결로 대응하는 경향이 짙다. 두 가지 모두 ‘고통을 줄이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 자체의 존엄과 공동체적 책임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교회는 달라야 한다. 하나님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방치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웃을 돕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셨다(눅 10:36-37). 교회는 생명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끝까지 돌보는 공동체여야 한다.

초고령사회에서의 노년 돌봄 목회와 기독교 생명윤리  | 신원하 박사 (한기윤 원장, 전 고려신학대학원장)삶의 위기: 노인 고립사와 공동체적 돌봄 책임

1인 가구 급증과 사회적 고립

오늘날 노인들은 대개 부부만 살고 사별하거나 이혼한 경우 혼자 산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이를 “필연적 혼자의 시대”로 명명하면서 1인 가구 급증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충실히 살아가면 이르게 되는 ‘필연적 결론’이라 진단한다. 2) 2019년 유럽통계청 조사에서 덴마크·핀란드·독일 등은 1인 가구 비중이 40%를 넘었고 스웨덴은 56%에 달했다. 미국도 1960년 6.7%에서 2022년 37%를 넘어섰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증가세가 가장 가파른 나라로 1970년 3.7%에 불과하던 1인 가구 비중이 50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3)

2025년 행정안전부 통계에서 한국의 1인 가구는 1,012만 가구로 전체의 약 42%에 이르렀다. 4) 국가데이터처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는 824만 4,000가구(36.6%)이다. 두 수치의 차이는 집계 방식(주민등록 인구 vs 상주인구)에서 비롯된다. 어느 기준이든 세 가구 중 한 가구 이상이 1인 가구인 시대이다. 60대 이상 1인 가구는 317만 1,000가구로 전체 1인 가구의 약 38.5%에 이르며 특히 여성은 사별과 고령화로 60대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다.

노인은 청년·중장년에 비해 심리적 고립감에 더 취약하다. 정기적 근무가 사라지면서 바깥 활동과 대인관계가 줄고 복지관이나 소일거리가 없으면 고립감이 깊어져 자신의 무가치함까지 느끼게 된다. 통계청 「2025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독거노인 비율은 2000년 16.0%에서 2024년 22.1%로 꾸준히 상승했다. 5)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 “건강하다”는 응답은 노인부부 가구 48.6% 독거노인 34.2%로 큰 차이를 보였고 우울 증상도 독거노인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 2023년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 보고서는 외로움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고 밝혔다. 외로움은 더 이상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과제로 취급되고 있다.

노화, 질병, 그리고 ‘임종 대란‘

노화는 몸의 기능과 면역력이 저하되는 과정이다. 바깥 활동이 줄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건강은 더 쉽게 무너진다. 암은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로 한 해 새롭게 암에 걸리는 사람이 약 28만 명이며 이는 한 해 신생아 수(약 25만 명)보다 많다. 6) 특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나 골수이형성증후군 같은 혈액암은 65세 이후 환자 수가 급증한다.

노쇠하여 예측 가능한 임종을 맞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갑자기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홀로 사는 노인일수록 이런 ‘고독사’의 확률이 높다. 보건복지부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수는 3,924명으로 전년(3,661명)보다 7.2% 증가했으며 2020년 3,279명 이래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명 이상이 홀로 죽음을 맞고 있는 셈이다. 7) 국가데이터처 사회조사에서는 19세 이상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받을 곳이 없는 상태로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2020년을 기점으로 한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데드크로스’에 들어섰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임종을 맞는 10여 년 뒤에는 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임종 대란’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고독사 비중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 사회가 자신의 어르신들을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하는 문명사적 과제이기도 하다.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돌봄 방임‘

성경은 인간을 독립된 개별체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존재로 그린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라고 하셨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영원한 사귐 가운데 계시듯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도 사귐 가운데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상호 의존적이며 다만 단계에 따라 의존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노년기는 그 의존성이 다시 커지는 시기이다.

따라서 노인의 고립과 고독사는 개인의 불운한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관계적 존재로 지음받은 한 사람이 관계로부터 끊어진 채 방치된 결과이며 공동체가 약자 돌보기를 포기한 ‘방임’과 무관하지 않다. 성경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고 말한다. 홀로 죽어가는 노인이 곁에 있는데도 무관심한 것은 돌봄의 책임을 저버리는 나태(sloth)이다. 이는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집합적 책임의 문제이며 바른 반응은 비판이 아니라 돌봄을 향한 각성이어야 한다.

관계망 회복과 돌봄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부와 지자체가 시·군·구 단위에서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사회 제도적 돌봄만으로는 노인의 외로움과 관계 단절을 온전히 메울 수 없다. 교회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자 형제·자매로 부르며 가족으로 여긴다. 가족은 서로 챙기고 돌보며 특히 병들고 아플 때 더욱 살핀다. 교회는 바깥 사회의 돌봄 제도가 하지 못하는 영적이고 전인적인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 두 가지를 짚어 본다.

첫째, 교회는 실버세대를 담당하는 교역자나 중직자를 배치하여 체계적으로 살피고 전문적 상담과 노인 사회보장제도 안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가정교회 형식의 교회에서 실버세대 목장을 두어 같은 세대 리더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돕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또한 ‘실버 구역’을 두고 홀로 지내는 노인에게 ‘돌봄 짝(care partner)’을 지정하는 것도 실제적인 방안이다. 돌봄 짝은 매일 정기적으로 전화해 안부를 묻고 주기적으로 함께 식사하며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노인 돌봄 부서를 조직하여 지자체 복지 담당 공무원 및 고독사 예방 사업을 맡은 민간 기관과 체계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이 사역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 교회 안팎의 홀로 사는 이들을 찾아 교회와 성도의 관계 안으로 초대하고 사회복지혜택을 안내하는 동시에 사랑의 연대 안에서 전인적으로 돌보는 것이다. 가장 의존적인 노인을 궁극적 돌봄의 관계 안으로 초대하기 위해 교회는 더 다각도로 실천해 가야 한다.

죽음의 위기: 연명의료중단·조력자살과 임종 돌봄

‘웰다잉‘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생명 단축의 유혹

선진국 노인도 노화와 그에 동반되는 현상을 피하지 못한다. 75세를 넘으면 다양한 질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가 면역력과 회복탄력성이 바닥나면 사망에 이른다. 한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병원에서 임종한다. 더러는 치료 불능 상태에서 약물과 의료기기에 의존해 심한 통증 가운데 지내다 사망한다.

1980년대 이후 유럽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유럽 국가들에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후 이 제도는 ‘존엄사’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의사조력자살’ ‘의사조력사망’ ‘자원적 조력 사망’ 등의 이름으로 내용이 조금씩 진화하며 지난 25여 년간 지구촌으로 번져갔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연명의료중단과 조력존엄사의 분별

‘무의미한 연명의료의 중단’과 ‘조력존엄사’는 다르다. 연명의료 중단은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임종 과정에 들어선 환자를 억지로 붙잡지 않고 죽음에 이르도록 두는 것이다. 반면 조력존엄사는 인간이 죽음의 시점 자체를 결정하여 앞당기는 것이다. 본래 의사조력자살(PAS)로 불렸으나 ‘자살’의 부정적 느낌을 지우기 위해 ‘존엄사’로 대체했을 뿐 내용은 동일하다. 전자는 ‘죽음을 허용하는 것(allowing to die)’이고 후자는 ‘죽음을 인위적으로 야기하는 것(causing death)’이다.

이 구분을 정확히 파악하면 “기독교는 무조건 연명치료에 매달리라는 것이냐”는 오해도 “연명의료 중단이나 조력자살이나 결국 같은 것 아니냐”는 혼동도 피할 수 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2018)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한해 연명의료 중단만을 허용하므로 기독교적 생명윤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으며 조력존엄사는 형법 제252조(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에 해당하여 금지되어 있다.

이 법은 2008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폐암 검사 중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 할머니의 가족이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고 병원 거부로 소송이 제기되어 2009년 대법원이 가족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6년 법이 제정되고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해 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한다. 8)

그런데 시행 이후 그 대상과 범위를 넓히려는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되었다. 공통적 내용은 중단 시기를 ‘임종과정’에서 ‘말기’로 확대하고 대상 질환을 비암성 만성질환(치매·만성 신부전·만성 심부전 등)으로 확대하며 대리인 사전 지정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 법안들은 20·21대 국회에서 모두 폐기되었으나 22대 국회가 시작되자 2024년 7월 5일 안규백 의원 등 11인이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9)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1,0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25년 2월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했다. 10)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연명치료는 무의미하다는 것, 생명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마땅하다는 것, 고통받으며 연명하기보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 환자에게 더 낫다는 것이다.

조력존엄사 제도는 이미 스위스·네덜란드 등에서 ‘의사조력자살’로 호주에서는 ‘자원적 조력사망’으로 시행되어 왔다. 11) 그러나 한국에서는 형법상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 및 ‘자살방조죄’에 해당한다. 조력존엄사 법안은 단순한 의료 제도 개선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는 일을 국가가 합법화하는 중대한 전환이다. 지구촌은 이를 ‘웰다잉’으로 간주하지만 그 본질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생명을 일찍 끝내자”는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 제도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에서 적용 범위가 ‘말기 환자’에서 ‘만성 중증 환자’ 나아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까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신중한 예외로 시작된 제도가 ‘선택 가능한 하나의 길’로 자리 잡으면 결국 노인·장애인·만성 질환자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 길을 암묵적으로 권유받는 상황이 생겨날 수 있다.

생명의 주권과 ‘돌봄의 최대화‘

연명의료 중단을 옹호하는 이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중단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임종 과정의 자연스러운 수용’과 ‘생명의 인위적 유기’는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것이며 고통 없이 죽게 하는 것이 곧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은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 생명윤리는 이 문제에 세 가지로 답한다. 첫째,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므로 어떤 상태에 있든 그 자체로 존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창 1:26-27). 쇠약하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없다거나 인간답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12) 인간의 존엄은 건강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자체에 있다.

둘째, 생명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피조물로서 자신의 죽음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명 종식을 돕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조력자살이 내세우는 ‘자기 생명에 대한 결정권’은 이와 충돌한다. 자기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자기 생명을 끊는 결정까지 권리로 지닌다고 볼 수는 없다.

셋째, 고통은 악이지만 절대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악은 아니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 가운데 고통을 허용하고 사용하기도 하신다. 사람은 때로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교제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워진다. 욥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고통을 없애려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자신의 판단으로 대체하는 행동이다.

이 원리 위에서 기독교 생명윤리학자 길버트 메일랜더(Gilbert Meilaender)는 말기 환자에 대한 우리의 가장 우선된 의무는 “무엇보다 돌봐주는 것”이지 고통 단축을 위해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13) 전적으로 회복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진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어떤 환자도 돌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누구보다 보살핌이 더 필요한 가장 약한 존재이기에 가족과 성도들은 이들에 대한 보살핌을 더 베풀고 최대화하려 힘써야 한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고통의 최소화’가 아니라 ‘돌봄의 최대화’이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기에 교회는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든 그 생명을 돌보는 일에 한계를 두지 않아야 한다.

서로의 부담을 함께 지는 공동체

여기서 균형이 필요하다. 기독교적 임종관은 생명 연장에 대한 맹목적 집착인 무의미한 연명의료와 인위적 생명 단축인 조력존엄사를 모두 경계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므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필요는 없지만 고통이 두렵다는 이유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도 정당화하지 않는다.

조심해야 할 유혹은 경제적 이유로 이러한 문화적 흐름에 편승하려는 것이다. 가족이 겪는 경제적·물리적 고통을 헤아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생명의 존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메일랜더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선이라 여겨 치료를 거부하려는 풍조에 맞서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기에 서로에게 부담이 되어야 하고 이 부담을 나누며 서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 교회는 이런 ‘서로 부담 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돌봄 사역자이자 신학교 교수인 크리스틴 폴은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무조건적 환대를 받은 공동체이기에 그 감사의 반응으로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환대하게 된다고 말한다. 14) 그는 돌봄을 의무나 책임에 앞서 하나님께 대한 태도로 이해한다.

호스피스·완화의료의 확충

가장 실질적인 대안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의 확충이다.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육체적 통증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까지 어루만지는 호스피스 시설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환자실이나 일반 입원실보다 잘 훈련된 전문 인력이 다정한 말벗이 되어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호스피스가 훨씬 낫다. 전인적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며 죽음 너머의 삶을 바라보며 삶을 정리할 수 있게 돕는 곳이야말로 존엄한 죽음을 맞기에 적합하다.

그렇다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5년 2월 발표한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난 이 높은 여론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지지한다는 여론과 자신이 그 제도를 실제로 선택하겠다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수치는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조사에서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추진해야 할 정책 우선순위”로 조력존엄사법 제정이라 응답한 사람은 13.6%에 불과했고 간병지원 체계 마련 28%,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설과 서비스 확충 25%, 의료비 지원 26%로 나타났다. 15) 80% 이상이 호스피스·완화의료와 간병지원이 제공된다면 그것을 우선 선택하겠다는 뜻이다. 조력존엄사에 대한 찬성은 ‘죽고 싶다’는 적극적 의사가 아니라 ‘이렇게 방치된 채 고통스럽게 죽기 싫다’는 호소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정부는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에 이어 현재 제2차 종합계획(2024~2028)을 추진 중이며 2023년 말 기준 전국에 188개소의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세워져 희망자의 약 30%가 서비스를 받고 있다. 2028년까지 이를 360개소로 확충하는 것이 정부 목표이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한국은 여전히 ‘죽음의 질’이 낮다.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은 조력자살 허용이 아니라 호스피스의 우선적 확충이어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 정치인·법률가·전문가들은 이 제도 마련에 더 힘써야 하며 신앙 공동체 차원에서도 인근 호스피스 병원과 병동을 방문해 그리스도의 생명의 온기를 나누는 일에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나가며: 생명 돌봄 사역의 강화와 거룩한 돌봄 공동체

지금까지 우리는 초고령사회가 노년의 성도들에게 던지는 두 가지 위기 곧 ‘고립사’와 ‘조력존엄사’를 살펴보았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두 문제는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인간의 생명을 관계와 존엄이 아니라 경제성과 편의성으로 환원하려는 세속 문화의 논리이다. 고립된 노인을 방치하는 것과 고통받는 환자의 생명을 앞당겨 끊는 것은 둘 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생명을 방치하거나 단축해도 좋다’는 동일한 사고의 두 얼굴이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고통의 최소화 → 방치와 조력존엄사’라면 기독교의 패러다임은 ‘돌봄의 최대화 → 공동체와 호스피스’여야 한다. 삶의 마지막에 있는 자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가장 약한 자를 환대하고 돌보는 것이야말로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고 명령한 율법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다.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교회는 노년의 성도와 이웃들이 외롭게 홀로 죽어가지 않도록 또한 죽음을 앞당기려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의 짐을 더 나눠 지는 ‘거룩한 돌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성찬의 떡과 잔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회는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를 꼼꼼히 살피고 병든 성도를 자주 방문하여 생명의 온기를 나누어야 한다. 한 사람의 노년과 임종을 끝까지 함께하는 교회야말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세상 앞에 가장 분명하게 증언하는 교회이다. 이것이 초고령사회라는 낯선 지형 위에서 한국 교회가 걸어가야 할 좁고도 복된 길이다. (*)


[주]

  1. 보건복지부, 「202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Health at a Glance) 공표」 보도자료(2025.7.).
  2. 김수영, 『필연적 혼자의 시대』(파주: 다산초당, 2026), 17-37쪽.
  3. 위의 책, 20-21쪽. Eurostat(2019) 및 국가별 1인 가구 통계는 이 책이 인용한 수치를 재인용한 것임.
  4. 행정안전부, 「2025 행정안전통계연보」 주민등록 인구통계(2025.8.27.).
  5. 통계청, 「2025 고령자통계」(2025.9.); 통계청 국가지표체계 ‘독거노인 비율’.
  6. 보건복지부·중앙암등록본부,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2025).
  7. 보건복지부,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2025.11.27.).
  8.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2016 제정, 2018 시행).
  9. 안규백 의원 등 11인 발의,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201412, 2024.7.5. 발의).
  1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성인 1,021명 대상 조사(2025년 2월 발표).
  11. 네덜란드가 가장 먼저 시행했고 스위스·룩셈부르크 등이 뒤를 이었으며 대부분 자국민·영주권자에 한정해 본인의 명확한 의사와 심의를 거쳐 시행한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도 허용하며 호주는 ‘자원적 조력사망’으로 제도화했다. 미국 일부 주(오리건 등)의 ‘존엄사법’ 캐나다의 ‘MAiD’ 등도 유사 제도이다.
  12. Paul Ramsey, Ethics at the Edges of Lif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8), 180-181.
  13. Gilbert Meilaender, Bioethics: A Primer for Christians,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2005), 71-75.
  14. Christine D. Pohl, Making Room: Recovering Hospitality as a Christian Tradition (Grand Rapids: Eerdmans, 1999), 172.
  15.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 「[기획] 내 삶을 선택할 권리, 연명치료중단 및 조력존엄사에 대한 여론」, 주간리포트 제289-1호(2024.7.17.), https://hrcopinion.co.kr/archives/30356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2024.5.31.~6.3., 웹조사, 95% 신뢰수준 최대허용 표집오차 ±3.1%p).
  16.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조사(리서치뷰 의뢰, 전국 성인 1,007명, 2022.7.27.~8.5.).

한기윤(KICE) 원장인 신원하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B.A.)을 전공했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석사(M. Div.)를, 미국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와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석사(Th.M)와 박사(Ph. D.) 학위를 하였다.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원장으로 재직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 기독교윤리연구소(기윤실 부설)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