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광장의 깃발과 유튜브가 만든 기형적 신앙
종교개혁자 피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는 그리스도인이란 마땅히 하늘 양식을 먹고 성령의 생수를 마시며 참된 복을 누려야 할 존재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도심 광장을 메운 풍경은 사뭇 생경하다.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와 십자가의 기묘한 조합은 정치와 이념, 신앙이 복잡하게 얽혀 결탁된 변질된 풍경이다. 광장 밖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유튜브 알고리즘이 쏟아내는 자극적인 진영 논리와 확증편향을 일용할 양식 삼아 서로 연대하며 안도감을 찾는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기독교 민족주의'(Christian nationalism)라 부른다. ‘민족주의’ (nationalism)라는 용어는 13세기에 처음 정착되었지만 이념의 시대였던 18-19세기 유럽에서 본격화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적인 역사적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민족주의는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정서적 감정에 기초한 정치적 행위 의지이며, 둘째는 정치·사회적 발전을 추구하는 포괄적 연구 개념이고, 셋째는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민족을 국민의 최상위 집합체로 절대화하려는 경향이다. 1) 이 가운데 마지막 의미와 접맥된 ‘기독교 민족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시민 생활의 융합을 이상화하고 옹호하는 문화적 틀의 집합체이며 한마디로 ‘종교적 정통으로 위장한 위험한 정치적 우상숭배‘에 가깝다. 2) 그렇다면 세계 교회사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이 위태로운 결탁은 어떤 궤적을 그려왔을까. 성경이 증언하는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는 과연 민족주의적 열망과 양립할 수 있는가.
범세계적 현상으로서 기독교 민족주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와 인종차별의 정당화
남아공에서 네덜란드계 아프리카너가 세운 개혁교회는 악명 높은 인종격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1948-1994)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했다. 이는 교회사에 뼈아픈 교훈을 남긴 사건이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할례를 요구하지 않았던 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정면으로 무시한 처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독교 ‘흑인 민족주의’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아프리카너 민족주의의 핵심 전략으로 지목하며 치열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아프리카너 민족주의는 나치즘에 뿌리를 둔 극단적 배타주의 사상으로 깊이 오염되어 있었다. 국가와 종교의 결탁이 어떻게 인간 존엄을 짓밟는 인종차별의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남아공의 역사는 생생히 증언한다.
미국: ‘노예 소유주 신학‘과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
‘미국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집은 몇몇 백인 남성들의 해석과 활동 위에 세워졌다. 노예제도를 성경적으로 옹호한 침례교 목사 쏘톤 스트롱펠로우(d. 1869), 그리고 스스로 노예를 소유했던 장로교 목사 제임스 쏜웰(d. 1862) 같은 인물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이 바라는 결과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백인 남성 기독교인의 기득권과 권력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실상은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라 부름이 훨씬 더 마땅하다. 이 배타적 사상은 미국 남부에서 체계화된 ‘노예 소유주 신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3) 그 단적인 실례는 오늘날 배타적인 이민 정책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들은 에스라 9-10장이나 느헤미야 13:23-27 같은 구약 구절을 편의적으로 끌어와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구실로 소비하고 있다.
일본: 천황제와 야합한 신토주의적 기독교
일본의 ‘신토주의적 기독교’는 에비나 단조(d. 1937)의 사상에서 왜곡된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조합교회 소속이었던 그는 기독교의 유일신론을 일본 천황의 주권과 하나로 결합시켰다. 그리고 일제의 조선 침략을 ‘성전'(聖戰)이라 부르며 극우 기독교를 널리 퍼뜨렸다. 단조는 일본이 제국주의 체제와 신토를 유지하는 혼합주의적 기독교를 확립해야만 진정한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아가 과거 예수회 선교사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세계 정복의 사명까지 완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백인 우월주의적 기독교 민족주의와 더불어, 종교 혼합주의적 민족주의가 빚어낸 위험성 또한 뚜렷이 확인된다.

한국에서 기독교 민족주의의 역사적 진행 상황
선교 초기부터 해방 정국까지: 저항과 신앙의 네 가지 유형
선교 초기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문화적 유형’은 기독교 신앙의 사회문화적 실천을 강조하며 민족 회복과 재건을 추구하는 민족운동과 연결됨으로써 신앙과 민족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다. 둘째, ‘복음적 유형‘은 민족주의 운동과 거리를 두고, 신앙 활동을 통한 개개인의 영적·정신적 각성과 민족 구원을 기독교의 본령으로 강조했다. 셋째, ‘공적 및 제도적 유형’은 주로 해방 후 미군정과 연결된 기독교 인맥과 북한에서 월남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반공주의와 우파 민족주의가 기독교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났다. 넷째, ‘현상적 유형’은 민족 개념과 무관하게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이 제국주의의 탄압과 충돌하면서 민족공동체의 지향과 현상적으로 동일시된 경우다. 4)
구한말과 일제 초기 길선주 목사 등이 주도한 부흥운동은 성도들로 하여금 내세만 바라보게 하거나 현실 도피주의에 빠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일 민족 독립운동과 사회·정치적 개혁을 추진하도록 이끌었다. 5) 3·1운동 이후 1920년대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은 ‘정의’와 ‘인도'(人道)를 기치로 내걸고 민주주의 국가 수립을 위한 정치 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대 초반 우파 민족주의 진영은 실력양성론에 근거하여 물산장려운동을 비롯한 자본주의적 경제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민족주의 우파와 좌파는 분열을 겪게 된다. 안창호 계열의 일부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은 우파의 개량주의적인 자치론에 동조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은 민족 협동전선의 일환으로 좌파에 가담해 신간회를 창립하는 길을 택했다. 6) 일제강점기 기독교는 일제의 폭압에 맞서 저항했기에 한국인의 종교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냉전 속에서 형성된 반공 이데올로기는 개신교를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견인하는 주도적 동력으로 변모시켰다.

월남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과 반공 국가주의의 결탁
월남한 서북 출신 관료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최전선에 섰다. 이들은 보도연맹 학살(1950), 국민방위군 사건(1951), 제주 4·3 사건(1947-1954) 등 현대사의 비극적 상흔 한가운데서 남한의 국가 정체성 형성에 깊이 개입했다. 물론 서북 출신 엘리트 월남민 모두가 ‘기독교-민족주의-반공주의’의 단일 대오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공비 진압 경험이 ‘반공주의’라는 키워드와 밀접히 맞닿아 있었음에도, 그것이 곧장 ‘친미 민주주의’와 등치되지 않는 사례들도 존재했다. 김교신·함석헌 등의 ‘성서조선’ 동인들이나 김재준과 그의 제자들(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로 대표되는 ‘한신파’가 바로 그러한 예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 풍토를 지니거나 중도 혹은 반미 성향을 띠었다. 7)
기독교와 반공 이념의 조직적 연관성도 주목할 만하다. 1946년 2월 북조선민주당 열성자 대회에서 조만식 장로와 기독교 우파가 축출되고 공산주의자들이 수뇌부를 장악했다. 이에 반발해 이듬해 5월 감리교와 장로교가 연합하여 평양신학교 지하에서 ‘기독교자유당’을 창당했다. 8)
한국전쟁 이후 남하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의 반공 노선은 해외 구호물자의 관리와 통제권을 확보하면서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확대했다. 이들은 외국 선교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구호물자와 선교 자금을 독점 공급받았다.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한국 교계를 주도하며 막강한 정치·사회적 기득권 집단으로 성장했다. 철저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이들은 이승만 정권을 강력히 지지했다. 이후에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박정희 군사정권과 유착하여 국가의 공적 기구에 깊숙이 참여했다. 전쟁의 참혹한 상흔과 공포가 기독교를 반공 국가주의와 결합시키는 강력한 접착제가 된 것이다.

’88선언‘과 보수 교계의 이념적 대립
서북 기독교계의 흐름과 달리 ‘민족대단결 민족주의’를 표방한 대표적 입장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이었다. NCCK의 시각에서 반공주의는 민족보다 국가 권력을 앞세우며 국가 이념을 절대화하는 태도였다. 이는 곧 ‘분단을 정당화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었다. 88선언은 이러한 죄책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동질성을 회복하고, 우상숭배적인 국가주의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훗날 한기총의 모태가 되는 보수적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사상과 체제를 뛰어넘는 민족대단결 원칙은 기독교가 지향하는 성경적 평화와 참된 통일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 민족주의를 단순히 애국과 독립의 순기능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정부 수립 이후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반공 이념 및 친미주의와 결탁하면서 출현한 한국식 기독교 민족주의는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채 특정 정치 이념에 예속되는 위태로운 결과를 낳았다.

성경이 말하는 국가와 기독교의 관계
요나서: 편협한 국수주의를 깨뜨리는 보편적 은혜
기원전 8세기 선지자 요나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전형적인 ‘애국적 민족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다. 요나는 이스라엘 영토 확장에 대한 강한 열정을 품고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활동하며 다윗 왕조의 영토가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한 인물이었다(왕하 14:25).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스라엘을 다시 위대하게”(Make Israel Great Again; MIGA) 만들고자 갈망했던 애국적 선지자였던 셈이다. 마태복음 12:38-41에서 예수님은 요나를 불순종하고 편협한 인종차별적 민족주의자로 보셨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본성과 목적을 상기시키기 위해 거룩한 하나님께 대꾸했던 당찬 예언자로 보셨을까?
요나의 표적이 본래 증언하는 바는, 민족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의 고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자비는 결코 가로막을 수 없다는 확실한 표징이다. 하나님의 사랑 어린 돌보심은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으며, 온 세상을 향한 주님의 긍휼은 끝이 없다. 요나서에서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만의 울타리에 갇힌 부족신이 아니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역사의 주관자로 자신을 드러내신다(참고. 렘 46-51장).
에스라·느헤미야서: 언약 회복인가, 배타적 민족주의인가
혹자는 구약 이스라엘의 민족적 순수성 보존,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가나안 정복과 원주민 추방,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땅을 둘러싼 엄격한 경계 설정을 근거로 성경이 배타적 민족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는 ‘유다를 다시 위대하게’(Make Judah Great Again; MJGA) 만들기 위해 헌신한 유대 민족주의자였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언약과 영적 질서를 회복하도록 부름받은 종들이었는가?”
언약과 사랑의 하나님 야웨가 온 세상의 참된 통치자라는 진리를 구약의 선교사 요나가 비로소 깨달아야 했듯, 에스라와 동역자들 역시 요나서의 교훈을 깊이 알고 열방의 통치자이신 주님을 신실하게 섬길 것을 백성들에게 외쳤을 것이다. 구약의 율법인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나그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에게 공의를 행할 것을 거듭 명령하고 있다(신 10:17-19; 23:16; 24:14-18; 27:19).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를 비롯한 배타적 세력들은 외국인 혐오 정책과 국경 폐쇄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에스라 9-10장이나 느헤미야 13:23-27의 몇몇 본문을 자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왜곡 소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반로마적 제국 비판과 어린양의 복음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1세기 로마제국은 이방 신전의 대제사장이 상인 길드의 대표를 겸직할 만큼 종교와 경제적 이권이 철저하게 야합된 사회였다. 옥타비아누스 황제 이래 로마의 통치자들은 제국 통합을 위해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달콤한 구호를 선전하며 황제를 신격화했고, 정치·경제·문화·군사의 전 영역을 억압적으로 통제했다(계 13:15-17). 황제는 자신이 신의 대리자로서 제국에 ‘평화와 안전’을 준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실상은 가이사 숭배라는 정치적 우상숭배를 강요함으로써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성부 하나님과 어린양의 참된 통치에 정면으로 맞섰다(살전 5:3).
사탄은 제국의 거짓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교회를 거세게 핍박했으나, 성도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며 타협 없는 복음을 전하고 순교적 신앙으로 충성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갔다(계 11:15; 12:11; 14:4). 요한계시록은 제국의 폭력적 정치 이념을 어린양의 복음이 마침내 무너뜨리고 승리한다는 위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성경의 거울로 비추어 본 미국 기독교 민족주의
미국의 백인 개신교 민족주의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병폐를 비추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다. 트럼프주의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앤드루 화이트헤드와 새뮤얼 페리에 따르면, 기독교 민족주의란 기독교 신앙과 미국 시민 생활의 융합을 이상화하고 옹호하는 문화적 틀, 곧 신화와 전통, 상징과 서사, 가치 체계의 총체다. 따라서 기독교 민족주의가 표방하는 ‘기독교성’은 토착주의,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 통제와 군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종교적 정당화까지 고스란히 내포한다.
이들은 미국인의 태도를 거부자·저항자·수용자·대사의 네 그룹으로 분류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부류는 기독교 민족주의를 맹신하는 ‘대사’ 그룹이다. 이들은 전체의 약 5분의 1을 차지하며, 철저한 정치적 보수주의, 성경 문자적 무오성에 대한 맹신, 미국이 도덕적 파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불안,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을 위해 전쟁과 무력을 요구하신다는 군국주의적 확신과 휴거 사상을 공유한다. 9) 실제로 2020년 7월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미국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인종차별 지수는 78%에 달해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백인 천주교인(72%)과 백인 주류 개신교인(69%), 일반 대중(57%)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였다.
성경의 하나님은 원수에게조차 사랑과 회복을 베풀기 원하시는 분이다(마 5:44; 계 16:9). 요나서와 에스라, 느헤미야서는 하나님 은혜 언약의 광대함을 증언하며, 요한계시록은 제국의 정치적 복음을 단호히 거부한다.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는 구원 역사 전체의 흐름 안에서 성경을 바르게 읽는 ‘구원계시사’의 해석만이 기독교 민족주의의 해악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다. 구약 이스라엘을 현대의 특정 국가나 특정 기독교 집단과 성급하게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처 방안
성경 왜곡의 시정과 화해의 복음 회복
오늘날 보수 교계 일각에서는 교인 수 감소와 교회의 사회적 위기 앞에서 자기 갱신보다 외부 적대 세력 탓으로 돌리며 진영 논리에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째, 왜곡된 성경 해석의 오류를 단호히 바로잡아야 한다. 과거 미국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창세기 9:25의 ‘함의 저주’를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하여 흑인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성경적으로 정당화했다. 이처럼 성경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백인 우월주의나 특정 민족의 패권을 신의 섭리로 포장하려는 모든 시도는 시정되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화해의 복음을 깊이 각인해야 한다. 인종·종교·이민·계층 같은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지지와 적대를 나누는 ‘정체성 정치’는 정치 지형을 극단적으로 양극화시킨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의 화해가 성도에게 미치는 놀라운 은혜를 역설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에게 맡겨진 ‘화해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강조했다. 바울 자신도 가택 연금 상태에서 옥중서신을 쓰며 이 직분을 온몸으로 실천했다(엡 6:19-2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로 타락한 인류 사이의 단절을 메운 단 한 번의 영원한 속죄 행위였다(롬 5:10). 고린도후서 5:18-20이 성도가 세상 속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사명에 초점을 맞춘다면, 로마서 5:11은 그리스도의 은덕으로 주어진 화해를 통해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을 증언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궁극적 충성은 그 어떤 세속적 충성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성경적 애국과 국가 우상화의 분별
셋째, 건전한 애국주의와 부정적인 배타적 국가주의를 분별해야 한다. 배타적 국가주의는 사랑과 공의의 법을 버리고 국가 권력을 신격화한다. 오늘날 이념에 경도된 일부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영적·도덕적 권위 대신 세속 권력에 의존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정교분리의 참된 정신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번영과 ‘그 성읍의 평안'(렘 29:7)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헌신해야 한다.
성경적 애국과 배타적 민족 우상화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천국 백성은 민족과 국경을 넘어 하나로 묶인 ‘보편적 교회’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결코 자기 민족이나 국가를 절대화할 수 없다. 성도에게 나라 사랑조차도 오직 만유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한 거룩한 수단이어야 한다(갈 3:28; 엡 1:10; 골 3:11). 교회 안에서 정치 이념의 차이로 갈등이 불거질 때, 목회자는 하나님의 보좌를 지탱하는 두 기초가 사랑과, 가해자를 응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와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회복적 정의’임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배제와 혐오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시 89:14; 97:2). 복음의 절대성을 체득한 성도만이 세상 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을 상대화하여 도구로 부릴 수 있다(시 119:56, 72). 설교자는 세속 정치 권력의 이해관계에 편승하여 거짓 평화를 외치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회칠한 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겔 22:28).
역사적 상처의 공감과 기독교 문화관의 정립
넷째, 한국 교회가 경험한 실존적 불안과 역사적 상처를 먼저 헤아리고 대화해야 한다. 한국 교회 안에 반공주의와 결탁한 국가주의가 뿌리내린 배경에는 한국전쟁의 참화와 북한의 재침략에 대한 실존적 공포가 깊이 깔려 있다. 역대 권력자들은 민중이 품은 이 집단적 불안과 두려움을 권력 기반으로 교묘히 악용했다. 그렇다면 배타적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 역시 역사의 비극이 낳은 또 다른 희생자일 수 있다. 교회가 기독교 민족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경청하고 그 상처에 공감하는 목회적 품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독교 민족주의는 신앙의 정치 과잉과 편향, 배타적 증오를 낳는다. 신앙과 정치가 이러한 위험한 결탁으로 치닫는 근본 원인은 성경에 대한 자의적 오석(誤釋)에 있다. 정치 이념과 민족주의를 신앙의 포장지로 감싸 우상화하는 행위는 십계명의 제1·2계명을 정면으로 범하는 일이다. 이는 교회의 영적 권위인 천국의 열쇠(말씀과 권징)를 녹슬게 만들어 교회의 건강성을 해치고 선교의 문을 가로막을 뿐이다.
나가며: 배제된 이웃을 향한 환대와 교회의 공적 책무
기독교 민족주의와 민족주의 신학은 역사의 굽이마다 옷을 바꾸어 입으며 끈질기게 출현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범세계적 현상이 되어버린 이 정치적 우상의 작동 방식을 직시하고 단호히 해체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성경과 화해의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통치에서 벗어난 이 거짓 이념을 거부하며 올바른 교회관과 성경적 공공 윤리를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의 자리에서, 기독교 민족주의의 거친 언어와 배타적 태도로 인해 소외되고 잊혀진 이웃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곁의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 탈북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역교회가 이들을 참된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로 품어 안는 것은 천국의 전초기지인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공적 책무다.
주님 안에서 모든 성도는 차별 없이 평등한 하나님 나라 가족의 일원이어야 한다(욥 29:12-17).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오직 값없는 자비와 긍휼 없이는 설 수 없는 ‘주님과 함께 걷는 복된 나그네’임을 겸손히 고백할 때 비로소 진정한 환대가 시작된다(시 39:12; 69:29; 70:5). 도심 광장의 위태로운 깃발을 내리고 고통받는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섬김의 자리에서, 한국 교회는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
※ 본 홈페이지에 사용된 일부 이미지는 생성형 AI 기술로 제작되었습니다. ※
주)
- 김명배, “1920년대 민족주의 운동과 기독교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기독교사회윤리의 관점에서,” 『기독교사회윤리』 43 (2019),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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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Ozturk and K. G. Nygren, “Exploring the Christian Nationalism within the Secularized Swedish Public Opinion,” Religions 16/6 (2025),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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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배, “1920년대 민족주의 운동과 기독교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기독교사회윤리의 관점에서,” 『기독교사회윤리』 43 (2019), 117-18.
- 이봉규, “서북출신 엘리트의 해방 후 남한 관료 진출,” 『학림』 42 (2018), 132-34.
- 고영은, “한국교회 반공 이데올로기 형성 연구,” 『신학과 실천』 52 (2016),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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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목 교수는 고신대학교 신학과(B.A.)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 노스웨스트 대학교(North-West University, Potchefstroom)에서 신약학 석사(Th.M.) 학위를, 요하네스버그 대학교(University of Johannesburg)에서 신약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신약학 교수로 재직하며 여자신학원 원장을 맡고 있고, 부산범천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