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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세대의 눈물과 함성이 함께 울리는 교회

에스라 3장의 두 소리: 통곡과 함성

에스라 3:12을 보면 묘한 장면이 나온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여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기초가 놓이는 순간, 기쁨만 흐를 것 같은 자리에 의외로 함성과 대성통곡이 뒤섞인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 통곡을 옛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이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현실과 비교하며 느낀 상실감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학개 2:3은 이 상실감이 실제였음을 증언한다.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세대차는 시간차가 아니라 해석의 틀 차이다

이 장면에는 정황 기록을 넘어서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세대 간의 차이는 단순한 시간적 격차가 아니라 각자가 겪은 시대와 정황을 기준으로 형성된 가치의 차이이며, 기쁨과 슬픔의 기준, 그리고 현실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틀 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나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의 권고에 반항하는 모습은 이러한 차이가 내포된 갈등이다. 교회는 이 두 세대 중 한쪽을 선택할 수 없고 모두를 한 공동체로 품어야 한다. 대성통곡하는 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의 환호를 묵과할 수 없고, 환호를 장려하다가 노인들의 통곡을 놓쳐서도 안 된다.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믿음 가운데, 노인들은 눈물이 환희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젊은 세대는 환희에 앞서 눈물 안에 내재된 역사를 알아 겸손함을 지녀야 한다. 목회는 이러한 다각적 시각으로 믿음 안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노년의 영적 갈망과 사역 의지

노년기에 접어든 성도들은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욕구와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세대이다.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성도의 관심사는 건강(47%) 다음으로 영적 성장(24%)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노후 대비(10%)보다 높은 수치다. 1) 생계 안전에 대한 추구 못지않게 적극적 신앙 주체로서의 갈망이 여전함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역 연장 여부에 대한 지표는 더 직접적인 갈망을 보여 준다. 70세 이전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세가 되어 건강이 허락할 경우 교회 사역을 계속하고 싶은지’에 대해 ‘계속 사역하고 싶다’는 응답이 2022년 25%에서 2024년 34%로 증가했다. ‘건강이 허락되는 한 교회에서 주어진 사역을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에 대해 71세 이상 교인의 53%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교회에서 일할 만큼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된다’, ‘은퇴했더라도 여전히 교회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싶다’에 각각 43%, 41%가 동의했다. 2) 노년층의 이러한 적극성과 영적 건강함은 노인 목회에 긍정적인 소망을 품게 한다.

청년 이탈의 지표와 노년 목회의 방향

그런데 조금 더 입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교회의 고령화만큼이나 눈에 띄는 현상이 젊은 층의 탈교회화이다. 교회를 이미 이탈했거나 이탈 의향이 있는 청년들이 말하는 이탈 요인에는 헌신 강요, 실망스러운 교회 직분자의 모습,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 등이 강하게 드러난다. 3) ‘헌신 강요’는 단순히 헌신 분량의 과다 문제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이해하고 동의하는 헌신의 당위성이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문제이다. 그 의미와 동기부여가 잘 전해졌다면 헌신의 분량은 후차적인 문제이다. ‘실망스러운 교회 직분자의 모습’이나 ‘비민주적인 의사소통’은 가치와 정서의 차이에 대한 상호 이해의 간극, 그리고 그 와중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젊은 세대가 불만과 부담으로 느끼고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4)

위의 두 가지 지표를 보고 노년층이 곧 젊은 세대 이탈의 원인이라고 성급히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노년 목회의 활성화 방안을 생각할 때 노년층의 영적 갈망과 의사 결정 참여의 적극성 자체를 옹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영적 성장과 참여의 모습이 교회 토양 전반을 성숙하게 만드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노년층의 왕성함과 노년 목회의 활성화는 교회 전체에 본이 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토대를 구축해 주는 모습이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아래와 같이 초고령사회의 목회 전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5)

노년의 소그룹: 정리의 시간이 아니라 성장의 시간

노년을 위한 소그룹의 네 가지 조건

소그룹 모임은 교회마다 모양새가 다르다. 교회의 방향성과 목회 철학에 따라 친교 모임일 수도 성경공부 모임일 수도 있고, 소그룹의 모임이 공식적으로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소그룹의 통일된 개념을 이 글에서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필자가 이 글에서 권고하는 소그룹은 다음 네 가지를 전제한다. 첫째, 단순한 친교 이상으로 성경 말씀의 원리를 함께 숙고하고 발견하는 모임이다. 둘째, 그러나 성경 연구 모임은 아니며 말씀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을 나누는 모임이다. 셋째, 공식적이고 정기적인 모임이며 참석 성도 가운데 인도자가 있고 크게는 목회자의 목양적 지도를 받는 모임이다. 넷째,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장 없는 친교는 한계가 있고 말씀 없는 성장은 자기계발과 구별되지 않으며 친교 없는 말씀공부는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 정기적인 모임으로 교회가 제도적 설정을 해 두어야 자발적·비자발적 성도 모두가 독려받을 수 있다. 이 네 가지가 완벽한 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회의 구별된 모임으로서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 완성되어 가는 기본 토대는 마련할 수 있다. 소그룹의 중요한 기능은 선포된 말씀이 삶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배를 통한 말씀 선포는 핵심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 선포가 삶으로 전환되어 말씀이 원리만이 아닌 실제임을 확신하고 나누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그룹은 ‘대안책’이 아니라 성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과 변화를 가져다줄 ‘필수책’으로 인식함이 효과적이다.

돌봄의 세밀화와 최대화를 확립하는 소그룹

노년의 고립과 위축은 주변의 독려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본인이 참여자가 되는 구조 안에 두어야 비로소 효과적인 고립 탈피가 이루어진다. 목회자의 관심과 돌봄이 기본이지만 소그룹은 목회자의 목양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도 간 일상 공유와 지속적 교제, 세세한 관심을 동반하여 노년 성도에게 정체성과 안정감을 심어준다.

이러한 소그룹 운영에서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그룹 리더이다. 리더는 목회자와 동역하고 소그룹 멤버와 공감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에 목회자에게 훈련받은 이가 적합하다. 다만 노년 목회를 염두에 두면 모든 교회가 리더를 훈련할 체계를 갖추고 있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적어도 리더는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을 갖고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이러한 소그룹 안에서는 노년층이 감내해야 하는 물리적·영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솔직히 나누어지기에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는 데 효과가 있다. 소그룹 안에서의 연대는 서로 간 자발적 심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강상의 이유로 실질적 소그룹 참여가 어려운 이들에게도 지속적인 연락과 기도제목 나눔으로 소속감을 주며, 누군가 자신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그룹이 있다는 사실은 큰 영적 위로가 된다.

닐 포스트먼이 ‘문화는 메타포’라고 했듯, 문화는 말로 설명하기 전에 이미 의미를 지니고 몸에 각인되는 것이다. 노년층의 활발한 소그룹 문화는 그것을 함께 누리고 목도하는 이들에게 늙어감이 쇠퇴가 아니라 다른 모양의 기쁨과 사명을 찾는 과정임을 알게 한다.

변화와 성장을 도모하는 소그룹

우리는 변화를 도모할 때 각론에 집중한다. 드러나는 개별 행동을 교정하여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론에만 집중하면 진정한 변화는 도모되지 않는다. 팀 켈러는 이를 인종차별의 예로 설명한다. 그는 인종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종의 문제나 우월감의 문제를 지적해서는 효과가 없고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시켰을 때 죄와 은혜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하고 주님 외에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존재는 없음을 깨닫게 하며 이 깨달음이 비로소 본인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바꾸게 한다고 말한다. 6) 소그룹 모임은 성경을 근간으로 모이며 그 관계가 지속적이고 모임의 내용이 복음 안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영혼과 삶에 끊이지 않는 영적 자극을 주며 실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노년 목회는 무난한 돌봄의 수준을 넘어 분명한 성장 목표와 기대를 가져야 한다. 성장과 변화는 어린이나 젊은 세대에게만 기대할 것이 아니라 노년층에게도 여전히 기대해야 하며 복음의 원리가 삶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듀크대학교 신약학 석좌교수 리처드 헤이스와 동 대학 메디컬센터 주디스 헤이스의 공동 기고 글의 주장대로 노년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과거라는 굴레, 곧 사회의 관습적 역할이나 일찍이 선택했던 진부한 길에 갇히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데 열려 있으며 성령 하나님의 신선하고 놀라운 역사에 열려” 있다. 7) 노년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완고한 세대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예상치 못한 결실과 변화로 인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

신앙 유산 작업: 한 노인의 고백이 교회의 보고가 된다

인생을 믿음으로 돌아보게 할 자리

한 성도의 인생은 하나님이 개입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품고 있다. 룻의 인생이 표면적으로는 한 과부의 인생 분투 이야기이지만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다윗의 줄기가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룻의 정체성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재정립되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를 믿음으로 누린 어른들의 고백과 말은 그 자체로 지혜의 보고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노년층 성도들이 있다면 교회는 그들에게 “내 인생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였다”고 깨달을 시간을 부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믿음 안에서 인생을 돌아보게 되면 단순한 추억이나 상기를 넘어 하나님의 족적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고, 아쉬움과 상처로 남아 있던 일들이 하나님 섭리 안에서 재해석되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 이와 같은 실제적이면서 정직한 고백을 가시화하고 보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중한 유산과 교훈으로 남을 수 있다.

미디어 간증 도서관: 쌓이면 길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년 성도들의 고백과 증언을 계획적으로 남겨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노년 성도와 대화 자리를 마련하고 허락을 구하는 가운데 음성을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모습을 남기는 것을 권유해 보는 것은 그 자체로 교제가 되고 노년 성도의 활성화가 된다. 우리는 세례나 입교 시 세례자의 간증과 고백이 전 성도에게 감동을 주고 의미 있게 남는 일을 본다. 비슷한 맥락에서 노년 성도들의 고백은 지혜의 보고로서 믿음의 실재로서 교회에 유익을 주는 신앙 유산이 될 수 있다.

책을 한두 권 보다 보면 소소한 재미이지만 계획적으로 모으기 시작하면 분류와 관리가 필요하고 쌓이면 도서관이 되며 이후 도서관 운영에 대한 재미와 보람도 생겨난다. 노년 성도들의 음성이나 영상을 이와 같은 개념으로 누적해 가고 보관·관리하며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교회마다 가진 상황과 특성대로 개발해 갈 수 있는 귀한 사역이 된다.

이것은 세대 간 전수 효과도 가질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노년 성도들을 직접 대면하여 모임을 갖거나 개인적으로 서로 알아갈 기회는 사실상 희박하다. 하지만 이러한 고백 형태의 음성이나 영상을 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하며 노년의 정서와 생각, 알지 못했던 삶의 행간을 공유할 수 있는 간접적 기회가 된다. 8)

죽음과 돌봄: 교회가 피하지 말아야 할 가르침과 실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불안과 교회의 책무

우리는 죽음과 노화에 대한 개념을 문화적으로만 배우는 듯하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노화를 쇠퇴로만 받아들이는 세태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눈을 가린다. 9) 이에 대해 교회는 복음의 소망을 두고 체계적으로 바르게 죽음의 개념을 가르쳐야 한다.

실제로 교회가 ‘노화’와 ‘죽음’에 대해 다루는 범위는 좁다. ‘노화’에 대해서는 노년층 격려나 위로회를 시행하는 정도로 ‘죽음’에 대해서는 장례 집례와 절차 교육 정도로 생각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더 구체적인 것들을 탐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교회는 발생할 장례에 대한 후속적 대응을 넘어 적어도 다음 두 가지 내용을 사전적으로 꾸준히 교육해야 한다. 첫째, 성경적 노화와 죽음의 의미. 둘째,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례와 그와 관련된 전문지식과 신학적 판단(예: 연명치료, 조력존엄 등). 이는 성도들의 영적·실제적 준비이기도 하며 이러한 교육은 노년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 교회적이어야 한다. 노화와 죽음은 ‘아직’ 겪지 않은 일이지 ‘반드시’ 겪게 되는 일이다. 교회는 모든 세대가 이 부분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경조 사역의 확장과 죽음 교육

과거 장례예식은 집 안에서 치러지는 사례도 꽤 있어 ‘죽음의 현장’은 골목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장례가 장례식장이라는 전문기관에 위탁되고 일정한 장소로 몰리면서 일상에서 죽음의 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줄었다. 죽음에 대한 접촉과 가시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진 현대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심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10) 이러한 가운데 교회는 성도들이 죽음을 막막한 두려움으로 인식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죽음의 개념을 이해하도록 도모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죽음에 대한 바른 이해는 노화를 좌절과 쇠퇴로만 여기지 않고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구축하게 한다.

이러한 교육의 필요성 절감과 자연스러운 정착은 경조 사역의 활성화와 연계하면 유익하다. 경조 사역은 장례를 집례하는 목회자만 감당하는 일이거나 장례 당일에만 참관하는 사역으로 좁히기보다 그 준비와 절차에 대한 이해, 유가족에 대한 위로까지 성도가 함께 감당할 수 있게 조직함이 좋다. 또한 경조 사역은 성도의 형편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게 하여 장례 발생 후의 위로뿐 아니라 사전적으로 임종을 준비하는 성도들에 대한 관심, 나아가 건강의 어려움으로 고립된 이들에게 시선을 넓히게 한다. 이는 교회 전체의 상호 관심과 위로를 도모하며 고립된 노년층에 대한 돌봄은 물론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전체에 대한 위로와 연계성을 갖게 한다.

지역사회·의료기관과의 연계

이러한 활동 역량을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사회를 향한 봉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 채 절망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심어주는 핵심적인 일이다. 더불어 호스피스와 같은 봉사를 전 연령대가 함께 참여할 때, 봉사 가운데 이루어지는 세대 간 협력과 공감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나 대화보다 세대 간 격차를 줄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지역사회와 교회의 연계는 초고령사회의 중요한 과제이다. 경로당의 분포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경로당은 6만 7천여 개소를 넘어선다. 11) 각 경로당은 사회적 연계나 봉사 참여에 대해 호의적이다. 다만 경로당의 운영 실태와 봉사 참여의 필요성, 봉사 내용은 도시와 지방 간 차이가 크다. 필자의 신도시 목회 환경에서는 오히려 경로당의 운영과 봉사 연계가 소극적이어서 섣불리 이 연계와 실행을 제시할 경험이 미천하다. 이 영역은 필자도 더 살펴보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바이기에 본 글에서는 기본 개념만 제시한다. 분명한 것은 교회와 사회적 기관의 연계된 지역사회 섬김, 그리고 이를 활로로 삼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추진하는 것은 초고령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적 대응과 권고를 위해 교회는 고령층과 관련된 사회적 돌봄 시스템과 의료기관 정보를 파악하고 연계에 힘쓰는 것이 필수적인 사항이라 할 수 있겠다.

나가며: 노년의 성장이 교회 전체의 체질을 바꾼다

노년 목회를 다시 정의하기

노년층 목회에 대한 고민과 실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이다. 교회는 노년층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사실상 교회는 ‘일하는 세대’와 ‘다음 세대’에 집중하느라 노년층 목회에 대해 근본적 고민과 실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때때로의 위로회나 간단한 돌봄만으로 그 사역의 의미와 범위를 좁혀 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노년의 성도들은 여전히 영적 갈망과 적극적 참여를 원하는 세대이며 단순한 돌봄만이 아니라 성장과 사역을 필요로 하는 세대이다. 다만 필자가 중요하게 고려하고 싶은 것은 그 적극성을 그대로 수납하기보다는 그 열망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하고 지도해 가느냐의 문제이다. 서론에서 이탈 청년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 것은 노년층과 청년층을 대척점에 두려는 것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의 특성과 함께 청년 이탈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 교회의 주소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노년의 성장이 청년이 돌아올 토대가 된다

연관하여 어떤 사역도 그 사역의 특화만을 고집할 수 없고 전 교회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방향성을 정해야 함을 말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초고령사회의 노년 목회는 단순히 노년층만을 독려하는 목회가 아니라 노년의 성장과 활동이 교회 전체의 체질을 성장하게 하며 교회 전체가 더 성숙한 면모를 갖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부하여 청년들의 탈교회 현상에 대한 대응은 청년 자체를 설득하는 것도 있겠지만, 체질이 바뀐 교회에 청년들이 돌아올 토대를 만드는 작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란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노년 세대의 성장과 활성화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들며 이것이 전 세대에 유익이 될 것이며 동시에 청년층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노년 목회는 단지 노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노년의 성장이 전 교회를 이롭게 하는 목회 | 박민근 목사 (판교 이음교회 담임)

모든 나이가 하나님으로 충만한 자리로

우리는 교회가 노령화되는 것을 걱정하지만 그 해결법을 젊은 층의 유입과 다음 세대 교육의 강화 등 반대편을 강화하는 것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일반적인 통념을 넘어 노년층의 인격과 영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노년 목회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떠할까.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모든 나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다. 모든 나이는 하나님으로 충만하다(Omnis aetas perfecta Christo est; omnis Deo plena)”고 하였다. 12)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오늘의 현실은 표면적으로는 교회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듯 보이지만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나이의 성도를 온전히 다스리고 계심을 목격하는 은혜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 나이 듦이 쇠퇴와 상실로만 여겨지는 시대에 교회는 오히려 모든 나이가 하나님으로 충만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암브로시우스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고 마침내 목회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증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주]

  1.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 통계(256호)-기독교인의 생애주기별 신앙과 욕구」, 2024년 9월 24일, https://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130&page=5.
  2.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 통계(251호)-고령 교인 신앙과 시니어 목회 실태」, 2024년 8월 13일, https://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125&page=6.
  3. 목회데이터연구소, 「기독교 통계(296호)-교회 이탈 청년 조사」, 2025년 7월 22일, https://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166&page=3.
  4. 탈교회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고찰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이춘성, 「찰스 테일러의 세속화론과 한국 개신교 탈교회 현상: ‘동원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시대로’」, 『종교와 문화』 50 (2026).
  5. 본 글의 목회적 전략은 개인 목회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다. 객관성 확보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겪은 변화와 효과를 목도한 것이기에 보편적 타당성에는 취약하나 실제적 근거로는 강점을 지닌다. 지교회의 경험을 최대한 보편화하여 제시했을 때 여기에서 착안한 요소들이 또 다른 지교회와 목회 현장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6. 팀 켈러, 『센터처치』(서울: 두란노, 2016), 102쪽.
  7.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서울: 두란노, 2023), 33쪽.
  8. 필자의 사역 경험 안에서 이러한 작업이 세대 간 소통에 의외의 부수적 효과를 줄 수 있음을 경험했다. 시범적으로 작업한 노년 성도의 음성 간증을 들은 30대 청년이 자발적으로 노년 성도와의 만남 주선을 부탁해 왔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두고 관련 업계 선배나 전문가 그룹 상담만을 생각해 오던 중 노년 성도의 간증에서 생각지 못한 교훈을 발견하고 구체적인 상담과 조언을 듣고 싶은 갈망이 생긴 사례였다. 현대사회에서 노년과 청년의 자발적 교제는 힘들며 인위적으로 만들어 연계하는 것도 서로 간 부담이 되어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간접적 경험과 생각 전달을 통해 오히려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만남의 연계가 성사될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한 번의 예시였기에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이러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사례는 의미 있으며 향후 더 구체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대목이다.
  9. 찰스 테일러는 『불안한 현대사회』(이학사, 2022)에서 현대사회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정서적 문화와 사회적 구조가 각 개인의 불안을 과도하게 증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참된 개념을 수립하고 실체를 배우기 전에는 사회적 정서가 가져다주는 불안에 누구든 휘말릴 수 있는데, 노화와 죽음의 문제는 더더욱 어떠한 교육 없이 사회 정서와 문화가 주는 불안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마이클 호튼도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부흥과개혁사, 2005)의 제5계명 해설을 통해, 노년에 대한 복음적 개념을 확립하지 못해 ‘젊음지상주의’에 이끌려 노화를 쇠퇴로만 이해하는 성향에 대해 신중히 분석하고 있다.
  10. Susan Bluck, Judith Dirk, Michael M. Mackay, and Ashley Hux, “Life Experience with Death: Relation to Death Attitudes and to the Use of Death-Related Memories,” Death Studies 32, no. 6 (2008): 524–549, https://doi.org/10.1080/07481180802138860.
  11. 통계청, 「경로당 수」, 국가통계포털 KOSIS,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tblId=DT_117071_H004.
  12. Ambrose, Epistula 17.15.

박민근 목사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와 신문방송을 전공한 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동 대학원에서 역사신학 석사(Th.M.)를 마쳤다. 현재 판교 이음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