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귀환, 현대적 재해석의 매력
고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고전들이 현대인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주목받고 있다. 2026년 올해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와 지난 10월 8일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앤 카슨(Anne Carson)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예술적 영역에서 활동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고전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다는 점이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는 이들의 손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해석되고 새로운 문화적 옷으로 재탄생하였다.
앤 카슨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다. 고대 그리스 문학을 연구한 고전학자이면서 시인인 그는 고전의 형식과 의미를 끊임없이 실험해 왔다.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Red)은 고대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가 다루었던 게리온의 신화를 현대적인 성장과 사랑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괴물 게리온은 그의 작품에서 사랑하고 상처받으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재구성한 《안티고닉》(Antigonick)에서도 시와 산문, 번역과 창작, 글과 그림의 경계를 허문다. 카슨에게 고전은 과거의 의미를 보존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현대의 작가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재료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놀란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영화화하면서 전쟁의 기억과 죄책감, 인간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현대적 문제의식을 이야기 속에 끌어들인다. 특히 트로이 목마를 이용한 승리는 단순한 군사적 지략이 아니라 신뢰와 환대의 규범을 무너뜨린 행위로 재해석된다. 고대 영웅의 모험담이 현대인의 윤리적 성찰에 관한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환대’(hospitality)라는 개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환대는 중요한 윤리적 질서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를 제니아(xenia)라고 불렀으며, 낯선 사람을 맞아들이고 보호하는 신성한 의무로 이해했다. 고전학자 가브리엘 허먼(Gabriel Herman)은 이러한 관계를 ‘의례화된 우정’(ritualised friendshi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1) 고대의 환대는 낯선 사람에 대한 보호 의무를 포함하면서도 선물과 호의의 교환, 상호적인 의무와 사회적 관계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 환대는 상호 교환적 의미보다는 무조건적인 이상적인 환대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놀란의 영화는 고대의 상호적 환대가 현대인의 죄책감과 타자에 대한 책임이라는 문제로 확장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호메로스의 환대와 현대 철학의 환대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역사적 맥락과 개념적 전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고대를 이해하는 것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원래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의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고전을 새롭게 읽는 것인지, 아니면 고전이라는 이름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고전의 권위를 빌리는 현대의 해석자들
사실 이러한 고전의 재해석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과 철학을 재발견하고 당대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활발했다. 인문주의자들은 고전을 모방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문학과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기보다 오래된 고전을 다시 쓰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고전이 지닌 특별한 권위와 관련이 깊다. 고전은 오랜 세월 수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해석되면서 문화적 권위를 축적해 왔다. 따라서 고전을 재해석하는 작가는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이러한 역사적 권위와 연결할 수 있다. 전혀 새로운 주장을 제시하는 것보다 호메로스나 소포클레스의 이야기를 통해 표현할 때 그 주장은 더 큰 주목과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고전의 이름과 상징을 통해 자신의 해석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재해석을 권위의 차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고전과의 진지한 대화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이 지닌 권위를 활용하면서 정작 그 고유한 의미와 역사적 맥락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고전은 존중해야 할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의 텍스트가 현대인의 가치관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중후반부터 발전한 독자 중심적 해석과도 연결된다. 독자는 더 이상 저자의 의미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물론 독자반응비평이 모든 자의적 해석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대중화되면서 텍스트의 본래 의미보다 독자의 경험과 주관적인 해석을 앞세우는 태도 역시 확산될 위험이 있다. 2)
성경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경 해석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 역시 오랜 세월 읽히고 해석되어 온 고전이지만 일반적인 고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권위를 지닌다.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의 권위는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이 읽어 왔다는 사실이나 문화적 명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성경의 권위는 그 말씀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 일반 고전의 권위가 역사적 평가와 문화적 전승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면, 성경의 권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더욱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반 고전의 저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 작품은 역사 속에서 독자들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신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영원히 살아 계시며 지금도 동일한 말씀으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단순히 과거에 형성된 역사적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지금도 유효한 하나님의 실제적인 권위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성경 해석의 출발점은 독자의 주관적인 경험이나 현대적인 문제의식이 될 수 없다. 성경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의 역사적·문학적 의도를 탐구하면서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경은 독자가 원하는 의미를 자유롭게 창조하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독자가 먼저 듣고 이해하며 순종해야 할 말씀이다. 3)
그렇기에 성경 해석의 첫 질문은 ‘이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본문을 기록한 인간 저자의 의도와 시대적 상황, 문학적 맥락, 성경 전체의 흐름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용이 본문의 의미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을 확인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교정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할 우리
문제는 이러한 해석의 태도가 기독교 윤리의 판단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특히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둘러싼 성윤리, 낙태, 안락사와 같은 생명윤리 논쟁에서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현대 사회가 강조하는 사랑과 자유, 자기결정권과 개인의 존엄은 중요한 윤리적 가치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를 먼저 절대적인 기준으로 설정한 뒤 성경을 그에 맞추어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결혼과 성에 관한 가르침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고, 자기결정권을 앞세워 생명의 존엄에 관한 본문의 의미를 축소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반대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적 견해를 성경 자체와 동일시하거나, 일부 구절을 앞세워 타인의 고통과 존엄을 외면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윤리적 견해의 차이가 곧 자의적 해석의 근거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신의 윤리적 결론을 먼저 정하고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는 방식이 일반화된다면, 성경은 더 이상 우리의 삶을 판단하는 권위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내린 판단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이때 성경의 권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제적인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윤리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빌려 쓰는 고전의 상징적 권위와 다르지 않게 된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우리의 상상력을 넓힌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자기 시대의 윤리를 성경 속에 투사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이 자기 시대의 윤리를 판단하도록 자신을 내어놓는 데 있다. 성경 해석의 참된 윤리적 책임은 내가 원하는 답을 성경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앞에서 나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시대의 가치관까지 기꺼이 수정하려는 태도에 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성경이 우리를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최근 설교 강단에서도 《오디세이아》와 같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서, 이를 성경 해석과 설교에 활용하는 사례를 종종 접한다. 물론 영화와 문학이 주는 감동이나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회적 부조리와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새롭게 드러내는 긍정적인 기능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지나쳐 영화와 문학, 철학과 사회학에서 얻은 주관적인 감성과 통찰이 성경 해석과 설교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과연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무엇을 설교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저자가 이미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과거의 권위라는 상징에 의존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 해석과 설교의 중심에는 현대의 사상과 문학이 불러일으킨 감동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본래 뜻이 자리해야 한다. (*)
주)
- Gabriel Herman, Ritualised friendship and the Greek c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2), 1-2, 10-16.
- Stanley Fish,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The Authority of Interpretive Communities(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21-66.
- Kevin J. Vanhoozer,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The Bible, the Reader, and the Morality of Literary Knowledge(Grand Rapids, MI: Zondervan, 1998).
이춘성 박사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사역하였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 고신대에서 기독교 윤리학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선임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