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베팅하는가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밤사이 주식 계좌의 붉고 푸른 숫자를 확인하고 점심에는 쇼핑 앱에서 쿠폰을 뽑아 물건을 할인받아 산다. 퇴근 후에는 방송을 보며 승부예측에 참여하고 게임에서 뽑기 상자를 연다. 자기 전에는 코인 거래소를 확인한다. 돈을 불릴 때도, 쉴 때도,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무언가의 결과를 기다리며 그 결과에 따라 기분이 급변하고, 멈추어야 할 때도 손은 다시 화면을 켠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우리를 붙잡는 화면은 주식과 코인이다. 국내 증시가 문을 닫아도 금융 앱에서 곧바로 해외 주식을 사고팔 수 있고 코인 선물 시장은 24시간 운영되기 때문이다. 올해 6월 18일 코스피가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사상 처음 9,000선을 넘어 9,063으로 마감했을 때, 1) 우리 주변에는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소식과 함께 나만 뒤처져 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과 상대적 박탈감이 퍼졌다. 그 결과 빚을 내 주식을 사는 규모는 큰 폭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코스피는 한 달여 만에 5,500선까지 급락했고, 빚을 낸 투자는 주가가 떨어질 때 손실 부담이 더 커지는 만큼, 빚을 내 주식을 산 청년들은 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주식을 사게 하는 장치는 이미 일상 곳곳에 있다. 불확실한 보상, 즉각적인 피드백, 언제든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 같은 카지노의 원리가 금융과 게임, 쇼핑의 운영 방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불확실한 보상에 대한 기대를 자극해 반복 참여를 유도하는 이 작동 방식이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카지노화되는 일상(casinofication)’이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수잔 스트레인지는 이미 1986년 자신의 저서 ‘카지노 자본주의’에서 현대 금융시장을 카지노 같다고 평가하였다. 2) 문제는 이 원리가 더 이상 금융시장 안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접근성이 높아졌고, 투자자만이 아니라 게임을 하고 물건을 사는 일상까지 카지노화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다고 모두가 베팅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보상을 기대하면서 다시 화면을 여는지 살펴보려면 사회적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 빠르고 높은 수익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문화와 노동만으로는 삶을 바꾸기 어렵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조건은 특히 청년들에게 무겁게 다가오고, 일확천금의 기회는 유일한 출구처럼 보인다. 돈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에 기회를 놓치면 도태된다는 불안까지 더해진다. 청년이 이 판에 계속 뛰어드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에 앞서 사회가 만든 구조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이 판을 깐 것은 누구인가.
일상을 삼킨 카지노: 손가락 끝에 깔린 판
주식창에서 배달 앱까지: 손가락 끝의 카지노
자산을 불리려고 화면을 켜자마자 축하를 받는다. 미국의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는 거래를 축하하는 화려한 연출로 돈을 땄다는 성취의 신호를 보냈다. 3) 돈을 관리하는 화면이 거래를 마치는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방송을 시청하는 시간에도 자기 몫을 걸고 결과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더해진다. 네이버의 치지직에서는 시청하며 모은 포인트 ‘통나무 파워’를 원하는 결과에 베팅한다. 예측이 맞으면 분배율에 따라 포인트를 더 받고 틀리면 건 포인트를 잃는다. 방송의 승패는 시청자 자신의 승패가 된다.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은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를 상품으로 판다. 상자를 열어야 결과를 알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 앞에는 돈만 내면 열 수 있는 다음 상자가 준비되어 나온다. 다음에는 딸 것이라는 기대가 결제를 이어 간다. 쇼핑에도 뽑기가 들어온다. 토스는 2026년 4월 배달의 민족 쿠폰을 주는 룰렛 이벤트를 열었고 결과가 나온 뒤에도 친구에게 공유하면 다시 돌릴 수 있게 했다. 할인 혜택을 얻으려던 사람에게는 결과를 확인하고, 실망스럽거나 더 큰 쿠폰을 얻기 위해 한 번 더 돌려 보는 놀이가 되었다.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이 다음 참여의 방아쇠가 된다. 카지노화된 일상은 별도의 장소를 찾지 않아도 매일 화면 속에서 반복된다.
대박엔 안목, 쪽박엔 무모함
이런 참여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4년 조사에서 18.5%의 청소년은 도박을 ‘재미를 얻는 방법 중 하나’로 인식하였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이 고위험 투자를 하는 18~40세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68%가 자신의 투자를 도박에 비유하였다. 4) 도박은 오락의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투자는 도박의 언어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선택을 성공 전략으로 만드는 것은 돈의 논리다. 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얼마를 벌었는지로만 평가하기 때문이다. 수익의 크기와 속도가 최종 기준이 되면 과정과 감수한 위험은 경시된다. 크고 빠른 수익을 노리는 베팅은 이 기준에 정확히 부응한다.
결과만 남으면 같은 선택도 서로 다른 평가를 받는다. 코인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샀는지, 언제 들어갔는지, 다음에는 무엇이 오를 지를 묻는다. 같은 선택으로 돈을 잃었다는 사람에게는 왜 그런 데 돈을 넣었는지, 왜 욕심을 부렸는 지를 묻는다. 성공하면 안목이고 실패하면 무모함이다. 그러나 결과는 선택의 질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무모한 선택도 우연히 성공할 수 있고 신중한 선택도 손실로 끝날 수 있다. 결과만 칭찬하는 문화에서는 운으로 얻은 성공도 실력으로 보이고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도 성공만 하면 박수를 받는다.
과정이 경시된 자리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남는다. 투자자 소셜 플랫폼에서도 번 사람은 드러내고 잃은 사람은 침묵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5) 화면에는 번 사람의 이야기만 쌓인다. 성공담만 접하면 자신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상상하게 되고, 이 믿음은 위험을 가볍게 만든다. 그러나 성공담 밖의 현실은 다르다. 가상자산 인플루언서 180명이 쓴 글 3만 6천여 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게시 후 30일 평균 수익률은 –6.53%였고, 시가총액이 작은 코인일수록 손실이 컸다. 6) 월평균 –6.53%가 1년 내리 이어질 경우 단순 합산으로는 78%가 넘고, 복리로 환산해도 55%가량의 손실이 된다.
그 성공담에 쏟아지는 박수의 다른 쪽에는 패자가 있다. 승자에게는 박수가, 패자에게는 책임이 돌아간다. 손실은 돈을 잃었다는 사실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 부족과 판단 실패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청년들은 이 평가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무능하다는 평가가 두려워 실패를 숨긴다. 그러나 실패를 개인의 판단 탓으로만 돌리는 사이, 사람들이 이 성공담에 몰두하게 된 구조의 문제는 경시된다. 판을 설계한 쪽은 참여가 이어질수록 이익을 얻지만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는 항상 빠져 있다.
12.9세의 베팅: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에서 배운다
카지노화된 일상은 청소년기부터 시작된다. 영국의 연구진은 청소년들이 뽑기 같은 모의 도박에 일찍부터 노출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실제 도박도 멀지 않다. 2024년 조사에서 도박을 경험한 청소년이 처음 도박을 했다고 대답한 나이는 12.9세였고 2025년 조사에서는 도박 경험이 있는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근 6개월 안에도 도박을 이어갔다고 답변했다. 7)
청소년은 어른의 모습을 보며 돈을 대하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도박을 자주 할수록 자녀도 도박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는, 베팅 습관이 가정 안에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향은 판을 대하는 태도에도 작용할 수 있다. 종일 주식 시세를 들여다보고 코인으로 번 돈을 자랑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 청소년은 그 모습에서 노동보다 돈의 논리를 성공의 기준으로 먼저 배운다.

“일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출구처럼 보이는 판
증시가 치솟는 동안 청년들은 ‘지금 내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나만 거지가 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고, 모아 둔 돈이 적을수록 빚을 내서라도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급락 뒤에 남은 것은 갚아야 할 빚과 ‘나만 실패했다’는 자책이었다. 사회에 나온 청년에게 돈은 생활과 주거를 감당할 수단이다. 그런데 일해서 버는 돈으로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일확천금이 더 빠른 길처럼 보인다. 앞서가는 또래의 수익 인증은 불안을 자극하고, 청년은 능력이 없는 내가 아님을 증명하려 고뇌한다. 학교에서는 “너는 귀한 사람이다”라고 배웠지만 사회에서는 그 가치를 돈으로 증명하라고 요구받는다.
일해도 삶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느낌은 단순히 기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이 수고와 곤고로 남는 것은 타락 뒤의 조건이다. 땀 흘려야 먹을 것을 얻는 삶이 창세기 3장의 노동 현실이며(3:17-19), 청년들이 만난 것은 그 조건의 무게다. 계층 이동 가능성을 긍정한 30세 미만 청년은 2013년 53%에서 2017년 38%로 줄었다. 8) 비관은 청년만의 것도 아니다. 2025년 사회조사에서는 19세 이상 성인의 57.7%가 자신의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2년 전보다 1.9%p 낮아졌지만 여전히 과반이다. 9) 청년들이 주식 같은 투자에 몰리는 배경에는 이런 불안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가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죽어라 일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동의 시간이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무너지면 운에 거는 선택이 매력을 얻는다. 보이는 것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뿐이니 그 선택은 해 볼 만해 보인다. 그 선택에는 절박함과 과신이 함께 들어 있다. 청소년기에 익숙해진 판은 청년기의 절망을 만나 출구처럼 보인다. 놀이처럼 익숙해진 참여에 생계와 주거, 미래까지 걸리면서 책임이 커진다. 해결책은 일확천금뿐인 것만 같다. 그러나 그 출구는 대부분 더 깊은 판으로 이어진다.
축복의 언어를 입은 돈: 강단에 스며든 성공담
앞서 본 성공에 대한 박수는 교회 안에서도 나타난다. 물질적 성취를 칭찬하는 성공담이 돈으로 자신을 증명하라는 압박에 힘을 보태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번영신학을 비판한 연구와 10) 기복신앙의 신학적 뿌리를 캐낸 연구는 11) 물질적 성취가 신앙의 언어로 해석되어 온 양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신앙의 이름을 얻은 성공담은 다음 세대에게 성공의 기준으로 전해진다.
성경은 성공의 기준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에서 온다(창세기 1:27). 존엄이 이미 주어진 것이라면 돈으로 증명할 이유가 없다. 일도 마찬가지다. 맡겨진 일은 창조된 세계를 가꾸고 돌보는 것이며(창세기 2:15), 재물 자체는 죄가 아니다. 칼뱅은 재물이 사용을 위해 주어진 도구일 뿐,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면 우상이 된다고 보았다. 12) 문제는 돈이 사람의 가치를 재는 자리에 앉을 때 생긴다. 예수님께서는 유산 문제로 다투는 이들에게 모든 탐심을 삼가라 하시며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2:15). 돈에 그 자리를 내주면 끝이 없다. 전도자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벌어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다(전도서 5:10). 그래서 아굴은 가난도 부도 아닌 필요한 만큼의 양식만을 구했다. 가난하면 도둑질할까 부유하면 하나님을 부인할까 두려워서였다(잠언 30:8-9). 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박수한 성공담과 축복의 언어를 돌아보아야 한다.
뇌와 영혼을 옥죄는 것들: 중독이라는 족쇄
아쉬운 빗나감의 덫: 보상은 어떻게 마음을 붙드는가
삶을 바꾸려던 거래에서 손실이 나면 참여의 목적도 바뀐다. 더 나은 삶을 얻으려던 사람이 이제는 잃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돈을 건다. 이런 심리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인 DSM-5-TR에서도 손실을 만회하려는 ‘추격 도박’으로 설명하고 있다.
투자라는 이름을 붙여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단타와 레버리지, 선물 거래는 결과가 금세 나오고 바로 다시 걸 수 있어서 잃은 돈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거래를 멈추지 못하게 하고 일상의 통제력도 잃게 만든다. 당사자는 손실을 알고 생활이 무너지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반복한다. 이 간극을 만드는 것은 보상이 주어지는 방식과 그 보상을 해석하는 마음이다. 칼뱅이 인간의 마음을 ‘우상 공장’이라 부른 자리가 여기다. 마음은 비어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둘 신뢰를 다른 것에 옮겨 놓는다. 13)
반복을 붙드는 첫 번째 힘은 보상의 불규칙성이다. 스키너(1953)는 도박을 보상에 필요한 반응 횟수가 일정하지 않은 ‘변동비율’ 강화 방식으로 설명했다. 14) 몇 번을 더 해야 보상을 얻을지 모르기에 다음 시도에 대한 기대가 이어진다. 반복에 붙들린 사람에게는 그 기대가 손실과 피로, 생활 문제라는 중단의 이유보다 강하게 작용한다.
아깝게 놓친 결과는 기대를 더 키운다. 슬롯머신에서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결과는 금전적 보상이 없는데도 도박 충동을 키우고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한다. 15) 계속 졌는데도 다음 판에는 될 것 같은 느낌이 남고 그 아쉬움이 다음 시도를 재촉한다. 룰렛의 ‘한 번 더’와 뽑기도 이 아쉬움의 원리를 따른다.
반복적으로 도박을 하는 데는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도 작용한다. 문제 도박을 하는 청년들은 도박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고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절실하면 이 믿음이 강해지고 도박은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처럼 보인다. 손실을 겪고도 “이번에는 꼭 딴다”며 다시 도박장으로 찾아가는 이유다. 이 반복 속에서 절망과 중독은 서로를 강화한다. 절망이 베팅의 매력을 키우고 손실은 절망을 깊게 하며, 깊어진 절망은 다시 베팅을 부른다. 삶을 바꾸려던 선택이 삶의 조건을 더 나쁘게 만들고 마음을 붙드는 족쇄가 된다.
18.4%의 자살 위험: 숨기는 사람이 혼자 남는다
도박으로 손실이 많아지면 그 사실을 공개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당사자는 가족과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고 도움을 줄 사람에게는 거리를 둔다. 이때 숨기는 이유는 낙인과 수치심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가 도박 문제의 예방책으로 낙인과 수치심을 줄이는 일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숨기는 동안 관계는 하나씩 끊어지고 손실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그 혼자 있는 자리에는 정신건강과 생명의 위기도 같이 따라온다. 도박장애 진단 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의 증상을 보인 청년 174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18.4%가 자살 위험 기준에 해당했다. 16) 위기는 문제가 깊어진 뒤에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라고 부르기 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
빚 대리 변제는 독이다: 냉정한 사랑과 무력함의 인정
숨기던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가족과 공동체의 반응에 따라 도박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정신력이 약해서’, ‘의지가 부족해서’라는 정죄는 어렵게 꺼낸 고민을 다시 숨기게 만든다. 회복 계획 없이 빚을 대신 갚아주는 대응 역시 문제 행동을 강화할 뿐이다. 절대로 도박에서 잃은 돈을 갚아주면 안 된다. 돈과 관련된 모든 책임은 본인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냉정한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당사자가 자신의 행동과 손실을 책임지도록 가족, 공동체, 전문 기관이 함께 도와야 한다. 가족은 빚을 갚아 주는 대신 회복 계획을 함께 구상하고 지키며, 전문 기관은 채무 조정과 생활 지원으로 그 계획을 확장시킨다. 공동체는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지지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왜 여전히 선을 행해야 하는지 묻고, 그것이 감사의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17) 책임을 요구할 근거는 자력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다.
이 모든 회복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단도박 모임(GA)의 12단계 모델에서도 자신이 도박 앞에서 무력했으며 삶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계를 드러내는 고백은 도움을 구할 관계를 여는 시발점이 된다. 그러나 고백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면 다음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정죄만 하지 말고 고백을 받아주며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 존엄은 계좌에 있지 않다
정죄가 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교회는 신앙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 사람의 존엄은 증명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사실에서 오기 때문이다(창세기 1:27). 이 존엄은 돈을 잃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믿음이 없어서’라는 말로 평가되곤 한다. 성공을 축복의 증거로 박수해 온 자리에서 실패한 사람은 설 곳이 없고 더 깊이 숨게 된다.
신학이 중독을 가리켜 우상숭배와 영적 속박으로 부르는 것은 중독에 빠진 사람을 나무라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 자리에 돈과 확률을 앉히고 거기에 삶과 관계를 다 걸어 버리는 상태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구할 안정과 인정을 돈과 확률에서 찾고 그러한 허망한 기대에 생활과 관계를 내어주는 상태다. 요한복음에서 죄를 짓는 자가 죄의 종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아들이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한복음 8:34, 36), 속박을 말하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풀려남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덕을 ‘사랑의 질서’라 했다. 사랑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 것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건강이며, 18) 중독은 그 순서가 뒤집힌 상태다. 그렇다면 교회가 실패한 사람에게 건넬 말은 평가가 아니라 가치에 대한 말이어야 한다. 돈의 논리는 사람의 가치를 결과로 재지만, 신앙이 말하는 가치는 결과보다 앞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잃은 뒤에도 그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성공에만 박수를 보내던 교회가 이제는 실패한 사람에게도 이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이 판을 설계했는가: 설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회복 중인 사람이 돌아갈 일상에는 다시 도박을 하도록 유도하는 카지노화된 일상이 남아 있다. 당사자와 가족이 손실을 감당하는 동안 사업자는 참여에서 수익을 얻는다. 이익과 피해가 다른 곳에 쌓이는 구조를 개인의 의지 문제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설계는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다. 로빈후드가 색종이 연출을 통해 주식거래를 게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가 제소를 당해 벌금을 낸 사례나, 국내 게임 회사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표시 위반으로 시정조치를 받은 사례를 보면, 19) 거래를 게임처럼 꾸미는 것도 확률 정보를 제대로 내놓지 않는 것도 판매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오래 머물고 몇 번 더 참여하는지를 성과로 삼는 기업이라면 그 반복이 낳는 손실과 통제의 어려움에도 답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의 당첨 확률과 구매 비용은 결제 전에 쉽게 확인 가능해야 하고, 주식거래는 수익뿐 아니라 손실과 거래 비용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정보를 공개했더라도 여러 화면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제시한다면 판에 들어온 사람은 충분히 알고 선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8계명이 이웃의 재산을 증진할 의무까지 포함한다면, 확률을 숨기고 반복을 설계해 이익을 얻는 방식은 윤리적 심문을 피할 수 없다.
반복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도 확인해야 한다. 결과를 얻지 못한 직후 다시 결제하도록 권하는 시스템이나, 판이 무서워 다시는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알림을 보내 돌아오게 하는 방식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멈추라는 요구가 개인에게만 향하지 않도록 카지노화된 일상으로 얻은 이익에 상응하는 책임을 구체적으로 져야 한다.
나가며: 느린 노동의 회복과 정죄 없는 공동체
카지노화되는 일상은 결과를 빨리 보여 주고, 다음 참여를 재촉한다. 돈을 벌어 자신을 증명하려는 요구는 한 번 무너진 청년에게도 멈추지 않고 돌아온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과 손실을 만회하려는 조급함이 반복된다. 이를 끊는 책임을 청년 개인의 의지에만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청년이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연쇄를 끊는 힘은 그가 사회에 다시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나온다. 우리는 회복에 필요한 자원을 잇고 관계를 이어 가도록 도와야 한다.
‘느린 노동‘과 멈춤의 리듬으로 화면 밖 일상 세우기
그 하나는 일할 기회다. 도박은 결과를 빨리 보여 주지만 일은 느리게 진행된다. 일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절망이 청년을 판으로 이끌었으나, 일이 주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손실 만회에 하루를 쓰던 청년에게 일은 흐트러진 생활을 다시 구성하는 계기가 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맡은 일에 책임지며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작은 과업을 끝내고 보수를 받는 경험은 자신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임을 보여 준다. 동료와 어울려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맺을 기회도 얻는다.
일로 되찾은 일상을 지키려면 습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카지노화된 일상은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작된다. 주식·코인 시세뿐 아니라 쇼핑과 게임도 그 화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자주 울리는 알림을 끄고 손이 가는 앱을 첫 화면에서 지우는 것만으로도 화면을 여는 횟수는 줄어든다. 사용 시간 확인 기능을 켜 두면 어떤 앱을 몇 번 열었는지 알 수 있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침실 밖에 두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돈 문제가 있었다면 여신거래 안심차단 서비스로 대출을 막아 반복되는 습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주간의 리듬도 여기에 속한다. 무한한 생산을 요구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백성에게 안식일은, 시장이 쉬지 않아도 사람이 멈출 수 있음을 새긴 제도였다. 일을 하는 것은 빚을 정리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개인회생은 꾸준한 소득이 있어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품: 전문기관 연계와 “적게 버는 자의 존엄“
다른 하나는 공동체다. 일이 청년을 단단하게 한다면 공동체는 그를 혼자 가지 않게 곁을 지키고 버틸 자리를 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공동체는 가족이다. 빚은 직접 갚도록 책임을 강조하면서 심리상담에 동행하고 회복 계획을 함께 세워 지켜봐야 한다. 가족 역시 이 짐을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성공에 박수하던 교회가 실패한 사람도 정죄 없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 때, 청년은 자기의 사정을 어디까지 말할지 스스로 정하며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쓰러진 이웃의 짐을 함께 졌듯(누가복음 10:30-37), 교회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 하기보다 전문 기관으로 이어 주고 그 곁을 지켜야 한다. 도박 문제라면 당사자와 가족 모두 상담받을 수 있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상담전화 1336과 지역 센터가 있다. 빚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이나 법원의 개인회생 제도로, 일자리는 고용센터의 국민취업지원제도나 청년도전지원사업으로 이어줄 수 있다. 교회 안의 여러 직업을 가진 교인들은 이력서와 면접을 돕고 자기 일터의 문을 열어 주는 멘토가 될 수 있다. 교회가 기관의 연락처와 절차를 미리 익히고 지역 센터와 협력해 회복 소그룹을 운영한다면, 고백한 청년이 찾아갈 곳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이 단단해지는 동안에도 반복을 재촉하는 설계, 바로 그 판이 그대로라면 연쇄는 되풀이된다.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도 마찬가지다. 일한 만큼 생활과 주거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판은 언제든 다시 출구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과 더불어 그 사람을 둘러싼 판에 윤리적 문제를 묻는 일은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 역시 그 판이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서 말로든, 태도로든 ‘적게 버는 사람도 존귀하다’는 믿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을 청년이 믿을 수 있도록 한결같이 그들의 곁을 지키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무너진 청년을 다시 일으키는 일과 그를 무너뜨리는 조건을 바꾸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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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섭 교수는 현재 총신대학교 중독상담학과에 재직 중이다. 36년 동안 중독 분야에서 일해 와서 “중독의 대모”로 불린다. 한국심리학회장, 한국중독심리학회장, 한국중독전문가협회장, 국제중독기구인 Colombo Plan ICCE 한국대표 초대 이사를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중독융합학회장, I CAN 본부(www.ican.or.kr) 이사장/대표, 국제중독전문가양성과정(ITTC) 공동대표, 미래창조과학부 스마트폰 쉼 문화운동본부 공동대표,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심리상담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