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개봉한 한국 영화 ‘소풍’(김용균 감독)이 저예산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전국 관객 3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노인들의 안락사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김영옥(86)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의지’를 보여주는 우리 영화와 같은 생각이다. 내 의지로 할 수 있을 때 떠나는 것이 행복이다. 내가 움직일 수 없게 됐을 때, 억지로 살리려 한다면 나는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존엄사가 허용되지 않는 문제를 빨리 다뤄줬으면 좋겠다”라며 적극적 안락사의 합법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노인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죽을 권리
먼저 2월 12일, 네덜란드의 드리스 판 아흐트 전 총리와 그의 부인 외제니 여사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아흐트 총리 부부는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해왔으며, 평소 홀로 떠날 수 없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생전 아흐트 총리는 ‘권리포럼’을 설립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 그가 2019년 뇌졸증으로 병상에 누워 결국 개인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선언하듯 부부 동반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다.
“성경은 생명과 죽음을 인간의 권리가 아닌 창조자 하나님의 권리로 가르치며, 인간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생명과 죽음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조력 자살)를 합법화한 나라다. 그러나 안락사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는 이미 1980년대 초부터 있었다. 안락사 논의의 시작 시점은 아흐트 총리가 총리로 재임한 시기(1977~1982)와 일치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로마 카톨릭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논의를 시작해 약 20년 후에 의사의 도움을 받는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적극적 안락사는 불필요한 치료를 통해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연명 치료와 다르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의 도움으로 독극물을 주입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생명과 죽음을 인간의 권리가 아닌 창조자 하나님의 권리로 가르치며, 인간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은 생명과 죽음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죽일 권리
적극적 안락사의 다른 형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공동체와 국가의 선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인구 불균형과 관련되어 있다. 고령 인구의 증가와 젊은 인구의 감소는 젊은 세대가 부담해야 할 사회복지 비용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지 국가에 대한 개념이 강화됨에 따라, 국가는 이를 위해 노동 가능한 젊은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이로 인해 젊은 층은 더욱 빈곤해지며,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신진 영화 감독 아야카와 치에는 2017년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단편영화 “플랜 75″를 만들었고, 이를 장편 영화로 만들어 2022년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언급상을 받았다. 이 영화는 2016년 일본 가나가와현의 장애인 시설에서 19명을 살해한 범인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애인은 살처분해야 한다”고 말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플랜 75’는 영화가 시작될 때 한 청년이 2차 세계대전에서 국가를 위해 자살 특공대를 자처했던 가미카제 정신을 언급하며, 노인들이 국가와 청년을 위해 죽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노인 시설에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노인들에게 총을 난사한다. 결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안락사를 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게 되고, 정부는 안락사를 신청한 7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아무 조건 없이 상금을 지급한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고령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모두의 인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영화에서는 정부가 오히려 ‘모두의 인권’을 핑계로 고령 약자층을 배제한다. 일본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시대의 소비주의 윤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래된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안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오히려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래된 것과 과거의 것을 나쁜 것으로, 새롭고 미래의 것을 좋은 것으로 보는 윤리적 가치 판단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인의 소비 행태에도 잘 드러난다. 새 상품은 좋은 것이고, 적절한 돈으로 새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면, 고쳐 쓰는 것은 시간 낭비니 버려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소비주의 윤리다. 이러한 소비주의 시대에 오래된 노인을 치료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시대의 소비주의 윤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래된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다. 그분은 지혜자 욥에게 던진 질문을 이 시대에 묻고 계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38:4)
이춘성 목사는 20-30대 대부분을 한국 라브리(L’Abri) 간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 겸임교수로 섬기고 있다. 한기윤에서는 사무국장과 한기윤 리뷰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