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급하고 떨린다. 목사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청년이 먼저 말을 꺼낸다. “목사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목사는 놀라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는다. 잠시 침묵하던 청년이 어렵게 입을 연다. “제가…… 방금 점집에 다녀왔어요.” 그는 최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상태가 나빠져 고향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 그날도 병원 진료를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음은 답답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우연히 점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점집을 나온 뒤 그를 기다린 것은 위로가 아니라 깊은 죄책감이었다. 그는 길가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는 그를 책망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용서는 목사에게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하고 회개할 문제라고, 하나님은 꼭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이 장면은 오늘 한국교회에 묵직한 한 질문을 던진다. “왜 불안에 짓눌린 청년은 교회가 아니라 점집 문을 먼저 열었는가?”
늘어나는 무속 문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점, 사주, 타로, 굿, 부적, 운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무속은 어딘가 음지의 문화, 드러내기 어려운 선택, 혹은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 찾는 마지막 수단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사주와 타로는 유튜브, SNS, 숏폼, OTT 예능, 모바일 앱을 타고 일상 콘텐츠가 되었다. 점술은 더 이상 점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요즘 청년들에게 무속에 관한 디지털 콘텐츠의 관심도는 70%를 상회한다. 이것은 60대의 점에 대한 관심이 41.5%라는 사실과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1) 또한 주목할 점은 점술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실제 점집에 찾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2) 이러한 무속 문화는 심지어 교회 청년들의 일상 안으로도 침투해 오고 있다.3)
교회 안에 드리운 무속의 어두운 그림자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4)에 따르면, 개신교인 5명 중 1명은 최근 3년 이내 무속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고 답하였다. 이들 가운데 24%는 부적을 지녀도 괜찮다고 답했고, 35%는 사업을 위해 고사를 지내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점을 보거나 운세를 보는 일, 결혼과 이사를 위해 길일을 택하는 일, 풍수지리 등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50%가 넘는 성도가 “상황에 따라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일반 사회와 비교하면 기독교인의 무속 수용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성경이 점술과 무속적 의존을 하나님 아닌 다른 힘에 기대는 우상숭배의 문제로 다루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문제는 말씀과 기도와 공동체의 돌봄보다 즉각적인 예언과 처방을 더 신뢰하는 무속적 성향이 건강한 신앙생활의 토대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는가?
성도들이 무속에 무감각해진 이유
첫째 이유는 무속의 놀이문화화다. 과거에는 점집을 찾거나 사주를 보는 일이 숨기고 싶은 일이었다. 적어도 기독교인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재미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친구들과 타로 카페에 가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워주는 사주 콘텐츠를 보고, 생년월일을 넣어 AI 운세를 확인한다. 무속은 더 이상 두려운 종교 행위라기보다 가벼운 놀이, 자신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청년들은 굿판이나 점집이라는 전통적 종교 행위보다는 타로, 사주 앱, 유튜브 운세, 심리테스트형 콘텐츠를 통해 점술을 접한다. 여기서 무속은 종교라기보다 콘텐츠다. 신앙의 경쟁자라기보다 놀이문화처럼 보인다. 그래서 경계심이 약해진다. “믿는 건 아니고 그냥 재미로 보는 것”이라는 말이 신앙적 판단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둘째 이유는 불안의 증가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취업, 직장, 관계, 결혼, 경제적 불안, 미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수록 사람은 해석을 원한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 선택이 맞는지, 왜 나는 이렇게 힘든지 알고 싶어 한다. 이때 점술은 빠르고 단순한 답을 준다. “올해는 조심하라”, “이 사람과는 맞지 않는다”,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다”, “곧 귀인이 온다.” 그 말이 맞는지보다는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불안을 읽어주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며 당장 붙잡을 행동 지침을 준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유는 상담의 외주화다. 점술은 종종 상담의 기능을 대신한다. 무속인이나 타로 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받아주고 상징적 언어로 상황을 해석해 준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깊은 고민과 상처를 안전하게 나눌 수 없다고 느끼는 성도들은 외부로 향한다. 기도 제목을 나누었는데 소문이 되거나 상담 내용이 공동체 안에서 설교나 강의 소재로 가볍게 소비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보다 점술가 앞에서 더 솔직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넷째 이유는 한국인의 중층 신앙 구조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불교, 유교, 도교, 샤머니즘, 민간신앙이 복합적으로 얽혀 형성된 중층 신앙의 종교 문화를 갖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오랫동안 이러한 혼합주의를 경계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세속화와 종교적 권위 약화 속에서 토속 종교적 심성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다.
다섯째 이유는 디지털 기술의 결합이다.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운세, 사주, 타로 콘텐츠도 확산되고 있다. 생년월일과 고민을 입력하면 즉각적으로 해석이 나오고, 챗봇은 사용자의 감정에 맞춘 언어로 답한다. 처음에는 재미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단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가벼운 검색이 점차 의존으로 바뀔 수 있다. 하나님께 묻고 기다리는 신앙보다 즉시 답을 주는 알고리즘과 점술의 언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현대인, 안전한 교회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현대인이 불안한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다. 사람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믿으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와 죽음, 고통과 미래 같은 문제 앞에서는 여전히 초월적인 답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마음의 충돌과 압박을 “교차 압력”이라고 불렀다.5) 성경도 인간을 단순히 몸만 있는 존재나 영혼만 있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몸과 마음, 영혼이 함께 연결된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병원 치료와 상담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영적인 회복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뇌와 호르몬 반응과 같은 과학으로만 설명하거나 반대로 운명과 영적인 힘으로만 설명하려 하지만, 어느 한쪽만으로는 인간의 불안과 삶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처음 사례의 청년도 바로 그런 불안 속에 서 있었다. 그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현실적인 고통을 겪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과 영적 불안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교회는 그의 문제를 단순히 “믿음이 약해서”라고 몰아가서도 안 되고, 점집에 간 일을 가볍게 넘겨서도 안 된다. 필요한 치료와 상담을 격려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다른 힘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복음 안에서 다시 붙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는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기도 제목이 소문이 되지 않고, 상처가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불안이 믿음 없음으로 정죄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이 될 때 비로소 교회의 복음적 응답은 시작될 것이다. (*)
주)
-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5년 4월 29일.
-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6년 3월 12일.
- 한국리서치 2025 종교인식 조사, 2026년 2월 24일.
- 목회데이터연구소, 넘버스 333호, 2026년 5월 16일.
- Charles Taylor, A Secular Age (Cambridge, MA; London: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chapter 16.
이춘성 목사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사역하였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 고신대에서 기독교 윤리학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선임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