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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아침, 뉴스 속보 화면 속에는 이란 남부의 한 초등학교 건물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고, 연기를 뿜는 잔해 위로 아이들의 작은 가방들이 흩어져 있다. 미사일 한 발에 스러진 175명의 생명. 이 비극적인 소식 아래로 “정밀 타격 성공”이라는 군 당국의 발표와 “정의로운 보복”이라는 정치인들의 수사가 댓글 창을 메운다. 누군가는 분노의 이모티콘을 누르고, 누군가는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전장(戰場)의 화염과 스마트폰의 푸른 빛, 전혀 다른 두 공간이 사실은 ‘정당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수 세기 동안 인류가 쌓아온 ‘정당전쟁론’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역사적 붕괴의 현장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글에서는 국제적 권위가 실종된 2026년의 전쟁 지형을 진단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회복해야 할 윤리적 좌표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무너진 질서와 예고된 비극

2026년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스라엘 연합군과 이란의 충돌은 현대 정당전쟁 전통에 대한 사형 선고와도 같다. 과거의 전쟁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국제법과 보편적 도덕 규범이라는 ‘면허‘를 필요로 했다면, 오늘의 전장은 명확한 외교적 합의 없이 단행되는 선제 타격과 보복의 악순환으로 점철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무력 행사가 ‘예방적 선제 타격’이라는 이름으로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부터 기독교 전통에서는 전쟁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세 가지 엄격한 조건, 즉 정당한 권한과 타당한 이유, 그리고 올바른 의도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고 이해되어 왔다.1) 그러나 오늘날 강대국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협을 상상하며 방어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한다. 경찰권이 부재한 곳에서 개인이 강도를 제압하는 ‘예외적 상황’이 전 지구적 원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제기구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묶여 침묵하고, 법의 이름으로 집행되어야 할 사법적 무력은 사적인 복수와 구분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정당전쟁론에서 설명하는 전쟁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정당전쟁론은 전쟁에 대한 허가증을 발급하는 이론이 아니다. 영국의 기독교 윤리학자 올리버 오도노반(Oliver O’Donovan)은 전쟁을 무너진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사법적 판단(judgment)’의 극단적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 즉, 전쟁은 국가 정책을 이루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법적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급한 상황에서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공적인 심판이라는 뜻이다.

흔들리는 존재론적 평화와 불안

자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국외에서 한 국가가 전쟁이라는 이름의 사법적 행위를 수행할 때는, 그 과정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받고 통제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전쟁 수행 중 무차별적인 폭력은 단순한 군사적 오류가 아니라, 현대인이 직면한 믿음 체계의 붕괴에서 비롯된 불안과 연결되어 있다. 누구나 지켜야 할 보편적 도덕 기준인 자연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 고민하기보다 당장의 승리와 안전을 챙기는 일에만 매달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국제 질서를 지탱하던 도덕적 권위가 실제 국제 관계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으로서의 전쟁과 교회의 책임

전쟁의 안개 속에서 사람들은 확신을 갈망한다. “우리 편이 정의다”라는 선언, “적을 섬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맹목적 애국심 등을 열망한다. 그러나 오도노반은 이러한 기계적인 규칙 적용을 넘어서 복음이 형성하는 정치적 실천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단순히 힘겨루기가 아니라 일종의 공정한 ‘사법적 판단’이 되려면 먼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해야 하고,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분명히 가려내야 하며,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무너진 정의를 다시 세우겠다’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3)

교회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불안한 시대에 교회는 국가 권력을 무조건 정당화하려는 입장과 현실을 외면하는 급진적 평화주의 사이에서 신중한 윤리적 판단을 수행해야 한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전쟁의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하며 두려워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인 현장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책임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려내는 실천적 이성을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4)

또한, 전쟁터의 포성과 교회의 기도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야 한다. 전쟁을 시작할 명분이 충분해 어쩔 수 없이 무력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교회는 전쟁을 수행하는 정당성(구별성과 비례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특히 구별성 원칙은 전쟁 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이 원칙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한다. ‘누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정당전쟁 전통은 오직 전투원만 공격할 수 있고 민간인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도덕적 경계선이다. 기독교 윤리학자 폴 램지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전투원 면책 원칙은 정당전쟁 윤리의 핵심이다.(The moral principle which must govern the conduct of war is the immunity of noncombatants.)” 이 원칙은 단순히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전쟁이 무분별한 살육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최소한의 윤리적 장벽이다.5)

비례성 원칙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공격의 규모가 정당한가?’ 즉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생하는 피해가 그 목적에 비해 과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마이클 월저는 전쟁 수행에서 비례성 원칙을 설명하며 군사적 목표가 존재하더라도 민간인 피해가 그로 인해 얻는 군사적 이익보다 크다면 그 공격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6) 예를 들어 단 한 명의 지휘관을 제거하려다 수백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 공격은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잃게 된다. 이 원칙은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냉철한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다.

정의로운 평화의 길을 향하여

과거의 평범한 예배가 일상의 언어로 조용히 드려졌듯, 진정한 정의는 시끄러운 폭격 소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 정의를 바로 세워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정하게 판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일방적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시금 국제적 권위와 사법적 질서의 중요성을 외쳐야 한다.

정당전쟁 전통은 결국 “어떻게 폭력을 제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 전통은 우리에게 ‘구별성’과 ‘비례성’이라는 두 가지 소중한 윤리적 경계를 남겼다. 이 두 원칙은 전쟁을 인간의 파괴적 본능으로부터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자 윤리적 울타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별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세상 앞에 공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군사적 승리보다 더 귀한 가치이기에 그리스도인은 결코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다. 또한, 전쟁 속에서도 끈질기게 정의를 요구한다. 참된 평화는 단순한 힘의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회복에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


주)

  1.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I, q. 40, a. 1.
  2. Oliver O‘Donovan,The Just War Revisit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7–18.
  3. Oliver O’Donovan, The Ways of Judgment(Grand Rapids: Eerdmans, 2005), 1–23.
  4. James Turner Johnson, Morality and Contemporary Warfare(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9), 33–48.
  5. Paul Ramsey,The Just War: Force and Political Responsibility(New York: Scribner, 1968), 143.
  6. Michael Walzer, Just and Unjust Wars, 151–152.

강성호 교수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공군학사장교 기상예보관으로 근무한 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철학적 도덕적 신학과 조직신학으로 Th.M, 캐나다 McMaster Divinity College에서 Christian Theology(Theoligical Studies- 세부전공 기독교윤리)로 Ph.D.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와 윤리적 문제를 성품윤리와 문화 동화 이론으로 분석한 박사 논문을 작성하였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시광교회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