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블랙프라이데이: 소비가 미덕인 기간

11월이 되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어김없이 세일의 계절로 접어든다. 일 년 중 가장 큰 규모의 할인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다. 그 이름의 유래를 더듬어 보면, 195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의 경찰들이 추수감사절 다음 날 밀려드는 쇼핑 인파로 인한 교통 체증을 보며 ‘블랙프라이데이’라 불렀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제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의 소비 문화가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11월 초부터 온라인 상점과 대형 유통업체들이 “프리-블랙프라이데이”, “역대급 할인” 같은 자극적인 문구를 내걸고 소비를 유도한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경우에는 내수 증진을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까지 더해지며, 11월은 어느새 ‘국가적 소비 축제’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은 이 시기를 ‘합리적 소비’의 기회라고 말한다. 필요했던 물건을 싸게 샀으니, 나도 좋고 판매자도 좋다는 이른바 윈윈(win-win)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최근 여러 조사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높은 확률로 소비에 대해서 후회한다는 피드백이 적지 않다. 영국의 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약 40%가 “세일에 이끌려 계획에도 없던 물건을 샀다”고 답했다.[1]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그 물건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신용카드와 같은 후불 결제(BNPL) 이용률이 크게 늘었으며, 그에 따른 연체와 채무 상담 건수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2] 싸게 샀다는 일시적인 만족 뒤에는 충동구매와 감당할 수 없는 빚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오염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연구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폭증하는 배송과 포장 쓰레기, 온실가스 배출, 그리고 금세 폐기되는 저가 제품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떤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에 구매된 물건 중 상당수가 오래 사용되지 못한 채 버려진다고 한다. 한국도 대형 세일 기간이 되면 택배 박스, 스티로폼, 비닐 포장 같은 일회용 쓰레기가 평소보다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환경 단체의 보고가 이어진다.[3] 결국 블랙프라이데이는 ‘싸게 많이 사는 축제’인 동시에, 인류가 감당해야 할 환경 오염 등의 비용을 키우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성경적 소비: 청지기적 삶과 이웃 사랑

무엇보다 성경은 ‘청지기적 삶’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시간과 재능, 자원은 내 욕망을 위해 소모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끼고 나누기 위한 것이다. 소비는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과 중심을 드러내는 영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사고, 왜 사고,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는 결국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의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블랙프라이데이는 이러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다”, “놓치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결국 ‘필요’가 아닌 ‘욕망’을 따라 지갑을 열게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소비에 있어서도 성경의 이웃 사랑의 가르침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고, 쉽게 버리는 삶을 계속할수록, 자연을 파괴하고 이것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의 삶을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블랙프라이데이가 주는 ‘할인의 기쁨’을 누리기에 앞서서 나의  소비가 누구에게 어떤 불이익과 고통이 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소비와 욕망: ‘무엇’이 아니라 ‘왜’ 원하는가?

하지만 블랙프라이데이의 문제는 단지 경제적·환경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의 문제, 곧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왜 원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관계되어 있다. 여기서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 이론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4]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자율적이지 않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원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욕망을 따라 배우며 살아간다. 즉,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상품, 대상을 직접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소유(욕망)하고 있는 사람(타자)—곧 ‘모델’—를 처럼 되기 위해 모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갖고 싶어하는 진짜 이유는 그 물건이 필요해서라기보다,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누군가처럼 되고자 하는 모방 욕구로 인하여 그가 가지고 있거나 욕망하는 물건이나 대상을 소유하는 것을 통해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거짓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블랙프라이데이는 평소에 갖고 싶어하던 물건을 할인 행사를 통해서 모방적 욕망이 극대화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가격 할인 그 자체가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분위기가 우리로 하여금 욕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고 극대화한다고 할 수있다. “모두가 산다”는 분위기, SNS에 넘쳐나는 ‘득템 인증’,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추천 목록, 유튜버의 쇼핑 리뷰, 유명인의 사용 후기 등.

이 모두가 욕망의 모델이 되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를 통해서 소비자는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나도 가져야 한다’고 느낀다. 지라르는 이러한 구조가 경쟁과 모방, 질투, 과잉 욕망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소비주의는 물리적 폭력은 아닐 지라도 결국 과잉 소비, 환경 파괴, 부채, 정서적 공허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들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라르의 관점에서 보면, 블랙프라이데이는 단순한 ‘할인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거대한 욕망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구입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사회와 문화, 광고와 SNS가 제시하는 욕망의 모델을 뒤따라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모방적 욕망이 아무리 싸게 많은 물건을 구입해도 결코 만족과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인은 물어야 한다. 그 욕망이 나를 지혜롭고 절제된 청지기의 삶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이것이 타인의 욕망을 뒤쫓는 모방적 소비의 끝없는 굴레 속으로 나를 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는 청지기적 삶을 맡기셨다. 이는 주어진 자원과 소유를 잘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선악과의 명령이 보여주듯 우리의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 아래 굴복하고 순종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욕망과 소비는 곧 우리의 가치관을 드러내고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덜 사고, 더 사랑하는… 

끝으로 현대의 탐욕스러운 소비문화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어느 교회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인 11월부터 12월 동안 ‘덜 사고, 더 사랑하는’이라는 표어를 걸고 이를 실천하도록 격려한다고 한다.[5] 이를 위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Buy Nothing Day(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을 정해서 소비문화에 조용한 저항을 표한다.[6] 이는 소비를 죄악시 하는 것도 싸게 사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것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삶의 지혜이지만 그리스도인은 물건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과 영적인 갈망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소비가 내 욕망을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영적 갈망에 있는지 말이다. 싸게 사는 기술보다, 올바르게 욕망하고 소비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모습일 것이다.


각주

  1. Bruno Brown, “SHOP TO IT: Almost four in 10 consumers admit to Black Friday regret from impulse buys – Nearly a third of people were Black Friday shopping for Christmas,” The Sun, published November 23, 2025, 16:18.
  2. Rupert Jones, “Borrowing & Debt: Beware Buy Now, Pay Later Temptation on Black Friday, Debt Charities Warn: Billions Will Be Spent on Credit over the Discount Weekend but Experts Say the Payment Option Is ‘Not Risk-Free’,”The Guardian, November 22, 2025, 09:00 
  3. 이한, “트렌드키워드속환경㊳핼러윈·블랙프라이데이…‘친환경’ 교집합 있을까?,”그린포스트코리아, 2021년 11월 16일.
  4.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김치수·송의경 옮김 (파주: 한길사, 2001).
  5. Sheldon Good, “Reimagining Christmas: A Movement Is Underway to Free People of Faith from the Yoke of Christmas Consumerism,”Sojourners, December 2013.
  6. Jeremy Williams, “Buy Nothing Christmas,”The Earthbound Report, November 30, 2007.

이춘성 목사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사역하였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 고신대에서 기독교 윤리학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