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체외수정(IVF)과 배아 유전체 스크리닝을 통해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부모는 태어나기 전에 막대한 위험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
지난 9월 WIRED Health 2025 무대에서 미국 스타트업 오키드(Orchid)의 CEO 누르 시디키(Noor Siddiqui)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녀의 회사는 아직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초기 배아의 DNA를 전장 유전체 수준에서 분석해(Whole Genome Sequencing), 수천 가지 질병의 위험도를 산출하고, 그중 가장 건강할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골라 이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디키는 이 기술이 희귀 유전질환은 물론, 심장병, 당뇨, 치매, 정신질환 같은 만성 질환의 미래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중증 유전질환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머지않아 이 방식이 임신의 기본 전제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이 비전은 겉으로 보기엔 부모와 아이를 향한 배려처럼 들린다. “아이의 고통을 줄이고 싶지 않으세요?” “가능하다면 더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게 부모의 책임 아닐까요?”오키드는 실제로 한 번의 IVF(인공 주기에서 얻은 여러 개의 배아를, 거의 전장 유전체 수준으로 해독해 1,200개 이상의 질환 위험도를 예측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가격은 배아 하나당 수천 달러에 이른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와 같은 고학력의 고수입의 엘리트 부모들에게 이 서비스는 “아이의 미래를 위한 건강 보험”처럼 마케팅되고 있다. 부모는 통계적으로 더 안전한 배아를 선택함으로써 미래의 병원비와 아이의 병을 돌보는 감정적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선택은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포장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유전자 전장검사’라는 새로운 산전검사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겉으로는 더 좋은 돌봄과 배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하는 일은 ‘완벽한 아이 고르기’라는 이름의 더 엄격한 선별이다. 이 선별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을 넘어,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제 인간 생명은 더 이상 태어나는 것만으로 소중한 존재가 아니다. 아예 태어나기도 전에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에 따라 선택되거나 버려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사랑’이나 ‘존엄성’이 아니라, 시장 논리다.
이미 시작된 배아 유전자 검사와 그 부작용
이미 이런 변화는 현실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PGT-A라는 배아 염색체 검사가 널리 쓰이고 있다. 이 검사는 배아에서 몇 개의 세포를 떼어내 염색체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해, 정상인지 이상인지를 나눈다. 특히 30대 후반 이후의 노산의 위험성이 있는 여성들에게는 유산을 줄이고 임신 성공률을 높여준다는 거의 완벽한 기술처럼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검사의 비용은 수천 달러에 이르렀고, 대부분 보험 적용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검사의 정확성이다. 소송에 참여한 몇몇 부부는, 검사에서 ‘비정상’으로 판정된 배아 중 일부가 실제로는 임신이 가능했으며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어떤 병원에서는 ‘비정상’이라고 나온 배아는 아예 이식조차 해주지 않으면서 환자에게는 “쓸 만한 배아가 없습니다. 다음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시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그 배아가 수많은 시간과 비용, 감정적인 고통 끝에 겨우 얻어낸 소중한 생명이다. 그런데 의료 시스템은 그 배아를 확률의 숫자로 판단하고, 쓸모없고 버려진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이 기술의 중심 철학과 세계관을 드러낸다. 초기 생명은 더 이상 ‘태어날 아이’가 아라, ‘품질’에 따라 등급 매겨지는 일종의 자원인 것이다. 그리고 선별에서 탈락한 배아는 대체로 폐기되거나 영구 동결 보관 상태로 남는다. 임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라진다. 오키드 같은 차세대 서비스는 이 선별을 더욱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한다. 기존 PGT-A(유전자 검사)가 주로 큰 염색체 이상을 걸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전장 유전체 스크리닝은 배아의 미래를 통계적으로 ‘미리 채점’한다. 심장질환, 치매, 당뇨병, 정신질환, 암 등 수십 년 뒤에나 나타날 수 있는 위험까지 수치화한다. 회사는 “이렇게 하면 유전질환 위험을 30~80% 낮출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수치는 복잡한 통계에 따라 추정한 확률일뿐, 그대로 일어날지는 누구도 보장하지 않는다.

유전자 전장검사(Whole Genome Sequencing)의 위험성
동시에 산모의 혈액만으로 태아의 DNA를 읽어내는 산전 전장 유전체 검사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 기술은 임신 초기부터 태아의 거의 모든 유전 정보를 부모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그 정보에는 출생 직후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결함만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야 나타날 수도 있는 치매, 암, 정신질환 가능성 같은 후기 발병 소인도 포함된다. 이런 정보는 아직 치료법이 없거나, 심지어 예측 정확도가 낮은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그 불확실성을 근거로 임신을 계속할지 중단할지 선택해야 하는 압박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지금 중대한 고통을 겪는가가 아니라 “이 아이는 40살쯤에 심장질환 위험이 통계적으로 조금 더 높다. 그러면 지금, 임신을 끝내는 것이 더 좋은 것 아닌가?”와 같은 잔인한 질문이다.
기독교 생명 윤리는 이 지점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다. 성경은 인간 생명이 언제 소중해지는지 조건을 달지 않는다. 시편 139편은 태아가 모태에서 지어질 때부터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한다. 아직 형체도 갖추기 전의 생명도 하나님 앞에서는 인격적 존재다. 다시 말해, 배아 단계에서부터 그 생명은 도구나 세포 샘플이 아니라, 존엄을 가진 인간 누군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장 유전체 스크리닝은 우리를 다른 질문으로 유도한다. “이 생명을 정말 키울 만한 가치가 있나?” “장차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나?” “이 아이가 나중에 정신질환 위험 점수가 높다면, 지금부터 우리 가정이 짊어질 부담은 정당한가?”

산전 유전자 전장검사가 미칠 사회적 파장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계산이 단지 개인 윤리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꿀 것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으면 미리 걸러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장애나 만성질환 가능성이 있는 아기들은 점점 “낳아서는 안 될 생명”으로 취급될 것이다. 이미 장애인 인권 운동가들과 일부 생명윤리학자들은 이 흐름을 “부드럽게 포장된 우생학(eugenics)”이라고 비판한다. 약한 생명은 단지 치료가 필요한 이웃이 아니라 미리 사라져야 할 리스크로 바뀐다. 이 변화는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붙들어온 복음적 상상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복음은 약자를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약자를 품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또한 이 기술이 사실상 빈부의 격차에 따라서 부와 건강을 대물림하는 불평들을 심화 시킬 것이다. PGT-A 같은 검사는 수천 달러가 들지만 보험은 잘 안 된다. 전장 유전체 배아 스크리닝은 별도로 수천 달라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통계적으로 더 안전한 배아를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가정은 그냥 자연임신을 한다. 이것은 건강, 지능, 정신질환 위험도 같은 요소들까지 계급화할 위험이 있으며, 부자들은 유전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아이를 선택하여 가질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이 꿈꾸는 완전한 인간은 결국 인간을 파괴함
유전자 기술 발전 그 자체를 악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질환을 막는 것은 선한 일일 수 있으며, 부모가 아이의 고통을 줄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랑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지 않는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유전자 기술의 발전을 곧장 악으로 못 박을 일은 아니다.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질환을 막는 일은 선할 수 있고, 아이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사랑에서 비롯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아래 놓이지 않은 사랑은 언제든 이기심으로 기울기 쉽다. 그 사랑은 부모의 기대와 욕심을 따라 생명을 고르는 힘, 마치 창조자 하나님의 자리에 부모들을 앉게 만든다. 기술은 부모의 불안을 잠시 덮어 주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이 아이를 살릴지 지울지’아 같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결정을 강요하고 있다. 의료 체계는 그 결정을 합리성이라는 말로 감싸고, 시장은 그것을 출산을 업그래이드 하는 것이라고 포장한다.
기독교 생명윤리는 이 지점에서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하며, 약할수록 더 보호받아야 하고, 불확실할수록 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기독교 윤리학자 메일랜더의 말처럼, “네가 존재해서 좋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이유로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정말로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유산은 유전적으로 정제된 완벽함이 아니라, 약함과 위험을 지닌 생명도 존중받는다는 확신, 곧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의 문화다.
참고
- https://www.washingtonpost.com/technology/2025/07/16/orchid-polygenic-screening-embryos-fertility/
- Donley G, Hull SC, Berkman BE. Prenatal whole genome sequencing: just because we can, should we? Hastings Cent Rep. 2012 Jul-Aug;42(4):28-40. doi: 10.1002/hast.50. Epub 2012 Jun 20. PMID: 22777977; PMCID: PMC4113095.
- https://time.com/7264271/ivf-pgta-test-lawsuit/?utm_source=chatgpt.com
- https://www.wired.com/story/whole-genome-sequencing-will-change-pregnancy/
이춘성 목사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사역하였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 고신대에서 기독교 윤리학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