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시편 92:12-15
들어가며: ‘초고령사회’라는 도전과 사회의 시선
우리나라는 2024년 12월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가 넘어서서 초고령사회에 진입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구의 변화가 아니라 경제, 노동, 복지, 사회구조, 가족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상당한 도전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65세 이상의 독거노인의 비율이 2024년 기준으로 22.1%으로 굉장히 높은 수치입니다. 이 현상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상당한 문제들을 안기고,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는 상당히 불행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시기를 단순하게 3기로 나눈다면, 1기는 성장과 배움과 준비의 시기이고, 2기는 역할 수행과 생산의 시기이고, 3기는 성찰과 통합과 완성과 여유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3기 노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건 일반적으로 신체가 무너지고, 기능이 고장 나고, 사회적 역할이 소멸하고, 잠재적인 환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성찰과 통합과 완성을 위한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극소수에 해당합니다.

세상은 노년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오늘날 세상은 다음 세 가지의 시선으로 노인을 대합니다. 첫째는 자본주의적인 시선인데,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효율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경제활동에서 저비용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를 생산하는지에 따라 가치를 따집니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노년은 쓸모가 줄어든 비생산적인 시기입니다. 사회에 기여보다는 부담이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특히 노년층의 증가는 사회보장제도나 연금제도를 위기에 봉착시키는 존재로 봅니다.1)
둘째는 과학적 그리고 의학적 시선인데, 사람을 신체적인 기능과 데이터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가 쇠퇴하고 약해지고, 기능들이 저하되고,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애써보지만 실은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기준으로 보는 시선인데, 타인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노인은 아무래도 의존적인 존재이고 도움과 관리를 받아야 할 비자율적인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세상 시각으로 볼 때, 노인은 생산성이 떨어져서 쓸모없는 사람이고, 노화로 인해 볼썽사나운 존재이고, 의존적이고 수동적이어서 사회가 노후 생계비와 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짐 같은 존재로 봅니다.
그러나 노년의 입장에서는 이런 시선들이 억울하고 분하고 안타깝고 섧기만 합니다. 사실 이 사회를 이만큼 되도록 일구어 놓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가정이 이만큼 살도록 한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자녀가 이렇게 누리도록 교육을 시킨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금의 교회를 세우신 분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만, 그래도 발로 뛰고 손으로 수고한 분들이 누구입니까? 누가 뭐래도 지금 노년 세대가 가장 많이 수고했습니다. 억압된 일제강점기, 비참한 6.25 한국전쟁 시대, 헐벗고 배고픈 보릿고개 시대, 땀범벅으로 살았던 산업화 시대, 눈물과 피 흘리기를 마다하지 않은 민주화 시대, 사실 이분들이 일구었습니다. 그런데도 차디찬 눈길을 받는다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고 억울하고 분합니다.
성경은 노년을 어떻게 말합니까?
그러면 성경은 노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합니까? 성경은 노년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우선, 성경은 노년이나 장년이나 청년이나 어릴 때나 모두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전도서 3:11).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늙은 시절도 아름답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그전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영화가 그에게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잠언 16:31). 오직 나이가 들어야만 쓸 수 있는 왕관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노년의 시기이고, 특히 신앙을 가진 노년의 모습입니다. 신앙인으로 나이가 드신 분들은 그런 의미에서 모두 장로입니다. 원래 장로(히. 자켄, 헬. 프레스뷔테로스) 라는 말이 나이 많으신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일컫는 단어입니다. 신앙 안에 계신 어르신은 모두가 존귀한 장로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2편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런 존귀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오늘 본문 같습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4절).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정하고 결실이 여전히 많은 노년이라고 합니다. 사실, 시편 92편은 노년을 서술하려고 쓴 시편은 아닙니다. 이 시편은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번영케 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기쁨으로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시편 기자는 1~3절에서 찬양하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여서, 4~5절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한 기쁨을, 6~9절은 악인들의 들의 어리석음과 패망을, 10~11절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로 인한 기쁨을, 그리고 본문인 12~15절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인들의 안전과 번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악인들과 대조되는 의인들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무성하게 자라다가도 끝에 가서는 쉽게 사라지는 풀이라면(7절), 의인들은 여호와의 집에 심겨 자라고 늙을 때까지 성장하고 번성하여 결실하는 나무입니다(12-14절). 바로 의인의 이런 이미지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인의 노년을 위한 너무나 아름답고 존귀한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의 표제어가 “안식일의 찬송 시”인데, 신자에게는 안식일이 쉼만이 아니라 찬양의 날이라는 것을, 짐이 되는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된다는 것을 의도하고 있습니다.2)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늙음도 모든 것을 그만두고 쉬는 게 아니라 주님의 정직을 증언하고 증명하는 시기임을, 젊은 세대에게 짐이 되는 시기가 아니라 공동체에 필요한 열매를 여전히 맺어주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시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신자들의 노년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세 가지의 입장에서 들어봅시다. 먼저는 노년의 신앙인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노년의 신앙인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우리의 늙어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가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대와 비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인생의 백발이 가져오는 영화의 면류관을 기대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의 노년은 어떠하겠습니까?
1.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종려나무와 백향목의 시들지 않는 생명력
신체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본다면, 사람이 노년이 되면 병들고 그래서 성장을 멈추고 쇠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2절). 물론 모든 노인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의인, 곧 하나님의 백성은 노년이 되어도 여전히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본문은 두 종류의 나무의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려나무인데, 건조한 사막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려서 잘 자랍니다. 그리고 잎이 시들지 않고 늘 푸르름을 유지하고 대추야자를 엄청나게 맺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늘 푸르름을 유지하고, 계속 번성해 나가고, 그리고 알찬 열매도 많이 맺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나무입니다. 또 다른 나무는 백향목인데, 수백 년을 때로는 수천 년을 사는 나무로 그 크기가 때로는 거의 36미터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도 썩지 않고, 속이 단단하고, 향이 계속 나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 재료로 택함을 받았습니다.3)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년에도 강건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유지하고, 죽을 때까지 성장과 번성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백을 잃지 않는 갈렙의 신앙
성경을 보면 노년에 종려나무처럼 백향목처럼 성장하고 번성하고 열매 맺는 멋진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바울 등 수많은 사람들이 노년까지 주님의 쓰임을 잘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갈렙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40에 가나안 땅 정탐꾼 12명 가운데 하나였고, 정탐 결과를 보고할 때에는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14장에 보면,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을 때, 가나안 정복 전쟁을 영도하는 여호수아를 찾아가 지난날 모세가 자신에게 준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가 그 산지를 달라고 하는 것은 그곳을 정복하는 전쟁을 자기에게 맡겨 달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85세이면 기력이 노쇠하여 겨우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나이인데, 생사를 다투는 전쟁에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앞장서서 지휘하겠다는 것입니다.
갈렙은 모든 면에서 강건하고 성장하고 번성하였습니다. 우선 육체적으로 강건했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수 14:11). 85세지만 40세 때처럼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 있을 만큼 육체적으로 강건하였습니다. 또한 심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 진취적이었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수 14:12a). 갈렙은 그 나이에 자기에게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이 크고 성읍들이 견고하다고 할지라도 자기가 점령하겠다 합니다. 그만큼 심적으로 용감했고, 정신적으로 여전히 성장하고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도 더 성장하고 더 강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수 14:12b). 자기와 함께 하시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였습니다. 사실 신앙적으로 강하니, 심적으로 대담하고, 정신적으로 진취적이고, 더불어 육체적인 강인함이 뒷받침되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년이라고 약해지라는 법이 없습니다. 퇴보하라는 법이 없고 쇠퇴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신앙인의 노년은 끝까지 기백과 강단과 강건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강해지고, 신앙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영적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하여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또 살아야 합니다. 노년이니까 약해지고 움츠리고 소극적이고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이 되어도 끝까지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설령 연로해서 육체가 쇠약해지더라도,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믿음과 영혼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
2.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뜰 안에 심긴 나무
사회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본다면, 노년은 모든 것에서 밀려나는 시기입니다. 중요한 일들은 젊은 세대에게 내주고,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거나 하더라도 사소한 일들을 맡게 됩니다. 그럴 때 드는 감정은 자기가 속한 사회나 공동체에서 자기 역할이 더 이상 없다는 서러움입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에서 은퇴한 후에 그런 서운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그가 속한 공동체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3절). 나무는 어디에 심겼는가에 따라 그 가치와 역할이 달라집니다. 같은 나무라도 깊은 산골짜기에 심긴 것과 잘 꾸며진 공원에 심긴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에 심겼습니까? 당연히 여호와의 집에, 하나님의 뜰 안에 심겼습니다. 종려나무와 백향목이 여호와의 집에 심겼고,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할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번성과 소속감
하나님의 집과 뜰은 어디일까요? 구약시대 당시에는 성막이나 성전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좀 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의미로 말하자면 교회 공동체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는 말은 예배와 교제가 살아있는 교회에 참여하고, 교인으로서 모든 세대의 사람들과 교제하고 함께 나누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여전히 역할을 가지고, 사역과 봉사를 다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어 놓으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하게 되고,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뜰 안, 곧 교회 공동체를 사랑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이라도 맡기를 좋아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이 되어도 교회에 계속 소속하여 적절한 역할을 감당하는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선포하는 영적 권위
그러면 노년은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그것은 공동체에,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하나님을 선포하는 역할입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15절). 노년의 성도는 젊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정직하시다는 것, 불의가 없으시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바위가 되신다는 걸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만, 노년의 입에서 선포되는 증거는 수많은 세월을 통한 검증과 정직한 양심에서 나왔기에 그 무게와 권위가 다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선포는 교회 공동체 안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인데, 목사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모든 성도가 하는 것이고, 특히 노년의 성도가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노년이야말로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소중한 역할을 여전히 맡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생명의 가치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본다면, 노년은 생산성은 떨어지고,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노년기에 왕성한 생산이 일어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노년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노년기에도 여전히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며 빛이 청청하니” (14절). 의인 곧 하나님의 사람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서 늙어서도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젊은이들이 맺는 열매와는 질이 다르고 맛이 다르고 가치가 다릅니다. 풍족한 진액과 청청한 빛이 어우러져 맺은 열매이기에 그 나무의 주인을 아주 기쁘게 합니다. 그 주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자연에서도 노령기에 아주 엄청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많이 마시는 보이차를 생산할 때, 야생에서 채취하는 차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생에서 2000년 이상 된 특별한 차나무들이 있는데, 그것을 “차왕수(茶王樹)”라 부른답니다. 차나무들 가운데 왕과 같은 나무라는 것이지요. 엄청나게 좋은 차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3200년이 된 나무가 있는데, “차황수(茶皇樹)”라 부른답니다. 차나무 왕들 가운데 황제라는 것인데, 이 차나무에서 채취된 차 2kg이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18억 6천만에 낙찰되었다고 합니다.4) 허영이 가득한 값이긴 하나,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차, 다른 차나무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차를 생산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바로 노년의 성도가 맺는 열매는 차왕수의 차와 같고, 차황수의 차와 같습니다.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고, 최고의 풍미와 영양과 효능과 가치를 지닌 열매를 맺습니다. 저는 그 열매를 덕과 지혜의 열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5)
첫째, 공동체를 세우는 덕의 열매
먼저는 덕입니다. 노년의 (미)덕(virtue)은 무게가 있습니다. 통상 (미)덕이라고 하면 ‘단순히 규율을 지키는 능력을 넘어 한 개인이 반복적인 실천을 통해 내면화한 탁월한 성품이나 그것을 하게 하는 능력’을 일컫습니다. 노년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은 신앙 안에서 노력과 훈련을 많이 하였고, 또한 성령님께서 그를 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덕스럽습니다. 그리고 노년의 신자는 개인적인 경건과 인격을 도모하는 덕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서,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오는 덕을 행할 줄 압니다. 곧 공동체와 그 식구들을 세우는 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납고 경쟁적이고 불화하는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의 평화가 깨지더라도, 덕이 있는 어르신의 한마디 말씀은 공동체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젊은 세대의 신자들은 덕이 있는 노년의 말씀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공경하고 순종을 합니다. 교회에 의로움과 정직과 평안과 분별력을 가져오는 덕이 노년의 성도가 가지는 특화된 열매입니다.
둘째, 경험의 기억에서 나오는 지혜의 보석
둘째는 지혜입니다. 노년의 지혜는 경험의 기억에서 나오는 보석입니다. 노년이 된다고 저절로 현명해지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두뇌의 작동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노인은 오랜 기억과 많은 경험을 가졌고, 그것들이 지혜를 빚어냅니다.6) 그 지혜는 교회가 훨씬 덜 비싼 비용을 치르고 더 공평하고 풍성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합니다. 오랫동안 빚어진 지혜는 모든 스승의 지혜만큼 가치가 있습니다(참조, 시119:99-100). 또한 노년의 지혜가 교회의 과거와 미래를 연속하게 해줍니다. 교회는 기억으로 전통을 이어가는데, 노년의 기억이, 특히 노년 신자들 공동의 기억이 공동체에 살아 있는 전통을 세웁니다.
마치며: 노년은 공동체를 함께 세워 나갈 소중한 식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년은 결코 인생의 가비지 타임도 잉여(剩餘)의 시기도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쓸모없게 된 비생산적인 시기도 아니고, 몸이야 약해지겠지만 그렇다고 정신과 신앙까지 쇠퇴하는 시기도 아니고, 의존적이어서 공동체에 부담만 주는 시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여전히 공동체에서 역할이, 그것도 아주 소중한 역할이 있습니다. 또한 여전히 열매를, 그것도 최고의 맛과 효능과 가치를 지닌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 정말 필요한 덕을 행하고 지혜를 선포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노년 성도의 정체성입니다. 어르신들도 젊은이들도 교회 공동체도 이것을 제대로 알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어르신들을 향한 권면: 덕과 지혜의 지갑을 여는 삶
먼저 어르신들은 교회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생의 지갑을 열어 덕과 지혜를 베풀어 주기 바랍니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돈지갑은 열어야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르신들은 돈지갑을 열기 전에, 덕과 지혜의 지갑을 여셔야 합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덕을 행하시고, 공동체의 아름다운 전통을 세우는 말을 하기 바랍니다. 교회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노년의 덕과 지혜입니다. 화평과 평화를 가져오는 덕 그리고 아름다운 신앙과 교회의 전통을 가져오는 지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교회 공동체에 주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을 향한 권면: 배움과 존중의 영적 가족
그러면 젊은이들은 교회 공동체의 어르신들을 어떻게 존경하고 대접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지체로 대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함께 세워가는 소중한 식구로 대하여야 합니다. 일방적인 공경의 대상으로만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관계로 대하여야 합니다. 어르신들에게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열어야 합니다. 특히 어르신들의 덕을 존중하고 지혜를 꼭 이어받아야 합니다. 어르신들에게 가만히 계시라고 말하지 말고, 덕과 지혜를 말씀해 주실 걸 부탁드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향한 권면: 소외 없는 연합과 공동체적 돌봄
또한 교회 공동체는 노년의 성도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합니까? 노년의 성도들이 여호와의 집 곧 하나님의 뜰 안에 심기고 번성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 공동체인 교회가 그분들을 돌보는 책임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가 어르신들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공경을 가장한 노소(老少)의 불평등이 없어야 합니다. 곧 노인이라고 소외하거나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지체와 연합이 되어서 활동하게 해야 하고, 다른 세대의 교우들과 연결이 되어 있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의 소그룹에 노년의 성도가 한 멤버로서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노년을 위한 소그룹을 따로 운용하는 것에 신중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이점들은 있겠지만, 노년을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 할아버지 할머니도 계신 것처럼 정상적인 교회 소그룹에는 노년의 성도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노년의 성도들이 무엇보다도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돌봄을 받습니다. 노년의 성도들도 본인들의 덕과 지혜를 나누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적 돌봄을 교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노년의 성도를 소외시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거기다가 다양한 섬김을 더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작은 공동체들이 노년과 함께 살면서 돌보아 준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아무쪼록 노년의 성도들이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고 번성하여, 덕과 지혜의 열매를 맺을 때, 교회는 훨씬 더 평안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
주)
- 스티븐 롱, “안락한 은퇴와 거룩한 제자도 사이에 고민하다” in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 스탠리 하우어워스 외 지음, 이라프아카데미 옮김 (서울: 두란노, 2021), 216-221.
- Derek Kidner, Psalms 73-150 (Leicester, IVP, 1975), 334.
- A. F. Knight, The Psalms, volume 2 (Edinburgh: The Saint Andrew Press, 1983), 99.
- EBS 세계테마기행, 차마고도 茶馬古道 – 제1부. 차황수의 전설, 린창 – 4월 21일(월), 2026-05-05 접속.
- 로완 그리어, “인생의 늦은 오후에 허락된 특별한 삶” in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 55-62.
- 데이비드 에이어스, “나이듦의 영광이 추락하고 왜곡되다” in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 듦에 관하여』, 79.
[2026년 5월 이슈설교 | 설교 작성을 위한 가이드]
제목: 의인의 노년: 초고령 사회, 교회의 대응
본문: 시편 92:12-15
들어가며: ‘초고령사회’라는 도전과 세상의 차가운 시선
- 현상 진단: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함. 특히 독거노인 비율이 22.1%에 달하는 현실은 개인과 가정에 실존적 고립을 안겨줌.
- 문제 제기: 세상은 노년을 자본주의적(생산성), 의학적(기능 저하), 자율적(의존성) 시선으로 보며 노인을 사회적 ‘짐’으로 취급함. 이로 인해 평생을 헌신한 어르신들이 소외와 억울함을 느끼는 실정임.
- 세상의 시선 vs 성경의 관점: 세상은 노년을 생산성이 떨어지는 ‘짐’이나 의학적 ‘기능 저하’로 보지만, 성경은 모든 때가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말씀함(전 3:1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잠 16:31)이며, 신앙 안의 어르신은 모두 존귀한 ‘장로’임.
- 설교 방향: 노년을 쇠퇴와 소멸의 시기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찰과 통합, 완성과 여유’의 시기로 재정의하고 의인의 노년에 약속된 존귀함을 선포함과 아울러 교회 공동체가 ‘영적 가족’으로서 감당해야 할 돌봄의 윤리(Care)를 제시함.
1.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여전히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 종려나무와 백향목의 시들지 않는 생명력 (시 92:12)
-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는 종려나무와 수백 년을 살아도 향이 나는 백향목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신체적 쇠퇴와 상관없이 영적으로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음.
- 기백을 잃지 않는 갈렙의 신앙 (수 14:11-12)
- 85세의 나이에도 기개를 잃지 않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며 헤브론 정복을 요청했던 갈렙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신앙의 전성기를 누림.
-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의 은혜 (고후 4:16)
- 육체인 겉사람은 낡아지더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짐. 노년은 움츠러드는 시기가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을 더욱 의지하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과정임.
2.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여호와의 집, 하나님의 뜰 안에 심긴 나무 (시 92:13, 84:10)
- 노년의 성도는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을 젊은 세대에게 증언하는 소중한 선포자임. 세월로 검증된 어르신들의 증언은 공동체 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강력한 영적 자산임.
-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번성과 소속감 (시 84:10)
- 예배와 모든 세대와의 교제에 참여하며 사역을 다함. 주의 성전 문지기를 사모했던 시인처럼 공동체 안에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며 기쁨을 누림.
-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선포하는 영적 권위 (시 92:15)
- 수많은 세월로 검증된 노년의 입술은 젊은 세대에게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을 증언하는 대체 불가능한 영적 권위를 가짐.
3. 하나님의 사람은 노년에도 열매를 맺습니다
-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는 생명의 가치 (시 92:14)
- 3,000년 된 ‘차황수(茶皇樹)’가 최고의 품질을 내듯 노년의 성도는 젊은이들이 가질 수 없는 깊은 ‘덕’과 ‘지혜’의 열매를 맺어 공동체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풍성함을 더함.
- 첫째, 공동체를 세우는 덕의 열매
- 노년의 덕은 인격과 수양의 결과이자 성령의 다듬으심으로 맺어진 열매임. 사납고 불화하는 공동체 속에서도 덕이 있는 어르신의 한마디는 평화를 되찾게 하며, 교회에 의로움과 정직과 분별력을 가져옴.
- 둘째, 경험의 기억에서 나오는 지혜의 보석
- 노년의 지혜는 오랜 기억과 많은 경험이 빚어낸 보석임. 이 지혜는 교회가 공평하고 풍성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노년 신자들의 공동 기억을 통해 교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다리 역할을 함.
마치며: 노년은 공동체를 함께 세워 나갈 소중한 식구입니다
- 메시지: 노년은 잉여의 시기가 아니라 공동체에 꼭 필요한 덕과 지혜를 선포하는 정체성을 지닌 존재임. 노년의 성도들이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번성할 때, 교회는 비로소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드러내며 훨씬 더 평안하고 풍성한 공동체가 될 것임.
- 어르신들을 향한 권면: 돈지갑을 열기 전에 공동체를 세우는 ‘덕과 지혜의 지갑’을 먼저 열어 신앙의 전통을 전수해야 함.
- 젊은이들을 향한 권면: 어르신들을 소중한 지체이자 식구로 대하며 마음과 귀를 열어 그 지혜를 말씀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적극적으로 배워야 함.
- 교회 공동체를 향한 권면 (시 133:1): 교회는 노년을 소외시키지 말고 전 세대가 연합하는 소그룹 등을 통해 ‘공동체적 돌봄’을 실천해야 함. 노년의 성도가 교회에 뿌리를 내릴 때 교회는 비로소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드러내는 풍성한 공동체가 됨.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마쳤다(M.Div.). 그리고 네델란드에서 담임목회 사역을 한 후, 남아공 스텔렌보쉬대학교에서 신약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M.Th. cum laude, D.Th.). 현재 진주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사역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