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된 노년기
우리 사회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2024년 12월에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되었다. 또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독거노인은 22.1%에 이른다. 노인 5명 중 1명은 홀로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연장된 노년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러한 사회 변화는 늙어가며 아프고 외로운 시기가 더 오랫동안 이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노인들의 고립감과 단절감은 삶의 활기와 의미를 앗아가고 무가치함과 우울함을 가져다줄 수 있으며 심한 경우에 고독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4년 보건복지부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고독사 사망자 수는 점차 늘고 있으며, 고독사 사망자 중 노인(60, 70대) 비중도 점차 늘고 있다.1)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는 시편이 쓰인 시기에 70세에서 80세까지의 10년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연장된 노년인데, 많은 경우 이 시기가 고달팠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에 이르는 현대인들의 연수가 ‘고생과 슬픔(trouble and sorrow)’뿐이라면 ‘자랑할 연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 준비 부족, 노화와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노인 돌봄에 대한 통합적 접근 부족 등으로 인해 노인들의 ‘고생과 슬픔’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교회는 사회보다 앞서 이미 초고령교회가 되어 많은 고령 회중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의 ‘연장된 노년기’가 ‘자랑할 연수’가 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교회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노인 돌봄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맞추어 교회에서는 노인 돌봄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노화 인식 태도나 노인 돌봄에 대한 이해는 제자리걸음이고 노년 사역의 전문성 역시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신앙 안에서 노화 인식 태도가 새롭게 형성되어야 하고 노인 돌봄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
노화 인식과 노인 돌봄 환경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인 노화 인식, 노인 혐오, 노화 저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격한 가족 구조의 변화로 인해 돌봄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노년층의 독거 비율이 점차 늘고 있고, 시설이나 가정에서의 요양 보호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노인 돌봄을 가족의 책무이기보다는 국가적, 사회적 책무로 인식하는 경향이 점차 뚜렷해지고 이러한 인식에 맞추어 돌봄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1. 노인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우리 사회에서 늙음은 대체로 추함, 무기력함, 무가치함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규정되는 반면, 젊음은 아름다움, 활기참, 가치 있음 등으로 인식된다. 중년 이후부터는 이러한 ‘나이듦’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서서히 굳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왜 노인을 싫어하고 노화에 저항하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울까? 셸던 솔로몬 등의 공포관리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 밑에는 무의식적 ‘죽음공포’가 자리하며 이 공포가 인간의 행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2) 인간은 죽음공포를 경험할 때마다 불쾌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 공포가 떠오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죽음공포 유발요인이나 유발자를 만나게 되면 공포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면의 죽음공포를 깨우는 유발자를 싫어하게 되는데, 무장강도나 바이러스 감염자뿐 아니라 무엇보다 허리 굽은 백발노인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또한 늙어가는 노화현상 자체도 죽음공포 유발요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노인과 노화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이유는 노인과 노화를 경험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죽음공포가 유발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라는 교훈과는 달리, 우리는 매일 노화현상을 겪으며 ‘겉사람’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와 교회에는 ‘노화는 나쁘다,’ ‘늙음은 추하다’는 부정적인 노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육체의 쇠약을 비롯한 다양한 상실을 경험하며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이 낮아지기 쉽다. 이로 인해 우울함에 이끌리며 위축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이러한 육체적 ‧ 심리적 상실 경험은 영적 상실, 즉 ‘속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소명의식이 약해지며 삶(노화)의 목적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쉽다.
2. 노인 돌봄의 환경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6.1%가 1인 가구인데 그중 37.4%를 60대 이상이 차지한다.3) 모든 연령층 중에 노년층의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고 노년층이 ‘상호 연결됨’에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고령 인구 증가로 인해 요양보호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요양보호’는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노부모 돌봄에 대한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기 노인 돌봄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장기적인 노인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책무로만 여겨지지 않고 점차 국가적, 사회적 책무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점차 노인 돌봄의 방식이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맞물려 최근 요양보호 수급자는 늘고 있는데 공급자가 부족하여 시설이나 가정에서의 요양보호 제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4) 또한, 60, 70대가 전체 요양보호사의 65% 이상을 차지하면서 ‘노노(老老) 케어,’ 즉 고령자가 고령자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이에 더해,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훈련이 미흡한 실정이다. 장기 노인 돌봄에 대해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요양보호를 통한 노인 돌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노인 1인 가구가 증가하며 가족 및 자녀들과의 유대감이 약해지고 있다. 자녀들은 부모 돌봄을 점차 국가적, 사회적 책무로 인식하고 있는데, 자칫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이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즉, 자녀들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고 국가로부터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1인 가구로 홀로 살거나,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도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교회공동체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노년 사역을 통한 노인 돌봄의 방향
노년 사역을 통한 노인 돌봄이 온전히 수행되려면 먼저 기독교 노화문화가 정립되어 노화 인식 개선과 노화의 목적 이해, 노인 돌봄에 대한 신앙적 이해, 소명의식의 재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노화 인식에 기반하여 실제적인 돌봄 기술과 돌봄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소명으로서의 돌봄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돌봄을 상호적으로 경험하고 돌봄을 통해 영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 유대감 형성을 돕는 돌봄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존 인간(human being-with)”5)이며,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때 자신의 존재감과 가치감,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리차드 존슨에 의하면, ‘유대감’이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감정을 따뜻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을 칭찬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을 내어주며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다.6) 노년기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젊은 시절의 부분적 시각에서 전체적이고 조화로운 시각으로 변화하며 ‘연결됨’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 고립감과 소외감을 느끼며 연결됨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커진다. 그래서 대인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성숙하고 유대감이 강화될 수 있다.
그런데 노년기에는 이러한 유대감 강화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죽음공포, 상실과 질병으로 인해 ‘자기몰두’에 빠지기 쉽기도 하다. 이로 인해 관계에서 철수할 수 있기 때문에 유대감 강화를 위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교회에서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한 ‘서로 연결됨’ 경험은 “젊음 가득함(youthfulness)”으로 이어져 노년기의 유대감 강화에 큰 도움이 되고 삶의 활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 또한 사람들과의 연결됨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결됨으로 나아가며 영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소명을 이루어가며 영적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
2. 질환을 치유하는 돌봄
리차드 존슨에 의하면, 건강한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의 성취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기에, 건강은 질병 없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번영하는 상태이고 질환 치유를 통해 ‘질병을 잘 다루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7) 따라서 건강함은 단순히 무병장수이기보다는 ‘생명력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고령층이 ‘연장된 노년기’를 ‘연장된 투병기’로 경험하기 쉽다. 60대 이상 연령대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만성적 질병을 갖고 사는데 이러한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정신적, 영적 어려움을 겪으며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
그런데 영성노년학에서는 질병과 질환을 구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질병”(sickness)은 “의사가 환자의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의료적 진단), 신체 중 일부 혹은 여러 부분이 다양한 이유로 문제가 생기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일컫고, “질환”(illness)은 “질병에 대한 환자의 정서적, 개인적, 심리적, 혹은 영적인 반응”을 의미한다. 질병은 우연히 발생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질환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한 우리의 고통과 아픔은 질병 자체에서 기인한다기보다 오히려 질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병보다 질환이 더 자신을 괴롭힐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병이 있어도 질환이 없거나 아픔이 덜할 수 있다. 질환으로 인한 아픔은 신체적인 아픔이기보다는 정서적, 심리적 아픔이며 무엇보다도 영적 아픔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병을 ‘치료(curing)’하고자 하고 돌봄 제공자는 질환을 ‘치유(healing)’하고자 한다.8) 따라서 교회는 노인들이 ‘질병’과 ‘질환’을 구별하여 이해하도록, 그래서 질병보다 오히려 질환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일이 없이 질병을 잘 다룰 수 있도록 질환 돌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사람이 질병에 매몰되면 주로 죽음을 묵상하게 된다. 많은 노인이 질병을 무익한 것으로 보며 자신의 질병을 죽음과 관련지어 순전히 의학적으로만 이야기하곤 한다. 자신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보기에 앞서 단순히 환자로만 바라보며, 영적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쉽다. 리차드 존슨은 인생 후반부의 집중적이고 복합적으로 상실을 겪는 시기에 영적 성장에 무관심할 때 “영혼이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고 말하며 침체의 늪에 빠진 활력 없는 삶, 무관심과 굴종으로 인한 영혼의 고통, 정서적 무미건조함과 인지적 완고함, 쓸모없다는 느낌과 소진감,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은 실존적 고통 등을 열거한다.9) 따라서, 인생 후반부에 자신의 질병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도우며 질환을 치유하는 돌봄은 노년 회중을 인격적, 영적 성장으로 이끌 수 있다.
3. 자기효능감을 증진하는 돌봄
노년기에는 노화로 인해 점진적인 육체적 상실과 경제적, 심리적, 관계적 상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상실 경험은 노화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고, 노인의 삶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돌봄 필요성이나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노인을 단순한 돌봄 대상자로만 규정하거나, 노인을 단순히 물질적으로만 지원하는 일은 노인의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없다. 폴 트루니에는 노인이 경멸받고 있다는 느낌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물질(돈) 제공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노인이 돈에 의존해서 자신의 가치를 되찾는다면 그들을 평생 짓눌렀던 잘못된 가치척도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10) 노인들이 돌봄을 받는 수혜자로만 머물지 않고 능동적인 돌봄 제공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돌봄 제공과 수혜의 상호적 관계 경험을 통해 자발적 사회 기여, 자기효능감 제고, 삶의 의미 추구로 나아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또한, 노년층에게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와 수동성을 심어주기보다는 그들의 의식개선을 통해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와 능동성을 일깨워주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노인 돌봄은 노년 회중이 자신의 신체적 건강이나 재정적 능력의 정도, 전문적 수행능력의 정도에 적절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실천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의식과 의지를 갖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4. 소명 성찰과 소명 갱신을 돕는 돌봄
소명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 노년기는 하나님이 주신 ‘나됨’(영적 자아정체성)을 더욱 깊이 알고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점차 소명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의 소명은 노화나 은퇴로 그 방식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신앙인은 생명과 소명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생명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서 나오며 이를 통해 삶은 온전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 후반부에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죽음공포는 소명의식을 약화하여 허무함과 우울함을 초래할 수 있다.
소명의식이 희미해지기 쉬운 인생 후반부에 소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맡기심’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유익하다. 이 과정은 지나온 영적 여정 가운데 자신의 소명이 삶의 여러 영역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변해왔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며, 하나님이 함께하신 흔적을 찾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일이다. 이를 통해 얻은 것들을 지금 여기의 삶의 자리에서 확대해서 보고 다시 해석하며 자신의 ‘소명 이루기’의 방식과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
우리의 소명은 개인적 상황의 변화(나이, 노화, 건강, 재물, 이주, 은퇴, 사별, 가족 등)나 환경의 변화(문화적·사회적 환경, 물리적 환경, 사교적 영역 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소명의 본질, 즉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흔들리지 않으며 변화에 맞추어 우리의 소명 버전(version)은 6.0, 7.0…으로 새로워지면서 소명 이루기의 역할과 방식이 갱신된다. 따라서 교회의 노인 돌봄은 인생 후반부에 소명 성찰과 소명 갱신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이를 통해 인생 후반부의 삶을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일구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노인 돌봄의 성경적 이해와 실천적 적용
1.노인 돌봄의 성경적 교훈과 적용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계명은 개인적 책임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공경을 ‘존중과 돌봄’으로 이해할 때 온전한 부모 공경은 독단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즉, 자녀의 공경만으로는 부모가 온전한 공경을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관계성과 상호연결성을 추구한다. 가족, 세대, 계층 간에 모두가 긴밀하게 연결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부모는 늘 타인, 타인의 부모와 주거니 받거니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이나 타인의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곧 자신의 부모가 공경을 받는 일로 이어진다. 공동체 안에서 존중과 돌봄을 나누는 삶은, 곧 소명 이루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모를 존중하며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부모를 존중하며 돌볼 수 없다. 그 반대로, 타인의 부모를 존중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럴 때만 그 공경에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타인의 부모를 보며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고, 타인의 부모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자신의 부모가 그런 듯 안타까워하고, 타인의 부모가 어려움을 겪는 일에 자신도 책임을 느끼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사교적 영역에서 연대감과 책임감을 느낄 때, 진정성 있는 관계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32)는 말씀대로 노인의 얼굴을 보며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신앙의 눈으로 노인의 얼굴 주름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과 동행한 삶의 흔적’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접힌 종이부채는 주름만 보이지만, 종이부채를 펼칠 때 그 부채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노인의 얼굴 주름을 신앙의 눈으로 펼쳐볼 때, 하나님과의 동행 속에서 일구어온 고난과 영광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노인의 주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엿볼 수 있다면 우리는 노인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
2. 노인 돌봄의 실천적 지침
첫째, 소명의식과 존중이 필요하다. 돌봄은 신앙인의 “근본적인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11) 돌봄의 궁극적 목적을 알고 추구할 때,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모든 일들 속에서 거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돌봄은 이 거룩한 소명의식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대리적으로 실천하는 일이다. 돌봄제공자는 노인을 하나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영혼으로 인식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돌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경청과 환대가 필요하다. 돌봄제공자는 노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들의 슬픔, 단절감, 외로움, 불안감, 두려움, 우울감, 서운함, 노여움을 수용하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돌봄이 필요하다. 경청은 환대이다. 환대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듯, 경청도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통째로’ 받아들이고 그 말과 함께 그 말하는 사람도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셋째, 상호 돌봄이 필요하다. 돌봄제공자가 끝까지 즐겁게 돌보기 위해서는 돌봄 나눔을 추구해야 한다. 조지 베일런트는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고, 자기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며,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는 욕심도 부려보면서 균형 있게 살아갈 때 성공적으로 늙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12) 자신의 상황과 자기 돌봄을 등한시하며 부모에게 자기희생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또한 수동적 태도 속에서 지속적으로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칫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와 능력, 자기효능감, 사회적 책임감, 삶의 의미가 약해지고 사회 적응력을 잃어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상호적인 돌봄 경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먼저 돌봄 제공과 수혜 사이의 상호성을 인식해야 한다: (1) (돌봄을 제공하기 전에) 돌봄을 통해 자신도 어떤 방식으로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는 의지, (2) (돌봄을 제공하면서) 자신도 무언가를 받고 있다는 인식, (3) (돌봄을 제공한 후에) 자신이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필요하다. 상호적인 돌봄 경험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질 때 건강한 돌봄 습관을 지니게 된다. 돌봄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에서 돌봄나눔이 있을 때, 모두에게 더욱 큰 유익을 가져다주고 끝까지 돌봄나눔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사랑 나눔이 필요하다. 돌봄제공자의 돌봄 행위는 자신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돌봄이어야 한다. 돌봄제공자와 수혜자 사이의 연결됨이 바로 돌봄의 본질이다. 돌봄을 “우리가 전에 결코 배워본 적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주된 경험”으로 인식해야 한다.13) 신앙인의 돌봄 제공은 하나님, 우리 자신, 돌봄대상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삼각구도의 사랑 경험이 된다. 돌봄제공자의 도움을 하나님의 손길로 경험할 수 있는가? 돌봄수혜자에게 한 것이 하나님께 한 것으로 경험될 수 있는가? 이 삼각구도 안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임재하시고 사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볼 수 있는 영적 상상력과 시각이 필요하다. 사랑 나눔이라는 돌봄 관계 속에 신앙적 동기와 하나님의 임재 경험이 없다면 돌봄제공은 그저 임무를 수행하는 되풀이되는 일로 변질되고 돌봄제공자는 탈진하기 쉽다.
3. 교회의 노인 돌봄 실천
교회의 노년 회중을 위한 돌봄 프로그램은 (1)자신의 노화의 목적을 새롭게 인식하고 목적에 맞게 나이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노화 인식 개선 모임,’ (2)나이듦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나누고 노화 현상의 경험과 의미를 나누는 ‘노화 예찬 모임,’ (3)자신의 질병을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연습하고 나누는 ‘질환 치유 모임,’ (4)노화, 질병, 은퇴, 사별, 이사 등과 같은 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여 변화된 상황과 환경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새롭게 갱신하고 끝까지 이어가기 위한 ‘소명 갱신 모임,’ (5)인생 후반부에 찾아오는 무의식적인 죽음공포에서 유발되는 두려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는 ‘사랑 찾기 연습 모임,’ (6)구체적인 사랑의 행위와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수시로 경험하며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 호흡을 나누는 연습을 하는 ‘사랑 호흡 나눔 모임’ 등으로 구성될 수 있다.
돌봄 팀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화에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깨달아 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삶에서 겪는 노화 현상, 질병, 외로움, 영적 자존감 저하, 소명의식 약화 등의 어려움에 온전히 대처하고, 신앙 안에서 활기찬 삶을 살아가며 영적 성장을 이루어갈 수 있다. 모든 신앙인은 돌봄제공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주변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도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도움이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울 때 외로움과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명으로서의 돌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돌봄을 제공하며 사람이 하는 돌봄은 온전하지 못하고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사람의 힘과 계획만으로는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혼자서 돌봄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돌봄의 현장으로 모시게 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며 마음이 상쾌해지고 새롭게 활기를 띠게 된다. 돌봄의 문제를 늘 자신이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마음, 돌봄의 결과를 직접 확인하려는 마음, 돌봄과 관련하여 책 잡히지 않으려는 마음, 자신만이 돌봄을 제공할 수 있고 제공해야만 한다는 ‘구원환상'(rescue fantasy)을 흘려보내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노년 사역자가 노인 회중을 돌보거나 자녀가 노부모를 돌보거나 노년기에 배우자나 동료를 돌볼 때, 돌봄 제공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여러 사람과 환경으로 구성된 ‘전담 돌봄 팀’을 구성하셨음을 깨닫는 일이다. 그 돌봄 팀장은 하나님이시고 자신은 그 돌봄 팀의 일원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책임지고자 과도한 돌봄을 제공할 필요가 없고 완벽한 돌봄을 제공하고자 강박적인 태도를 지닐 필요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겸손한 돌봄이 필요하다. 겸손이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아쉬움과 미숙함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기며 돌봄 나눔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과 협력하면서 끝까지 즐겁게 돌봄을 제공할 수 있고 이 돌봄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

주)
- 보건복지부가 2025년 11월 27일에 발표한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개요>에 따른 내용으로 https://www.mohw.go.kr/ 를 참고하세요.

- 던 솔로몬, 제프 그린버그, 톰 피진스키/이은경 역, 『슬픈 불멸주의자: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서울: 흐름출판, 2016), 24.
- 국가 데이터처가 2025년 12월 9일에 배포한 “2025 통계로 보는 1인 가구” 통계자료에 근거한 수치이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kostat.go.kr/ 를 참고하세요.
-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관리 운영하는 ‘사회보험제도’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되었고, 노인 장기요양은 “스스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65세 이상 노인과 치매, 뇌혈관성 질환,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65세 미만자”에게 ‘신체활동 지원, 가사활동 지원, 개인활동 지원, 정서 지원’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2024년 4월 30일에 발행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연령대별 요양보호사 수」자료에 의하면, 287만여명의 요양보호사 중 실제로 활동하는 요양보호사는 65만명 여명에 불과하다.
- Douglas John Hall, Professing the Faith: Christian Theology in a North American Context(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3), 214.
- Richard P. Johnson, 『나이를 잊고 사는 삶』 (고양: ISG, 2023), 67-68.
- 같은 책, 49-51.
- 같은 책, 186, 187.
- 같은 책, 64.
- Paul Trunier/강주헌 옮김, 『 노년의 의미』 (서울: 포이에마, 2015), 80-81.
- Richard P. Johnson/김기철 ‧ 임정아 역, 『시니어 돌봄 사역』 (고양: ISG, 2022), 197.
- George E. Vaillant/이덕남 옮김, 『행복의 조건』(서울: 프런티어, 2010), 109.
- Richard P. Johnson, 『시니어 돌봄 사역』, 198.
김기철 박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미국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했고 덴버대학교에서 목회상담학 박사학위(Ph.D)를 받은 후 배재대학교 기독교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심리상담학 전공 교수이며 한국영성노년학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목회상담사 감독, 전문상담사 감독, 영성노년학전문가(PCSG), 영성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