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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스페셜 기획

성경본문: 창세기 3:14-24

들어가며: “이생망”-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자화상

요즘 청소년들이 자주 쓰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고 스스로의 기대에도 못 미치고 친구들의 인정도 못 받기 때문이랍니다.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된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려운 취업 문을 통과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도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드라마까지 있을까요. 올해 초 일론 머스크가 한국의 출산율을 언급하면서, 3세대만 지나면 한국의 인구가 현재의 3%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며, “북한이 그냥 걸어서 넘어와도 될 정도”라고 경고했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한때 0.72명으로 최저치를 찍었다가 2024년부터 소폭 반등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1) ‘이생망’을 외치는 젊은 세대, 결혼과 출산 기피 문화, 높아지는 이혼율과 노인 자살률…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삶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선악과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태초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죄로 미끄러져 모든 희망이 사라진 바로 그 순간에 구원과 회복, 복락원의 희망을 약속하십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보내면서 희망을 잃은 시대 속에서도 우리의 가정이 말씀을 통해 복음의 희망을 굳게 붙잡기 바랍니다.

본론 1. 실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잇는 가정

원시복음, 뱀의 머리를 밟으실 약속

죄로 무너진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희망은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은 아담을 부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9절). 아담을 먼저 부르신 이유는 그가 언약의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여자 핑계를 대며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합니다(12절). 여자 역시 뱀이 나를 꾀었다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인간을 부추겨 죄를 짓게 한 뱀은 어떤 해명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곧바로 저주를 받습니다.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14절b). 흙을 먹는다는 것은 굴욕과 저주를 뜻합니다. 뱀의 완전한 패배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고”(15절). 뱀과 여자 사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강한 적대감이 이어질 것이며, 여자의 후손이 뱀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최초의 복음(Original Gospel)에 대한 선포입니다.2)

하나님이 당장 뱀의 머리를 부수지 않고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고 미루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세대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지 테스트하려는 섭리가 있습니다. 아담 이후 이어지는 세대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뱀의 유혹을 따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자들과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는 자들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3) 여자의 후손(זֶרַע, zera, )은 단수적인 의미에서 궁극적으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그 씨는 (집합적인 의미에서) 여자를 통해 이어질 믿음의 자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4) 이후 이어지는 가인의 자손과 셋의 자손의 대립,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파라오의 대립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적대감을 보여줍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싸움이 지속되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여자의 후손이 얻게 될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 속에 감추어진 회복의 소망

죄의 결과로 여자에게는 큰 고통이 더해집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16절a). 원래 자녀를 낳는 것은 창조 때 주신 생육과 번성의 복입니다. 타락 이후에도 그 복은 유효하지만, 수고와 고통이 더해집니다. 동시에 여자에게서 태어날 약속의 자녀들을 통해 죄의 저주를 되돌릴 희망이 주어집니다. 여성이 믿음으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품고 자녀를 낳고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구약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모세입니다. 파라오의 명령으로 모든 이스라엘 남자아기들이 나일강에 던져질 때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거역한 어머니 요게벳 덕분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구원자가 됩니다. 사사시대의 어둠을 뚫고 새 시대를 연 사무엘 역시 어머니 한나가 눈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도 마리아의 순종과 기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여성이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고 고통이 맞습니다. 그래서 여성의 권리가 향상될수록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강조하며 아이 낳기를 꺼립니다. 하지만 죄로 망가진 세상이 회복되는 소망은 여자의 후손, 즉 약속의 자녀를 통해 성취됩니다. 여성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수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저출산 시대, 믿음의 어머니가 세상을 구원합니다

언젠가 TV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극복방안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했던 여성 전문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돈 몇 푼 더 주고 어떤 정책을 만든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기르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존엄한 일인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 없이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을 존경하는 문화와 인식부터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출산을 왜 기피합니까?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이 부모의 자기 성취를 방해하고 경제적인 부담만 가중되는 일이라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관점입니다. 성경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고통과 수고도 있지만 더 큰 축복과 약속을 말합니다. 죄의 저주가 회복의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믿음의 자녀를 낳고 키우는 수고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자녀를 세상에서 성공하는 아이로 만들겠다는 부모의 욕심이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의 수고와 눈물이 세상을 구합니다. 그것이 낙원을 잃은 우리와 우리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결손 가정 출신 디모데가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 신앙을 이어받고(딤전 1:5) 더 나아가 영적 아버지 바울을 통해 복음의 일꾼이 되었듯이, 자녀를 기다리는 가정,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가정, 짝 믿음과 결손 가정에서도 하나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더 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영적 후손’의 약속을 반드시 이어가실 것입니다. 이 복음의 희망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다음 세대를 기르는 수고를 감당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 2. 실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생명을 향한 수고가 결실하는 가정

뒤틀린 부부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본래 뜻

낙원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째 희망은 생존이 아닌 생명을 향한 수고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제일 먼저 남녀/부부 관계가 심각하게 뒤틀립니다. 16절,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여기서 원한다는 히브리어 ‘테슈카’(תְּשׁוּקָה)는 일차적으로 ‘손을 뻗는다, 삼킨다’는 뜻입니다.5) 타락 이후 아내는 자기 욕망대로 남자를 조종해서 지배하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 남편은 아내를 힘으로 눌러서 군림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동등한 파트너였던 남편과 아내가 한편은 조종하고 한편은 억압하고 군림하는 관계로 뒤틀려진 것입니다. 요즘 젠더갈등이 큰 논쟁거리이지만 사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적대감은 태초부터 이어온 갈등입니다. 과거에는 가부장적인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서 문제였지만 요즘은 여성이 가정을 자기 뜻대로 휘두르고 남편을 소외시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파트너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자기 욕망을 따라 조종하지 말고 순종하고며,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희생하며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이어가도록 해야 합니다.6)

저주받은 땅, 고역이 된 노동

인간의 범죄로 그다음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17절은 아담에게 내리는 징계입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아담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은 “먹는” 문제를 언급합니다. 먹을 것을 내던 땅이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도 동산을 경작하고 돌보는 일을 했지만 타락 이후에는 땅이 저주를 받아 노동이 고통이 됩니다. 죄로 인해 남자와 땅의 생태적인 관계가 뒤집힙니다. 18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전에는 땅이 아담에게 복종해서 먹을 것과 온갖 좋은 열매를 풍성히 내놓았는데 이제는 땅이 아담에게 저항하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창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노동이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 수단이 됩니다. 이제 남자는 생계를 위해 죽도록 땀 흘리고 수고해야 하고, 그렇게 평생 일하다가 결국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19절b). 땅을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사명을 가진 아담이 도리어 땅에게 정복을 당하는 운명이 된 것입니다.7)

절망의 끝에서 붙잡은 ‘생명’의 약속, 그리스도로 완성되다

이제 아담에게 남은 희망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뿐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러라”(20절) 합니다.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자기 아내 이름을 ‘하와-생명’이라고 지으면서 죄의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자기 아내를 통해 뱀의 머리를 짓밟을 후손을 주실 것에 대한 희망을 품은 것입니다. 이후 아담은 평생 하와를 애지중지 귀하게 여겼을 겁니다. 만약 하와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담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겁니다. 실컷 땀 흘려 수고해 놓고 아무 소망 없이 그냥 흙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권면합니다.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성들은 자기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아내가 자녀를 낳고 믿음으로 양육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어질 때, 남편의 수고가 생존을 위한 고역이 아니라 생명의 은혜(유업)를 이을 희망이 있는 복된 수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 받은 노동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은 노동의 저주를 짊어진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공급과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인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소망이 있는 수고입니다.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신 12: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아내들은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수고가 고통이지만 남편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하는 어깨의 짐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수고는 주님의 복 주심과 풍성한 결실이 약속된 수고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수고를 힘써 감당함으로, 노동의 저주가 생명의 결실과 소망으로 역전되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가정과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본론 3. 실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생명의 길이신 주님을 예배하는 가정

화염검 너머, 다시 열린 생명나무의 길

마지막으로, 낙원을 잃은 우리 가정이 주님을 예배할 때 회복의 소망이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뒤 무화과 잎으로 자신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짐승을 희생시켜 가죽옷을 “지어”(마치 의상 디자이너가 맞춘 것처럼) 그들에게 입히셨습니다(21절). 인간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죄의 수치를 하나님이 친히 가려주신 것입니다. 이 가죽옷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옷 입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3:27). 우리 죄의 수치는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가려질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보좌하는 그룹 천사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킵니다(24절). 죄인에게 접근 금지라는 의미도 있지만 생명나무의 길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라는 희망적인 암시도 있습니다.8) 엡 6:17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고, 히 4:12은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보다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잠언 3:18은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잠언이 말하는 지혜의 본체가 되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14:6) 죄인에게 차단된 생명나무의 길이 새롭게 열립니다.

죄로 무너지고 낙원을 잃은 우리 가정에 어떻게 회복이 시작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 속으로 나아가 예배할 때입니다. 참된 예배는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나무를 취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배를 삶의 핵심이라기보다 부가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배보다 자녀의 성적이 중요하고 예배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 만족과 즐거움이 우선인 시대입니다. 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널브러진 아이들, ‘이생망’을 외치는 자녀들이 가득한 우리 가정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입니다. 우리 가정이 세상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배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가 충만한 예배 속에서 우리는 죽도록 일해도 고생과 허무뿐인 인생 가운데 일의 보람과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녀양육이 너무 힘들어서 ‘내 인생은 도대체 어디 갔나’ 우울하고 낙심될 때도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갈 때 소망과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배 속에서 부어주시는 하늘의 능력으로 우리는 노동의 수고, 육아의 수고를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가정 예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교회가 함께 드리는 공예배와 더불어 가정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간단한 실천 방법을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부부가 하나 되어 서로를 축복하는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수고하는 아내를 위해 말씀으로 이렇게 축복하면 됩니다. “내 집 안방에 있는 내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게 하소서”(시 128:3). “누가 현숙한 여인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는도다 그 손의 수고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장). 아내도 남편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과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면 됩니다. 배우자가 없는 가정은 주님이 친히 우리 가정의 아버지요 남편이요, 제사장과 돕는 배필이 되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부부가 함께 서로를 축복하는 것이 되면 그다음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해 줍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고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돌 같게 하소서”(시 144:12).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아버지가 없다면 어머니가 대신하면 됩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조부모님들은 자녀들과 손주들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짝믿음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이라면 가족 중 신앙적으로 앞서 있는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됩니다. 이렇게 매일 짧게라도 가족이 서로 축복하는 시간을 지속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가정에 임합니다.

그다음 가족이 모여서 축복만 할 뿐 아니라 짧게 성경을 읽는 것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작고 쉽고 간단하게 시작했다가 조금씩 형편에 맞게 늘려가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성도라도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고 하나님의 복을 선포함으로써 내가 더 큰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까지 잘하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하다가 중단했다면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지속할 수 있을까 염려되더라도 괜찮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함께 말씀 읽는 기쁨, 서로를 축복하는 기쁨을 누리면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과 복이 마치 자기장처럼 작용하고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가며: 저주를 넘어 희망을 누리는 복된 가정으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과 가정을 회복시키고 온 세상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가 있는 예배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죄로 닫힌 생명의 길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시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를 사모하고 매일의 삶 속에 지속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의 저주, 노동의 짐, 자녀양육의 고통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복락원의 희망과 기쁨을 누리는 복된 가정과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주) 

  1. 국가데이터처, 「인구동향조사」 참조.
  2.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90), 197.
  3. Rabbi Joseph B. Soloveitchik, Chumash Mesoras Harav: Sefer Bereishis With commentary based upon the teaching of Rabbi Joseph B. Soloveitchik. Compiled and Edited by Dr. Arnold Lustiger (New York: Oupress 2013), 26-27.
  4. Bruce K. Waltke, Genesis: A Commentary (Zondervan: Grand Rapids, 2001), 김경열 옮김, <창세기 주석> (새물결플러스, 2018), 158. “제라는 통상적으로 ‘자손’을 의미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된다. 영어단어와 마찬가지로 제라는 가까운 자손(창 4:25, 15:3), 먼 후손, 혹은 큰 무리의 후손을 가리킬 수 있다… 현재의 창세기 본문에서 우리는 단수의 의미와 집단적 의미 둘 다 가능하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창세기의 각 등장인물은 여자의 영적 성향을 답습하는 여자의 씨일수도 있고 뱀의 불신을 답습하는 뱀의 씨일수도 있다.” Victor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 NICOT, 197-199 의 “씨” ‘후손’(זֶרַע)의 단수적인 의미와 복수적(집합적) 의미에 대한 해석과 학자들의 견해를 참조.
  5.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 1-17 NICOT, 201.
  6. 타락시에 발생한 부부관계의 뒤틀림이 구원에서 어떻게 회복되는지 딤전2:8-15절을 참조. 여성에게는 순종을, 남성에게는 폭력과 강압을 내려놓고 제사장으로서 축복과 기도를 강조한다. 창조-타락-구속과 회복의 관점에서 딤전2:8-15절을 해석하는 주석가들은 Royce Gordon Gruenler의 논문 <The Mission-Lifestyle Setting of 1 Tim 2:8–15>을 참조.
  7. Bruce K. Waltke, Genesis: A Commentary (Zondervan: Grand Rapids, 2001), 김경열 옮김, <창세기 주석>, 160-161.
  8. Gordon J. Wenham, Word Biblical Commentary: Genesis 1-15, (Waco: Thomas Nelson, Word Books, 1987), 박영호 옮김, <창세기1-15> (솔로몬, 2006), 210-211, 고든 웬함은 에덴동산을 성소의 원형으로 해석하며, 본문에서 생명나무의 길이 완전히 차단된 것이 아니라, 이후 성소 안에서 계속 기억되고 재현되는 길이므로, 문제는“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가?”라고 주석한다.

[2026년 4월 스페셜이슈설교 | 설교 작성을 위한 가이드]

제목: 이생망시대, 실낙원에서 복락원으로 – 복음의 희망이 있는 가정

본문: 창세기 3:14-24

들어가며: “이생망”-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자화상

  • 현상 진단: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유행할 만큼 청소년부터 청년까지 무가치함과 좌절이 만연함. 일론 머스크의 한국 출산율 경고, 합계출산율 0.72명, 결혼·출산 기피, 높아지는 이혼율과 노인 자살률은 모두 “내 삶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없다”는 한 가지를 가리킴.
  • 문제 제기: 낙원에서 쫓겨난 태초의 가정 이야기를 통해, 인류가 죄로 미끄러져 희망이 사라진 그 순간에 하나님이 구원과 회복, 복락원의 희망을 약속하셨음을 일깨움.
  • 설교 방향: 창세기 3장 14-24절에 비친 복음의 세 가지 희망을 따라, 희망을 잃은 시대 속에서도 우리 가정이 복음의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인도하고자 함.

본론 1. 실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잇는 가정

  1. 원시복음, 뱀의 머리를 밟으실 약속 (창 3:9, 12, 14-15)
  • 죄로 무너진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희망은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임. 뱀의 완전한 패배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이것이 최초의 복음 선포임.
  • 여자의 후손(זֶרַע, zera)은 단수적으로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집합적으로는 믿음의 자손들을 가리킴. 궁극적 승리는 여자의 후손이 얻음.
  1. 해산의 고통 속에 감추어진 회복의 소망 (창 3:16a)
  • 자녀를 낳는 것은 창조 때 주신 생육과 번성의 복이며 타락 이후에도 유효하나 수고와 고통이 더해짐. 동시에 여자에게서 태어날 약속의 자녀를 통해 죄의 저주를 돌릴 희망이 주어짐.
    · 요게벳·한나·마리아처럼, 죄로 망가진 세상이 회복되는 소망은 여자의 후손, 즉 약속의 자녀를 통해 성취됨. 여성이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수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름.
  • 저출산 문제는 정책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일의 존엄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 회복이 필요함. 믿음으로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의 수고와 눈물이 세상을 구함.
    · 결손 가정 출신 디모데가 로이스·유니게·바울을 통해 복음의 일꾼이 되었듯, 자녀를 기다리는 가정·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가정·짝 믿음과 결손 가정에서도 하나님은 더 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영적 후손’의 약속을 이어가심.

본론 2. 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생명을 향한 수고가 결실하는 가정

  1. 뒤틀린 부부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본래 뜻 (창 3:16)
  • 인간의 범죄로 제일 먼저 부부 관계가 뒤틀림. 히브리어 ‘테슈카'(תְּשׁוּקָה)는 ‘손을 뻗는다, 삼킨다’는 뜻으로, 타락 이후 아내는 남자를 조종해 지배하려 하고 남편은 힘으로 군림하려 함.
  • 하나님의 본래 뜻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파트너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임. 아내는 자기 욕망을 따라 조종하지 말고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희생하며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이어가야 함.
  1. 저주받은 땅, 고역이 된 노동 (창 3:17-19)
  • 인간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 창조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노동이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 수단이 됨.
  • 땅을 다스리고 정복해야 할 사명을 가진 아담이 도리어 땅에게 정복을 당하는 운명이 됨.
  1. 절망의 끝에서 붙잡은 ‘생명’의 약속, 그리스도로 완성되다 (창 3:20; 벧전 3:7; 마 6:31-33; 시 128:2; 신 12:7)
  • 아담이 아내 이름을 ‘하와-생명’이라 지으며 약속을 붙잡음. 아내가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해 약속이 이어질 때, 남편의 수고도 고역이 아니라 생명의 유업을 잇는 복된 수고가 됨.
  •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받은 노동을 구원하심. 그리스도 안에서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소망이 있는 수고이며, 주님의 복 주심과 풍성한 결실이 약속된 수고임.

본론 3. 실낙원에 비친 복음의 희망: 생명의 길이신 주님을 예배하는 가정

  1. 화염검 너머 다시 열린 생명나무의 길, 예배의 회복 (창 3:21, 24; 갈 3:27; 엡 6:17; 히 4:12; 잠 3:18; 요 14:6)
  • 인간 스스로 가릴 수 없는 죄의 수치를 하나님이 친히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심. 이는 우리를 의로 옷 입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화염검이 지킨 생명나무의 길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열림.
  • ‘이생망’ 시대 우리 가정의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과 임재 속으로 나아가 예배할 때 시작됨. 예배 속 하늘의 능력으로 노동과 육아의 수고를 능히 감당할 수 있음.
  1. 가정 예배,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시 128:3; 잠 31장; 시 144:12; 민 6:24-26)
  •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하되, 아버지가 없다면 어머니가 대신하고, 조부모는 손주를 축복함. 짝믿음·한부모 가정이라면 가족 중 신앙적으로 앞선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함.
  • 작고 쉽게 시작해 형편에 맞게 늘려가는 것이 핵심이며, 혼자 사는 성도도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울 때 더 큰 ‘하나님의 가족’을 경험함.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해도 괜찮으며, 꾸준히 할 때 말씀이 살아 역사함을 경험함.

마치며: 저주를 넘어 희망을 누리는 복된 가정으로

  • 메시지: 우리의 영혼과 가정을 회복시키고 온 세상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가 있는 예배 속에 있음. 우리의 죄로 닫힌 생명의 길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시 열어주셨기 때문임.
  • 최종 권면: 이 예배를 사모하고 매일의 삶 속에 지속하라. 죄의 저주, 노동의 짐, 자녀양육의 고통을 넘어 하나님이 주신 복락원의 희망과 기쁨을 누리는 복된 가정과 성도가 되시길..

배준완 목사는 청년들과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에 오랫동안 헌신했고, 현재 서울서문교회 담임목사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역에 힘쓰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수학(BS)과 철학(BA), 서양사(MA)를,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M.Div),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기독교 교육학(Th.M)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