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소명: 지방선거,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를 세우는 응답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과거 30여 년 전에 비하여 지역적 특색이 더욱 뚜렷해진 모습을 보게 된다. 지역을 상징할 수 있는 이미지와 함께 지역의 곳곳이 정비되어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삶의 현장으로 거듭났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한 번쯤 방문하여 돌아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정도의 매력을 담지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사회 그 자체의 경쟁력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지역적 특징이 도드라지는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전국에서 치러질 6월 3일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교육, 복지, 환경, 문화, 도시 정책을 책임질 인재를 찾아 세우는 중요한 날이다. 특정한 종교나 이익 집단을 넘어 지역사회의 공동 관심사를 직시하며 거기에 적합한 인재를 골라 세워 미래를 노정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보면, 좁게는 교회적 일이기도 하고 넓게는 국가적인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일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일이기도 하다. 신앙이 개입되는 정치적인 행위가 실행되어야 하는 날인 까닭이다.
세계관적인 토대를 지닌 그리스도인은 교회뿐 아니라 온 우주의 주재권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임을 믿고 확신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주를 섭리하신다. 자연법칙이나 창조 질서를 근간으로 우주를 붙잡고 운행하실 뿐 아니라, 인간의 삶 일반에도 매우 깊숙하게 관여하신다(행 17:24-27). 특별히 인간의 삶의 구조와 관련한 하나님의 섭리는 제일 원인으로서 하나님뿐 아니라 제이 원인으로서 인간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1)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람을 세워 국가를 통치하신다. 위정자는 일종의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의 위상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적어도 위정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테네에서 보인 하나님의 성정을 드러내는 자여야 한다. 타락의 질서 가운데서도 인간 일반에게 “호흡”과 “생명”과 “만물”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부성을 잘 파악하고 그 마음으로 맡겨진 사람을 돌보며 섬기는 자로 기능해야 마땅하다. 지역사회의 거주민이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책임을 보장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의무를 짊어지는 사람이 위정자인 것이다.
누군가는 직접 그 일을 실행하려고 나서는 것이라면, 누군가는 그런 성정을 가진 사람을 골라 세움으로써 정치적인 소명에 응답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한다. 6.3 지방선거는 인간 일반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반응해야 할 정치적인 소명에 응답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이다. 정부가 판을 짜고 실행하는 인간 편에서 일어나는 선거를 넘어서는, 일종의 신적 사건인 셈이어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인 소명에 부응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결단을 해야 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더 나은 대리자’를 세우는 소명
그리스도인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이 사역할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는 장면이 매우 흥미롭다. 누가복음 3장 1-2절에 보면,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인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세례요한의 손가락 끝에서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가 오시는 모습이 뚜렷이 지목된다.
이 광경이 상당히 흥미롭다. 기존 사회에는 이미 통치자와 그에 비견되는 권력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스리는 형국은 어느 곳 어느 시점에나 펼쳐지곤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통치자가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를 따라 자신의 대리 통치 행위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는 다른 문제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타락과 이에 수반되는 온갖 비참이 난무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임에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섬기라고 세운 통치자가, 신적 소명에 부응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심을 따라 전횡을 일삼는 모습을 보게 되니 말이다.
다양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선하고 현명한 통치자와 악하고 어리석은 통치자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경험 일반에서 종횡으로 관찰된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의 요구를 따라 마지못해 왕정을 허락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바와 같이 대리 통치자로 인한 어느 정도의 불협화음은 피할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 혹은 양심에 더 가까운 통치자를 찾아 세우고 그렇지 않은 위정자를 내려앉힘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 행위에 솔선하여서 참여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오늘의 삶의 현실이 왕정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다: 인물 분별의 기준
이런 견지에서 보면 선거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직접 후보로 나서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렇게 나선 후보 중 누가 특정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볼 때 더 적절한지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 일에 나설 수 있다. 역사가 일정한 형식 안에 구조화되어 있어서 어떤 변화를 모색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다만 순리로 여겨 순응하는 일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스토아주의적 태도와 달리,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길이 활짝 열려 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무엇으로 답변되어야 할까? 세워질 위정자가 교회가 아닌 지역사회를 섬길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유념하면서 누가 더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의 성정을 더 가깝게 닮았는가를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지방선거가 교육과 복지와 도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면, 그런 범주에서 발견되어야 할 성정이 무엇일지 살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사회의 교육과 복지와 도시 정책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부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 정책 입안을 가질 만큼 유능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인물 선정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는 것이 좋은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어떤 삶의 정황에 있더라도 그 하나하나의 생명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할 인성이 갖춰져야 한다.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누구의 편익을 위해서 사심을 갖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실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가 당면한 일을 찾아 도모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동선에 대한 인식이 명확히 견지될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사회에 속한 각인의 자유를 인정하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을 통감하여 실현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보인다면, 그런 사람을 세우는 것이 역사를 섭리하는 하나님의 성정에 부합한 일일 것이다.
꼭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가?: 무능한 그리스도인, 유능한 비그리스도인
이 물음에 대하여 의아한 표정을 지을 그리스도인이 없지 않을 것이다. 피선거권자가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라면 저마다 예로 답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만일 선거가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과정이라면, 필연적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와 그 지체를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아닌 지역사회의 일꾼을 세우는 지방선거에 있어서 꼭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때에 따라서 유보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창조주이다. 구속주로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성경적 세계관을 살피면서 점차로 깊이 인식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2) 물론 다수의 복음주의자가 이런 인식에 현실적으로 도달하지 못한 채 교회 안 관심사에만 매몰된 예도 없지 않은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반드시 그리스도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그리스도인 피선거권자가 지역사회의 긴급한 필요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일을 해결할 능력을 탁월하게 구비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이 지역 정치를 위하여 뛰어들어야 함은 마땅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부정직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방선거에서 유보되는 것이 옳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총을 통하여 비그리스도인에게 다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심성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탁월한 재능을 주어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현안을 찾도록 이끌고 그것에 대한 적실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여 지역사회를 설득하고 그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주민을 널리 이롭게 하도록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구속주일 뿐 아니라 창조주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은 지역사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 그리스도인이지만 무능한 후보보다는 오히려 유능한 비그리스도인 후보에게 표를 행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3) 그리스도인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상식을 존중하고 이웃 일반의 자유를 존중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기에, 그런 맥락의 지도력을 가진 사람을 세우는 일에 마음을 열고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람됨에서 하나님의 성정을 닮고 널리 이웃을 이롭게 할 인성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와 정치: 이념을 넘어선 전략적 선택
한국 사회에서는 도농 간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결혼과 영아 출산율이 현저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빈부 격차의 고착화와 세대·이념 간 갈등 심화라는 복합적인 난제가 관찰되고 있다. 특별히 정치 지형이 시대적 큰 그림을 제시하지 못한 채 편향적으로 노정되는 양상은 매우 우려스럽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상식을 존중하며 일상의 회복의 큰 그림을 그리며 나아가는 지도자가 중앙과 지방 정부 차원에서 세워져야만 이 거대한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마음이 인지상정으로 공유되고 있다.
다양한 난맥상을 보이는 대한민국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기독교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광화문이나 여의도나 서초동에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편식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그리스도인도 덩달아 끼어든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과 인간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인 편식을 하지 않아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반적인 통치에는 이념적인 편향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편향을 넘어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얻어 교회의 지체가 되고 교회와 함께 성경을 묵상하며 자신을 구원한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주인 것을 알아차린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만사를 보는 독특한 안경을 쓰고 삶을 대하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구속주 하나님의 만유 통치와 섭리를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갖지만 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독특한 안목을 가진 존재이다. 이런 안목이 현실 정치에 참여할 때 어떤 양상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정당이 과연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 있을까? 민주당과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가? 국민의힘과 하나님 나라가 일치하는가? 하나님 나라가 세속 정부 그 자체나 혹은 국가 내의 어느 특정한 정당과 동일시되는 일은 없다. 심지어 허울 좋은 기독교 정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교회나 그리스도인은 어느 특정 정당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특정 정당의 정치적인 이념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기독교는 특정 이념에 자신을 일치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과거 한국교회의 일부가 반공을 이념으로 취하고 한반도에서 저질렀던 그런 범주의 불행한 일이 답습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신앙의 고유한 가치를 따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교회는 정당 정치를 보면서 어느 정당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가깝게 봉사하는지 주의력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은 정당의 이념에 편승하는 일방적인 지지가 아닌 사안에 따라 전략적인 선택과 연대를 모색하는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피선거권자의 교육과 복지와 문화와 환경 관련한 정책 방향성을 검토하고 평가하는 과정에서 다행스럽게도 창조와 함께 드러난 창조 질서에 기반하여 드러내는 피선거권자의 방향성을 확인하게 된다면, 그리스도인 각각은 이런 방향성을 지지하는 일에 개별적으로 연대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반 주민과의 연대도 모색할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회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개별 그리스도인이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그룹들 안으로 파고들어 지역민의 의식을 일깨움으로써 창조 질서의 근간이 교육과 복지와 문화와 환경 문제에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창조 질서에 기반하여 전략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교육과 복지와 문화와 환경 이슈에 반영하여 시민들의 의식을 노정하는 일을 전략적으로 수행할 때,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제 상황 변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방선거에 직면하여, 지역별로 특정한 사안에 따라서 인재를 선택적으로 결정하고 올바른 세계관을 탑재한 사안을 고르고 그것을 입안할 역량을 가진 인물을 선택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변화와 혁신과 진보를 모색할 기회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되거나 왜곡된 질서를 회피하고 올바름과 공평함을 공공의 영역에서 펼쳐낼 가능성을 끊임없이 찾아갈 특별한 기회가 바로 지방선거이다. 지방선거에 직면한 그리스도인은 특정한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성정이 드러나는 사회를 위하여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정책 방향: 4대 핵심 검토 기준
첫째로, 인간 생명을 하나님의 형상(창 1:27, 9:6)으로 존중하는 성경적 원리가 정책의 근본 가치로 전제되어야 한다. 지방선거에 입후보한 피선거권자와 그의 정책 방향이 이런 전망에 일치되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태아나 노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신중한 고려와 함께 보건, 복지, 환경 전반에서 이런 방향성이 발견되는지 살피고, 투표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정의와 진리를 행하며 이웃의 유익을 도모하는(슥 8:16, 빌 2:24) 하나님의 성품이 후보자의 공적 가치로 투영되어야 한다. 후보자로 나선 피선거권자가 청렴할 뿐 아니라 공직을 깊이 이해하고 실무 경험을 통하여 정책 실행력을 구비하고 있는지, 이런 실력과 함께 교육, 복지, 교통, 지역 균형 발전을 모색하되 특정 집단의 이익보다 지역사회 전반의 균형적인 성장을 추구할 의사와 정책적 대안이 있는지를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이나 지역의 소그룹과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하여 그 내용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공화제 정치의 핵심인 자유와 책임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원리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책임적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일에 막힘이 없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특별히 지역사회의 문화나 종교 정책이 노정되는 방향을 살피며, 성급한 편향 없이 보편 종교가 각자의 정체성을 발현하는 풍토를 만드는 위정자의 덕목을4) 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덕목이 견지되어야 지역사회의 긴장을 줄이고 서로에게 종노릇하며 평화로운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위정자들이 시정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며 주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명예를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지 감독할 객관적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피선거권자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를 하고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이기적인 인간의 왜곡된 욕망을 삼권분립으로 바로잡으려는 공화제의 근간이 견제와 균형임을 기억하며, 위정자와 주민 사이에 이를 실현할 객관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정의에 기반한 공공선이 실현되도록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발걸음은 투표에서부터: 투표와 사후 참여
지역사회의 현재 상태가 새로운 위정자를 선택함으로써 단순한 현상 유지에 머무는 것보다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진다는 말은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함께 부족한 부분은 메우고 소외된 주민은 끌어안으며 지나치게 편중된 부분은 균형을 맞춤으로써 공동선이 구현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의 확실히 하나님의 마음도 이런 방향성을 갖고 움직인다고 생각된다.
이런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선거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구원에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시고 올 세대의 백성이 되어 자신의 삶을 미래를 향하여 부단히 개방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다. 바람직한 삶의 태도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의무가 있다.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결혼함으로써 독립하는 지점까지 마음을 다해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도 교육과 복지와 종교와 문화와 환경 전반에 걸쳐 연루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로서 그리스도인은 투표장에 나가기 전에 후보 간 토론회나 정책 홍보집을 통해서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투표장에서는 확정된 인물에 대한 짧은 기도와 함께 정확한 투표에 임하고, 투표한 후에는 당선된 위정자가 공공선을 위해서 시정을 펼치는지를 관찰하는 과정을 꾸준히 밟아야 한다. 기도할 때마다 위정자를 기억하고 그를 통해서 인간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실제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런 정책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주임과 창조주임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지방선거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볼 일이 아니다. 바로 자신과 자신의 가정과 자신이 몸담은 지역교회의 오늘과 내일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나서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현안을 살피고 피선거권자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살펴서 누구를 세우면 지역사회의 중심부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릴 수 있을지 확정하고 의견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솔선해서 투표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의 손끝을 통해서 지역사회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주)
- 헤르만 바빙크,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 상』 , 이동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26), 298-304.
- 이를 위하여 한국로잔위원회 감수, 『케이프타운 선언』 (서울: IVP, 2014)을 참고하라.
- 유태화, 『하나님 나라와 광장 신학』 (고양: 아바서원, 2022), 192-262.
- 이 문제를 반립으로만 다룬 스티븐 D. 스미스, 『기독교와 현대의 문화전쟁』, 노재현 옮김(새물결플러스, 2026)을 펼쳐보라. 독자를 붙잡아 세우는 그 지점에서, 보다 더 바람직한 입장을 찾아가는 일에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태화 교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학부에서 2002년 신학박사학위(Dr. Theol.)를 취득하였으며, 2003년부터 현재까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바서원에서 출간된 『삼위일체론적 성령신학』과 『하나님 나라와 광장 신학』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