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차단기, 시장의 차단기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말이 있다. ‘서킷 브레이커’. 불볕더위가 계속되니 늘 사용하던 냉장고, 텔레비전 같은 가전 외에도 각 방마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외출을 준비하는 아내는 안방 화장대 앞에서 고데기를 말고 막 머리를 감고 나온 남편은 세면대 앞에서 드라이기를 켰는데 그 순간 모든 게 멈추었다. 예전 같으면 집안 가장이 두꺼비집을 열고 납으로 된 퓨즈를 갈아 넣어야 했겠지만 요즘엔 한결 편리해졌다. 아파트 신발장 옆에 있는 뚜껑을 열고 아래로 내려간 전기 차단기를 올리면 되는데 이 차단기가 서킷 브레이커다.
지난 7월 말에는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했다. 서울 어느 동네에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주식이 급락할 때 거래를 일시 중단해서 시장을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냉각기간을 주는 제도가 서킷 브레이커다. 서킷 브레이커가 가동되면 이십 분간 모든 주식 거래가 중단된다고 한다.1) 그런데 올해만 아홉 차례, 지난달 7월에만 네 번 발동했다. 특히 7월 마지막 주에 이틀 연속 코스피와 코스닥의 거래가 멈추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폭락의 이면, 상해 가는 사람들
그 주간 중앙일간지 머리기사는 온통 주가 폭락이었다. 한 일간지에서는 이를 특집으로 다루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올라온 투자자들의 글을 전했다. “살려고 대출받아 주식을 했는데 희망이 없다. 삶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피 같은 중도금 3억 원을 이 종목에 다 날렸다. 다들 주식으로 돈을 벌 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계약했다. 중도금 지불까지 남은 기간에 레버리지 교육을 듣고 투기를 했다.”2)
지난해부터 코스피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을 시작했다. 그동안 주식에 관심 자체를 두지 않았던 이들, 빠듯한 생계에 투자할 만한 여력이 없던 이들이 언제부턴가 초조해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러다 더 뒤떨어질까 봐 두렵다고 했고 평범하게 살면서 평생 노력해서도 넘볼 수 없는 차이가 이 시기에 날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호황을 믿고 ‘빚투’, 그러니까 빚을 내서 투자했다고 했다.
뉴스를 보다가 지인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몇 달 전에 적금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주식엔 문외한이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배운 대로 착실하게 월급의 일부를 은행 적금에 넣었다. 그래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던 그가 어느 날 증시 호황으로 몇 배의 수익을 냈다는 동료 이야기에 허탈해졌다고 했다. 그래서 목돈을 찾았다. 그리고 자기도 이제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고 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당시 시황을 검색해 보니 그가 본격적으로 주식을 하겠다고 했던 때가 코스피가 정점에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어떨까?
심란해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이즈음 어수선해하고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을 더러 본다. 비단 주가 때문만이 아니다. 요식업을 하는 이들은 배달비를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울상을 지으며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고 했다. 사업을 하는 어떤 분들은 금리도 부담스럽고 돈이 안 돈다고 했다.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온 이들은 모를 거라고.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음의 근심이 뼈를 상하게 한다
잠언에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고(잠 15:13) 심령의 근심은 뼈를 상하게 한다고도 했다(잠 17:22). 그러니까 심란하면 우리의 심령이 상한다. 심령, 히브리어로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두신 영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의 내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3) 우리의 내면이 상하면 마음으로만 끝나는가? 우리 몸을 지탱하는 뼈까지도 바짝바짝 마르고 우리의 삶 전체가 위협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곤란을 호소하는 이들이야 있어 왔지만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경제적인 계층이 갈리는 이 시절, 욕망은 욕망대로 커졌지만 욕망대로 가지 않는 세계 안에서 좌절감과 낙담을 경험하는 이들의 영혼이 상할까 두렵다.
그러고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는 말씀이 맞다. 요동치는 세계에서 살다 보면 마음 안에 온갖 생각이 출몰하고 감정도 널뛰기를 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며 방향과 갈피를 못 잡기가 일쑤다. 이러다 우리의 심령과 뼈까지 상할까 두렵다.
차단기는 어떻게 내리는가
서킷 브레이커가 필요한 건 주식 시장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다. 차단기를 내려 전류를 차단하듯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잠시라도 차단하고 우리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절실한 거다. 세계의 유동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불안을 안고 사는 우리 마음을 보고 불안한 가설에 포획된 우리 생각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은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몇 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시세를 확인하고 뉴스를 새로고침한다. 남의 소식, 남의 수익, 끝나지 않는 계산에 마음이 온통 붙들려 있는 거다. 세상의 전류가 쉼 없이 흘러드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살핀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그 손을 한 번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습관처럼 앱을 열던 손을 멈추고, 단 몇 분이라도 화면을 끈 채 하나님 앞에 고요히 서 보는 거다. 이렇게 세상의 전류를 한 번 끊고 그분 앞에 서야 비로소 우리 마음도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 유행하는 ‘마음 챙김’ 명상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본디 마음을 보도록 하나님께 지으심을 받은 존재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잠 20:27) 잠언은 사람의 영혼을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한다. 하나님 앞에 서면 그 등불 아래 우리의 깊은 속이 드러나듯 영혼을 가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그토록 원하는지 왜 초조해하는지 볼 수 있다. 마음보기를 귀찮아하지 않고 우리의 영혼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고 살필 수 있다.
예배의 자리에서 작동하는 차단기
그래서 서킷 브레이커가 필요한 거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휘둘리는 대신 우리 마음을 살피려 한다면 말이다. 서킷 브레이커가 작동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두신 영혼 즉 하나님의 등불이 켜진다. 마음을 지키는 건 내 자신의 마음을 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심란한 세계를 들여다보며 제 마음까지 어수선해지는 날이면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러셨듯 한적한 곳을 찾아 우리 세계 너머에 계신 분 앞에 머무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서킷 브레이커는 바로 그때 작동한다. 그리고 그제야 그간 보이지 않던 우리 마음이 보이고 이 마음을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아시는 분께 맡길 수가 있다. (*)
주)
-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는 스피 또는 코스닥 지수가 전일 종가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될 때 1단계가 발동되어 20분간 모든 거래가 중단되는 제도로, 한국거래소가 운영한다. 2026년 7월 29일에는 코스닥(낮 12시 19분)에 이어 코스피(낮 12시 32분)에도 발동되어 사상 처음으로 양 시장이 이틀 연속 발동되었다.
- 최혜리, 「”아파트 중도금 3억 날려” “강제 청산에 부장님 운다”…온라인선 곡소리」, 『중앙일보』, 2026년 7월 30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9485
- 히브리어 ‘루아흐'(רוּחַ)는 ‘바람·숨·영’을 두루 뜻하며, 문맥에 따라 하나님의 영, 사람의 생기, 내면의 심령 등으로 옮겨진다.
한기윤의 연구위원인 강영롱 목사는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 Div.) 그리고 기독교와 문화(기독교 윤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소망교회에서 부목사로 지내며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출강하다가 2021년 4월부터는 대구에 있는 삼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