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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시대, 교황이 제기한 물음

2026년 5월 25일, 로마 가톨릭 교황 레오 14세가 취임 후 첫 회칙(papal encyclical)을 반포했다. ‘교황 회칙’(敎皇 廻勅)이란 교회가 직면한 신앙과 도덕, 사회 문제에 관해 교황의 사목적 가르침과 권고를 담아 주교들과 신도들에게 보내는 문서다. 제목은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이지만 그 목적은 부제인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보호'(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잘 담겨 있다. 이 회칙은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시대에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교회의 언어로 묻는다. 서론과 다섯 장 그리고 245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제5장(182~228항)이 오늘의 전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1) 제5장은 오늘의 사회에서 전쟁이 이전과 달리 일상화되고 정상화되어 가는 위험한 현상을 날카롭게 관찰하며 그 핵심 원인을 인공지능의 개발과 인공지능이 접목된 ‘자율무기체계’(autonomous weapons systems)가 전쟁에 배치되어 작동하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197항).

비록 이 회칙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문서이지만 그 물음은 특정 교파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시작한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개신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회칙은 교파를 떠나 우리 모두가 함께 귀 기울여야 할 시대의 물음을 던진다.

정당한 전쟁에서 정당한 평화로: AI 시대, 교황 레오 14세의 회칙 | 신원하 원장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전쟁이 쉬워진 시대

교황이 제5장에서 주목하는 것은 전쟁이 점점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일’이 되어 가는 위험한 흐름이다. 그 핵심 원인으로 그는 인공지능(AI) 및 이와 결합된 ‘자율무기체계’를 지목한다. 교황은 이 장을 ‘힘의 문화’와 ‘사랑의 문명’의 대비로 열면서 오만과 교만을 상징하는 ‘바벨탑’과 하나님을 중심에 둔 협력을 상징하는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재건’이라는 두 성경 이미지를 나란히 세운다(184항).

AI가 무기체계에 깊이 관여하면서 전쟁은 이전보다 훨씬 쉽게 “실행 가능한”(feasible) 일이 되었다. 자율무기를 갈수록 손쉽게 배치할 수 있게 되면서 전쟁은 점점 인간의 통제(human control)를 덜 받는 방향으로 나아간다(197항). 교황은 AI 기술이 전쟁의 인적·물적 비용을 줄이고 통치자들이 짊어져야 할 도덕적·정치적 부담까지 덜어 준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인간은 전쟁을 결정하는 책임을 슬그머니 기계에 떠넘기고 자신은 그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정당전쟁론은 정말 낡았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교황은 무거운 진단을 내린다. 전통적인 ‘정당한 전쟁론'(just war theory)이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outdated) 이론이 되었다는 것이다(192항). 다만 그는 이 이론 전체를 무효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의 자기방어’ 권리는 예외로 분명히 인정하면서 다만 이 이론이 그동안 “온갖 종류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너무나 자주 사용되어 왔다”는 오용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 오용의 위험은 AI 시대에 이르러 한층 커진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5) 이래 가톨릭 교회가 이어 온 이 이론은 무력은 오직 모든 수단을 소진한 뒤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자율무기체계는 스스로 정당방위라 판단하여 무력 사용을 점점 더 손쉽게 실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자율무기는 무력 사용의 문턱을 낮추어 이 원칙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197항).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한다는 ‘구별성’, 피해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비례성’ 역시 흔들린다. AI는 공격 대상을 하나의 통계 수치로, 희생자를 ‘부수적 피해’로 축소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계가 판단하는 전쟁에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신성함을 지키며 구별성과 비례성을 담보하기란 지극히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격이 없는 인공적 주체가 인격체인 사람을 살상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이다. 일각의 학자들은 오히려 기계가 통계적 계산을 통해 선과 악을 인간보다 더 일관되게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황은 여기에 분명히 선을 긋는다. 도덕적 판단은 결코 계산으로 축소되거나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이란 판단하는 주체의 양심과 인격적 책임에서 그리고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마주하는 데서 비로소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을 향한 “치명적”(lethal)이고 “되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결정을, 곧 방아쇠를 당기고 미사일을 쏘는 결정을 인격 없는 무기체계에 맡기는 일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교황이 “어떤 알고리즘2)도 전쟁을 도덕적으로 용인될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198항)고 못 박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기술은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교황이 겨냥하는 것은, 그 정밀함이 도리어 전쟁을 쉽게 만든다는 역설이다.

그러므로 교황이 인공지능 시대에 이르러 정당전쟁론을 이미 ‘구시대적’이라고 한 것은 이 이론이 이제 쓸모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당전쟁론은 애초에 전쟁을 쉽게 허락하려고 만든 이론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저런 조건을 다 채우지 못하면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며 무력 사용을 최대한 어렵게 하고 억제하려고 만든 이론이었다.3) 그런데 그 까다로운 기준으로 오늘의 전쟁을 비춰 보면 AI가 이끄는 현대전은 그 조건을 도무지 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론이 지켜 놓은 마지막 선까지 기술이 넘어서 버렸다는 데 있다. 그러니 교회는 교황의 이 진단을 이렇게 들어야 한다. 이제는 전쟁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궁리를 멈추고 그 힘을 평화를 세우는 쪽으로 돌리라는 절박한 호소라고. 사실 이것이야말로 정당전쟁론이 만들어진 본래 목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쟁 억제를 넘어 평화를 조성하려는 전략의 성격을 지닌 이론이었다.4)


전쟁의 논리에서 평화의 문명으로

이런 힘의 문화가 전쟁을 정상화하는 현실 앞에서 교황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첫째, ‘정당한 전쟁’에서 ‘정당한 평화’로의 전환이다. 교회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AI와 알고리즘에 넘겨준 생사의 결정권을 되찾아 도덕적 양심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생명에 관한 결정이 기계로 넘어가는 것을 윤리적 침해로 인식하고 모든 무력행사에 책임 있게 관여해야 한다. 교황은 낡은 이론을 대신할 새 틀을 내놓기보다 인류에게는 이미 대화와 외교, 용서라는 더 효과적인 도구가 있음을 일깨운다.

둘째, 국제 연대와 다자주의(multilateralism)다. 교회는 영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유엔 같은 국제기구, 시민사회, 과학계와 손잡아야 한다. 특히 치명적 자율무기체계의 개발과 전장 배치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제 조약을 세우도록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교황은 치명적 무력의 결정을 결코 불투명하거나 자동화된 과정에 맡겨서는 안 되며 반드시 책임 있는 인간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200항). AI 기술이 일부 강대국과 대기업의 군사·경제 패권을 굳히는 ‘권력의 문화’로 흐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국제사회를 일깨워야 한다.

셋째, ‘사랑의 문명’ 세우기다. AI 기술이 군비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인류의 존속과 공동선(Common Good)을 높이는 방향으로 쓰이도록 교회는 기도하며 힘써야 한다. ‘사랑의 문명’은 본래 교황 바오로 6세가 제시한 비전으로, 교황은 이를 되살리며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정의에서 태어나는 참된 평화를 향해 나아가자고 촉구한다.

교회의 각성과 책임

교황 레오 14세가 경고하듯 AI와 자율무기체계는 전쟁을 일상화하며 인류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교회는 시대를 직시하며 자율무기를 통제할 장치를 마련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하며 ‘사랑의 문명’을 세우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기술이 도구의 자리를 넘어 생명을 지배하려는 이 시대에 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에 두는 평화의 수호자로 그 소명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이 회칙 앞에서 우리 개신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저울은 본래 사람의 손에 쥐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권한은 오직 생명을 지으신 분께 속한 것이며, 인간이 만든 기계에 떠넘길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의 결정이 사람의 손을 떠나 기계에게 넘어가는 시대에 교회가 붙들어야 할 소중한 것은 결국 생명의 존엄과 평화를 향한 신앙의 양심이다. 신앙의 자리에서 보면, 전쟁과 기술과 국제 정치도 하나님의 다스림 바깥에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먼 나라의 전쟁 소식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기 쉽지만, 미국인이든 중동인이든 러시아인이든 그 누구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은 한 생명이 통계의 숫자로 축소되는 것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문제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기술의 흐름 앞에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며, 다음 세대에게 그 무엇도 고귀한 인격체인 사람보다 앞설 수 없다는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먼저 내놓은 이 성찰을 개신교회 또한 나누어 받아 새기며 기도하고 행동하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감사의 응답일 것이다. (*)


주)

  1. Pope Leo XIV, Magnifica Humanitas, Encyclical Letter 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 (Vatican City: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26),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en/encyclicals/documents/20260515-magnifica-humanitas.html. 이하 본문의 항 번호는 이 회칙의 것이다.
  2. 알고리즘(algorithm)이란 ‘이런 경우엔 이렇게 한다’고 미리 정해 둔 계산 규칙이다. 자율무기는 이 규칙에 따라 공격 대상과 시점을 스스로 정한다. 교황이 “어떤 알고리즘도 전쟁을 도덕적으로 용인될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한 것은, 이러한 계산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사람을 죽이는 결정에 반드시 있어야 할 양심과 인격적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신원하, 『전쟁과 정치』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138-142. 이 책의 제5장 “정당전쟁과 평화주의: 비판적 검토와 변혁적 모색”을 참고하라.
  4. 위의 책, 138.

한기윤(KICE) 원장인 신원하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B.A.)을 전공했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석사(M. Div.)를, 미국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와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석사(Th.M)와 박사(Ph. D.) 학위를 하였다.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원장으로 재직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 기독교윤리연구소(기윤실 부설)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