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한국경제1)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급변 속에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마주하고 있다. 작년 6월 불과 2,700선에 머물던 코스피 주가지수가 지난 1월 말에 5,000을 돌파했다.2) 그러나 주가지수의 폭등은 한국경제가 급성장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2025년 4분기 경제성장률은 –0.3%로 경제가 역성장하였다. 2023년에 1,200원대에 머물던 달러 환율이 2026년에 들어서면서 1,450원을 넘어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적인 AI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22년 11월에 등장한 ChatGPT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AI 열풍에 휩싸여 있다. 현재 시가총액 순위는 NVIDIA, Google(Alphabet), Apple, Microsoft, Amazon, TSMC 등 대부분 AI 관련 IT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주식시장도 이로 인해 큰 성장세에 있다. 미국의 주가지수를 대표하는 다우존스 지수가 불과 2년전 37,000수준에서 현재는 49,000을 상회하고 있다.
이처럼 AI가 주도하는 세계와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로 말미암아 우리 국민의 주식투자 바람도 거세게 불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이른바 ‘서학 개미’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개인, 기관투자자 및 연금이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2025년도 1∼11월까지의 한국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663억 달러에 달함으로써 미 재무부가 집계한 77국 중 최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 연금, 개인이 미국 증시에 많이 투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대 최대의 수출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최근 달러 환율이 급등한 이유는 이처럼 한국에서 미국 증시로 달러가 대량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 성공하고 AI를 잘 익히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만이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가는 빅테크 기업에 투자하여 돈을 벌고 또한 AI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앞서가고 있으나 자신은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제대로 돈도 벌지 못하고 최신 기술이나 AI 같은 것도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든다. 이런 소외감과 두려움은 마음의 평안을 잃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나타난다. 그러나 성경과 예수님은 이런 조급하고 분요한 마음을 경계한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또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단련하고 연마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K자형 한국경제의 성장 속에 흔들리는 청년 세대
한국경제의 각종 지표는 무척 혼란스럽다. 주가지수와 수출을 보면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그 잠재력이 폭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경제성장률은 퇴조하고 환율이 급등하여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는 것은 또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한국경제의 본질적인 경쟁력이 좋아졌다는 것인가?
한국경제는 현재 K자형 성장에 놓여 있다. 전체적인 호황이라기보다 반도체, 방산, 조선 등 일부 산업의 호조가 주가지수의 급등을 가져오고 있다. 반면에 그동안 우리 제조업의 기반을 이뤘던 철강, 석유화학 등의 업종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 수출이 7,097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고 작년 경제성장률이 최근 5년 중 최저인 1%를 기록하였다. 특히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등 일부 IT 기업을 제외하면 경제성장률이 0.4%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현상을 이른바 K자형 성장이라고 한다. K자의 위로 뻗는 선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래로 뻗는 선처럼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경기는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아무리 반도체 산업이 잘 나가고 현대·기아 자동차가 수출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우리 경제의 다른 곳에까지 골고루 미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잘 되는 곳만 잘 되고 어려운 곳이 더 많아서 한국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경제는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와 공기업부문을 합한 공공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가계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경제에서 빚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그 경제에 대한 안정성과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약해지면 외국인투자가 줄어들어 환율이 급등하고 이자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다. 식생활과 영양이 개선되고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핵가족화가 확산되었고 출산율이 줄어들었다. 고령화에 따른 문제는 생산가능 인구의 숫자가 줄어드는 반면 연금, 의료비 및 사회복지 지출이 크게 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 돈은 세금을 통하든 의료보험 재정이나 국민연금 기금을 통하든 젊은 세대가 지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젊은 세대 1인당 부담해야 할 짐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너무 크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암울해 질 수밖에 없다.
현 젊은 세대들은 부모 세대와 비교하였을 때 부동산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이 크다. 부모 세대에 비하여 소득대비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여 집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세나 월세 가격이 안정되면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되겠지만 부동산 가격이 증가하는 만큼 전세와 월세 가격이 상승하므로 젊은 세대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빚을 내어 부동산을 사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의 부동산 대출 규제 때문에 쉽지 않아 청년층은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심리로 인해 지금과 같이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 큰돈을 마련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친구들이나 동년배가 부모로부터 주택을 물려받는 것을 보게 될 때 젊은 층이 느끼는 상대적 상실감과 스트레스는 결코 작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천의 복은 경제적 복인가?
이처럼 급변하는 한국경제는 단순히 경제변수의 변동을 넘어서서 경제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즉, 급증하는 주가지수와 AI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는 우리 경제에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크리스천에게 주시는 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또한 보다 본질적으로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크리스천은 어떤 소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눠주시는 일반은총을 주셨다. 하나님은 햇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비추시며, 비도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 모두에게 내리신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대변되는 시장원리도 욕심에 빠져 사는 연약한 인간들이 그나마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크리스천에게 이러한 일반은총을 넘어서 특별은총으로 경제적 복을 주신다는 생각은 건강한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으로서의 경제원리는 예를 들어 열심히 일하거나, 창의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수익성이 좋은 투자처에 투자하거나 또는 근검절약할 때에 부를 쌓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운이 좋거나 특별한 하나님의 보살핌이나 은혜가 있어서 경제적 부를 얻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은 하나님이 큰 복을 주셔서 농사가 번창하여 거부가 된다. 문제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은혜를 주신다고 다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더하셔서 거부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은 성경에 안 나온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와 고난의 삶을 살았다. 선택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하나님의 복이 경제적 부로 나타난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고 그렇게 기대할 당위성도 없다. 이런 식으로 잘못 기대하고 복을 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번영신학이요, 기복신앙이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이 같은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적 관점으로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관점은 Stott(1973)가 ‘창조의 선물’과 ‘구속의 선물’에 대해 설명한 다음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아버지로서 그분이 주시는 선물을, 혹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과 그분의 구속의 선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기도를 하든 안 하든,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이 특정한 선물들(추수, 아기, 음식, 생명)을 주시는 것은 완벽하게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다. (중략) 이 모든 선물들은 사람들이 그들의 창조주를 인정하든 안 하든 그분께 기도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주어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의 선물은 다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구원을 주시지는 않는다.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2-13)”3)
경제적 문제에 있어서 크리스천이 조심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하나님께서 크리스천이기에 경제적인 복을 주실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막연하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도 보호해 주시고 수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 크리스천을 보호해야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을 협박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요즈음처럼 주식시장이 호황이고 주가가 상승국면일 때에는 대부분의 주식투자자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투자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투자(investment)가 아니고 투기(speculation)다. 경제학적으로 투자는 자본(capital)을 증가시키는 행위이다. 즉, 투자는 건물·기계·인프라와 같은 물적 자본 또는 인적 자본과 같은 무형자본을 증가시키는 행위이다. 투기는 상품 가격의 시세 차이를 노리고 미리 구입하거나 판매하는 행위이다. 투자는 생산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생산성 향상의 방법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경제력을 높이는 바람직한 행위이다. 그렇지만 투기는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꼭 바람직한 경제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첫째 투기에는 위험이 따르므로 개인에게 반드시 유익하다고 볼 수 없고, 둘째 투기는 적정이상으로 자산과 주식의 가격을 올리는 경우도 많아서 공동체 전체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주식투자가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일상의 평안함을 깨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식투자는 저점에서 주식을 구입하여 고점에서 매각하여야 돈을 벌게 된다. 특히 짧은 시간 내에 주식의 구입과 매각을 반복하는 이른바 단타 거래의 경우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올랐다면 주가가 떨어질 때 매각하여야 하고,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을 때는 주가가 너무 오르기 전에 구입하여야 한다. 따라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주식시장의 동태를 살펴야 하며 주식시장에 특별한 변동이 없는지 예의주시하여야 한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큰 변동이 나타났을 때 주식의 매입 또는 매각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큰 손해를 보거나 아니면 큰 이득을 보는 기회를 날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은 늦은 밤과 새벽 시간에 뉴욕의 증시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 밤낮없이 신경을 써야 한다. 이처럼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일상의 평강이 무너지기 쉽다.
품격 있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크리스천과 교회의 역할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경제적 복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복을 주실 수도 있으나 그것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크리스천의 확실한 복은 구원의 확신이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으로서 경제적 복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신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으로 봐야 한다. 무슨 의미인가?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타락 이후 아담에게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고 하셨다. 우리가 먹을 만큼만 먹을 수 있는 것, 즉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큰 복이다. 여기에 만족하고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실 요즘처럼 소득수준이 높고, 최저임금이 보장되고, 또 사회복지가 잘 마련되어 있는 시대에서는 분수를 넘는 소비를 하지 않고 성실하게 저축하고 모은다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2:28)고 하셨다. 이른바 문화명령이다. 요즈음 많은 청년층에서 결혼을 기피하고, 독신으로 지내고, 결혼을 하더라도 늦게 하고 그 결과 아이가 없거나 하나만 낳는 경우를 자주 본다. 청년들이 집 장만하기 어렵고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운 시대여서 이처럼 결혼과 출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우리 부모 세대와 현재의 기성세대에게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변변한 방 한 칸 없이 어렵게 신혼살림을 차리고 부모님 댁에서 같이 기거하던 것이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요즘은 신혼부부가 반드시 분가하여 따로 살아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버렸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에 따른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진 측면도 없지 않다. 부모가 집을 팔고 그 일부를 신혼살림을 얻는 자녀에게 주고 싶어도 증여세 문제로 쉽지 않다. 현재의 저출산, 독신 및 만혼, 고령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층도 노력해야 하지만 국가에서도 결혼하는 자녀들에 대한 증여세 대폭 감면을 검토해야 한다. 크리스천 청년들도 주변의 청년들과 비교하여 꼭 집을 장만하려 하기보다 전세나 월세에서 시작하여 차근차근 집을 마련하는 등 인생을 길게 설계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경제생활에서 주변의 친구들이나 동년배들의 경제수준과 비교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인 대부분은 절대적인 수준에서는 고종황제보다 더 편하고 사치스럽게 사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집에 살고, 무슨 차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무슨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등에 대해 너무 관심이 많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의 복을 상대적으로 가늠하는 것은 올바른 크리스천의 태도가 아니다. 교회에서도 야고보서에서 경계하듯이 이런 속물적인 태도를 근절해야 한다.4) 혹시 교회가 이렇게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는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근검·절약을 강조해야 하고, 건강한 근로를 장려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건강하고 건전한 경제관을 통해 잘 살고 복을 누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필자가 성경에서 발견한 경제생활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첫째, 약속과 신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경 그 자체도 하나님 약속의 증거(testament)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말씀에는 창조의 권능이 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하나님 말씀의 신뢰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린 데서 출발한다. 서로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경제가 발달한 선진국은 사회 전반에 신뢰수준이 높게 형성되어 있어 ‘사회적 자본’이 크므로 경제적 거래나 금융이 발달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그 신뢰성을 잃어가고 있다. 장사꾼이 얻는 신용을 크리스천이 갖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약속과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크리스천의 행해야 할 일이요, 교회를 다시 건강하게 세우는 일이다.
둘째,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성경에서는 시간의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모세는 시편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노래하고 있고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라고 가르치고 있다. 잠언에도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내용이 많다.5) 물론 성경은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안식과 쉼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무엇보다도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와 사람은 성장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착실하게 설비를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하고, 직원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생산성이 늘어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꼴찌가 어느날 갑자기 벼락처럼 이치를 깨닫고 일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차근차근 노력하고 하나하나 배우고 깨쳐서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때의 중요성을 가르치시는 분이다.
셋째, 준비와 탐욕을 구분해야 한다. 한꺼번에 큰돈이 들어가는 것에 대비하여 사람들은 평소에 돈을 미리 조금씩이라도 모으기 시작한다. 직원들의 퇴직금,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각종 연금도 미리 수급자에게 매달 받아서 기금으로 쌓아 놓는 것이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7년 풍년의 소출을 잘 저장해 나중에 올 7년 흉년에 대비한 것도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가복음 12장에서 경계한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은 부 그 자체를 위해 재산을 모으기보다 공동체와 사회에 바람직한 자본이 될 수 있도록 부를 쌓아야 한다.
넷째,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식은 생산성과 능률을 크게 증가시키는 요소다. 선진국 국민이 잘사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에 비해 기술과 노하우 같은 지식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지혜는 이러한 지식을 지휘하고 운용하며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사령탑 역할을 한다. 지식이 많아도 지혜를 통하여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서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지닌 지식과 지혜를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라고 부른다. 물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인적 자본의 크기에서 한 사회의 생산량이 결정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서 이들을 여러 방법으로 훈련하셨다. 크리스천들은 꾸준히 자신의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결코 안일함과 편안함을 우리에게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끊임없이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고 황무지를 개척하며 적들이 있는 곳으로 앞장서 나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고향 땅을 떠나 아브라함이 머나먼 타지로 모험을 떠나게 된 것도 하나님 말씀 때문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묻어두었다가 돌려준 안일한 종은 악하고 게으르다며 내쫓김을 당한다.
여섯째,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길은 늘 연약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향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시 146:9)라는 성경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불쌍히 보시고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삼으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익명성에 숨어 있는 복지 시스템보다는 개개인이 주변의 이웃을 돌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보시는 것 같다. 국가에서 펼치는 복지정책에는 인격적인 돌봄이 없다. 공동체에서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을 직접 찾아가며 돌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오늘날 교회가 맡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고 나서 하신 질문을 기억하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두려움과 조급함, 다른 사람과의 비교 사이에서
세상이 급변할 때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분요해진다. 주식투자와 AI 등에서 다른 사람들은 앞서가고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은 두려워하지 말고 평강을 찾아야 한다. 급하게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고, 빨리빨리 AI를 습득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이보다는 하나씩 둘씩 우리가 맡은 분야에서 착실히 전문성을 쌓아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두려움과 조급함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다. 무엇을 하든 시간을 들여서 충분히 내공과 경험을 쌓고 이를 통해 우리의 경쟁력을 보인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설사 그것이 다른 사람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다. 주신 복에 감사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이웃을 돌보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
주)
- 이 글은 조성봉(2020)에 기초하고 있다.
- 주요 증권사들이 올해 코스피 주가지수가 5,300∼5,70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서 1년 만에 주가지수가 두 배로 급등하는 기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존 스토트(2011), pp.266-267에서 인용.
-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차별하며 악한 생각을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약 2:2-4) 구절은 오늘날 크리스천에게도 가슴 저린 경계가 된다.”
참고 문헌
조성봉(2020), “성경에서 발견하는 경제원리”, 『신앙과 제도』, 숭실대학교.
존 스토트(2011), 『존 스토트의 산상수훈』, 정옥배 역, 생명의 말씀사.
Fukuyama, Francis (1996), Trust, Free Press.
Stott, John (1973), Christian Counter-Culture: The Message of the Sermon on the Mount. Illinois: Inter-Varsity Press.
조성봉 교수는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실물 경제를 연구하였고 숭실대학교 교수로 미시경제학, 에너지경제학, 통일경제론 등을 강의하였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영동교회 시무장로를 지냈으며 현재는 은퇴장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