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 6:19~34
들어가며: 영끌과 빚투
지난 10년 사이에 서울 시내 아파트값이 두 배 세 배가 넘게 올랐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매월 따박따박 월급만 모아서는 평생을 모아도 서울에서 내 소유로 된 아파트 한 채를 사는 것은 이제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 앞에 유명인들은 몇십억, 혹은 몇백억을 벌었다 하며 그들의 화려한 삶을 자랑하곤 합니다. 그런 모습들 앞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은, 힘겹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2026년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불안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오늘의 내 삶이 어떻게 될지 내일의 노후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가득한 것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쨌든 자신을 위하여 부를 쌓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불확실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내 통장의 잔고가 넉넉하면 내 소유의 부동산이 있으면 나는 안전하리라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큰돈을 벌면 그 재물이 내 노후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남들은 다들 잘 나가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차를 굴리면 나 자신이 증명되리라 기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리하게 부동산을 구매하기도 하고 빚까지 얻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여 한 방을 노리기도 합니다. 그것이 내 삶에 진짜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돈이 실로 만물의 척도가 되어 버린 것이 2026년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우리들도 예외는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1. 복이란 무엇일까?
왜곡된 복과 우리들의 기복신앙
이런 우리 행동의 이면에 자리한 것은 왜곡된 복에 대한 관념입니다. 물론 성경의 하나님은 복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우리가 찬송하는 것은 참으로 진리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많은 경우 참된 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에 근거하여 충분히 생각하거나 가르쳐오지 못했습니다. 물론, 교회가 영생에 대해, 구원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가고 영생을 누리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늘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가르침은 많은 경우에 나의 구원 나의 행복이라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성도들의 복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이 세상의 것, 눈에 보이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말로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관심은 내가 더 많은 재물을 갖고 내가 더 높은 지위를 갖고 권력을 누리며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삶을 즐기는 것,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의 교인들 중 많은 이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금하지만, 그 목적은 이 땅의 복을 얻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런 기복신앙은 왜 문제가 될까요? 이 세상의 물질적인 풍요가 우리 눈을 가득 채우게 되면 우리 눈은 어두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도시의 인공적인 조명이 가득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볼 수 없게 됩니다. 이 땅의 재물과 이 땅의 풍요가 우리의 눈을 가득 채울 때 우리의 온몸은 어두워집니다(마 6:2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실상 재물을 섬기는 종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늘 그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마음을 두며 그것을 얻기 위한 삶을 사는 이들, 그들을 가리켜 성경은 재물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영원하지 않은 재물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가 바라던 이 땅의 재물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바라던 재물을 갖게 되어도 우리는 거기에 취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에게 간절히 주고 싶어 하시는 가장 귀한 것, 참된 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복, 천국 백성의 삶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로 주고 싶어 하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산상수훈이 가르치듯 천국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죄인이던 우리가 헛된 것을 좇아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가 아버지께 돌아와 아버지와 더불어 교제하며 사는 삶,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참된 복이지요. 그런 삶을 가리켜 우리는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삶, 신에게 속한 삶이라 하여 영생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고 저 천국에서 영원히 그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영생의 삶, 천국 백성의 모습을 오늘 말씀 33절에서 우리 주님은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삶, 나의 이익과 재물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사는 삶, 그것이 영생의 삶, 예수님의 제자된 이들이 살아가는 삶인 것이지요.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거기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2. 마음을 새롭게 하기: 세계관의 변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의 마음-우리의 세계관이 새롭게 되는 데서 시작됩니다.
믿음과 자족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6장 33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란 내가 내 삶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치 염려하고 걱정하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고 준비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힘쓰고 애써 심고 거두고 창고에 모아들여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것은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30).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그분의 자녀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그리고 채우십니다. 우리 삶은 그저 이 세상에 내던진 것이 아니라 자비하신 우리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분이 돌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그렇게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탐욕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만족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은 나 자신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나누는 더 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와 나그네
이러한 삶은 내가 청지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도 지나친 금욕주의가 항상 옳다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태초에 동산 나무의 모든 열매를 먹도록 하셨던 하나님, 복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며 우리가 이 땅에서도 그분이 주신 것들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며 하나님과 내 삶과 경제생활에 대해 회계 감사를 받을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이 영원히 집짓고 살 내 본향이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청지기와 나그네라는 성도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재물의 대부분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가?”, “우리는 경제적 영역에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우리의 물질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리고 그 분의 의를 첫 번째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청지기요, 나그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지요.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삶의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생각을 비워낸 다음에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채워가야 하는 것이지요.
소비사회와 하나님의 의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주의 사회는 탐욕을 정당화합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아직도 부족하다”하고 속삭이며 나만 바라보도록 하고 위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동산 투기든 코인이든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도 돈만 벌면 그만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1)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도 많은 재정을 사용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내 결혼식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우리 집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자동차도 옷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소비는 이제 필요를 넘어서 자존심과 비교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명품에 대한 집착과 유행을 따라가느라 버려지는 수많은 쓸만한 물건들과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은 음식물 쓰레기는 그러한 소비의 습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이런 소비주의의 그늘 아래, 세계적으로 만성적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7억에 달하며 중증 식량 불안정 인구가 23억에 달한다는 사실은 잊혀집니다.2) 유니세프는 전 세계 5세 미만 아동 사망 원인의 45%가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한 보고서는 우리나라에도 6%에 가까운 이웃들이 식품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것입니다.3) 이런 세상에서 불의의 재물을 구하며 자신만을 위해 소비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이들이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십일조의 정신
십일조는 예배의 목적과 함께, 고난받는 이웃들을 돕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십일조는 십 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 나머지는 우리의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소유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향해 언제나 분명하게 물으십니다: “너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같은 고난 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있느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있느냐?”
그렇다면 십일조의 정신은, 십 분의 일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바치기를 아까워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도전합니까? 우리의 재정 전체가 고난받는 이웃과 공공선이라는 더 큰 우선순위를 기억하며 사용되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정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4. 심플라이프와 경제적 제자도의 실천
재정과 경제적인 생활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활 양식을 점검하고, 보다 심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지요? 그것은 나의 경제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적인 생활비와 필수적인 교육비, 세금과 비상금, 의료비와 노후를 위한 필수적인 노령연금 등 나의 “필수적인 삶을 위한 비용”을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나머지 비용 중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체면 비용”, 유행에 따르느라 사용하는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 명품이나 브랜드 옷 등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꿀리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사치 비용” 등 나를 위해 사용하는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은 얼마인지를 적어 보십시오.
한 번 뿐인 결혼식과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을 위해 억대의 비용을 들이고, 첫 신혼집을 남들처럼 브랜드 아파트에서 시작하기 위해 수억의 빚을 지고 결혼생활을 시작해 놓고서, 남들처럼 명품이 있어야 하고 외모를 위한 비용은 줄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결코 이웃을 위해 나눌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내 이웃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도록 내 삶의 수준을 낮추고 있습니까? 꼭 필요하지 않은 소비를 줄이며 삶을 단순화하는 심플라이프를 살고 있습니까? 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불필요한 소비 줄이기 챌린지’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소비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들을 줄이고 삶을 심플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시작합시다. 그것이 천국의 소비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둘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소비의 목적을 점검하고 이웃을 위한 재정을 떼어놓는 일입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고 밝힙니다. 우리의 경제생활의 목적이 “이웃에게 나눌 것이 있기 위하여”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나의 재정의 몇 퍼센트가 선교와 이웃을 위한 구제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는 없을까요? 매달의 가계 예산에 “이웃과 나눔” 항목을 만들어두고 미리 떼어놓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재정)를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사용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30년 전에 로날드 사이더는 “누진 십일조”를 실천했습니다.4) 십 분의 일을 내는 것을 최선이라 생각하며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내 필수적인 삶의 비용을 넘게 채워주신 재정에 대해서는 더 높은 비율로 떼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지요. 이 일은 규범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의 정신이 내 삶 전체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우리의 경제생활의 원칙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 공동체의 재정에서 이웃을 위한 비용들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공동체 자신을 위해 사용되는 재정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목회자의 사례와 친교, 예배와 교육 등을 위한 재정은 합리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재정이 조금 더 나은 건물과 자기 공동체의 유지와 관리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을까요? 우리 공동체에서 전도와 선교, 구제를 위한 재정은 전체 재정의 몇 퍼센트나 될까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우리 교회의 재물을 사용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산상수훈에 해당하는 누가복음 12장 33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나누며 베풀며 사는 삶, 그것을 위해 내 삶의 수준을 기꺼이 낮추는 삶, 그것이 주께서 가르치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살아간 이들, 하나님께 꾸어 드린 이들에게 반드시 갚아 주시며(잠 19:17),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2026년, 우리는 이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천국의 제자로 살고 있습니까?
나가며
천국의 제자 된 성도 여러분,
세상이 말하는 복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더 깊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더 많이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플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단순한 삶은 결핍의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족을 아는 삶, 자족하는 삶입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를 돌보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소비와 재정도 그분의 뜻 아래 재조명되고 재조정될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기로,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공공의 선과 이웃을 위한 삶을 살기로, 무엇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이 약속을 믿고 오늘도 그분의 뜻을 따라 내 재물과 내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주)
- 바울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딤전6:17), “조용히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하고 가르칩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여 번 정직한 수입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의 재물과 결코 같지 않습니다.
- https://data.unicef.org/resources/sofi-2025/?utm_source=chatgpt.com
- https://www.ssph-journal.org/journals/international-journal-of-public-health/articles/10.3389/ijph.2023.1605360/full?utm_source=chatgpt.com
- Ronald J. Sider, 『가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한화룡 역 (서울:IVP, 1998), 275-279.
[2026년 2월 이슈설교 | 설교 작성을 위한 가이드]
제목: 심플 라이프: 복 있는 자들의 재정 윤리
본문: 마태복음 6:19-34
A. 들어가며: 영끌과 빚투
- 현상 진단: 자산 가치 폭등과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함.
- 문제 제기: 재물을 유일한 안전판 삼아 ‘영끌’과 ‘빚투’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며, 신앙인조차 재물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실존적 위기에 놓임.
- 설교 방향: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된 세상에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심플 라이프’를 통해 천국 백성의 재정 윤리를 회복하고자 함.
B. 복이란 무엇일까?
- 왜곡된 복과 우리들의 기복신앙 (마 6:22-24)
- 기복신앙은 영안을 흐리게 하여 결국 재물을 섬기게 함.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물질에 매몰된 마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돌이켜야 함.
-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복, 천국 백성의 삶 (마 6:33; 롬 12:2)
- 참된 복은 소유가 아닌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의 삶’임. 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와 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함.
C. 마음을 새롭게 하기: 세계관의 변화
- 믿음과 자족 (마 6:30)
- 스스로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을 버리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함. 자족은 아버지의 돌보심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평안이며, 탐욕과 불안을 이기는 힘임.
- 청지기와 나그네 (눅 12:33)
- 소유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결산할 청지기이자 나그네임을 기억해야 함. 이 정체성이 분명할 때 재물을 자아 증명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하게 됨.
D.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 소비사회와 하나님의 의 (마 6:19-21)
- 소비가 자존심의 수단이 된 사회에서 체면과 사치를 위한 지출을 경계해야 함. 이웃의 결핍을 외면한 채 자신만을 위해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님.
- 십일조의 정신 (잠 19:17)
- 십일조는 소유 전체가 주의 것임을 인정하는 고백임. 단순한 의무를 넘어 나의 재정 전체가 이웃 사랑과 공공선이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함.
E. 심플라이프와 경제적 제자도의 실천 (엡 4:28)
- 체면과 사치 비용을 줄여 삶을 단순화하고, 가계 예산에 ‘이웃 나눔’을 실천해야 함. 교회도 공동체 유지보다 구제와 선교에 재정을 집중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함.
F. 마치며: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 핵심 구절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메시지: 세상은 더 가지라 하나 하나님은 더 나누라 하심. 삶의 수준을 기꺼이 낮추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인생임.
- 최종 권면: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심플 라이프를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며 영원한 나라를 선물로 주실 것임.
문세원 목사는 고려대학교에서 서양사(BA),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Div), 남아공 스텔렌보쉬 대학교에서 신약학(ThM, PhD)을 공부했다. 현재 창원새순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며 하나님의 가족다운 지역교회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