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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7)

 

 

싱글에 대한 일반적 생각

현대 교회는 전체적으로 싱글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경우 성인 성도의 약 35%가 싱글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결혼했다가 이혼했거나 사별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싱글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전반적인 추세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21년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21세기교회연구소(소장 정재영)와 한국교회탐구센터, 목회데이터연구소가 공동으로 만 19~39세 개신교인 남녀 총 700명(유효 표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자들 가운데 55.6%가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대답했고, ‘결혼할 생각이 없다’ 16.7%, ‘아직 잘 모르겠다’ 27.6%로 응답했다.1)비혼 의향 이유에 대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41.3%)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18.8%), ‘가족에게 얽매이며 살고 싶지 않아서’(13.8%), ‘결혼제도 자체에 불합리한 면이 많아서’(11.3%),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7.5%), ‘주위에서 보면 결혼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6.3%) 순이었다.

이 같은 통계를 볼 때, 한국교회는 앞으로 싱글이 차지하는 비율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 교회는 싱글에 대한 생각이 잘 정립이 안 되어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부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결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소 이상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결혼 그 자체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indifferentia)이지만, 결혼의 상태가 싱글의 상태보다 더욱 탁월한 상태라고 말한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부부로 이어주셨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이룰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2) 이런 관점은 성경적이다. 하지만 이에서 더 나아가서 싱글로 사는 것 자체를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들은 독신을 죄악시하기도 한다. 유대교를 보자. 1세기에 랍비 엘레아자르는 “아내가 없는 남자는 올바른 남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탈무드는 더 나아가 “스무 살에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죄 속에 살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3)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싱글로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무함메드(Muhammad; Abu al-Qasim)는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4) 물론 이슬람에서도 독신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덕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무함메드를 비롯해서 이슬람 선지자들은 모두 결혼을 했다.5) 이런 관점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당시 로마 사회에서도 비슷했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혼이나 사별한 여성이 2년 안에 다시 결혼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물리기까지 했다. 고대 종교와 문화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일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상속자가 없으면 의미도 유산도 영원히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문화에서는 싱글로 사는 성인은 자기를 실현하지 못한 인생으로 취급 받았다.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는 결혼 그 자체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indifferentia)이지만, 결혼의 상태가 싱글의 상태보다 더욱 탁월한 상태라고 말한다. … 이런 관점은 성경적이다. 하지만 이에서 더 나아가서 싱글로 사는 것 자체를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혼과 독신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

1세기 당시의 배경 속에서 신약성경이 독신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은 놀랍다. 바울은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한다(고전 7:7). 예수님은 독신으로 타고난 사람이 있으며, 천국을 위해 독신이 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마 19:11-12). 유명한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와스(Stanley Hauerwas)는 기독교야말로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번째 종교라고 주장한다.6)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점 중에 하나는 독신에 대한 생각을 추종자들의 삶의 전형적 방식으로 여기며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라고 설명한다.7)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둘 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따라서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이 결혼한 사람들보다 미숙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완벽한 모범이시다. 하지만 그는 결혼하지 않으셨다. 물론, 예수님께서 결혼하지 않으셨으니,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한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은 결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초대교회가 이런 점에서 아주 독특한 공동체였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초대교회 당시에 여성이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는 경우,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유리했다. 교회는 기꺼이 가난한 미망인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다(행 6:1-7 참조). 또한 교회는 재혼 여부를 본인의 선택에 맡겼다. 그리고 대체로 남편을 잃은 뒤에 재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열심히 이웃들을 섬기고 선행을 베풀었다.8)

특히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종말론적 관점은 싱글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회적인 통념은 사람이 자식을 통해서 부와 명성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자식은 노후생활을 책임져 주는 중요한 사회적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신앙을 가진 싱글들에게 소망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가족이 줄 수 없는 소망까지도 주실 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사랑을 받아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 중에 하나가 가족의 개념을 바꾸신 일이었다(막 3:33-35). 하나님은 새로운 가정인 교회를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을 갖게 하신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게 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공동체를 허락하셔서 영원한 가족관계 속에 살게 하신다.

스탠리 하우어와스는 이러한 소망이 싱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기꺼이 주님을 위해 헌신하게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가 그들의 미래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과 독신 양쪽 모두 긍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독신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역사적 기관으로서 교회의 삶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상징적 제도다. 어느 쪽도 다른 한쪽 없이는 유효할 수 없다. 독신이 교회의 성장을 위해 삶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교회의 신뢰의 상징이라면, 결혼과 출산은 그 투쟁이 길고 험난할 것이라는 교회의 이해의 상징이다.9)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결혼을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독신의 삶 역시 정죄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왜 결혼을 선택하려는가, 왜 독신을 선택하려는가 하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은 결혼을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독신의 삶 역시 정죄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왜 결혼을 선택하려는가, 왜 독신을 선택하려는가 하는 이유이다.

 

팀 켈러(Tim Keller)는 결혼 및 싱글과 관련한 두 가지 우상을 지적한다.10) 하나는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이다. 이것은 결혼하면 나의 모든 욕망이 다 만족되며, 배우자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감을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결혼한 사람은 분명히 얼마 가지 않아서 실망할 것이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나친 의존의 우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팀 켈러가 지적하는 또 다른 우상이 있다. 그것은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이다. 이 우상은 앞의 태도와 정반대되는 태도이다. 나는 다른 사람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관계적 존재로 만드셨다(창 1:27).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관계적 태도는 인간 본성의 중요한 요소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계신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서로 사랑 가운데 한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누리시며, 그것을 인간에게도 심어놓으셨다. 따라서 다른 사람 없어도 나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다.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은 결혼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걸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은 독신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할 수도 있다.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과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 모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은 하나님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사람에게 기대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반대로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양산할 수 있다. 

인간은 자유로운 가운데 서로 사랑하면서 살 때, 가장 인간답다고 할 수 있다.11) 따라서 우리는 결혼을 해서도 관계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살도록 노력해야 하고, 싱글로 살면서도 관계성과 독립성의 균형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은 결혼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걸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은 독신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할 수도 있다. 지나친 의존성의 우상과 지나친 독립성의 우상 모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혼과 독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사도 바울은 고전 7장에서 결혼, 이혼, 독신에 대해서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한다.12) 당시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바울의 가르침은 그들을 깨우쳐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실제적인 적용방안이 되었다.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필요하고 적절한 가르침이기에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결혼에 대한 가르침이 나온다(고전 7:1-11).

[고전7: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장 1절의 “가까이 …. 함”이란 성관계에 대한 ‘우회적 표현’(euphemism)이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결혼과 그에 따른 성관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고린도 지역의 극단적인 금욕주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영적인 순결을 보존하기 위하여 육신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참고. 고전 7:2, 5, 9, 10, 28, 36). 기독교는 영과 육 모두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테두리 안에 있는 한, 영적 활동과 육적 활동 모두 선하다고 가르친다. 영적 활동은 선한데, 육적 활동은 저급하다는 것은 잘못된 이원론적 생각이다. 

2절에서 바울은 ‘음행을 막기 위하여 혼인하라’고 말한다. 물론 결혼의 목적이 음행을 막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결혼의 목적은 “연합과 성숙”에 있다. 연합이란 두 사람이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창 2:24; 막 10:6-9). 성숙이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엡 5:31-33).

바울은 여기에서 결혼을 통하여 음행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장려하고 있다(고전 7:9). 혼인은 성적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편이다. 성은 정당한 결혼의 범위 내에서는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죄를 지을 것 같으면 혼인을 함으로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성은 정당한 결혼의 범위 내에서는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죄를 지을 것 같으면 혼인을 함으로 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적합한지 따질 때에 중요한 체크 사항 중에 하나가 성적 욕구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적 욕구가 지속적으로 강하게 일어나는데,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위가 된다.

이어지는 고전 7장 3-4절은 남편과 아내의 성적 권리와 의무 진술이다. 

[고전 7: 3-4]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병행을 만들어서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동일하게 강조한다. 남편과 아내는 성생활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부부의 성관계에서 우선 고려할 점이라는 가르침이다.

싱글들을 위해서는 이 부분을 자위행위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싱글들 가운데 90%가 자위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13) 자위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본문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위행위가 올바른 성행위의 한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성도 역시 아내나 남편을 위한 봉사와 섬김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고전 7장 5절에서 바울은 부부에게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말한다. “분방”은 부부의 성생활과 연관된다. 다만 기도(일반적인 기도가 아닌 특별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합의하고 잠시 분방할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합방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한 기도에 보다 집중하기 위하여 성관계를 비롯한 모든 행동을 잠시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은 이어서 “다시 합하라”고 하는데, 이는 특별 기도가 끝나면 성관계를 재개하라는 뜻이다. 부부가 분방하다가 다시 합해야 하는 이유는 사탄으로 하여금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참고. 살전 3:5). 금욕의 시기를 보내고 나서 죄를 짓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독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전 7:7-9; 7:25-40).

먼저, 고전 7장 7절에서 바울은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한다. 그는 성적으로 충분히 절제할 수 있었기에 혼자 살았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중간에 이혼을 했는지, 혹은 상처(喪妻)를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참고. 행 22:3; 고전 7:8-9; 빌 3:4-6). 그렇지만 어쨌든 그는 혼자 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독신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그리고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겼다. 하지만 그는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라고 말한다. 이것은 독신으로 살면서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인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독신으로 사는 것이나 혼인하는 것 모두에서 주님께 대한 헌신이 앞서야 한다.

 

독신으로 사는 것이나 혼인하는 것 모두에서 주님께 대한 헌신이 앞서야 한다.

 

고전 7장 8-9절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아가모이’는 아내를 먼저 보낸 ‘홀아비들’(widowers)을 가리킨다. 바울은 홀아비들과 과부들이 자신과 같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즉 만일 절제할 수 있다면 혼자 지내는 것이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하는데, 정욕이 불 같이 타서 죄를 범하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고전 7장 26절에서 바울은 처녀들이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혼인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임박한 환난”(impending distress)이란 종말론적인 용어이다(참고. 단 12:1; 계 7:14). 이러한 개념을 단지 시간에 국한시켜 볼 필요는 없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혼인하지 않고 혼자 지내면서 주님께 충성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반드시 질문해야 할 것은 어떤 목적으로 싱글로 살고자 하느냐 하는 문제다.

고전 7장 32-34절에서 바울은 독신 생활의 유익을 말한다.

[고전7:3-34]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2절의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은 독신 생활을 장려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생각하지만, 결혼한 사람은 세상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배우자(가족)를 기쁘게 할까 생각한다.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면 아무래도 가정에 신경을 쓰다 보니 주님의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주님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하여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결혼이 더 보편적이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다(창 1:27; 2:18-25).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하기 위해 독신을 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전 7장 39-40절은 홀로된 여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다. 남편이 죽은 후에 아내는 재혼할 수 있다. 그러나 재혼할 때는 반드시 “주 안에서” 해야 한다. 즉 믿는 자들과 결혼해야 한다. 설혹 이전에 믿지 않는 자와 결혼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시 결혼하게 될 경우에 반드시 믿는 자와 결혼하여 보다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혼자 살 수 있다면 그냥 혼자 사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바울은 결혼할 것을 장려하지만, 목적이 분명하다면 결혼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목적은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는 것이다(고전 7:25).

 

바울은 결혼할 것을 장려하지만, 목적이 분명하다면 결혼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목적은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는 것이다.

 

결혼과 독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정리

고린도전서 7장을 기준으로 결혼과 독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14)

1) 결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창 2:24; 막 10:6-9). 하나님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남녀가 한 몸이 되게 하시고 그들이 가정을 이루어서 일생을 살면서 인류를 존속하게 하신다. 즉 결혼은 단순한 동거나 동행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존재가 되는 것이며, 창조 때에 인류의 생존 방식으로 정해진 것이다. 더욱이 결혼은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서 음행의 죄를 짓는 것을 막아준다. 이를 위하여 남편과 아내는 성생활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서로의 만족을 채워주어야 한다.

2) 결혼의 의미: 결혼은 반드시 믿는 사람들끼리 해야 한다(고후 6:14-16). 이는 결혼이 언약 관계 안에서 교회를 이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은 교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이다. 가정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주님은 교회의 머리이다. 교회에 속한 신자들은 경건한 믿음의 가정을 이룸으로 교회의 일원이 된다. 따라서 교회는 결혼을 소중히 여기며, 믿는 자들의 가정을 교회의 부분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가정에 구원과 복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혹은 이미)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면(혹은 했다면) 믿지 않는 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온전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불신자와 연애하는 경우 허용할 수 있으나, 결혼 전에 반드시 신앙 고백하여 학습이나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좋다. 가끔 결혼을 통해서 전도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결혼이 전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은 믿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

3) 독신: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다면 혼자 사는 것도 정죄해선 안된다. 결혼을 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많은 책임과 부담을 가져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주님께서 주신 특별한 사명이 있는 경우,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면 주님의 일에 보다 많이 충성할 수 있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그대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되, 성적 욕구에서 자유롭고 외로움을 극복하며 특별한 사명을 받아서 혼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독신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결혼을 해야 한다. 이것이 창조 원리에 맞다.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지내든 그 목적과 동기가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며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롬 14:7-8).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고전 10:31).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결혼하도록 정하진 않으셨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설계하셨다. 그렇기에 독신 생활에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더라도 외로움과 싸우는 것은 정상이다.

 

싱글과 외로움의 문제

그렇다면 이제 싱글이 겪는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겠다. 무엇보다 외로움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의 싱글 라이프도 외로울 수 있다.15) 싱글이라고 해서 매 순간 외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크리스천 싱글들은 외로움이라는 영역에서 고군분투한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외로움이 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결혼하도록 정하진 않으셨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설계하셨다. 그렇기에 독신 생활에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더라도 외로움과 싸우는 것은 정상이다. 그리고 외로움 때문에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창 2:18). 독신으로 살다가 외로워서 나이가 들어서라도 배필을 찾는다면 지혜로운 일이며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외로움과 같은 어려운 감정을 경험하도록 허락하실 때 염두에 두신 특정한 목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약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신호다. 바울의 육체에 가시가 없었더라면 그는 결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을 것이며 연약한 가운데서 능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고후 12:7-10). 

목이 마르지 않으면 우리 대부분은 물 마시는 것을 잊을 것이다. 피곤하지 않다면 대부분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 대부분은 부러진 뼈가 치유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부족하다는 하나님의 건강한 경고 신호이다.

만일 지속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면 싱글의 삶 대신에 결혼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 물론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 결혼 외의 해결책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건전한 기독공동체에 속하여 활동하는 일이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경 공부를 하거나 독서모임을 하는 일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지체들과 교제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을 배워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독신 생활을 활용하는 7가지 방법

독신으로 부름을 받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우리 모두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부름 받았다. 예수님은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12:48). 하나님은 싱글들이 독신 생활을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독신 생활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려면 아래와 같은 목표를 설정하면 좋을 것이다.

#1: 개인적 성장을 이루라.

독신 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다. 싱글 라이프는 특별히 인격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 자라오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독신일 때 영적인 일을 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 아주 필요하다. 따라서, 독신일 때 내면의 건강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시간을 가지면 좋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독신은 인생에서 갖고 있는 직업과 교육에 대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한다. 

#2: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라.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인생의 모든 계절에 항상 우선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신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남은 생애 동안 확고한 믿음의 기초를 세울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있다. 독신의 가장 큰 성경적 이점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고전 7:32-35). 독신자는 방해 받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가 더 쉬울 것이다.

#3: 의미 있는 우정을 통해 대인 관계 기술을 개발하라.

싱글 라이프가 좋은 점 하나는 다양한 대인 관계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우리는 동성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우정은 대인 관계 기술을 개발하는 기초이다. 독신 기독교인으로서 많은 동성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다. 이것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더욱 폭넓게 살도록 도와준다.

#4: 친구 및 가족의 건강한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라.

결혼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배우자가 관계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자는 배우자일 뿐이다. 배우자는 인생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멘토가 아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독신일 때 강력한 관계적 지원 시스템을 개발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독신일 때는 균형 잡힌 관계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투자할 시간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 유튜브 등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단지 몇몇 친구만 어울리면서 독신 생활을 낭비하지 말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라!

#5: 목적이 있는 임무와 선교활동을 계속하라.

운동, 배낭 여행, 등산 등 취미생활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삶을 진정으로 바꾸거나, 우리를 성숙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선교 여행은 뜻깊고 모험적이며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된다. 그것은 또한 강력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교 여행은 우리를 거품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지 그리고 세상이 그분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눈을 뜨게 하며 많은 사람들을 돕는 기회를 제공한다.

#6: 자발성을 기르라.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초대를 받을 때 “아니오”보다 “예”라고 말하라. 독신이라고 해서 절대 집순이/집돌이처럼 집에서만 지내지 말라. 내향적이라고 해도 괜찮다. 같이 활동하다 보면 성격과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절대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사람이 되라.

#7: 계획적이고 기도하며 미래를 준비하라.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인생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될 것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어리석은 사치와 작은 쾌락에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싱글 라이프를 낭비하지 않으려면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삶이다. 그것을 깨닫도록 기도하라.

독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관점이다. 결혼의 은사를 받았든, 독신의 은사를 받았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삶을 정립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며, 이웃에게 선을 베풀 수 있다.

 

 


각주)

    1. https://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24 (2024.3.11. 최종접속) 참고로, 아래 사항도 주목할 만하다. “결혼 의사는 남성(61.0%)이 여성(51.0%)보다 높았으며, 부모의 경제 수준과 본인 경제 수준이 ‘중’층 이상인 청년이 ‘하’층보다 결혼 의사가 높았다. 또 신앙단계가 그리스도 중심층인 청년의 70.0%와 향후 충실한 기독 청년(64.6%)도 다른 응답자보다 결혼 의사가 높게 나타났다.”
    2. William Perkins, Oeconomie, or Household Government, A Short Survey of the Right Manner of Erecting and Ordering a Family (London, 1631), 3:671.
    3. https://www.livingout.org/resources/articles/36/vaughan-roberts-on-singleness (2024.3.11. 최종접속)
    4. https://islamqa.info/en/answers/242945/what-if-someone-chooses-to-remain-single-both-in-this-world-and-the-hereafter (2024.3.11. 최종접속)
    5.  https://www.quora.com/Is-it-halal-in-Islam-for-a-male-man-to-remain-single-and-not-reproduce-have-offspring-forever-If-not-why (2024.3.11. 최종접속)
    6.  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최종훈 옮김(서울: 두란노, 2014), 263-64.
    7.  Stanley Hauerwas, A Community of Character (South Bend, I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91), 174.
    8.  Rodney Stark, The Rise of Christianity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6), 104.
    9.  Hauerwas, A Community of Character, 191.
    10.  이것은 팀 켈러와 그의 아내 캐시 켈러의 강연을 바탕으로 요약한 것이다. “Marriage, Sex & Singleness Conference with Tim and Kathy Keller”(2012년 3월 컨퍼런스).
    11.  칼 바르트, 『개신교 신학 입문』, 신준호 옮김(서울: 복있는사람, 2014), 18.
    12.  아래의 내용은 황원하, 『응답하라 신약성경』(서울: 세움북스, 2014), 제16장의 내용을 많이 참조했다.
    13. 이 예화는 팀 켈러와 그의 아내 캐시 켈러의 강연에서 취한 것이다. “Marriage, Sex & Singleness Conference with Tim and Kathy Keller”(2012년 3월 컨퍼런스).
    14. 보다 자세한 내용은 황원하, 『응답하라 신약성경』(서울: 세움북스, 2014), 제16장의 내용을 참조하라.
    15. 이 부분은 아래 내용을 요약하고 수정한 것이다. Mark Ballenger, The Ultimate Guide to Christian Singleness (AGW Publishing, 2016), 제9장.

우병훈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자원공학과 서양고전학을 공부하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저서로 『처음 만나는 루터』, 『기독교 윤리학』, 『룻기, 상실에서 채움으로』, 『교리 설교』, 『구속사적 설교』, 『교회를 아는 지식』, 번역서로 『교부들과 성경 읽기』(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