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독신
( 고린도전서 7장 8절)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가정을 주제로 한 설교나 강의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가정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면, 결혼하지 않은 미혼 청년들은 소외감을 느끼거나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마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과 가정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독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독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가정에 대한 메시지는 잘못된 확신이나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의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는 시기에 아름다운 가정, 건강한 가정 생활 이전에 건강한 독신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독신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독신과 결혼에 대한 잘못된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을 받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결혼과 가정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먼저 언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독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삶의 형태
교회 안에서도 나이가 들었는데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이제 결혼해야지’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대화들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처럼 “기독교는 독신을 삶의 형식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첫 번째 종교”입니다. 고대 종교와 문화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일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독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형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독신이 기혼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완전히 영글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장 온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삶을 사셨고, 많은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사도 바울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온전한 삶의 형태라면, 독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삶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독신 생활을 하려면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독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부족한 형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독신이 기혼 성인보다 미숙하거나 완전히 영글지 않았다는 식의 표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건강한 독신의 장애물 1 : 외로움
독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온전한 삶의 형태이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많은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결혼을 갈망하며 독신의 상태를 외로움과 열등감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건강한 독신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건강한 독신으로 사는 삶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세워 가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개인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독신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독신도 동일합니다. 결혼이 관계적 갈등으로 힘들다면, 독신의 어려움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입니다. 사도바울은 홀로된 과부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외로움의 해결책이라 권면합니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5~6)
사도바울이 외로움을 향락과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외로움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하면 결국 다른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해결책을 두면 관계 중독이라는 우상과 다른 중독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건강한 독신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자신의 영혼이 쉴 수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맞닥뜨리는 외로움의 문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건강한 독신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락이라는 우상 숭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외로움이 극대화되면 결혼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라는 자기 비하로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팀 켈러 목사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여인>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외로움이라는 우상에 빠졌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했던 성경의 인물로 ‘레아’를 꼽습니다. 레아는 너무나 사랑받고 싶은 여인이었지만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원하지 않는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원하지 않았던 남편에게 주어진 아무도 원하지 않은 여인이었습니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으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창 29:32) 또 둘째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했습니다. 사랑받지 못함을 남편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다른 아들 레위를 낳고는 남편과의 연합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창 29:34)
레아는 끝없이 ‘남편의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여인이 됩니다. 레아처럼 남편의 사랑은 아니지만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이라고 생각하며 레아처럼 다른 우상들을 찾아서 외로움을 채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외로움의 문제를 레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까?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창 29:35)
자신이 사랑받지 못함을 남편의 사랑에서 찾았던 레아는 유다를 낳으면서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고 사랑의 순서와 방향을 바꿉니다. 레아는 우리에게 야곱이라는 남편이 아니라 진정한 남편되시는 분이 있다고 말해줍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하나의 우상이 되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우상들을 찾아헤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장차 있을 결혼을 보여주는 그림자이며, 남편과 아내는 장차 임할 진정한 배우자를 바라보게 하는 그림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외로움은 결혼과 배우자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갈망하는 궁극적 갈망은 오직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그리스도와의 결혼을 통해 성취될 수 있습니다. 팀 켈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여러분 중에 배우자가 없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궁극적인 남편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에 배우자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자신의 궁극적인 남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기와 결혼한 사람을 여러분의 마음 속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끌어내려서 하나님 다음의 위치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대한 신랑으로, 배우자 없는 사람을 위한 배우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1
‘배우자가 없는 사람을 위한 배우자’라는 말은 오늘 독신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땅의 배우자가 아닌 진정한 배우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땅의 결혼이 아닌 진정한 결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라는 말로 우리를 위축시키는 모든 그림자들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결혼생활의 좌절이 진정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듯이,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생활의 외로움도 진정한 배우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결혼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혼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정서는 독신 생활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훗날 짝을 만난 뒤에도 결혼 생활을 뒤틀어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혼과 가정이 마음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격하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앞세울 때 우리는 독신 생활의 유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2
결혼생활의 좌절이 진정한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듯이,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생활의 외로움도 진정한 배우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독신의 장애물 2 : 두려움
독신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두려움’입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노후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면, 삶은 두려움과 미래의 불안이 이끌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경제적으로 홀로된 사람들을 위해 교회 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딤전 5:9)
과부로 명부에 올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지원할 사람의 명단을 말합니다. 과부는 미혼의 독신과는 다른 삶의 형태이지만, 경제적으로 홀로 되었다는 점은 동일하고 그들의 건강한 신앙 생활을 위해서 공동체가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건강한 결혼의 모델도 필요하지만 또한 건강한 독신의 모델도 필요합니다. 이 둘은 모두 건강한 공동체라는 뿌리에서 맺히는 열매들입니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 없이는 건강한 결혼도, 건강한 독신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건강한 독신생활은 공동체가 함께 정서적, 재정적 책임을 감당할 때 더욱 건강한 방식으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교회이기도 했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 대해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며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행 4:34~35)
젊었을 때 많은 돈을 노후를 위해 비축해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동체를 통해 미래의 두려움이 사라져야 합니다. 독신의 삶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해답은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복음적인 공동체입니다.
독신의 삶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해답은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 복음적인 공동체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독신
독신이 주는 장애물을 해결해 나간다면, 독신은 많은 장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고전 7:32)
건강한 독신은 결혼한 사람보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에 여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섬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든 젊은 부부가 있다면 예배를 드릴 때나 소그룹 모임 시간에 아이들을 건강한 독신자에게 맡겨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이 일로 독신자는 건강한 결혼 생활의 모델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독신자와 기혼자가 서로 필요를 채워주면서 더욱 건강하게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건강한 독신은 결혼한 사람보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에 여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섬길 수도 있습니다.
또 독신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웨인 그루뎀은 ‘기독교 윤리학’에서 독신을 주제로 다루면서 오늘날 결혼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한 자매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결혼을 바라지만 결혼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미혼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자매가 처한 상황을 베드로에게 말한 ‘여러 가지 시험’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여러 가지 시험이 우리를 더욱 연단시켜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든다고 말합니다.”3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도다” (벧전 1:6)
기독교가 박해를 받을 시대에는 순교를 각오해야 할 만큼 온갖 고난을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또 다른 박해의 시대인데,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이런 박해의 상황입니다. 결혼이 우상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배우자의 믿음과 상관없이 결혼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상대와 결혼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결혼이 교회 안에서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웨인 그루뎀은 이런 고난을 마가복음 10:29을 인용해서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29-30)
분명히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복음을 위해 가족을 이룰 특권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현세에 있어서 백배나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공동체에서 교제와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성 안에서 그렇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또 다른 박해의 시대인데,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이런 박해의 상황입니다…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나누지 못하는 상대와 결혼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먼저 오늘 성경은 독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에 충분한 삶의 형태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삶의 과정을 외로움이나 두려움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세워가는 건강하고 바른 결혼과 독신의 모델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이 어려운 현실적 상황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알고 믿음으로 그 길을 감당하는 독신자들을 교회 공동체가 인정해 주고 세워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 공동체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성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독신으로 이 땅을 사셨던 완전한 인간이셨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임을 기억하며, 결혼하지 못한 삶을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따라 순종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계 19:9). 그 날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건강한 독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혼이 어려운 현실적 상황을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알고 믿음으로 그 길을 감당하는 독신자들을 교회 공동체가 인정해 주고 세워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 공동체를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각주)
팀 켈러,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윤석인역 (서울: 부흥과개혁사,2011), 105.
팀 켈러,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 최종훈역(서울: 두란노, 2014), 269.
웨인 그루뎀, 『기독교 윤리학 』, 전의우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65.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그사랑교회(https://hisgreatlovechurch.com)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은보(옥한흠)포럼 이사, CTCKorea이사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팀 켈러의 유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