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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렇게 단어 하나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감정적 연결과 울림을 줄 수 있는 단어가 얼마나 될까? 세상에는 여러 말과 단어가 존재하지만 이 한 단어만으로 사람들은 막연하지만 어떤 긍정적인 희망을 품거나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갖는 것 같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19세기 말,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위키피디아나 챗지피티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고 그것들이 일상의 대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조금 더 깊게 스포츠와 올림픽에 대해 알아봐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행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짧게나마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올림픽과 스포츠를 이해할 수 있는지 신학적 접근을 해보려고 한다.

올림픽

 기원과 역사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올림픽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776년,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최초의 고대올림픽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올림픽 주기는그리스 달력의 기준이었으며, 이는 현대 올림피아드를 세는 4년주기와 매우 유사했다. 이 경기는 제우스 신을 기리는 종교 축제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경기가 종교적, 사회적 의미뿐만 아니라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여겼다.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가 쇠퇴하기 전 절정기에는 오직 ‘그리스인들’(언어적, 종교적, 민족적 성향으로 정의됨)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간의 평화와 단결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라고불리는 ‘신성한휴전’이 선포 되어 경기 기간 동안 모든 전쟁과 분쟁이 중지되었다.1) 이는현대 올림픽이 추구하는 평화와 국제 협력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Britannica, https://www.britannica.com/sports/ancient-Olympic-Games

현대 올림픽

현대 올림픽의 부활은19세기 말, 프랑스의 피에르드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고대 올림픽의 이상을 현대에 되살리고자 했으며, 1894년 국제올림픽 위원회(IOC)를 설립했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근대 올림픽 대회가 개최 되었고, 이후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현대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믿음과 관행, 19세기의 정복적 기독교, 종교적 의식주의, 민족주의, 국제주의, 상업주의 등 다양한 철학을 담고있다. 특히 사람들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야말로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평화적 행사로 생각하지만 쿠베르탱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비유럽인들에 대해 스포츠를 문명화와 식민화의 도구로 명시적으로 받아들였다. 올림픽 경기를 부활 시키려는 그의 계획은 당시 유행하던 고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는 흐름과 잘맞았고, 1896년 아테네에서 첫 근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무대가 마련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의 참여에 대해 쿠베르탱은 “스포츠가 아프리카를 정복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스포츠에의한 식민화, 그리고 스포츠를 통한 식민화”를 구상 했다고 볼수 있다.2) 데이비드 카닌에 따르면 근대 올림픽이 명백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설립 되었으며, 항상 국제 정세와 얽혀 있었다.3) 카닌은 1900년과 1904년과 같이 정치적으로 덜 관여한 올림픽이 가장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올림픽에서 정치와 스포츠가 항상 분리 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4)

올림픽은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세속 종교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말 스포츠의 대중화와 함께 스포츠와 종교의 관계가 밀접해졌으며, 올림픽이 이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5) 스포츠와 종교는 정서적, 영적 충족을 제공하고 인간의 열망을 고양시키는, “현대의 위대한 경험” 등 여러 유사점을 공유한다.6)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는 종종 종교를 대체하는 경험의 원천이 되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복음 전도의 도구로 발전하여 기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올림픽은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하여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세속 종교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말 스포츠의 대중화와 함께 스포츠와 종교의 관계가 밀접해졌으며, 올림픽이 이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스포츠와 종교는 정서적, 영적 충족을 제공하고 인간의 열망을 고양시키는, “현대의 위대한 경험” 등 여러 유사점을 공유한다.

 

스포츠와 신앙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본 필자는 신학자로서 스포츠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해왔다. 물론 이것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질문이 아니다. 필자가 성장해온 배경인 7-80년대 한국 개신교 교회, 특히 서울 끄트머리 산동네 교회의 특성상 여전히 매일의 힘든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플라톤주의적 관점에 영향을 받은 종말론적인 신앙이 대부분이었고, 그로 인해 신체의 선함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배우기에는 시기와 환경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간 신체의 선함에 대한 신학을 고찰해보면, 인간의 신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중요한 부분이며, 스포츠에서 발견되는 미학과 영광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하여 스포츠에서는 관계, 구조, 기능적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타인을 향한 관계적 존재로 창조 되었으며, 스포츠 팀은 이러한 공동체적 요소를 육성한다. 인간은 스포츠를 설계하고 전략을 짜는 구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기능적으로는 피조물을 관리하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야구의 멋진 변화구, 축구에서 윙백의 환상적인 크로스, 유도에서의 아름다운 업어치기 등 스포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면, 하나님도 이를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스포츠에서 아름다움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 신체의 선함에 대한 신학을 고찰해보면, 인간의 신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중요한 부분이며, 스포츠에서 발견되는 미학과 영광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스포츠에 대한 신학적 기초

올림픽을 즐기기 위해선 스포츠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스포츠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덕성을 갖춘 성품의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이다. 그래서 운동 선수가 되겠다는 것은 승리, 성공, 재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인 덕스러운 인품을 갖춘 인간이 되겠다는 헌신에 관한 결의가 되어야 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유념하고 그렇게 가르쳐야만 한다. 스포츠는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다른 문화 활동과 함께 인간에게 주어진 육체와 재능을 개발하고 돌볼 책임을 수행하는데 좋은 도구이다.7) 그것은 인간 창조의 본형인 하나님의 형상이 발산하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의 반영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인간의 잠재력으로 인식할 수 있다. 창세기1장 28절과 2장15절에서 하나님은 이러한 피조물인 인간의 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8)

고린도전서 9장 24-25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운동을 비유로 사용한다. 운동 선수의 경기에서의 승리를 위한 규율과 정제된 삶을 영생의 면류관을 향해 달려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한 예시로 제시한다. 비록 스포츠 경기에서 얻게 되는 면류관은 영생의 면류관에 비할 수 없지만, 한정된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특정하고 엄격한 훈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훈련을 받을 공동체, 즉, 교회의 존재를 함의 한다.9) 그래서 스포츠는 사도 바울이 예를 든 것처럼 절제, 인내 등의 덕목들 뿐만 아니라, 겸손, 팀워크와 같은 다른 덕목을 개발하기 위한 훈련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스포츠에 올바른 자세로 접근할 때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발전할 수 있고 영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을 즐기기 위해선 스포츠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스포츠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이 선물은 덕성을 갖춘 성품의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이다. 그래서 운동 선수가 되겠다는 것은 승리, 성공, 재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인 덕스러운 인품을 갖춘 인간이 되겠다는 헌신에 관한 결의가 되어야 하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유념하고 그렇게 가르쳐야만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스포츠는 인간이 그들 자신과 피조세계를 돌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즉, 스포츠와 같은 인간 활동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선물로써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승리는 성실성을 유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롭게 행동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상위 개념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간의 스포츠를 즐김은 책임감의 관할 아래에 있어야 하며, 승리는 돌봄 안에 있어야만 한다.

스포츠가 이러한 장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학자들을 통해 제안된 의견이다.10) 특히, 스캇 크레치마는 스포츠에서의 겸손의 개념을 탐구하고 겸손의 철학적 토대와 다양한 종교적 전통에서의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크레치마는 스포츠가 겸손과 자부심을 동시에 표출할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상반된 입장을 직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1) 그는 “겸손은 자아와 우리의 취약성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을 찾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12) 이와 비슷하게 션 그레이브스는 모든 개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스포츠의 근본적인 도덕적 의무라고 주장한다.13)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상대방을 꺾고 이긴다는 사고방식을 반대하며 공정한 플레이, 성실성 및 상대방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의 안전과 웰빙을 추구한다. 이것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지만 여전히 믿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이들이 ‘실제’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현명하게 평화적으로 주님께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경쟁하지만 그것은 서로에게서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협력적인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을 존중할 때 자신의 탁월함을 끌어낼 수 있기에 함께 새로운 대안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특히 스포츠에서 경쟁하는 상대방을 존중할 때 그 상대의 최선이 발휘되고 그와 경쟁하는 본인도 더 높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물론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문화를 대할 때 주의할 것은 우상 숭배다. 스포츠의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우상이 될 위험이 있다. 특히 올림픽과 같이 천 년의 역사를 가진 행사는 스포츠를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 경쟁하거나 대체하는 지위로 격상시키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포츠는 선물과 같은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스포츠를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 경쟁하거나 대체하는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을 주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예가 바로 영화 “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 에릭 리델의 이야기일 것이다.

스포츠의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우상이 될 위험이 있다. 특히 올림픽과 같이 천 년의 역사를 가진 행사는 스포츠를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 경쟁하거나 대체하는 지위로 격상시키게 된다.

 

에릭 리델, 믿음의 증인14)

1) 1924년 파리 올림픽의 에릭 리델

중국 톈진의 선교사 부모에게서 태어난 리델은 독실한그리스도인으로써 지금 벌어지고 있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정확히 100년 전인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영국 육상대표로 출전했다. 그의 주종목은 100미터 경기였지만, 그는 주일에 예정된 경기 출전을 할 것이냐는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했다. 주일을 엄격한 안식일로 지키던 그는 영국 정부와 대중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불참했고, ‘배신자’와 ‘광신도’라는 모욕을 받게 된다. 대신 그는 200미터와 400미터 경기에 참가하는데, 단거리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같은 날 200미터에서 동메달을, 400미터에서는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리델은 이 성취를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돌리며, 그의 신앙에 따른 도덕적 판단과 선택은 그리스도인 운동선수들에게 믿음의 롤 모델이 되었다.

 

 

2) 에릭 리델, 영광 너머의 영광을 좇아

올림픽 성공 후 세상의 영광을 뒤로하고 리델은 중국 톈진으로 돌아가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며 살다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섬김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뇌종양으로 의심되는 병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바친 그리스도인의 증인 된 삶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운동선수가 그들의 재능과 기회로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리델은 달랐다. 그는 선교지와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다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운동선수가 그들의 재능과 기회로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리델은 달랐다. 그는 선교지와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올림픽

리델 뿐만이 아니라 바울과 히브리서 저자도 운동경기를 좋아했음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다. 트랙경기 마지막 바퀴에서, 또는 마라톤의 마지막 역주에서 관중들이일어나 환호할 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은 우리가 천국에서영광의 왕을 찬양 할 그날을 예고하기 때문이 아닐까?

 

스포츠와 신앙의 조화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다른 활동들과 단순히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렌즈를 통해 모든 활동을 바라보고 참여해야 한다. 스포츠나 올림픽에 참여하거나 관람할 때도 마찬가지로, 신앙의 관점에서 스포츠를 재해석하고 접근해야 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신앙을 다룰 수 있는 위치와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다른 것들과 균형 잡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해당 분야에 창조적 대안을 가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스포츠와 올림픽에 연관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과와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경기의 성적에만 몰두하면 다른 가치나 덕목이 단순히 결과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공리주의적 접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세상이 정해 놓은 경기의 승리를 위한 효율보다 주님을 모시는성실과 진실, 그리고 겸손이 더 중요하다. 효율성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은 목표와 효율의 의미를 하나님 안에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경기 성적으로 한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며,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15)

이러한 관점은 선수들이 경기 성적과 성취를 이용해 자신이 받는 경쟁의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존감을 세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이 정의하는 승리보다 주님을 향한 성실과 진실, 그리고 겸손이 더 중요한 가치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을 다른 것들과 균형 잡는 사람들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해당 분야에 창조적 대안을 가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스포츠와 올림픽에 연관된 그리스도인들은 성과와 결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올림픽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장

그리스도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세상과는 다른 궁극적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현실을 보도록 부름 받았으며,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올림픽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선수들의 훈련과 업적에 반영된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올림픽의 웅장함과 장엄한 영광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상상하게 하며, 인류의 단일성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드문 행사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인간 문화가 만들어내는 영광이 더 큰 하나님의 실재를 가리킨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올림픽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해야 하며,이는 유한한 인간인 우리가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위대함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다.

올림픽 경기와 스포츠는 정치 및 종교적 요소를 가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로버트 엘리스는 일부 사람들에게 스포츠가 종교의 특성을 띠며, 조직화된 종교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16) 그는 스포츠가 종교처럼 의례적, 신화적, 교리적, 윤리적, 사회적, 경험적, 물질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올림픽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아니다. 스포츠나 인간의 회합 자체는 좋을 수 있지만, 이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놓을 수는 없다.17) 호주 육상 영웅 베티 커스버트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육상 금메달(4개)을 딴 호주 선수로, 1956년 멜버른과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이후 다발성 경화증을 앓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스포츠 성공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4개의 금메달을 땄을지 모르지만, 가장 위대한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때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18)

 

“나는 4개의 금메달을 땄을지 모르지만, 가장 위대한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일 때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나가며…

그리스도인에게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인간의 잠재력을 목격하고,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실천하며,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다. 관람자로서 우리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 정신력, 그리고 인종적 다양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감상할 수 있으며, 선수들의 모습에서 절제, 인내, 겸손, 용기와 같은 덕목을 숙고하고 이를 신앙 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 선수로 참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스포츠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으며, 정직, 공정, 상대 존중과 같은 가치관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실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는 스포츠에 참여할 때 하나님을 의식하고, 감사하며, 영화롭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경기 전후로 기도하거나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등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19) 스포츠를 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에 감사하며,20) 우리의 행동과 말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21)

마지막으로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 다음과 같은 참여의 방식을 제안 드린다.

 

1. 그리스도의 재림이 개회식이나 폐회식, 또는 그 어떤 올림픽 기간의 문화 행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찬란하고 영광스러울 것임을 기억할 수 있다.

2. 훌륭한 경기력,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좋은 스포츠맨십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3. 수많은 그리스도인 선수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된 자들간의 교제와 복음 전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4. 선수들을 섬기는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대회 및 현장 상황에 맞는 성경의 말씀과 기도로 선수들 및 관계자들에게 복음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5. 우리가 보는 다양한 국가들에서 이뤄지고 있는 복음 사역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과 문제들로 고통받는 나라들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올림픽이라는 전 지구적 이벤트를 사용하여 불의한 일이 알려지고 이 세상의 정의의 한계가 명시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대안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펼쳐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고, 즐기고, 참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국제적 행사를 우상숭배라고 배제할 필요는 없다. 올림픽과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적 이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덕성을 가진 성품을 개발하며, 모든 개인을 존중하는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선수로서든 관중으로서든 올림픽에 참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반영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예수 안에 있는 공동선을 증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올림픽 경기와 스포츠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믿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발판으로 사용함으로써, 운동경기의 우수성과 영적성숙을 모두 소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문화적 풍토에 기여할 수 있다.

 

 


각주. 

  1. https://www.britannica.com/topic/The-Olympic-Truce-1688469;https://olympics.com/ioc/olympic-truce
  2. Helen JeffersonLenskyj The Olympic Games(Bingley, UK: Emerald Publishing, 2020), 5-16.
  3. David Kanin, A Political History of the Olympic Games(NewYork: Westview Press, 2018), 12.
  4. Ibid., ix-x.
  5. Hugh McLeod, “Sportand Religion in England, c. 1790–1914” in Sports and Christianity:Historical and Contemporary Perspectivesed. Nick J. Watson and AndrewParker (New York: Routledge, 2013), 113-128.
  6. Watson and Parker, Sportsand Christianity, 9. Cf., Mangan, Majumdar and Dyreson, Beijing 2008:Preparing for Glory: Chinese Challenge in the ‘Chinese Century’(London:Routledge, 2009) xii–xiii.
  7. John Stott, New IssuesFacing Christians Today, 3rd ed. (London: Marshall Pickering, 1999), 193. 흔히 이것을 ‘문화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8. 창세기1장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2장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9. Brian Cavanaugh, “AChristian Perspective on Sport,” https://www.appleseeds.org/A-Christian-Perspective-on-Sport-2.htm.
  10. 트레이시 트로든은 스포츠에서 기술적 향상의 윤리적, 신학적 차원을 탐구하면서 스포츠 기술의 가시성이 높아짐에 따라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게 되고 그런 기회를 제공하며 행동 양식과 규범의 구체화를 향한 긍정적인 도전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Tracy J. Trothen, “The TechnoscienceEnhancement Debate in Sports: What’s Religion Got to Do with It?”, 207-224. 제이콥 굿슨도 야구 경기를 예로 들며 스포츠의 우수성은 덕 중심의 접근을 할 때 본질과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Jacob Goodson, “The Quest for Perfection in the Sport of Baseball:The Magnanimous Individual or the Magnanimous Team?, 225-245. 케빈 릭시는 스포츠를 통해 덕성을 증진하려는 교회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Kevin Lixey, “The Vatican’s GamePlan for Maximizing Sport’s Educational Potential,” 250-267. 모두 다음의 도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Nick J. Watson and Andrew Parker, eds. Sportsand Christianity: Historical and Contemporary Perspectives(New York:Routledge, 2013).
  11. Scott Kretchmar, “Hard-WonSporting Achievements and Spiritual Humility: Are They Compatible?” in Sportsand Christianity: Historical and Contemporary Perspectives, ed. Nick J.Watson and Andrew Parker (New York: Routledge, 2013), 269-286. 
  12. Ibid., 271.
  13. Shawn Graves, “Love YourOpponent as Yourself: A Christian Ethic for Sport,” Sport, Ethics andPhilosophy, 12:1 (2018):50-69.
  14. John W. Keddie, Running theRace: Eric Liddell, Olympic Champion and Missionary(Darlington, UK:Evangelical Press, 2007).
  15. https://www.christiansinsport.org.uk/resources/this-match-does-not-define-you/
  16. Robert Ellis, TheGames People Play: Theology, Religion, and Sport(Wipf & Stock, Eugene,2014), 108–22 (quote on p. 122).
  17. Exodus 20:3,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ESV)
  18. https://atributetoaustralianchristians.wordpress.com/2017/08/07/betty-cuthbert/
  19. 자메이카의 올림픽2관왕 단거리 선수 셸리-앤 프레이저-프라이스(Shelly-Ann Fraser-Pryce)는 경주 전 출발대에서 자주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주를 마친 후에는 달릴 수 있는 기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미소 짓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https://www.hopeforall.org.uk/read/being-the-best-is-not-enough/
  20. 디모데전서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21. 고린도전서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김희준 박사는 토론토대학교 위클리프 칼리지에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증인’ 개념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세종대, 남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큐티엠 편집장과 안산 꿈의교회 영어예배 부서를 맡아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스탠리 하우어워스 읽기'(ivp) 등이 있다.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KICE)의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