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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우리는 다양한 경험 속에서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대한민국 중년 세대를 예로 들면, 1990년대에는 가정과 학교에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는 변화를 경험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닷컴 열풍과 함께 생겨났다가, 거품이 꺼지며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어서,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스마트폰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 깊숙이 침투하며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2025년 현재, 서점의 진열대는 인공지능(AI)의 활용과 트렌드를 다룬 책들이 가득하다. 이제 AI는 더 이상 기술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교육, 상담, 의료, 종교 등 일상과 사회 전반에서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서 보듯, 기존까지의 흐름과 단절되는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파급력은 단지 개인이나 조직 차원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와 국가, 글로벌 차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기술로 인한 변화 역시,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의 행동, 사고, 관계 방식에까지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왔다. 이 변화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구조적 전환(transformation)에 가깝다.

혁신(innovation) 및 기술혁신(technology innovation)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혁신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이노베이션(innovation)’은 라틴어 innovare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접두사(in-)와 ‘새롭게 하다’는 뜻의 novāre가 결합된 단어로서 ‘새롭게 하다’, ‘갱신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때 혁신은 새로움의 정도에 따라 점진적(incremental)일 수도 있고 급진적(radical)일 수도 있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촉발되거나 가능해진 급진적 변화를 의미하며, 기술 자체의 발전과는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과 조직, 산업에 사회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디지털 전환의 전개와 변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시대와 맥락에 따라 주목받는 이유와 핵심 이슈는 달라져 왔다. 1990년대에는 디지털 기술 그 자체가 주요 화두였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지금은 세계적 디지털 선도기업이 된 국내 모 대기업 내부에서도, 당시에는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했다. 때문에 이른바 ‘디지털 전도사(digital evangelist)’라 불리던 이들은 디지털 기술의 원리와 응용 가능성을 직원들에게 전파하고 교육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기기와 인프라가 이슈가 되었다.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고,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기기와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이 일상 속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낼 변화는 점점 더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이를 기존 전화기에 ‘기능’을 추가하는 제품 혁신으로(product innovation) 인식했다. 그러나 일부는 이 변화를 ‘전화 기능을 갖춘 소형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기들이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디지털 기술과 결합되면서, 휴대 가능한 컴퓨터 중심의 디지털 환경이 펼쳐지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그렇다면 2025년 현재, 우리는 왜 다시 ‘디지털 혁명’ 혹은 ‘디지털 전환’의 도전을 논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화두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세 가지 변화가 있다.

(1) 기능에서 지능으로의 전환

첫째, ‘기능(function)’에서 ‘지능(intelligence)’으로의 변화다. 이전의 디지털 전환은 주로 기능의 향상과 확장을 중심으로 논의됐으며, 더 빠른 연산, 더 다양한 서비스, 더 편리한 연결성이 주요 화두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디지털 전환의 초점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지능’으로 옮겨가고 있다. 생성형 AI, 자율주행, 예측ᄋ판단 시스템은 상황에 맞춰 스스로 판단하고 적응한다. 디지털 기기는 이제 ‘프로그램된 기계’를 넘어, 학습과 추론을 수행하는 지적 파트너로 변모하고 있다.

올해 초에 공개된 METR(Model Evaluation & Threat Research)의 보고서에 따르면, 속속 발표되는 최신 인공지능 언어 모델들은, 인간이 몇 시간 걸려 처리하는 복잡한 작업을 절반 정도의 확률로 성공적으로 처리해내는 능력이 평균 7개월마다 두 배씩 향상되고 있다. 이는 AI가 더 길고 복합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내는 속도가 매우 빠르게 향상되고 있으며,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위협하는 지점이 가시권에 들었다는 뜻이다.

(2) 의식 가능성에 대한 논의

둘째, ‘의식(consciousness)’ 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변화다. 과거의 디지털 전환 논의에서 의식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만이 의식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AI가 언어, 이미지, 행동에서 ‘의도’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면서, 기계의 의식 혹은 준(準) 의식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영국 서식스 대학교의 인지신경과학자 아닐 세스(Anil Seth)는 의식을 “뇌가 예측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제어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뇌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을 실제 감각 정보와 비교, 조정하며 현실을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정교한 예측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기계가 인간 의식과 유사한 경험을 형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미래학자 레이 커즈웨일(Ray Kurzweil)은 기술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2029년경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AI가, 그리고 2045년경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전망은 논쟁적이지만, AI와 인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미래상을 보여준다.

(3) 이동 가능한 것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셋째, ‘이동 가능한(portable)’ 것에서 ‘움직이는(moving)’ 것으로의 변화다. 과거의 디지털 전환은 주로 기기를 작고 가볍게 만들어 ‘들고 다니는’ 휴대성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지금의 기술은 화면 속을 넘어 물리적 공간 속으로 확장되고 있다. 즉,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드론, 자율주행차처럼 스스로 움직이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체현된 지능(embodied intelligence)’이 등장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손안의 기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움직이고 반응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을 더 이상 신기술의 등장이나 성능 향상의 문제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이제 그것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변화를 함께 놓고 보면, 의식과 지능을 갖추고 스스로 움직이는 새로운 존재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지능이 인간과 비슷하거나, 어떤 영역에서는 우리를 뛰어넘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지적 존재’로서 우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인간의 역할과 위치를 다시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가 주는 가능성과 함께 위협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기회와 위협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냉정하게 도전과제를 직시하며, 책임 있는 대응을 준비해야 할 때에 서 있다. 또한, 목회 현장에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3. 디지털 전환의 역설: 외로움의 확산

디지털 전환은 분명 사회적,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이 전환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 발표에서는 특히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감정 중 하나인 ‘외로움(loneliness)’의 문제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소위 웹 2.0(Web 2.0) 시대가 도래했었다. 이는 단순한 정보 검색과 소비 중심의 인터넷을 넘어, 참여(participation), 공유(sharing), 개방(openness)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새로운 디지털 환경이었다. 웹 2.0 시대에 관심을 받던 블로그, 위키피디아,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은, 개인이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가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인터넷이란 정보의 바다 속에서 관계 형성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웹 2.0이 더 넓고 깊은 연결의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분명 연결을 확장했지만, 동시에 관계의 단절과 고립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낳았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사상가 노리나 허츠(Noreena Hertz)는 저서 『외로움의 시대(The Lonely Century, 2020)』에서 외로움이 단지 개인적 감정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극단주의, 민주주의 약화, 소비문화의 왜곡 등 사회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위기임을 지적하며, 이를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와 경제 시스템을 위협하는 ‘시대적 전염병(epidemic of our age)’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사람들을 언제나 연결된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욱 고립된 상태로 내몬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오늘날 사람들은 대화형 챗봇,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 게임과 가상현실 등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는 “평균적인 미국인은 친구가 세 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전통적인 지역 커뮤니티 센터나 정신건강 지원 정책보다도 AI 동반자, 즉 나를 잘 알고 나만을 위한 대화와 위로를 제공하는 챗봇이나 가상 친구가 외로움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기술적 위안은 일시적 만족감을 주지만,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의 본질은 단순히 대화 상대의 부재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적 관계와 소속감의 결핍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리검영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줄리안 홀트-룬스탯(Julianne Holt-Lunstad)은 연구를 통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조기 사망률을 26%-32% 높인다고 제시하며, 양질의 사회적 관계가 불안과 우울을 줄일 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위험까지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UCLA의 신경과학자 마르코 이아코보니(Marco Iacoboni) 역시 공감과 정서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은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 관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인간 관계의 가치는 단순히 기분 좋은 대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오해, 갈등, 불편한 대화 속에서 오히려 공감 능력, 문제 해결 능력, 회복탄력성이 길러지고, 공동체적 유대가 더욱 강화되기도 한다. AI와의 상호작용은 이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관계의 깊이를 제공하지 못한다. 

디지털 전환은 더 큰 연결을 약속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본질적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 다가올 미래, 설령 의식과 지능을 갖춘 새로운 존재가 외로움의 순간을 달래줄 수 있을지라도, 인간 공동체 속에서만 주어지는 진정한 상호작용의 가치는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4. 시사점

우리는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를 상상하며, 그것에 대비하려 한다. 때로는 모든 것을 해결해줄 듯 보이는 기술 혁신의 산물이 언젠가 인간 마음 깊은 공허까지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로움이라는 내면의 공간은 결코 기술로 메워질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주를 찾고 응답하기 위해 우리 안에 남겨진, 남겨져 있어야 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 역시 온라인 예배, 메타버스 예배,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확대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 기간은 단순히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묻는 시기가 아니었다. 대신, “디지털 기술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와 함께 있어주는’ 공동체적 경험을 갈망한다. 따라서 교회는 디지털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차원, 곧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의 만남과 돌봄이 살아 숨 쉬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디지털 전환이 심화시킨 외로움의 문제를 공동체 안에서 치유할 수 있는 목회적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실천으로 이끄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전환이 심화시키는 외로움의 시대는, 단순히 위기만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의 빈 공간이 채워지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기술적 대체물에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역할을 교회가 하는 것이다. 이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알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임을 기억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의 연구위원인ᅠ장영하ᅠ교수는ᅠ서울대학교에서ᅠ기계공학으로ᅠ학사와ᅠ석사ᅠ학위를ᅠ취득한ᅠ후, 삼성SDS에서ᅠ기술전략ᅠ및ᅠ혁신전략ᅠ업무를ᅠ담당했다. 이후ᅠ영국University of Sussex의ᅠ과학기술정책연구소(Science Policy Research Unit; SPRU)에서ᅠ기술혁신경영으로ᅠ석사와Ph.D. 학위를ᅠ받았다. 현재ᅠ같은ᅠ대학에서ᅠ기술혁신경영ᅠ교수로ᅠ재직ᅠ중이며, 기술경영ᅠ및ᅠ과학기술정책을ᅠ가르치고ᅠ연구하고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