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6년, 분열과 대립을 넘어 화해와 통합을 향한 시동
우리 사회는 2024년 12월 3일에 비상 계엄이 선포된 이후 오랫동안 큰 혼란과 분열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대통령의 계엄선포에 이은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와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2주 동안에 발생했고 그 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기까지 약 6개월 동안 나라는 두려움과 혼란에 휩쓸렸다. 이 기간 동안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계엄 옹호와 반대 입장의 진영으로 나뉘어 아스팔트에 나와 격렬하게 대립했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말미암아 국론이 분열되어 대립하는 모습이 드러났지만 사실 이런 진영들 간의 분열과 갈등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근대사에 있어 815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나뉘어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한 바 있고 이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결국 정치체제가 다른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게 되었다. 이런 근대 역사를 지닌 한국 사회에서 이념은 다양한 분열과 대립을 일으키고 자라갈 수 있는 줄기세포처럼 작용해 왔다. 진보냐 보수냐, 우파냐 좌파냐 하는 이념적 색깔이 입힌 주장은 종종 자기 생각과 다른 상대나 집단을 공격하는 명분과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념을 확대하고 재생산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내에도 정치적 이념에 따른 대립과 분열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교회의 최대 연합기구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계엄 사태를 정치권의 대립의 결과라고 규정하며 정치계 전반을 질타했지만 정작 계엄선포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이를 ‘명백한 위헌’으로 보고 규탄했고 합당한 사법적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교회 연합단체의 상반된 반응은 한국교회 내에 이념의 차이와 이에 따른 입장의 상이함이 존재함을 증명해 준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통일을 이루어가야 할 사명을 지닌 신앙 공동체이다. 교회는 이 세상의 이념들과 문화들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로 변혁하고 통합해야 하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이런 분열된 모습은 교회가 사회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도리어 통합의 객체가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026년은 계엄사태로 촉발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고 이에 따른 행정적 시행이 이뤄질 해가 될 것인데, 교회는 이런 법적 행정적 수습을 뛰어넘어 시민들과 공동체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복음으로 사회를 화합하고 통일을 이루어 가는 일을 과제로 여기고 힘을 쏟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이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사회 불의를 제거하고 공공 선을 도모하는 사역에 대한 신학적 시각과 실제로 취해온 태도가 무엇이었는지 그 역사와 변천을 간단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에 기초하여 현재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의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일은 2026년을 시작하면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정치참여와 이에 영향을 준 주요 요인
한국교회의 사회참여 역사와 흐름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약 백년 정도까지는 한국교회는 사회에 크게 의미 있는 정치적인 영향을 행사할 정도가 되지 못했는데, 이것은 양적인 면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시각 즉 문화 사명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복음전도, 개인 구원, 내세 신앙 등에 치중했고, 성속 이원론적 시각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구조적 불의 변혁과 사회정의 실현에 대해 큰 가치를 갖고 사회적 행동을 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1]
한국교회가 사회·정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된 것은 1970-80년대에 발생했던 여러 정치 사회적 사태라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다. 군인들에 의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은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개정했고 유신 체제를 구축하여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게 되자 시민들이 이에 저항하여 조직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였고, 군부정권은 이를 탄압하고 억눌렀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빼앗고 억누르자 교회와 목회자들도 조금씩 자유, 정의, 인권을 향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더욱 뚜렷해졌고, 심지어 일부 복음주의 교회의 청년들 가운데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흐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교계의 주류이자 보수신앙을 자처하는 대다수의 교회는 여전히 정교분리를 강조하며 사회 불의 문제에는 침묵했다. 한국교회 안에는 이러한 이중적 흐름이 흘렀고 1987년 민주화 항쟁과 90년대 초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민주화가 거의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정치참여 양상은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정교분리를 내세우며 정치 참여를 회피했던 보수 교회들 가운데, 소위 민주진보 정부가 정권을 잡고나자 광장으로 나와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광장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2] 이 과정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애국 보수’로 규정하며 특정 정당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그 상대 세력을 반국가·종북 세력으로 규정하는 방식의 정치적 행동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신학적 세계관과 시각보다는 반공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사상과 이념에 따라 사회 정치에 대한 입장을 취하고 행동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역사 사회적 요인: 반공주의
한국교회의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 작용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해방 후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이었다. 해방 직후 북한의 공산 정권이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남한으로 이주했다.[3] 이들 월남 기독교인들은 공산당으로부터 입은 피해로 인해 반공주의를 내면화했으며, 일부는 반공 조직을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감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강화되어 반공주의는 단순한 이념을 넘어 신앙에 가까운 가치로 자리 잡았다.[4] 정전 이후 보수 정권이 반공주의를 국시로 활용할 때마다 한국교회의 흐름은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권을 지지하고 결합해 왔다. 이후 진보 정권의 대북 화해 정책을 공산주의 확산의 위협으로 인식한 일부 보수 교회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반공을 내세운다면 비민주적 정책까지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극우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신학적 요인: 반기독교 문화에 대한 위기의식
최근 10여 년간 성윤리와 가족 제도 등 진보적 문화가 부상하면서 보수 교회 내부에 신앙과 도덕 질서에 대한 위기의식이 형성되었다. 동성애나 성 개방 관련 법·제도 변화를 신앙 수호의 문제로 받아들인 교회들은 정치적 대응에 나섰다. 이러한 윤리적 위기의식은 진보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과 권력과의 전략적 연대로 이어졌으며, 신앙 방어를 명분으로 극단적 정치 이념과 결합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정치 성향 문제를 넘어 교회 내부의 정체성 불안과 신학적 긴장에 대한 반응이다. 종합하면, 한국 보수 복음주의 교회의 정치참여는 신학적 요인보다 반공주의라는 역사·사회적 요인에 의해 더 크게 형성되어 왔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반기독교 문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추가되어 정치 행동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신앙이 이념을 비판적으로 상대화하지 못하고 정당화 도구로 기능할 위험성이 드러난 만큼,[5] 복음주의 교회는 반공주의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신앙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 안에서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
3. 한국교회의 화해와 통합을 향한 신학적 성찰
이념을 넘어서는 복음적 정체성과 화해의 토대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정치적 행동을 할 때 신앙보다 이념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현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거나 체념할 수 없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에 정치 성향의 차이로 서로 나누어지거나 분열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소명은 이 세상의 다양한 이념, 체제, 그리고 권력 의지를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상대화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 아래 통합해 가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화해 사역은 단순한 심리적 합의나 사회적 타협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 사건에 근거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
복음이 말하는 화해(reconciliation)는 먼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건이며, 바로 그 수직적 화해가 공동체 안의 수평적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6] 십자가는 “원수”를 향해 자신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방식이며, 그 방식 안에서 교회는 서로를 다시 형제자매로 호명할 권리와 의무를 얻는다. 그러므로 보수·진보라는 사회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은 교회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그것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한 새 사람”(엡 2:15)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근원적이다. 한국교회 내부의 이념적 장벽이 견고해 보일수록, 교회는 먼저 ‘정치적 동일시’가 아니라 ‘복음적 동일시’—곧 내가 누구 편인가가 아니라 누구 안에 속해 있는가—를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십자가의 화해는 불의에 눈감는 평화가 아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만난 자리이며 무죄한 중보자가 죄인 대신 죄의 대가를 치른 ‘대속적 화해’의 자리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화평의 복음”(엡 2:17)을 전파해야 할 직분, 즉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을 받았다. 따라서 교회가 말하는 화해는 진실과 책임을 회피하는 타협이 아니라, 죄를 죄로 인정하되 용서와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는 작업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정치 이념에 휘말려 서로를 적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상대를 악마화하며 정의의 이름으로 관계를 차단하거나 혹은 화합을 위해 핵심 쟁점을 덮어버리는 양 극단이다. 그러나 복음적 화해는 이 둘을 동시에 거부한다. 교회는 사실을 말하되 상대를 파괴하지 않고, 책임을 묻되 회개의 가능성을 닫지 않으며, 상처를 인정하되 관계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분열을 다루고 화합을 모색해야 한다.
성육신적 공적 책임과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긴장
교회가 사회를 대하는 방식도 복음 안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과거에는 영혼 구원만을 강조하며 사회의 고통과 불의를 외면하는 ‘회피’의 경향을 보였고, 최근에는 특정 이념과 결탁하여 세속 권력을 통해 가치와 질서를 ‘강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교회가 취할 길은 회피도 아니고 강압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방식 즉 자기 비움(kenosis)과 섬김으로 세상 한가운데 들어가 고통을 짊어지고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회복시킨 그 방법이어야 한다.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하려면 먼저 영향력을 ‘획득’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아야 한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십자가의 언어로 말할 때, 교회는 분열된 사회 속에서 신뢰할 만한 화해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어떤 특정 정치 이념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지금 여기’에서 정의와 평화, 긍휼과 환대를 요청하지만, 동시에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미래이기에 어떤 제도나 정당, 이념도 하나님 나라 자체가 될 수 없다. 교회가 이 긴장을 잃어버리면 한쪽으로는 승리주의적 지배 욕망에 빠져 신앙을 이념의 도구로 만들고, 다른 한쪽으로는 현실 도피적 분리주의로 빠져서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게 된다. 교회는 현재의 정치적 선택을 ‘절대화’하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고통 앞에서 ‘무책임’하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 즉, 정책과 권력을 향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되, 가장 작은 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구체적으로 연대하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화해와 통합은 “다름을 없애는 통일”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다름을 감당하는 연합”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1) 정치적 정체성보다 복음적 정체성을 우선하는 신앙 고백을 회복하고, (2) 화해를 값싼 타협이 아니라 진실·책임·용서가 함께 가는 복음의 질서로 이해하며, (3) 회피와 지배의 양극단을 벗어나 자기 비움과 섬김의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4) 하나님 나라를 특정 이념과 동일시하지 않되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모든 이념을 지속적으로 상대화하며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가 먼저 내부에서 이념을 넘어선 사랑과 용납을 실제로 보여줄 때, 비로소 한국 사회는 교회 안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말’이 아니라 ‘현실’로 목격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공적·예언자적 역할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 논의에서 반드시 신학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또 다른 주제는 정교분리의 문제이다. 정교분리는 교회의 정치 참여를 둘러싼 논쟁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분별되지 못한 채 상반된 주장들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현대적 의미의 정교분리 원칙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국교 설립 금지 조항에서 출발하여, 국가 권력과 종교 제도의 제도적 분리를 통해 국가의 중립성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세속적 헌정 질서로 발전해 왔다.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역시 국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특정 종교를 제도적으로 우대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도덕적·윤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7] 오히려 민주 사회에서 종교 공동체는 시민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공선에 기여할 책임을 지닌다.
신학적으로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국가와 교회가 각기 다른 소명과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기능적 구별을 의미한다. 칼빈은 이중 통치론을 통해 교회와 국가가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나 서로 다른 목적과 수단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교회는 말씀과 성례, 곧 ‘천국 열쇠’의 권세로 영적 생명을 섬기고, 국가는 ‘칼의 권세’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8] 루터의 두 왕국론과 카이퍼의 영역 주권론 역시, 국가가 교회의 사명을 대체하거나 교회가 국가 권력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동일한 신학적 통찰을 공유한다.
성경 또한 이 기능적 구별을 분명히 한다. 국가는 악을 억제하고 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지니며(롬 13:4), 교회는 죄 사함과 화해의 복음을 맡은 공동체이다(마 16:19). 두 영역은 서로를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 목적 아래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룬다. 국가는 정의로운 질서를 통해 교회의 사명을 돕고, 교회는 경건하고 책임 있는 시민을 형성함으로써 사회의 도덕적 토대를 제공한다.
문제는 오늘날 일부 한국 복음주의 교회가 이 기능적 구별을 혼동하거나 무시한 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영적·도덕적 사명을 국가 권력, 곧 ‘칼’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특정 정치 이념이나 정당과의 결탁을 통해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는, 결과적으로 교회를 정치 권력에 종속시키고 영적 권위를 훼손한다. 이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예수의 말씀을 오해한 결과이며, 교회를 복음의 증인이라기보다 이념적 행위자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그러나 정교분리를 이유로 교회의 공적 책임을 부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오류이다. 교회는 정치 권력을 직접 장악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선과 사회 정의를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내야 한다. 교회의 사회 참여는 권력 획득이 아니라 증언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정의, 공의, 생명, 평화—여야 한다. 교회는 특정 이념의 대변자가 아니라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렘 29:7)는 부르심에 응답하는 공동체이다.
이 지점에서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이 요청된다. 성경적 예언자 전통은 어느 한 정치 진영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에서 모든 권력과 체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념에 경도된 일부 한국교회의 모습은 예언자적 기능을 특정 정치 입장에 따라 선택적으로 행사함으로써, 교회의 공적 신뢰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예언자적 목소리가 정당 정치의 언어로 대체될 때,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의 증언자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의 확성기가 된다. 정교분리의 신학적 의미는 교회의 침묵이 아니라, 교회의 자유에 있다. 교회는 어떤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기에 모든 권력을 향해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암 5:24)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자유 속에서 교회는 좌우 어느 이념도 절대화하지 않고, 모든 이념을 하나님 나라의 빛 아래 상대화하며 견제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한다. 이것이 정교분리가 요청하는 교회의 정치 참여 방식이며, 분열된 사회 속에서 교회가 다시 화해와 통합의 증언자가 될 수 있는 길이다.

4. 한국교회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실천적 제안
지금까지 이 글에서는, 한국 교회의 정치적 성향의 차이와 분열이 단순한 의견 차이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역사사회학적 요인과 신학적 인식에 따른 문제임을 살펴보았다. 이런 한국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강조한 교회의 성격과 사명에 대한 인식 즉 바른 교회론을 재확립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화해 사역과 이의 핵심인 성육신적 방식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격에 대한 신학적 인식과 아울러 정교분리의 바른 신학적 이해를 갖고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이런 신학적 작업에 근거해 교회의 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주요하면서도 실제적인 작업 두 가지를 언급한다면 다음과 같다.
진실 규명과 회개: 화해의 전제조건
기독교적 화해는 망각이나 침묵이 아니라 진실을 직면하고 죄를 고백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한국교회 내부의 갈등을 치유하려면 사실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미 역사 속에서 이러한 길을 걸어온 경험이 있다. 1938년 신사참배 결의에 대해 1954년 총회가 이를 취소하고 회개했으며, 2000년대 들어 여러 교단이 공식적으로 그 과오를 참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1997년 교계 지도자들이 연대하여 발표한 “한국교회 참회록”은 신사참배뿐 아니라 군사독재 정권에 협력한 것까지 포괄적으로 회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9] 이처럼 지도자들이 과거의 잘못을 공적으로 시인하고 참회하는 행위는 한국교회가 화해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지난 2025년 가을에 예장 통합교단 총회를 앞두고 800여 목회자와 교인들이 교단 내의 여러 문제를 언급하면서 특히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교회가 침묵하거나 일부 동조한 것에 대한 책임에서 통합교단이 자유롭지 않음을 지적하며 철저한 회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10] 이것도 진정한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데 긍정적인 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성급한 정죄나 정치적 편가르기가 아닌 사실을 규명하고 이에 근거해 연합체 차원에서 책임 있게 대책을 논의하며 적절한 회개와 응답을 모색하는 과정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한국교회는 이념으로 인해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고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바른 방법이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경청: 화해의 실천적 통로
화해를 위한 또 하나의 핵심 과제는 대화와 경청의 회복이다. 이념 과잉과 극단화가 심화된 오늘의 한국 사회와 교회 현실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극단적 이념일수록 폐쇄성과 배타성을 강화하며, 반대 의견을 적대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바로 이 어려운 자리를 회피하지 말고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교회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신학적 자기 이해를 실제로 살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교단 연합체, 교회 연합 기구, 사무총장 협의체 등 공적 기구들이 주도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갈등을 방치하지 않으려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화해를 위한 대화는 단순한 토론이나 설득의 장이 아니라, 경청을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경청은 자신의 입장을 상대화하고, 상대의 경험과 두려움, 역사적 기억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전제한다. 야고보 사도의 권면처럼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태도 속에서, 상대가 왜 그런 정치적 입장을 갖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 대화는 비로소 적대에서 공존의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신학자요 행정가인 리처드 마우(Richard Mouw) 교수는 그의 『무례한 기독교』(원제: Uncommon Decency)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은 그 사회의 시민의 일원으로 살면서 다른 정치적 신념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견해와 생각을 예의 바르게 설명하고 개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각축하는 다원주의 사회의 광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다투기가 쉽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라고 믿는 신념을 아주 친절하고 온유하게 비일상적인 정중함을 유지할 수 있는 덕목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우 교수는 이를 신념 있는 교양(convicted civility)이라고 말한 바 있다.[11]
마우의 권고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온유와 존중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러한 태도가 교회 안에 자리 잡을 때, 한국교회는 내부 갈등을 조금씩 완화하며 화해와 통합의 가능성을 현실 속에서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5. 나가면서: 이념을 넘어 복음으로
이 글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문제 앞에서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음을 진단했다. 그 근본 원인은 신학적 분별보다 앞서 자리 잡은 역사사회학적 조건, 특히 분단과 전쟁의 기억 속에서 형성된 반공 이데올로기가 복음과 결합되며 교회의 정치적 태도를 강하게 규정해 온 데 있었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의 이념 갈등을 비판적으로 초월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공동체로 비쳐질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본 글은 십자가의 화해, 성육신적 섬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긴장, 그리고 정교분리의 신학적 재정립을 통해 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신학적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 핵심은 단순하다. 교회는 특정 이념을 따르는 집단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학적 인식이다. 정치적 정체성은 중요할 수 있으나, 결코 복음적 정체성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첫 걸음은, 복음을 특정 이념의 도구로 삼았던 잘못을 짚어보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데 있다. 또한 국가의 ‘칼의 권세’를 빌려 영적 사명을 이루려는 유혹을 내려놓고, 지배가 아닌 섬김의 방식으로 세상 가운데 존재해야 한다. 이는 정치에 대한 무책임이나 침묵이 아니라, 공공선을 추구하되 어떤 권력에도 예속되지 않는 예언자적 자유를 회복하는 길이다.
이 길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으며,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분열과 증오가 결코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품은 가장 깊은 확신이다. 한국교회는 이 종말론적 소망 안에서 낙심하지 않고, 겸손과 인내로 화해와 통합의 사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길 위에서 교회는 분열된 사회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증언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를 보여주는 기능을 존재 자체로서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주)
- 김동춘, 『전환기의 한국교회: 복음과 사회적 제자도를 위한 신학』 (서울: 대장간, 2012), 21-2.
- 정재영, “보수 개신교인의 내면세계”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 정재영 외 5인 (서울: 한국교회탐구센터 IVP, 2021), 13
- 류대영, 『새로 쓴 한국 기독교의 역사』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23), 312-3.
- 송인규, “극우적 사고: 정체, 형성 및 복음주의적 평가”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 , 161-3.
- 최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2025년 9월)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극우 성향의 비율은 약 21.8%로 전체 국민의 극우 성향의 비율(21%)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 Miroslav Volf, Exclusion and Embrace , 『배제와 포용』 박세혁 옮김 (서울: IVP, 2012), 34.
- 신원하, “정교 분리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론”, 『월간 고신』 제 599호 (2014년 8월호), 61.
- 기독교강요 제4권 20장
- 당시 최훈 한기총 대표회장, 신세원 합동 총회장, 김의환 총신대 총장 등은 참회록에서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 변호하며 동참했고 독재정권을 위해서는 3선개헌지지 운동을 하고 유신헌법 지지 성명을 발표하는 등 교회 역사가 과오와 타락으로 얼룩져 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광주 시민의 피를 딛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불의한 세력의 편에 서서 조찬기도회를 열었고, 이들의 안녕을 구하며 협력자 역할을 맡았다”고 노골적 표현으로 과오를 회개했다. 2025년 10월 15일 접속.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71101021003
- 예장통합 제110회 총회의 참회와 대전환을 촉구하는 목회자와 교인의 연서명, 기독교신문 (Gdk News) 2025년 10월 15일 http://www.gdknews.kr/news/view.php?no=18711
- Richard Mouw, Uncommon Decency: Christian Civility in an uncivil world, rev.& exp. 『무례한 기독교』, 홍병룡 옮김 (서울: IVP, 2014), 20-21.
한기윤(KICE) 원장인 신원하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B.A.)을 전공했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석사(M. Div.)를, 미국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와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석사(Th.M)와 박사(Ph. D.) 학위를 하였다.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원장으로 재직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 기독교윤리연구소(기윤실부설)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