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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당신은 AI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우리는 이제 궁금한 점이 있거나 배우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AI에게 물어보자!”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때는 검색 엔진이나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이 맡았던 역할을 AI가 서서히 차지하고 있다. 학생이 과제를 하거나 직장인이 업무를 볼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LLM(Large Language Models, 대규모 언어 모델)을 켜서 대화를 시작한다.

LLM의 강점은 바로 ‘대화’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거나 업무를 부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매체나 프로그램처럼 사용자가 직접 해답을 찾기 위해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종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니 부작용도 있다. 인터넷을 조금만 둘러봐도 AI를 향해 폭언하거나, 더 빨리 일하라고 독촉하거나, 틀린 답을 주었다고 맹렬히 비난하는 글이나 영상을 찾을 수 있다. AI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자 “아니, 그것도 못 알아들어?”라고 다그치듯 말을 건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다시”, “더 짧게”, “쓸데없는 말 빼”라고 반복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인플루언서나 유튜버는 AI를 괴롭히는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시청자들은 그런 영상을 보며 폭소를 터뜨린다.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바꾸는 AI

2026년 초, 한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생성형 AI는 흔히 생각하는 챗GPT나 제미나이, 클로드가 아니었다. 특정 정보를 찾아 주거나 업무를 대신해 주는 AI 모델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서비스가 있었다. 바로 가상의 인물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캐릭터형 AI 기능에 대중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제 사람들은 AI에게 단순히 질문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고, 위로를 구하고, 때로는 친구나 연인처럼 관계를 맺는다.

왜 사람들은 정보를 제공하고 일을 도와주는 AI보다 자신과 대화하는 AI에 더 오래 머물렀을까? 캐릭터형 AI와 소통할 때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AI는 사용자에게 좀처럼 저항하지 않는다. 사람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거나 대화를 거절할 수 있지만, AI는 대체로 사용자의 말을 받아 주고 친절하게 응답하도록 설계된다. 또한 AI와의 소통은 철저히 사용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사용자가 대화의 시작과 끝, 주제를 결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은 다시 생성하게 할 수 있다. 상대의 필요와 감정을 배려해야 하는 인간관계와 달리, AI와의 관계에서는 책임과 양보가 거의 요구되지 않는다.

AI와의 소통은 중립적이지 않다. 자신에게 맞추고 좀처럼 거절하지 않는 존재와 반복해서 소통하면 우리는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 그럴수록 나와 다른 필요를 지니고 때로는 나에게 저항하는 실제 사람을 견디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가 AI를 사용하는 동안 AI도 우리의 욕망과 언어, 관계 맺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향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신자는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AI대화할 때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AI 사용이 인류에게 가져올 영향에 대해 신학적으로 깊이 탐구하기 위해 칼뱅의 목소리를 빌려 보고자 한다. 물론 500년 전의 칼뱅에게서 AI에 관한 직접적인 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AI를 사용하는 신자의 언어와 성품을 성찰할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제공한다.

칼뱅에게 묻다: AI를 대하는 는 누구인가?

가장 먼저 칼뱅의 창조 교리를 고려해 보자. 칼뱅은 피조 세계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므로 인간에게는 그것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신실하게 돌볼 책임이 있으며 나아가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버지다운 돌보심을 묵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칼뱅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자연과 생명체 같은 ‘엄밀하고 좁은 의미에서의 피조 세계’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컴퓨터와 기계 같은 AI 언어 모델을 어떤 방식으로 대하는지는 도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추론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칼뱅이 주장했던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어떨까? 흔히 칼뱅은 다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인간이 그 자체로 어떤 대우를 받을 만한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바로 ‘그 형상’에 모든 존중과 사랑을 바쳐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AI는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나 존엄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이 AI를 정중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이는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칼뱅의 윤리 사상을 더욱 면밀하게 해석하면 그는 존중과 공경을 실천하는 행위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역시 강력하게 역설했다. 칼뱅은 구원론에서 칭의와 성화를 모두 강조하면서 특히 성화 과정에서 죄로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이 성령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새롭게 회복되는 과정에 강세를 두었다. 갈라디아서 5장 설교에서 칼뱅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향해 자라는 사람의 특징을 쾌활함, 정직함, 친절함, 인내로 묘사했다. 따라서 형상의 회복은 일상 속에서 진실을 말하고 온유하게 대화하며 친절과 인내를 베푸는 구체적인 태도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를 AI 언어 윤리와 연결해 보자. AI는 결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과 동일한 존엄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존중을 받는 대상 안에만 있지 않고 이를 실천하는 행위자 안에서도 성령을 통해 새로워진다. 우리의 행동은 상대방의 존재 가치에 대한 반응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어떤 사람을 빚어 가고 계시는지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AI 언어 윤리에서 물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은 “AI가 존중받을 만한 존재인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AI를 대하는 동안 우리는 아니, ‘나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으로 형성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인격 없는 대상과 인격적인 언어

ChatGPT로 유명한 회사인 OpenAI를 설립했으며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는 샘 올트먼은 AI 관련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AI에게 “부탁합니다”나 “감사합니다” 같은 말을 처리하는 데 수천만 달러에 준하는 연산이 소요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우리는 AI 언어 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솔깃할 수도 있다.

하지만 칼뱅이 옳다면, 신자의 언어 윤리는 그 발화를 듣거나 처리하는 객체의 가치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령님이 회복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그 대상이 AI라고 할지라도 품위를 유지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여기서 말하는 품위는 단순히 AI에게 언제나 “감사합니다”를 붙여야 한다는 형식적인 예절 규칙을 뜻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AI와 소통하는 동안 어떤 언어 습관을 익히고 있으며 그 습관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형성되고 있는가이다.

사람의 성품은 특별한 순간에 내리는 몇 번의 결정으로만 성립되지 않는다. 매일 되풀이하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행동을 통해 형성된다. 언어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날카롭게 명령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다그치고 실수를 조금도 참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러한 태도는 ‘바로 그 자신’에게 점차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AI에게만 사용했던 말투가 가족이나 친구, 교회 공동체의 일원을 대하는 태도와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남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반대로 AI를 인간과 동일한 인격적 존재로 간주하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정중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AI에게 인간과 같은 존엄성이나 도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AI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며, 인간과 상호적인 인격 관계를 맺는 주체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비인격체로서 AI를 사용하는 동안에도 그리스도를 닮은 언어 습관을 지키되 AI와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까지 흐려서는 안 된다.

AI시대, 복음으로 빚어가는 우리의 언어

AI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새롭게 세워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의 언어에는 복음이 빚어 가는 정직과 친절과 인내가 드러나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복음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느냐이다. (*)

하늘샘 박사는 한국, 영국, 미국에서 10년간 사역자로 섬겼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신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미시간 소재 칼빈신학교에서 존 칼빈의 언약 교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Ph. D.) 현재 칼빈신학교에서 신학 연구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하루, 예배의 순간>이 있으며, 개혁주의 신학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