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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인생’, ‘Jamie 맘’

 수십 년 전부터 대치동은 입시와 학원의 중심지였다. 1990년대 강남 8학군에 속했던 대치동은 전국에서 학구열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손꼽혔고, 그에 걸맞게 학원가 또한 유명했다. 그러나 당시 대치동의 명성은 대치동과 그 주변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원가의 판도는 크게 변화했다. 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 강의 플랫폼이 등장했고, 이를 통해 전국 어디서든 대치동의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대치동의 인기 강사들은 온라인 강의를 통해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연 수익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중소기업에 버금가는 강사들도 등장했다.

 이후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대치동에 또 한 번의 변화를 가져왔다. 대면 수업이 제한되는 동안, 대치동 학원들은 실시간 온라인 강의와 화상회의 앱(Zoom 등)을 활용한 일대일 및 그룹 지도를 빠르게 도입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대치동과 서울 근교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대치동식 교육 문화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제 대치동은 서울의 특정 지역을 넘어, 대입을 준비하는 전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사실상 ‘기본값’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양면성을 가진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 이상 대치동이라는 특정 지역이 양질의 강의와 자료를 독점하지 않게 되었다. 전국 어디서든 수준 높은 교육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대치동에서 형성된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문화와 그로 인해 왜곡된 교육 형태 또한 함께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개그맨 이수지가 제작한 유튜브 영상 〈Jamie 맘〉은 대치동식 사교육 문화와 학부모들의 과열된 경쟁 심리를 풍자하며 8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영상은 패러디 영상과 기사로도 확산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최근 공개된 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하루 종일 차를 몰고 여러 학원을 오가는 학부모들의 일상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좋은 교육’을 향한 열망을 넘어, ‘불안’이 만들어낸 고단한 경쟁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대치동 현상이 더 이상 특정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 현실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러한 고단한  삶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7세 고시’, 불확실한 미래가 만들어낸 조기 경쟁

 요즘 한국 사회에서 ‘7세 고시’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국·영·수뿐만 아니라 영재교육 대비, 특목고 선행학습까지 시키는 현실. 이는 부모들이 자녀를 과도한 경쟁 속으로 내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단순한 교육열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까지 ‘7세 고시’ 수준의 학습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앞으로 사회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이런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확실한 전략이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조기 사교육 열풍이나 경쟁 위주의 교육 문화만을 탓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바라봐야 한다.

 

 

미래 불확실성과 ‘안전한 길’에 대한 강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요즘 들어 그 강도가 한층 심화되었다.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AI와 자동화가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글로벌 경제 불황과 기후 변화, 팬데믹 같은 위기들이 겹치면서 기존의 ‘성공 공식’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은 최상위권 고등학생들의 대학 선택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최상위권 학생들 상당수가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 의사는 고소득과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가장 ‘확실한’ 선택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의대뿐만 아니라 치대, 약대, 수의대, 한의대 등 이른바 ‘안정적인 전문직’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내신 1등급을 받아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런 경쟁은 점점 더 이른 시기로 확산되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강박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대비하는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치동은 이러한 교육열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공간이다. 조기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치동은 이제 특정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 경쟁의 표준처럼 자리 잡고 있다.

 

경쟁이 신앙을 위협할 때: 불안과 우상의 문제

 이제 교육은 부모들에게 단순한 ‘보험’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강하게 작동한다. 문제는 이러한 조급한 경쟁이 아이들의 발달 단계와 인격 형성, 윤리적 감각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낸 과열된 경쟁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학습량의 부담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인 교육 환경이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창의성, 나아가 건강한 가치관 형성까지 저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큰 위험은, 이 경쟁이 우리의 신앙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예배를 양보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뒤로 미루며, 결국 교육과 성공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보다 더 확실한 보장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상과 불안: 바알과 아세라의 교훈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큰 신앙적 위협은 우상이었다. 구약의 역사는 우상과의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알과 아세라로 대표되는 우상은 단순한 신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산물이었다. 농경사회에서 불확실한 날씨와 기근은 사람들에게 큰 두려움이었다. 그들은 풍요를 보장받고 싶었고, 결국 바알과 아세라를 만들어 그 신들에게 기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동시에 다른 신을 섬겼다. 바알과 아세라는 하나님을 대체하는 신이 아니라, “혹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이라는 불안 속에서 생겨난 일종의 ‘보험’이었다. 인간의 불안이 깊어질수록, 우상 숭배는 더 극심해졌다. 오늘날 우리는 바알과 아세라 같은 형상을 만들어 절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은 또 다른 형태의 ‘우상’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과 성공, 안정적인 미래를 향한 끝없는 불안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또 다른 확실한 보장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드라마 “라이딩 인생”의 고선미 작가의 원작 소설

 

불안은 전염된다, 그리고 신앙을 흔든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책임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안은 전염된다. 특히 부모의 불안은 어린 자녀에게 더욱 쉽게 전달되며, 그들의 정신세계와 인격, 나아가 신앙의 기초까지 형성한다. 부모가 교육과 성공을 하나님보다 더 확실한 보장으로 여긴다면, 아이 또한 신앙보다 세상의 성공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다. 시편 127편은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1)

 하나님 없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결국 헛된 수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양다리 인생은 결코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교육과 성공을 신앙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믿고 싶다면, 결국 더 깊은 불안 속에서 갈등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끝없는 경쟁과 불안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편 127:2)

한기윤 선임 연구위원인 이춘성 박사는 20-30대 대부분을 한국 라브리(L’Abri) 간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다. 고신대에서 “포스트모던 환대 윤리 사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기독교 환대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연구”로 기독교 윤리학 Ph.D. 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