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여전히 행복의 중요한 조건일까? 『세계행복보고서 2025』는 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보고서는 가족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역(逆)U자형 곡선으로 설명한다. 가족 구성원이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행복감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4~5인 가구에서 가장 높은 삶의 만족도가 나타났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정서적 안정과 부담의 균형이 맞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그 곡선의 어디쯤에 서 있을까?
2023년 인구주택총조사가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 현재 한국 가구의 평균 인원은 2.20명, 1인 가구는 전체의 35.5%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1] 같은 시기 보건복지부는 조손가정의 증가와 이들이 취약 아동 가구의 대표 유형이 되었다는 점을 발표했다.[2] 출산율은 0.75.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언론은 “9년 만의 증가”라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이 수치들은 묻는다.“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작아지는 가족, 기울어지는 곡선
전통적인 가족 구조는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 고령화로 인한 독거노인의 증가,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과거 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오갔던 대화와 온정의 교류는 사라지고, 삶의 공동체였던 가족은 점차 기능을 상실해간다.
행복은 함께할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란다. 가족이 축소되고, 그 역할이 약화될수록 사회 전체의 행복감도 따라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정서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와 경제, 돌봄 전반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문제다.
혼자라는 선택, 고립이라는 결과
1인 가구는 자율적 삶의 방식으로 종종 포장된다. 그러나 통계는 이 선택이 반드시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조사에서는 1인 가구의 삶의 만족도가 평균보다 0.84점 낮았고, 한국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젊은 세대의 1인 가구는 ‘혼밥’과 ‘혼술’의 풍경 속에서 고립감을 깊게 경험하고 있다. 개인은 자유를 얻는 대신 관계를 잃은 것이다. 자유롭지만 외롭고, 자립했지만 불안한 것이 현대인이다.
사라진 돌봄, 커지는 결핍
조손가정의 증가는 단순히 가족 형태의 변화로 보기 어렵다. 이는 청년층이 양육과 주거의 이중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구조적 위기의 결과다. 특히 조손가정의 결핍 지수가 한부모 가정보다 높다는 통계는, 이제는 부모 세대조차 아이를 충분히 돌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해준다. 보고서는 대가족이든 친인척 동거든, 가까운 관계망이 존재할 때 일정 수준의 행복도가 회복된다고 분석한다. 혈연 기반의 돌봄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확장된 가족 개념, 즉 사회적 돌봄 체계를 논의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관계조차 사치가 된 시대
생존이 우선인 시대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 돈, 감정의 여유마저 최소화한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사회적 관계의 비용은 높아졌고, 그 부담은 개인이 떠안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 상승하는 주거비, 과도한 노동시간은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개인은 스스로를 지키는 데 급급하고, 공동체는 점점 무너진다. 현대인은 지금 ‘가족을 잃은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교회라는 새로운 가족
『세계행복보고서』는 행복을 회복하는 열쇠로 소소한 ‘관계 회복’을 제시한다. 거창한 시스템 개혁보다, 가까운 관계망을 다시 회복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회는 하나님이 만드신 새로운 ‘가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에 혈연적 가족의 파괴로 상실된 가족적이 친밀한 관계과 돌봄을 교회라는 새로운 가족이 제공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성경은 인류 최초의 가정을 하나님과 아담, 하와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신 첫 말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 이것은 가정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그러나 죄로 인해 첫 가정은 파괴되었고,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죽이고 떠도는 자가 된다(창 4).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현 주소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시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막 3:35)
교회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방식
바울은 또한 말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바울의 이 말은 교회가 단순한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으로 시작되었음을 말해준다. 가족이란 반드시 혈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 밥을 먹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고독을 돌보는 관계가 진짜 가족이다. 교회는 바로 그런 사명을 가진 자리였다.
초대교회는 이 정신을 삶으로 실천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 2:44-46) 그들은 교리에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진심으로 연결된 가족처럼 살아갔다.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울었다(롬12:15). 놀라운 건, 그렇게 살아간 교회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7) 그들은 말로 전도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 자체가 복음이었다. 그 따뜻한 관계망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오늘날은 가족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혼밥, 혼술, 혼자 사는 삶이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하지만 그 고독 뒤에는 여전히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다시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말보다 삶으로 증명하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이라는 것을 조용히, 꾸준히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 아닐까?
각주
1. https://kostat.go.kr/board.es?act=view&bid=11747&list_no=432395&mid=a20108010000&nPage=1&ref_bid=11742%2C11743%2C11744%2C11745%2C11746%2C11747%2C11748%2C11749%2C11773%2C11774%2C11750&tag=
2. https://www.mohw.go.kr/board.es?act=view&bid=0027&list_no=1481860&mid=a10503010100&nPage=1&tag=&utm_source=chatgpt.com

한기윤 선임 연구위원인 이춘성 박사는 대학에서 고분자 공학을 전공한 후에 C. S. 루이스와 함께 20세기 기독교 변증을 대표하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10년 넘게 사역자로 일하였다. 또한 한국과 영국 라브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변증과 세계관을 가르쳤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를 하였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칼빈주의 직업 윤리”로 신학 석사(Th. M.), 고신대 일반대학원에서 신원하 교수의 지도 아래 “포스트모던 환대 윤리 사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기독교 환대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연구”로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 공저로는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1, 2, 3권(ivp)”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