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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창세기 2장 18~25절, 창세기 3장 15~24절, 디모데전서 2장 8~12절

 

들어가며: 깨어지는 현대 가정, 하나님의 은혜만이 희망이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서로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해체된 가정, 혹은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 남남이나 원수처럼 지내는 가정입니다. 국내는 아직 소수지만, 외국 드라마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성 커플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마치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그런 흐름을 부인하는 건 케케묵은 사고라고 인식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급속한 변화가 보입니다. 

2024년 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 의하면, 젊은 세대일수록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1] 젊은 세대는 더이상 결혼도, 출산도 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 인간이 부모를 통해 태어나 성장하고, 남녀가 함께 결혼해서 독립한 가정을 꾸리고, 다시 다음 세대를 낳아 양육하는 것이 생애주기의 과업이라는 생각도 희미해졌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닥을 찍고 있는 출산율과 그로 인한 국가 경쟁력과 존립 위기입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 성도된 우리는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의 원래 뜻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가정을 창조하고 설계하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설계도와 매뉴얼을 따를 때 비로소 가정이 본래의 기능대로 작동합니다. 성경은 죄로 인해 가정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확하게 직시합니다. 동시에 무너진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는 약속과 소망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교회가 탄생한 그리스-로마 사회 역시 오늘날처럼 결혼과 혈연으로 맺어진 가정이 무너지고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물을 회복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연합되고, 가정이 회복되며, 종과 자유인의 관계가 회복되는 비전을 그려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의 원그림을 배우고, 죄로 깨어진 우리의 가정과 관계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기를 바랍니다.  

               

1. 창조: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의 원그림

돕는 배필, ‘여자’를 창조하다

우리는 먼저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설계도와 원그림을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는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말씀합니다. 창세기 1장은 창조의 결과에 대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말합니다. 하지만 2장 18절에 와서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히, לֹא־טֹ֛וב, 로 토브)라고 합니다. 개인주의와 비혼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람이 혼자 사는 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상호관계 속에 일체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담이 홀로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창조하기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계획을 실행하실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먼저 각종 동물과 새들을 지으시고 아담에게 일거리를 맡기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들짐승들, 가축들, 새들, 생물들의 종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가서 이름을 짓도록 하는데, 아담이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본질을 파악한다,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고, 뭍은 땅이라, 물을 바다라 부르시며 창조 세계의 통치권을 확립하신 것처럼, 아담에게 생물들의 이름을 부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땅의 생물들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게 하십니다. 

이어지는 20절은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말합니다. 아담이 모든 생물들에게 이름을 주었는데 그들 중에는 아담에게 맞는 “돕는 배필”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다 짝이 있는데, 막상 자신에게는 짝이 될 협력자가 없음을 깨닫도록 합니다. 

이 본문을 공부하다 성도님 한 분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 왜 처음부터 여자를 창조해서 붙여주시지 않고, 뜸을 들이셨을까요?” 

아마 처음부터 하와를 주셨다면, 아담은 아내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아담이 자신에게 협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타이밍에 하나님은 딱 맞는 파트너를 붙여주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여성을 창조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창 2:21-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먼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십니다. 이 잠은 자연스러운 잠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을 “마취”시키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십니다. 그 다음,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십니다. “만드시고”는 예술가가 고유한 작품을 특별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여자는 남성과 나란히 있는 존재이고,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주석가 매튜 헨리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자는 남자 위에 군림하도록 그의 머리뼈로 만들지 않았고, 남자에게 짓밟히도록 그의 발로 만들지도 않았다. 그와 동등하도록 그의 옆구리에서, 보호를 받도록 그의 팔 아래에서, 사랑을 받도록 그의 가슴 가까이에서 지음을 받았다… (그 결과) 아담은 (갈빗대를) 잃은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배필을 얻게 되었다.”[2]

그렇게 창조하신 여자를 하나님은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십니다. 그 때 아담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인류 최초의 세레나데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드디어 나타났구나! 이는 내 뼈중의 뼈, 내 살 중의 살!”이라 번역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불러줍니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여자(이솨, אשּׁה)라는 말 자체가 남자(이쉬, אישׁ)에게서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여성 신학자 마르바 던은 남자(이쉬)의 입에서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와서 여자가 “이솨아~”가 되었다 농담을 합니다. 

하나님 가정을 설계하시다

창세기 2장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설계도를 말씀해줍니다. 첫째, 남자는 가정의 제사장이자 언약의 대표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 그를 에덴에 두시고 동산을 경작하고 지킬 사명을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성소의 원형입니다.[4] 아담은 그 성소를 관리하는 제사장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않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아담이 대표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이 명령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언약의 대표로서 아담이 맡은 영적 책임입니다.

둘째,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a helper suitable, עֵ֖זֶר כְּנֶגְדֹּֽו,에제르 케네그도)의 “에제르”는 구약에서 19번의 사례 중에서 16번이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는 것처럼, 여성은 남자를 돕도록 창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suitable (NIV, 적합한), corresponding (NASB, 알맞은, 대응하는)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네그도(원, 네게드)는 “동등하고 적절한”의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Helper라기보다 Partner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여성은 남성을 돕는 동등하고 적합한 파트너이고, 여성의 도움은 부속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기여입니다.[5]

셋째, 부부의 견고한 연합이 가정의 기초입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의 핵심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이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해,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결혼해서도 부모에게 매여 부모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경제적으로 의존하면, 부부가 온전한 연합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 남자입니까? 남자가 떠나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교 문화에서는 여자가 집을 떠나 시집온다고 그러지요. 하지만,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합니다. 안 떠나면 마마보이가 됩니다. 마마보이가 되면 부부의 연합은 물건너가고, 남편이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책임있는 역할도 못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 결혼시키면 잘 떠나보내셔야 합니다. 부부의 연합을 위해 아내는 남편보다 자녀를 우선시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자녀가 어릴 때에는 키운다고, 학령기가 되면 공부시킨다고, 입시철이 되면 대학 보낸다고, 결혼 시즌에는 장가보내고 시집 보낸다고, 결혼시키고 난 뒤에는 에프터 서비스한다면서 남편은 평생 뒷전이면 곤란합니다. 자녀들에게 엄마에게는 아빠와의 관계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은 더할 수 없는 안정감을 얻고, 자신들도 자라서 건강한 가정을 세웁니다. 

 

2. 타락과 구속: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을 길

타락의 순간에 보여주신 회복의 길

우리는 또한 타락으로 인한 가정의 왜곡을 직시하고 성경 말씀이 제시하는 회복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원그림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왜곡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타락의 순간에 회복의 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제일 먼저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하시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뱀, 곧 사탄의 머리를 밟고 모든 죄의 저주를 되돌리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동시에 이말씀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언약의 자녀들을 통해 죄의 저주를 되돌릴 회복의 소망이 계속 이어질 것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입니다. 파라오의 명령으로 모든 이스라엘 남자 아이들이 다 나일강에 던져져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거역한 아므람과 요게벳의 믿음과 용기로 인해 모세가 구원을 받고,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됩니다. 

자녀의 탄생은 소망이고 축복

사실 여성에게는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고 고통입니다. 오늘날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고통보다 여성의 자아실현이 더 우선이고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관점은 다릅니다. 죄로 망가진 세상이 회복되는 약속이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후손입니다. 사사시대의 어둠을 뚫고 새 시대를 연 사무엘도 한나의 기도를 통해 태어났고, 예수님도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고통보다 더 큰 축복과 소망이 담긴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는데 미국은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Mother’s day)로 지킵니다. 유학시절 어머니 주일날, 교회의 찬양 인도자가 어머니들을 다 일어서라며 말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경외와 감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온 성도들이 어머니들에게 박수를 쳤습니다.

하나님이 죄로 망가진 우리에게 회복의 소망을 주시는 첫 번째가 바로 ‘여자의 후손,’ 즉 언약의 자녀들입니다. 경건한 믿음의 자녀들을 낳고 키우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 자녀들을 통해 죄의 저주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회복의 소망으로 역전됩니다. 이 약속과 소망을 붙들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수고를 믿음으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남과 여의 뒤틀린관계 

또한 성경은 죄로 인해 뒤틀린 남성과 여성의 관계와 그 회복의 방편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하와에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리 것이니라” 하십니다(창 3:16). 여기서 원한다는 히브리어 테슈카(תְּשׁ֣וּקָ)는 ‘손을 뻗는다, 삼킨다’는 뜻입니다. 창 4:7에서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할 때 동일한 단어가 사용됩니다. 타락한 여성은 남성에게 손을 뻗어 삼키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뜻대로 남편을 조종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왜그렇까요. 여자는 힘이 없기 때문에 교묘하게 뒤에서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반면 남자는 힘으로 여자를 누르려고 합니다. 동등한 파트너였던 남자와 여자가 타락 이후에는 여성은 남성을 조종하고, 남성은 여성을 힘으로 지배하는 관계로 왜곡된 것입니다. 

결혼 초에 저희는 부부싸움을 하면 주로 제가 화가 나서 언성을 높이고, 집사람은 말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편이었습니다. 왜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들은 화를 벌컥 낼까요? 말로 아내에게 못 당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남자들은 본성상 힘으로 제압하려는 폭군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자는 억울한 희생자이기만 한 걸까요? 아닙니다. 여자는 힘으로는 못 이기지만, 대부분 말로는 남자를 이깁니다. 사실 여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맘대로 남자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자가 힘으로 여자를 누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여자가 자기 뜻대로 남자를 조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원그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타락으로 인한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말씀의 길을 제시합니다.

다시 제자리로

   먼저, 남성에 대한 명령입니다. 딤전 2장 8절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분노와 다툼이 없이라는 말은 남자의 폭력성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대신 손을 들고 기도하라 명령합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손을 들어 백성들을 축복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남성들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손을 들어 축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흔히 기도는 여성의 몫이라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기도는 일차적으로 아버지의 몫입니다. 기도하는 남편, 자녀를 축복하는 아버지는 폭력성을 극복하고 영적 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갖도록 남편의 권위를 세워줘야 합니다. 자녀 앞에서 아빠 흉을 보지 말고, 도리어 자녀가 아빠의 존재를 무겁게 여기고, 아빠의 축복과 기도를 사모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성들에 대해서는 무엇을 명령합니까? 딤전2:11절은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말합니다. 말로 남자를 이기고 조종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늘 겸손히 배우라는 겁니다. 딤전 2:12절은 “여성이 남자를 가르치거나 주관하지 말고 조용하라” 명합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조종하려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성이 작용하는 방향을 거슬러서, 여성은 말을 절제하고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계속 배우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창세기 3장과 딤전 2장은 하나님은 타락으로 하나님의 원그림을 상실한 가정이 회복되는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먼저, 복음의 약속 안에서 경건한 믿음의 자녀를 낳고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지게 하고, 둘째, 남성이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아내와 자녀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고, 셋째, 여성이 가정의 머리가 되어 남편을 조정하고 휘두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오늘 우리 시대를 거스르는 명령입니다. 몸에 쉽게 베이지 않기 때문에, 훈련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필요합니다. 

 

나가며: 교회는 가정의 원그림과 회복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설계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어떻게 원그림대로 가정이 회복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성도를 구비시켜야 합니다. 최근 결혼한 젊은 세대들에게 가정을 바로 세우고 싶은 열망이 강한 것을 발견합니다.[6] 가정이 무너지고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가치가 혼란스러운 시대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건강한 가정이 세우져야 합니다. 단지 젊은 세대는 어떻게 가정을 세우고 자녀를 믿음으로 키울지 구체적인 길을 모를 뿐입니다. 교회가 그런 부부들과 가정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교회 외에는 세상 어디에서도 가정의 원그림과 회복의 소망에 대해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경적인 가정을 세우는 체계적 훈련으로 <가정세움학교>를 교회에 처음 도입하려 할 때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는 시대에, <가정세움학교>라는 표현 자체가 전통적인 가정만 강조하여, 1인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이혼 가정, 사별한 가정, 짝믿음 가정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를 낳는다는 항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모든 형태의 깨어진 가정들을 품고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이든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원그림을 이해하고, 회복의 소망과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적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1인가정, 이혼가정, 미혼 청년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없고, 구체적인 비전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복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다릅니다. 누구나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말씀 앞에 나와서, 작은 걸음이라도 순종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복음의 소망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다면 반드시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갈6:9). 가정이 깨어지고, 혼란스러운 위기의 한국 사회에 만물을 회복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각주

  1.  https://hrcopinion.co.kr/archives/31383 20대 여성의 경우 무려 70%가 동성결혼 찬성
  2. M. Henry, A Commentary on the Holy Bible (London: Marshall Brother, n.d). 1:12.
  3. Marva J. Dawn, In the Beginning, God (IVP, Downers Grove, IL, 2009), 김순현 옮김,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배웠다> (IVP, 2013), 156.
  4. 에덴을 성소의 원형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Bruce Waltke, Genesis: A Commentary (Zondervan, Grand Rapids, 2001), 김경열 옮김 <창세기 주석> (새물결플러스, 2018), 144, John H. Walton, Genesis: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Zondervan, Grand Rapids, 2001), 김일우, 전광규 옮김, <NIV 적용주석 창세기> (성서유니온, 2007  256-57 참조.
  5. Bruce Waltke, <창세기 주석>, 148-149.
  6. 한국IFCJ 가정의 힘< 개신교인의 생애주기 교육 및 가정 신앙교육 조사 보고서> 전국 개신교인 2000명 대상, 2024년 4월, 20~40대가 가장 받고 싶은 교육은 결혼과 가정에 관한 교육이었다.

배준완 목사는 청년들과 다음세대를 새우는 사역에 오래동안 헌신했고, 현재 서울서문교회 담임목사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고 있다. 서강대학교에서 수학(BS)과 철학(BA), 서양사(MA)를,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M.Div),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기독교 교육학(Th.M)을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