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하는 탈종교화 현상
지난 6월 9일,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는 2010년대와 2020년대를 비교하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종교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전 세계 힌두교인의 99%, 불교인의 98%, 무슬림의 59%, 그리고 기타 종교인의 65%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무종교인(religiously unaffiliated people), 즉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78% 또한 이곳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이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곳이라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의미를 지닌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배경은 의외로 분명하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높은 무종교인 비율은 무엇보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무종교인이 무려 67%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무종교인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 더해졌다. 특히 증가율을 보면, 호주가 17.5%, 뉴질랜드가 7.2%로 가장 높았는데, 이들은 서구 문화권에 더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6.9%(베트남 5.5%, 일본 5.3%)로 아시아권에서는 무종교인이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나라였다.
이러한 흐름은 사실 몇 해 전부터 국내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어 왔다. 2023년 1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가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신앙의식 조사’에 따르면, 종교인의 비율은 직전 조사였던 2017년보다 10%나 줄어 역대 최저치인 36.6%를 기록했다. 결국 무종교인이 과반을 넘어 60%에 달하게 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무종교인의 약 3분의 1이 과거에는 종교를 가졌던 사람들이며, 그중 3분의 2가 개신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퓨리서치의 보고서는 여기에 덧붙여, 불교 또한 무종교로 이탈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는 한국 사회에서 기성 종교의 영향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탈기성종교 현상을 두고,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예배와 모임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머지않아 대면 활동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회복될 것이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물론 코로나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기성종교 현상은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어 온 세속화의 흐름이었다는 것이 대다수 종교학자들의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세속화가 가속되면서 기성 종교의 공적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고, 종교는 점점 더 개인의 내밀한 차원으로 스며들었다. 그 결과 종교 모임의 형태 역시 기존의 기관이나 제도화된 공동체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영성을 추구하는 ‘개인화된 영성(individualized spirituality)’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러한 흐름을 단지 한층 더 빠르게 밀어붙이는 계기에 지나지 않았다.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성해영 교수는 이미 2016년 어느 학술 모임에서 “종교를 넘어선 종교와 새로운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이듬해, 그는 그 발표문을 다듬어 “무종교의 종교 개념과 새로운 종교성”이라는 논문으로 내놓았다. 성 교수는 이 발표와 논문에서, 한국 사회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속적 신비주의(secular mysticism)’에 주목했다. 그것은 기성 종교가 말하는 ‘종교적 신비주의’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 즉, 과거에는 예배나 의례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던 깊은 감동과 경이로움을, 이제는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른 활동들 속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Spiritual But Not Religious(SBNR)’, 곧 종교는 아니되 영성을 갈망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SBNR’이란 말 그대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이란 뜻이다. 이 표현은 2000년에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얼랜스(Sven Erlandson)가 그의 책 제목으로 처음 사용하였고, 다음 해인 2001년에 로버트 풀러(Robert C. Fuller)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교회 밖으로 나간 미국 이해하기”(Spiritual, but not Religious: Understanding unchurched America)라는 책을 통해 학문적으로 더 자세히 다루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 두 저자의 주장은 미국의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제도적 교회 밖에서 영적인 갈망을 채우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이 현상은 종교적(Religious)이란 단어보다는 영적(Spiritual)이란 단어로 포착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교회라는 공동체적인 의미보다는 제도나 공동체 밖의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달리 말해 공동체와 제도를 떠올리는 종교와 연관된 것이 교리, 전통이라면, 개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성과 연관된 것은 개인의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단월드’, ‘마음 수련’, ‘선 수행’, ‘요가’, ‘템플 스테이’, ‘타로 카페’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가나안 성도’ 현상도 SBNR 영성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교회에 대한 윤리적 실망 때문에, 신자들이 교회를 이탈하는 탈 교회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종교의 공적인 역할이 약화되면서 현대인은 종교라는 기존의 제도 교회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결과 개인은 자기에게 만족을 주는 교회를 취사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이전의 종교가 제공했던 신비적 체험에 대한 개인적 필요를 SBNR식의 ‘영성’이 대신 충족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되고 있는 무종교인의 비율의 증가가 이를 증명한다.
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의 회복
끝으로 교회가 SBNR 영성에 대해서 시급하게 성찰해 봐야할 점을 하나 언급하고 이번 리뷰을 마치려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설교 시간이나 신앙 상담 중에, 하물며 신학교의 강의실에서 목사와 신학자들이 쓰는 ‘영성’이란 말을 성도들과 신학생들은 전혀 다른 맥락과 의미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교회가 처한 여러 위기 중 하나는 기독교 신앙과 믿음의 내용, 교리와 신앙 지식, 예배와 삶의 전통을 신자 개인의 신비적 체험과 깊숙하게 연결시키지 못하고 이것들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속의 흐름 속에서 개인화된 영성, 세속적인 영성이 아닌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통합되고 신비와 합리성이 결합된 기독교의 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을 회복하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현대 교회가 직면한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한기윤 선임 연구위원인 이춘성 박사는 대학에서 고분자 공학을 전공한 후에 20세기 기독교 변증을 대표하는 프란시스 쉐퍼 박사가 세운 라브리 공동체(L’Abri Fellowship)에서 10년 넘게 사역자로 일하면서 C. S. 루이스와 쉐퍼 등의 기독교 변증가와 기독교 철학을 공부하였다. 또한 한국과 영국 라브리와 국제 라브리 회원으로 공동체를 찾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환대 사역과 기독교 변증과 세계관을 가르쳤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석사(M. Div.)를 하였으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칼빈주의 직업 윤리”로 신학 석사(Th. M.), 고신대 일반대학원에서 신원하 교수의 지도 아래 “포스트모던 환대 윤리 사상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기독교 환대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연구”로 박사(Ph.D.)를 하였다. 현재 분당우리교회 협동 목사, 한기윤 사무국장으로 섬기고 있다. 공저로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1, 2, 3권(ivp)”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