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들어가면서: 미국의 대이란 전쟁과 지구촌의 불안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며 대규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크게 두 가지 명분과 목적을 내세웠다. 그것은 대체로 미국과 중동의 미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위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고 동시에 독재 정권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이란 국민이 자유와 인권을 찾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방적 방어 전쟁이자 인도적 개입 전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 연합군은 이란의 정치 지도자들과 군 수뇌부가 집결한 장소를 정밀 타격했고, 그 결과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하여 국방장관, 혁명수비대 사령관, 정보기관 수장 등이 즉사했다. 이란의 주요 군사 시설과 핵무기 개발 시설 역시 엄청난 파괴를 입었다.1)

막강한 미국이 주도한 전쟁은 조기에 종식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쟁이 현재 4주째로 접어들었다. 이란은 이스라엘과 중동 곳곳에 있는 미군 군사시설에 미사일과 드론으로 반격하며 결사항전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주요 우방국들은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 지구촌의 여론 또한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에 우호적이지 않은데, 이는 이 전쟁의 정당성에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기독교회는 이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기도하며 대응해야 할 것인가?

본론1. 정당한 전쟁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

교회 역사를 통해 보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주류는 전통적으로 정당한 전쟁이 존재함을 인정하며 소칭 ‘정당전쟁론(Just War Theory)’을 견지하고 가르쳐 왔다. 이것은 전쟁이 엄격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면 그 전쟁의 개시와 수행이 정당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이 이론은 기독교회의 주류 입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계승되어 왔다. 초대교회 교부이자 위대한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전쟁이 선량한 국민과 사회를 방어하고 불의한 침략을 응징하며 사회 질서와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정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종교개혁기의 루터와 칼빈을 거쳐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지지받고 발전되어 왔다. 이 이론은 ‘전쟁 개시의 정당성’과 ‘전쟁 수행의 정당성’에 해당하는 여덟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

전쟁 개시의 정당성‘ (jus ad bellum, justice toward war)

전쟁 개시의 정당성은 다음의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정당한 원인(just cause)’이다. 만약 국가가 부당한 공격을 당했을 때 자국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임한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확실하고 충분한 적국의 공격 위협이 있을 경우, 임박한 공격으로부터 미리 방어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하는 선제공격에 대해서도 정당한 원인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만만찮다. 둘째, ‘정당한 의도(just intent)’가 필요하다. 전쟁을 하는 목적이 복수와 상대방의 파멸이 아니라 상실된 평화를 회복하는 데 있어야 한다. 국민의 분노를 달래거나 전략적으로 유리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혹은 이데올로기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셋째, ‘최후 수단(the last resort)’으로 행해져야 한다. 전쟁은 모든 외교적 방편을 강구한 뒤에도 평화를 회복할 수 없을 때에 수행되어야만 정당한 대응이 될 수 있다. 넷째, 합법적인 권위(lawful authority)를 지닌 인물이나 정부에 의해 공적으로 선포(official declaration)되어야 한다. 즉, 전쟁은 어떤 한 권위 있는 지도자 혹은 지도층 그룹이나 집단에 의해 시작될 수 없으며, 국민의 대표인 법적 권위를 가진 기관의 동의를 거쳐 합법적인 정부가 선포해야 한다. 다섯째, 전쟁을 수행할 때는 상당한 정도의 ‘승리 가능성(feasibility of victory)’이 있어야 한다.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발생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능가하는 선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 행위의 정당성‘ (jus in bello, justice in war)

전쟁 행위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도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여섯째, 전쟁은 ‘제한된 목표(limited objectives)’에 국한되어야 한다. 사회간접자본을 파괴하거나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시설과 자원까지 파괴해서는 안 된다. 일곱째, 공격은 받은 피해에 비례하여(proportionate means) 가해져야 하며 그 이상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 여덟째, 민간인을 공격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noncombatant immunity). 전투원과 지휘관 이외의 그 어떤 민간인이나 부상병, 포로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론2. ‘정당한 원인의 범위와 예방적 전쟁 논란

앞에서 정당전쟁의 요건 8 가지를 간략하게 정리했는데 그 최우선 요건이 바로 ‘정당한 원인(just cause)’이다. 정당한 원인이란 자국이 부당한 공격을 당하여 위험에 처했을 때, 자국 국민의 안위와 나라의 영토 및 주권을 지키고 방어하기 위해 반격하는 전쟁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명한 정치학자인 마이클 월쩌는 어떤 국가가 자국에 대한 외부의 공격이 임박했을 경우 “임박한 위험에 대한 정당한 공포감”(a just fear of imminent danger)도 전쟁의 정당한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3) 이에 따라 위험에 처한 국가가 예방적 차원에서 먼저 선제공격하는 ‘예방적 전쟁’을 개시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과 이론은 제기된 초기에는 다분히 위험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계나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어왔다.

예방적 전쟁의 정당성 대두

현대에 와서 ‘예방적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가 상승한 중요한 이유는 현대전쟁에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가 사용될 개연성이 높아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엄청난 희생과 비극을 만약 사전에 예방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선제공격이라고 하더라도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국가가 침공을 받고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뒤에야 반격하는 방어적 전쟁만을 ‘정당한 원인(just cause)’으로 고집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무책임한 사고이고 태도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방적 전쟁(preventive war)도 정당한 전쟁이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방적 전쟁론의 내재적 위험성

일부 학자들은 선제타격이나 예방적 전쟁을 일종의 ‘적은 악’(the lesser evil)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국가가 외부의 침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타국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악이지만 이를 통해 대량살상무기 혹은 핵무기 피격에 의한 엄청난 참사 발생이라는 큰 악을 막는 ‘차악’ 즉 덜한 악을 행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선제공격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주장과 이론은 군사 강대국들로 하여금 전쟁을 자국의 패권과 정권의 유지를 위해 악용할 소지를 낳게 할 수 있다. 만약 어느 강대국 정권이 현재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을 경우,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싸워도 승리가 예견되는 적성 국가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권의 국면 전환과 아울러 예상되는 나라의 이익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방적 차원의 전쟁을 시작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4)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대이란 선제 공습을 급작스레 개시하면서 이것이 자국의 미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예방적 차원으로 수행하는 전쟁임을 강변한 바 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내세운 전쟁의 원인과 목표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욱 명확히 분석되고 드러날 것이지만 이미 미국의 조 켄트(Joe Kent) 국가대테러센터(NCTC) 국장은 이란이 미국에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고 공개적으로 양심선언처럼 증언한 바 있다. 켄트 국장은 미국의 대(對)이란 전쟁이 중동 지역에서 반미와 반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정권인 이란 정권을 제거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강한 제안과 전방위적인 압력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하여 감행한 것임을 시사했다.

조너던 파월(Jonathan Powell) 영국 국가안보보좌관도 오만이 중재한 핵감축 협상에서 이란이 전쟁 발발 전날까지도 협상장에서 고농축 우라늄(HEU) 전량을 희석하고 영구적인 핵 합의를 수용한다는 제안을 미국에 내놓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란은 사실상 핵 포기 타결 직전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을 단행했다. 이런 증언들은 ‘선제적 방어 공격’의 명분이 언제든지 힘을 가진 전쟁 당사자의 은폐된 패권적 욕망이나 정치적 욕망을 달성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뒷받침한다.5)

이번 대이란 전쟁의 실제 동기가 핵 억제를 통한 지구촌과 중동의 평화였는지 아니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닌 다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인지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좀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미 국제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전쟁은 중동에서 반미 정권 핵심 세력 무력화, ,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 강화, 중국의 영향력 축소라는 다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 분석도 앞으로 진위가 판단되겠지만, 집단이기심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예방적 선제공격 이론은 언제나 악용될 소지가 높은 위험한 이론이 아닐 수 없어서 절차적 정당성을 철저히 확보하여 논의하고 결정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이란 전쟁을 통해 목격하는 사실은, 이번 전쟁이 국가적 시스템의 산물이라기보다 트럼프라는 한 개인의 특성이 강하게 투영된 이른바 ‘트럼피즘(Trumpism)’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트럼피즘은 전통적인 동맹이나 국제 규범을 존중하기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압도적 무력을 협상의 도구로 삼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거래적 패권주의’의 양상을 띤다. 선제공격과 예방적 전쟁 역시 객관적이고 집단적인 공감과 판단이 뒷받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이란 공습은 외교적 해결이 성사되는 최종 단계에서 단행된 트럼프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본래 예방적 전쟁은 모든 외교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평화적 수단을 끝까지 강구한 뒤에야 비로소 고려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나, 이번 공습은 도리어 외교적 성사를 앞둔 시점에 이를 무력화하며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막강한 군사력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통치자들은 그 힘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예방적 전쟁론에는 이러한 위험이 내재해 있음을 직시하고 이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로 검토하며 접근해야 한다.6)

본론3: 예방적 전쟁과 군사주의(militarism) 신앙: 신학적 분석

그러면 교회는 예방적 전쟁과 선제타격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성찰해야 할 것인가? 교회는 이러한 논리가 초래할 수 있는 다른 영적 차원의 결과를 주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압도적인 군사력만이 국가의 안보를 지키고 미래의 안녕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상을 조장하게 된다는 점이다.

군사주의’(militarism)라는 유사종교적 신앙 배태

오늘날 국제 정치와 대외 관계를 지배하는 논리는 다분히 힘에 의한 정치와 외교이다.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강력한 군사력과 무기를 지닌 강대국과 최고 권력자들은 힘으로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려 하며, 때로는 이 힘으로 적성 국가를 길들이거나 심지어 정권을 교체할 수도 있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강력한 군사력이 그것을 실제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수단이 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막강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이 자국을 지켜줄 것이라는 사고는 의식화되면서 점점 신앙의 수준으로 변모하여 자리 잡을 수 있다. 국가가 현대의 첨단 무기와 강력한 국방력을 지니게 되면 어떤 외부 세력이 자국과 자신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자국의 안보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무기와 군사력이 자국의 미래와 안녕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기를 신뢰하고 무력에 의탁하는 것은 일종의 신앙인 ‘군사주의(militarism)’이다. 오랫동안 특히 핵무기를 사용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런 군사주의는 거의 신뢰와 경배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마치 유사종교와 같은 권능을 발휘하고 있다.7)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소련과 미국을 양대 축으로 한 냉전 체제 가운데서 많은 국가들이 막대한 예산을 무기 개발에 할애하며 군비 확충에 열중해 왔다. 그것은 핵무기와 같은 거대한 힘을 가진 무기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지구촌 국가들이 일종의 종교와 같이 무기를 숭배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소련의 군비 확충에 대한 지구촌의 우려가 증가하고 세계 평화 추구라는 지구촌의 요구가 고조됨에 따라 미국과 소련은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상호 신무기 개발을 동결하고 기존 무기를 감축하는 협상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기 감축을 이행해 왔다. 이 일은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에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지속되었고 실제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9·11 테러 사건을 당하고 난 뒤, 미국은 테러로부터 자국을 방위한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려고 하면서 미사일 방어체제 이른바 MD(Missile Defense) 개발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추진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1972년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 요격 미사일, 즉 ABM(Anti-Ballistic Missile) 협정을 탈퇴하고 MD 체제를 구축했다. 즉, 미국은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이라크, 북한, 이란과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s)’의 예기치 못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최첨단 탄도탄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여 구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명분으로 이 길로 나섰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확보하여 자국을 보호하고 또 자국을 위협하는 세력을 견제하고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실행에 옮겼다. 여기에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명실상부하게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도약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스도인의 각성과 대응

기독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군사주의적 인식이 얼마나 반기독교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신학자 클라크 채프만(Clarke Chapman) 박사는 자국의 안위와 미래를 무력에 의지하는 군사주의가 일종의 이단 종교와 다름없으며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8) 왜냐하면 군사주의는 무기가 자신의 안전만이 아니라 자국이 달성하려는 목적에 이르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낳게 함으로써 하나님 대신 군사력과 무기를 의지하는 삶과 행위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은 군사주의적 의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채프만 박사는 사실 미국도 그동안 자국의 안전을 군사력에 의지하는 군사주의적 행태를 보여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엄청난 경제력으로 신무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군사력의 우위를 통해 자국의 안전뿐만 아니라 세계 주도권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태도는 일종의 무신(武神) 숭배 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군사주의적 사고가 지구촌에 팽배해지면 세상은 점점 무기에 자국의 안보를 담보하는 신앙이 주도하고 결과적으로 전쟁을 통해 평화를 이루려는 행위가 빈번해질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세계 교회와 한국교회는 이 시대에 도도히 흐르는 힘의 논리와 결탁된 군사주의(militarism)를 위험한 이단이나 유사종교와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 신앙이 지구촌과 한반도에 득세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 세상의 평화와 자유는 무기와 군사력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확산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는 것임을 그리스도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약 4년 전 우리 정치권에서 대두되었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국가의 공식 정책으로 거론되거나 자리 잡는 일을 염려하고 경계해야 한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선제 타격할 경우 양국 모두 회복 불가능한 파멸적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많은 학자가 제기한 바 있다. 이를 무겁게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선제타격론을 채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이른바 ‘3축 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힌 내용으로, 첫째는 핵미사일 발사 징후가 확실할 때 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하는 ‘킬체인(Kill Chain)’이며, 둘째는 북한의 미사일을 정밀하게 요격하는 방어체계 구축이다. 나아가 북한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시키는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이를 실현하려면 우리나라는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을 지출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결과는 국민들이 국가의 안전과 미래를 오직 압도적 군사력에만 의지하는 인식을 마치 신앙처럼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하나님보다 무기를 더 신뢰하는 유사종교적 신앙이 대한민국에 확산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가면서: 중동전쟁 종식과 평화를 위한 교회의 태도와 책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평화이다(엡 6:15, 23).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사 9:6; 엡 2:14)’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셨다(마 5:9). 현재 중동에서는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 시설과 전투기, 전투함뿐만 아니라 민간 시설과 가스, 원유 시설들도 엄청나게 공습하고 파괴했다. 어린아이 175명을 비롯한 많은 민간인이 폭격으로 죽었다. 이란은 이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 전쟁의 화염과 파편이 난무한 현실에서 우리 기독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첫째, 이 땅의 평화는 압도적 무력으로 담보되거나 군사적 지배와 통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무엇보다 힘을 지닌 국가가 더 인내하고 포용하며 양보하는 정치를 하도록 국제사회는 권고하고 집단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시각을 국제사회에 천명하고 외치며 지구촌의 평화가 힘과 군사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세상과 사회에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이와 함께 성도들에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런 가치를 고양하는 삶의 자세를 더욱 가르치고 설교해야 한다.

둘째, 교회와 성도들은 현재 진행되는 중동에서의 이란 전쟁과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속히 종식되고 그 나라와 무고한 시민들에게 상실된 평화로운 일상이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하나님이 마치 자신들의 전쟁의 키를 쥐고 있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마음과 의식을 움직여 더 이상 파괴와 증오, 보복전쟁이라는 악순환의 길을 가지 않도록 교회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가 북한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도 남을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니고 유지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군사주의적 의식이 우리나라와 한국교회에 팽배하지 않도록 이를 경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나라의 안전과 평화는 압도적 무기에 달려 있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더욱 지구촌의 평화와 조국의 안보를 위해 기도하고 위정자들이 하나님과 무고한 국민을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


주)

  1. https://www.koreadaily.com/article/20260228200732140
  2. 신원하, 『전쟁과 정치: 정의와 평화를 향한 기독교 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140. 특히 5장 “정당전쟁과 평화주의,” pp. 138-158을 참고할 것.
  3. Michael Walzer, Just and Unjust Wars: Moral Argument With Historical Illustration, 2nd Ed. (New York: Basic Books, Inc. 1977), 77.
  4. 신원하, 『전쟁과 정치』, 217-220.
  5. https://www.djournal.co.kr/news/article.html?no=79372
  6. Pedro Abramovay, “The Clash of Hypocrisies,” Foreign Policy, (March 6, 2026), https://foreignpolicy.com/2026/03/06/trump-orwell-hypocrisy-democracy-fascism-imperialism-multilateralism/
  7. Clarke Chapman, Facing the Nuclear Heresy: A Call to Reformation (Elgin, Ill.: Brethren Press, 1986), 9.
  8. Chapman, Facing the Nuclear Heresy, 79.

한기윤(KICE) 원장인 신원하 박사는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B.A.)을 전공했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석사(M. Div.)를, 미국 칼빈 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와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석사(Th.M)와 박사(Ph. D.) 학위를 하였다.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30년 동안 기독교윤리학 교수와 원장으로 재직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복음주의 윤리학회 회장. 기독교윤리연구소(기윤실부설)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