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라는 소망
창밖의 풍경이 어느덧 완연한 늦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공기의 무게가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한 해의 수고를 결산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길고 긴 터널과 같았던 수험 생활을 마친 우리 자녀들과,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마음을 졸여 오신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드디어 큰 시험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의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으신 줄 압니다. 이제는 ‘결과’라는 현실적인 점수를 손에 쥐고, “이 점수로 어떤 문을 두드려야 하는가”, “이 길이 최선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산해야 하는, 또 다른 압박의 시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고(故) 김창열 화백의 인터뷰 글과 회고전 카피를 읽다가, 깊은 울림을 주는 고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물방울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회상입니다.
“파리 근교에 정착했을 때… 근 30평이나 되는 마굿간에서 작은 난로 하나를 때는 때라서 난방은 있으나마나 한 거지. 나는 중처럼, 도인처럼 수도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어. 그때 심정은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바로 그 자리에서 물방울이 탄생한 거야.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고통스러울 때 물방울이 튀어나온 거야.” [1]
30평짜리 텅 빈 마굿간. 있으나 마나 한 작은 난로 앞에서, 수도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추위와 가난, 절망과 싸우고 있던 한 화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모든 것이 겉어내진 그 자리, 그가 종교적 체험이라 불렀던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위대한 예술혼인 ‘물방울’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과해 온 그 치열한 시간, 그리고 이제 그 점수를 받아 들고 마지막 지원 전략을 짜야 하는 이 막막한 시간이, 어쩌면 김창열 화백의 그 추운 마굿간과도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냉혹한 점수라는 현실, “과연 이 선택이 맞을까” 하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 역시 웅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가장 춥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우리 가정을 무너뜨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삶의 헛된 것들을 걷어내고 가장 영롱하고 변하지 않는 영적인 물방울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이 질문을 가지고, 로마서 5장 3절에서 5절 말씀을 함께 깊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 지난한 과정을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고 이 마지막 관문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마침내 우리 안에 가장 빛나는 ‘영적인 물방울’을 맺고야 마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 속에서 지혜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고난이 빚어내는 ‘영적인 물방울’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말씀은 로마서 5장 3절에서 5절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들립시스 θλῖψις)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휘포모네 ὑπομονή)를, 인내는 연단(도키메 δοκιμή)을, 연단은 소망(엘피스 ἐλπίς)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참으로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고, 심지어 원어로는 ‘자랑한다'(카우코메타)고 선포합니다. 어떻게 고통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맹목적인 긍정이나 정신 승리의 강요가 아닙니다. 바울이 고난을 자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4절의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이 환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그 영적인 비밀을 그가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환난’이라는 거친 조약돌이 ‘소망’이라는 빛나는 보석으로 변모하는 4단계의 영적 연금술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2]
1단계: 환난 (들립시스, θλῖψις)
‘환난’을 뜻하는 헬라어 ‘들립시스’는, 본래 짓누르는 압력을 의미합니다. 올리브를 강하게 쥐어짜서 기름을 얻거나, 포도를 밟아 즙을 낼 때 사용하던 단어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매일 느꼈던 성적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이제는 ‘받아든 점수’라는 구체적인 압박감, ‘이 점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불안감… 이 모든 것이 우리와 우리 자녀를 짓누르는 압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압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부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으깨어, 우리 안에 있는 진짜를 짜내시기 위함입니다.
2단계: 인내 (휘포모네, ὑπομονή)
그 압력이 올 때, 우리는 ‘인내’하게 됩니다. ‘인내’를 뜻하는 ‘휘포모네’는 수동적으로 참는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아래에'(Hypo) ‘머무르다'(Meno)라는 뜻의 합성어로, 그 압력 아래에 머무르는 힘, 즉 도망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내는 적극적인 지구력을 의미합니다.
지난 수험 기간, 매일 책상에 앉아 버텼던 것이 ‘휘포모네’였다면, 지금은 복잡한 입시 요강을 뒤지며 마지막까지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 버티는 것, 혹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수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묵묵히 준비하며 버티는 것이 바로 지금의 ‘휘포모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이 압력을 즉각적으로 제거하지 않으십니다. 그 압력 아래서 버티는 법을 먼저 가르치십니다.
3단계: 연단 (도키메, δοκιμή)[3]
이처럼 압력 속에서 버티는 힘이 반복될 때, 우리는 3단계인 ‘연단’에 이릅니다. 이 ‘연단'(도키메)은 ‘시험을 통과하여 진짜임이 입증된 상태’, 즉 “연단된 인격”을 의미합니다. 불로 금속을 제련하여 불순물은 다 태우고 순금만 남기듯이, 이 고난의 압력은 우리 믿음의 불순물을 태우는 용광로와 같습니다.
수험생활이라는 용광로, 특히 ‘점수’라는 이 냉혹한 결과물은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믿음은 진짜입니까?” ‘내 점수에 맞는 최선의 대학’이 아니라, ‘그 점수 안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세상이 인정하는 대학’이 아니라, ‘내 자녀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가? 이 연단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순전해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검증된 인격, 순도 높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4단계: 소망 (엘피스, ἐλπίς)
드디어 이 모든 과정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된 인격을 거쳐 마침내 ‘소망’을 이룹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발견하는 이 최종적인 영적인 물방울, 이 ‘소망’은 무엇이겠습니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소망이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5절에서 이 소망의 진정한 정체를 분명히 선언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 추운 마굿간에서 발견해야 할 궁극적인 영적인 물방울입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소망은, “내 자녀가 어느 대학에 가든, 세상이 우리 가정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 모든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 사랑은 이미 우리 마음에 홍수처럼 부어져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은 어떤 입시 결과로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반석이 됩니다. 이 수험생활이라는 ‘들립시스'(압력)는, 우리의 노력이나 자녀의 실력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거대한지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지키고 보호하셨으며, 마침내 이 소망을 우리 안에 완성하실 것입니다.
추운 마굿간에서 ‘영적인 소망(물방울)’을 발견한 사람들
성경에도 이 혹독한 ‘압력’ 속에서 자신만의 영적인 물방울을 발견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1. 야곱: 자신의 힘이 깨어진 얍복강 (창 32:26)
야곱은 자신의 꾀와 힘으로 평생을 살아온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형 에서를 마주하기 직전, 얍복강 나루터에서 죽음의 공포라는 ‘압력’에 휩싸입니다. 그는 그제야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박하게 구합니다.
• 그가 발견한 영적인 물방울: ‘야곱'(속이는 자)이 아닌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새 정체성입니다.
• 우리의 적용: 이 입시의 마지막 관문은 우리 힘의 한계를 절감하는 얍복강입니다. 내 점수와 내 전략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이 점수 안에서 주님의 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겸손히 도움을 청하는, 가장 강력하고 진실된 기도를 배우는 자리가 됩니다.
2. 요셉: 잊혀진 감옥 (창 50:20)
요셉의 삶은 억울한 ‘압력’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감옥에서 잊혀진 2년의 시간은 기약 없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잊혀진 시간’을 원망이 아닌 ‘버티기'(휘포모네)로 통과하며 ‘연단된 인격’을 빚어냈습니다.
• 그가 발견한 영적인 물방울: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 우리의 적용: 기대했던 점수가 나오지 않았거나, 원하던 학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마치 ‘잊혀진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이 점수와 이 상황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3. 다윗: 모든 것이 빼앗긴 광야 (시 63:1)
다윗은 김창열 화백의 추운 마굿간과 가장 닮은 ‘광야’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기며 살았습니다. 그는 괜찮은 척하지 않고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했습니다.
• 그가 발견한 영적인 물방울: 그는 ‘시편’을 썼습니다. 광야라는 결핍 속에서,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할 수 없게 되자, 비로소 하나님 한 분만을 찾고 갈망하게 됩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 63:1).
• 우리의 적용: 점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은 이 결핍 속에서, 세상의 다른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그 정직한 탄식과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로 가장 깊이 만나 주십니다.

매일신문에서 갈무리
당신의 ‘영적인 소망(물방울)’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故) 김창열 화백은 뼛속까지 시린 추위와 고통이라는 압력 속에서 ‘물방울’이라는 소망을 만났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선포합니다. 수험생활이라는 ‘환난'(압력)은, 그저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영원한 ‘소망'(물방울)을 발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연금술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손에 쥔 ‘점수’와 ‘지원 전략’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물론 좋은 결과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 이 추운 마굿간 같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더 크고 영원한 ‘영적인 물방울’을 놓쳐버린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 힘의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법'(야곱처럼)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법'(요셉처럼)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모든 것이 결핍될 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법'(다윗처럼)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내 자녀가 어떤 점수를 받든, 어떤 대학을 가든, 우리 가정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홍수처럼 받고 있는 존귀한 가정이다!” 라는 그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롬 5:5)을 우리 가슴 깊이 새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과정을 지키고 보호하셨으며, 우리의 이 마지막 여정 가운데서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마침내 우리 안에 이 ‘영적인 물방울’을 맺고야 마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 제목을 바꾸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 이 점수보다 더 좋은 대학 가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넘어, “하나님, 이 환난의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와 우리 부부가 ‘연단된 인격’을 소유하게 하소서. 세상의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견고한 소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될 때, 입시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 가정은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이 ‘영적인 물방울’을 가슴에 품는다면, 우리는 자녀의 점수나 세상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남은 모든 과정과, 앞으로 우리가 만날 모든 인생의 ‘압력’ 속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주님이 발견하게 하시는 영적인 물방울을 찾고 기뻐하시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 (수험생 자녀들을 위해) 세상의 점수와 결과가 나의 가치를 흔들지 못하게 하시고, ‘어떤 문’을 선택하든 그 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2. (부모님들을 위해) 자녀를 ‘점수’나 ‘대학 이름’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로 껴안아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자녀의 선택을 지지하고 축복하는 평안의 안식처가 되게 하소서.
3. (우리 모두를 위해) 이 모든 ‘압력'(환난)의 시간을 통해, 세상의 일시적인 소망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영원한 ‘물방울'(소망)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것을 우리 삶의 가장 큰 가치로 붙들고 살아가게 하소서.
각주
- 故 김창열 화백의 인터뷰와 회고전 카피 내용을 재구성하여 인용함. 성수영, “전쟁터에서 흐른 피와 땀과 눈물, 영롱한 물방울로 맺히다,” arte 리뷰, https://www.arte.co.kr/art/review/article/9537 (accessed November 16, 2025).
- 김도현, 『나의 사랑하는 책 로마서』(서울: 성서유니온, 2014), 197–208.
- Darrell Bock, The Bible Knowledge Word Study: Acts–Ephesians, Bible Knowledge Collection, Bible Knowledge Series (Colorado Springs, CO: David C. Cook, 2006).
하진호 목사는 총신대 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하였다. 분당우리교회에서 목회기획, 훈련, 양육 담당자로 섬겼고, 현재는 교구와 어머니 기도회 담당 목사로 성도들을 목양하고 있다.



